마음에게 말걸기
대니얼 고틀립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절판


그렇다. 나는 끔찍한 비극을 겪은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경험했다. 충격, 슬픔, 분노, 공포...... 이 모든 것이 나를 성난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가 내 마음을 폐허로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웠던 것은 세상, 그리고 사람과의 괴리감이었던 것 같다. 그후 몇 주 동안 나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나의 신념을 꺾어야 한대도 진정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내게 보통 남자들처럼 사랑을 나누고 아내와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내가 간호사와 약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다 해도, 만약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서 보내야 한다 해도 내가 여전히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13쪽

우리의 인생에 닥친 이런 예기치 못한 비극 앞에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이 반응에 따라 나의 반응도 달라진다. 주변 사람들이 불안해하면 나도 불안했다. 그들이 마음을 열고 나를 보살펴주면 나는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지쳤을 때 내가 그들을 위로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치유했다.
사고 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감정은 전염된다는 것을 배웠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느끼지 못한 감정까지도 옮겨진다. -16~7쪽

비틀즈는 이렇게 노래했다. "그대에게는 오직 사랑만이 필요해요."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반면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가사는 완벽하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꿔요." 받기만 하는 사랑과 주기만 하는 사랑, 믿음직한 사랑과 배신한 사랑, 어떤 식의 사랑이건 이 세상의 사랑은 모든 것을 바꾼다. 그리고 순수하고 솔직하며 이타적인 사랑보다 더 깊고 진실한 사랑은 없다. -22쪽

사랑이 언제까지나 처음처럼 순수하게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 그들도 우리를 그만큼 사랑할지, 또 그들이 행복한지 애태우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근심이 '그들을 아끼는 방법'의 하나라거나 '그들의 인생을 위한 고민'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그들을 개조하려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근심에 지나지 않는다. 내 기분이 나아질 것 같기 때문에 그들을 바꾸려고 한다면 그것은 불안일 뿐이다. -23쪽

어쩌면 우리는 손에 쥔 것을 더 많이 놓을수록 더 큰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불안과 욕망, 희망이나 분노와 같은 모든 감정을 뛰어넘는다. 사랑은 마음을 완전히 열어야 오는 것이며 그 무엇도 요구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우리를 어지럽히는 모든 바람과 욕망 들이 잠잠해질 때, 우리가 필요한 것도, 원하는 것도 별로 없을 때,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일 때, 사랑은 조용히 우리를 찾아온다. -28~9쪽

우리는 계속 나만의 이론을 꼭 쥐고 있으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가진 전부이기 때문이다. 항상 믿어왔던 이론을 손에서 놓으려 할 때는 기존의 신념을 뛰어넘어야 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또다른 희망을 찾아야 한다.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내 안의 탄성을 믿는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을 바라보며 살 수 있다. -42~3쪽

우리는 살면서 항상 상처받지만 그 상처는 항상 치유된다. 이는 우리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삶의 과정이다. -52쪽

하지만 나는 어머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내가 한 인간으로서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어머니가 내게는 여성도,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분은 그저 어머니였다. 나는 늘 언젠가는 어머니가 나를 알아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 어머니는 더이상 나를 알 수 없을 것이고 나 또한 어머니를 알지 못할 것이다. -63~4쪽

어미니의 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나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상대의 모습을 온전히 보지 못하는 이 땅의 수많은 관계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상대의 마음에서 온기를 느끼지 못한다. 과거에 받은 상처 때문에 분노하거나 미래에 겪게 될 상처를 두려워할 뿐이다. 혹은 서로를 바꿔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아무 소용도 없었던 지난 세월의 불만과 짜증만을 실감한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그저 손만 잡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고 마음속에는 진한 슬품이 차오른다. -68쪽

내가 이 일을 통해 배운 것은 무엇일까?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 스스로 평화로운 사람이 되고 그에 대한 말은 삼가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다른 사람을 늘 편견 없이 너그럽게 대하길 바란다면 우리가 먼저 모범이 되어야 한다. 내가 칼럼을 쓰면서 그랬던 것처럼 주먹을 꽉 쥐고 흔들며 평화를 옹호한다면 언제나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이기적인 사람밖에는 될 수 없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 사람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다. 오히려 사람을 잃게 된다. -7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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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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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접한 것은 문학동네 카페의 연재였다. 사실 연재되는 소설들은 너무 감질나서 잘 읽지 않는 편이었는데, 우연히 읽은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몇 개 읽다보니 진지한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은근 빵 터지는 구석도 있어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워낙 연재글 자체를 늦게 읽기 시작했던지라 중간쯤 읽었을 때 단행본이 출간됐고, 부랴부랴 이렇게 다시 책으로 읽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 버렸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너무나 불행했고
나는 너무나 안절부절
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이 책의 제목과 똑같은 이바라기 노리코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처럼 이 책은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간 가장 불행했던 시절의, 가장 예뻤던 아이들의 이야기다. 넷째 딸로 태어나 이름을 지어달라는 아버지의 말에 할아버지가 "아무거나 혀~"라고 해서 해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주인공을 둘러싸고 시국과 시극인지 구분도 못했던 아이들이 점점 세상에 눈을 뜨고, 세상과 마주하며 그 속에서 상처를 받고, 또 그 속에서 사랑도, 외로움도, 저항도 하는 모습이 이 책에서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는 것은 죄가 아닌게로 우지를 마라"라고 말한다. 절친했던 친구들이 저마다의 상처안고 각자의 길을 떠나지만 해금이와 친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작가의 의도였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80년대의 광주를 다룬 이 책을 읽으며 2009년의 서울을 생각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부당함에 저항하고, 때로는 소심하게 멀찌감치서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해금이와 친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른 것 같지 않았다.  

