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살면서(아, 어색하다, 서른, 이라니!) 단 한 번도 일출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시간에 못 일어나서, 그 시간에는 추우니까 등의 이유를 들었지만 따지고보면 사실 그냥 귀찮았다. 어차피 맨날 뜨는 해를 산에까지 올라가서 왜 봐야 하나, 해는 1월 1일에만 뜨나 아무튼 오만가지로 궁시렁거리면서 단 한 번도 일출을 보러 간 적이 없었다.  


서른 살의 첫 해를 굳이 꼭 봐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냥 바다가 보고 싶어서 혼자 속초에 내려가서 바다를 보고 닭강정도 먹고(...) 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12월 중순에 독서모임을 마치고 3차로 술을 마시면서 카페(라 해야 하나 술집이라 해야 하나)에서 틀어놓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멍하니 보는데 갑자기 바다가 나왔다. "아, 바다 가고 싶은데…" 하고 나도 모르게 내뱉었는데 같이 마시던 ㅇ군이 자기도 바다 가고 싶다고 맞장구를 쳐줘서, 여차저차 하다가 술김에 31일에 바다를 보러 가기로 약속해버렸다. 다음날 재차 확인했으나 술 깬 뒤에도 동행할 의사를 보여 해돋이여행 급 추진. 사실 ㅇ군과는 모임에서 네 번 정도 만났지만 개인적으로는 스무 마디도 안 섞었던 터라 둘이 가기는 부담스러웠지만 어쨌든 바다는 보고 싶으니까, 혼자 가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리고 (이게 나한테는 가장 큰 이유였지만) 아무튼 호감이 있는 상대니까 따라나섰다. 보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던 터라 강원도 쪽은 이미 기차표가 다 매진이라 결국 여행사에서 내놓은 부산 해돋이+태종대+자갈치시장 상품을 구입해 31일 밤기차로 내려갔다. 


4시 좀 넘어서 부산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이동해 5시 언저리에 해운대에 도착했는데, 해가 뜰 때까지 두어 시간 동안 딱히 할 일도 없어서 바닷가를 거닐다가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아, 발 시려!' 하고 인내심에 슬슬 한계가 올 때쯤 일출시간이 다가왔다. 버스 안에서 기사님께 구름 때문에 해를 못 볼 꺼 같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고 일단 일출시간까지만 기다려보기로. 엇, 근데 해가 나온다?! 해돋이라고는 난생처음 본 터라 해가 머리를 쏙 내밀더니 쓕쓕 올라오더니 뿅! 하고 나타나는 모습에 그저 감탄. 또 감탄했다. 사진은 무슨 사진이냐 내 눈에, 내 마음에 담아두면 되지 하면서 넋 놓고 보다가 돌아나오며 그래도 아쉬워 한 컷을 찍었다. 



아무튼 간에 남자 사람이랑 간 첫 여행(인데 왜 다들 무박임에 안타까워했을까?!), 내 생의 첫 일출, 2013년의 첫 일출, 2013년의 첫 바다, 2013년의 첫 여행, 2013년의 첫 컷, 2013년의 첫 두근거림… 올 한해 얼마나 많은 '첫'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아직은) 조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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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3-01-03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쁘다. 일출을 볼 때 해보다 더 감동인 건 언제나 하늘이었어요. 전 무식해서 해가 뜰 때 진짜 애국가에 나오는 해처럼 왕따시만한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줄 알았었는데 ;; 처음에 일출을 봤을 땐 계란후라이 노른자같은 게 뿅 하고 나와서 저게 정말 해냐며 아쉬워했었는데.... ㅋㅋㅋㅋ 하지만, 해는 늘 같지만 하늘은 늘 다르고, 늘 아름다웠고. 아. 매지님 이 사진의 하늘도 정말 아름답네요.

맨날 인사하지만 괜히 여기서도. 해피뉴이열! (해피뉴썬?) ㅋㅋㅋ

이매지 2013-01-03 01:45   좋아요 0 | URL
사실 해가 뜨기 전에 그라데이션이 진짜 예뻤어요.
어차피 찍어도 이 색감 안 나온다고 그냥 보자고 옆에서 궁시렁거리기도 했고,
추워서 가방에서 카메라 꺼내기도 귀찮아서 그냥 넋놓고 봤었어요.

아니 제가 댓글 다는 고새 수정을...
저도 해가 애국가처럼 두둥실 뜨는 줄 알았는데 뿅! 하고 나타나서 놀랐어요.
대체 애국가 화면은 누가 찍은 거냐며 애꿎은 사람을 구박했...

웬디님도 해피뉴이열! :)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순오기 2013-01-03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으로 해맞이 다녀왔군요~ 새해 해맞이 멋지죠!
해운대는 여러차례 가서 많은 사람들과의 추억이 깃든 곳이네요.^^
건강하고 멋진 2013년 만들어가시기를....

이매지 2013-01-03 02:39   좋아요 0 | URL
전 작년(아니 벌써 작년이라니) 부산영화제 때 처음 부산에 갔었어요.
해운대는 이번이 두번째. ㅎㅎ
순오기님 오랜만이예요.
순오기님도 건강하고 멋진 2013년 보내시길! :)

프레이야 2013-01-0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사람이랑 해운대까지 오셔서 해맞이 하셨군요.
와~ 제가 다 신나요. 해운대 해맞이 하겠다고 여고생 4명이서 버스 타고
그 옛날 새벽에 설쳐서 갔는데
이미 해가 다 뜨고 못 봤다는 안타까운 전설이 있다지요.^^
이매지님 새해에 좋은 일만 많이 생기기 바래요.

이매지 2013-01-03 14:14   좋아요 0 | URL
사실 내려갈 때만 해도 구름이 있어서 큰 기대를 안 했는데 해 뜨는 거 봐서 기뻤어요.
저도 강원도로 갔으면 아마 차 안에서 해가 뜨지 않았을까 싶다능. ㅠㅠ
프레이야님도 새해에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

마노아 2013-01-0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렇게나마 제가 일출을 보네요. 직접 보면 얼마나 더 장관이었을까요. 여행 잘 다녀왔어요. 저도 왠지 무박이 쫌 아쉽네요.^^ㅎㅎㅎ

이매지 2013-01-03 14:15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 봤는데, 아 이래서 사람들이 추운데도 기다려서 보는구나 싶었어요.
무박이었지만 좋은 하루였습니다. 후훗. (읭?!)

oren 2013-01-04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3년의 첫 일출이 이렇게 아름다웠다니 믿겨지지 않네요.
이 장관을 직접 보신 분들은 올 한해 큰 행운이 있을 것 같아요. ㅎㅎ
이매지님께서 올려주신 이미지만 보게 된 우리들에겐 '작은 행운'이라도 있겠지요?

이매지 2013-01-04 13:22   좋아요 0 | URL
와. oren님 반갑습니다. ^^
올 한 해 큰 행운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ㅎㅎㅎ
oren님도 사진으로나마 보셨으니 큰 행운이 있으실 꺼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