  누군가 청춘은 무모하기에 아름다운 것이라 했다. 이 책 속의 해금이와 친구들도 때론 무모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아름답다. 세상에 맞서 싸우다가 상처를 받아도, 때론 부조리한 세상에 질끈 눈을 감는다해도, 어쨌거나 살아있기에, 희망이 있기에 청춘이기에 그들은 한없이 아름다웠다. 책을 읽으며 그들의 아픔에 함께 슬퍼하고, 그들과 함께 웃으며 즐겼더니 어느새 책을 다 읽고 다시금 해금이와 친구들을 생각하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만이 남았다.

  처음 읽은 공선옥 작가의 책이었는데 등장인물들이 어떤 일을 겪더라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이제 갓 걸음을 뗀 아기를 한편으론 기특한 마음으로, 한편으론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읽을 때는 전라도 사투리 때문에 낯선 느낌도 있었는데 계속 읽다보니 더 친근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때론 욱신욱신 마음 한 켠이 아파오기도 했지만, 예쁜 표지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였다. 조만간 공선옥 작가의 다른 책도 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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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6-16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공선옥 작가는 제가 사랑하는 작가지요. 전라도 사투리도 이젠 착착 감겨들만큼 알아듣고요~ 이게 80년 광주를 얘기한다면 당근 봐야겠네요. 공선옥의 따뜻한 시선~~ 발견하셨군요. 그게 매력이면서 때론 내게는 버거운 작가이기도 했어요.

이매지 2009-06-16 10:14   좋아요 0 | URL
따뜻한 시선이 매력이면서 때론 버거웠다...
순오기님의 말씀을 들으니 더 궁금해지네요~

2009-06-16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6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6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콜릿 학교
고영주 지음 / 달 / 2009년 5월
절판


달기만한 초콜릿은
진짜 초콜릿이 아니랍니다.
진짜 초콜릿은
부드럽고 달콤하고,
때로는 검고 쓰고, 예민하고 쌉싸래한...
마치 생의 슬픔과 기쁨, 거침과 부드러움이 함께 녹아내린
맛의 깊이를 품고 있답니다.

인생이 달콤하기만 하다면
우리는 금세 질려버릴 것이고
인생이 쓰기만 하다면 우리는 진저리만 치겠지요.
인생이 굽이굽이 거칠기만 하다면
우리는 너무 지쳐버릴 겁니다.
인생이 그저 부드럽기만 하다면
우리는 분명 지루해질 겁니다.

달콤하고 쌉싸름하고 부드러운 진짜 초콜릿은
또다시 여러 가지 재료들을 만나
너무나 다양한 맛과 느낌으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한입 크기의 작은 모양 속에 자신을 숨기고
상자 안에 얌전히 자리 잡고 우리를 기다립니다.
어떤 맛을 고르게 될지,
때로는 너무나 익숙하고,
때로는 놀랍고,
때로는 기쁨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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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품절


문화란 무엇인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책읽기의 즐거움이라고 다르겠는가.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고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그게 독서 문화이고 출판문화다(거꾸로 괴로움을 주는 건 '문화'가 아니다. 날림 출판은 문화가 아니다). 그런 즐거움 속에서야 우리는 인의와 자비와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다.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가 사랑을 줄 수 있다. 즐거움이 뭔지를 아는 사람이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 -17쪽

군자란 완성된 인간이지만, 그 자기완성이란 건 미래완료형으로서만 존재한다. 그러니까 진정 완성된 인간이란 끊임없이 완성되어가는 인간이다. 그래서 '자왈' 한마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하는 것. 그래서 끊임없이 베풀고 또 베풀어야 하며, 끊임없이 쓰고 또 써야 한다. 글쓰기가 자동사라는 건 그런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무엇을 이룬다는 '타동사'는 자동사의 극한이며, 자동사의 미래완료형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우리의 '즐거움' 또한 끝이 없다. 그런 즐거움을 배우고 익히는 것, 즉 다시 가르치고 베푸는 것이 나는 교육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해서, 우리가 '배우는 지식'은 언제나 '즐거운 지식'이며, '새로운 계몽주의'란 '즐거운 계몽주의'다. 그것이 시민의식의 함양이고 시민교양의 양생이다. 시민의 학습이고 합창이다. 끊임없이 읽고 쓰고 떠들어대라! 그것이 한편으론 시인 이성복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과의 연애'다. -19~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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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줄창 읽었던지라 살짝 질려서 언제부턴가 안 읽고 있는데 이번에 나오는 가가 형사 시리즈는 혹한다. 한 번에 4권을 출간한다니 번역가도, 출판사도, 독자도 다 고생이다;;;  

  

 

 

 

  

오랫만에 나오는 박범신의 책. 김정호에 대한 책이라고 하는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 요새는 이런 류의 역사소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 대니얼 고틀립의 두번째 이야기. <샘->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저자가 자폐아인 손자와의 편지를 통해 교류하는 따뜻한 이야기였다면, <마음에게 말걸기>는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이야기다. 따뜻한 내용에 어울리게 저자 인세의 전액이 어린이 건강재단과 자선단체에 기부된다고.










The book of tea라는 제목을 <차의 책>이라고 하니 왠지 어색. 일본인이 영어로 쓴 '차tea'에 대한 책이라고 하니 왠지 관심이 간다. 일본 차문화에 대해 좀더 배울 수 있는 책일 듯.


그외에 관심가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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