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섯 인생 -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홍윤(물만두)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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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인터넷 서점 중에 내가 알라딘에 둥지를 틀게 된 이유의 팔 할은 물만두님이었다. 멋 모르고 마구잡이로 리뷰를 올리던 시절(아, 그때의 리뷰는 내가 봐도 유치함에 손발이 오글거린다) 친절하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물만두님이었다. 나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녀의 따뜻한 환영에 서재 생활을 시작했으리라. 그녀의 댓글이 인연이 되어 그녀의 서재에 들락날락거리며 엄청난 추리소설 리뷰에 놀랐다. 단순히 국내에 출간된 추리소설의 소식뿐만 아니라 작가별로 연보를 정리해놓고, 막연하게 '좋은 추리소설 추천해주세요!'라는 말에 두루뭉술한 질문에도 친절하고 꼼꼼하게 답변해주는 모습에서 추리소설에 대한 그의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에 애독자, 게다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지라 물만두님은 내게 어떤 책을 읽는 것이 좋을지 알려주는 지표였다.

  하지만 단순한 책이라는 공통점만 있었다면 그에 대해 인간적인 감정을 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엄청난 책을 읽어치우고 엄청난 리뷰를 써내려가는 그는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으니까. 하지만 페이퍼를 통해 만나는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와인 코르크 마개가 부서져서 체에 걸러 와인을 마셨다거나 동생이 나를 핑계로 먹을 걸 사와놓고 지가 다 먹었다는 식의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페이퍼로 전했다. 하지만 마냥 두 동생과 티격태격하면서 티 없이 살아가는 듯한 그녀에게도 그늘은 있었다. 그녀는 근육이 점점 없어지는 '봉입체근염'이라는 근육병을 앓고 있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봤지만 그녀의 근육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그녀가 지병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떠난 다음에야 병명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병명이 무어 중요할까. 그녀는 책을 무기로 누구보다 강하게 생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가족, 그리고 보이지 않는 알라딘이라는 인터넷 공간의 사람들이 채워주고 있었다. 그녀가 먼저 따뜻하게 내밀어준 손을 잡은 사람들. <별 다섯 인생>은 바로 그 기록이다.

  책의 서두에 "우리가 태어날 때 조물주가 아홉 개의 건강한 공과 한 개의 병든 공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게 하셨는데, 나는 그중 병든 공 한 개를 골랐을 뿐이다. 내가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불행하게 생각하지도 않으니 님들도 그런 걱정이랑 마시길……. 사람은 저마다 제멋에 겨워 사는 거니까"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인생을 사는 건 재미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자신을 "끈질기다"라고 표현하는 그녀의 글 속에서,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나는 '생'의 소중함을 느꼈다. 마치 시트콤 같은 이들 가족의 이야기를 읽으며 깔깔거리다가도 삶에 대한, 책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엿보일 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당신이 사는 오늘은 누군가가 그토록 살고 싶어한 내일이다" 같은 류의 식상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생을 사랑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관계에 충실했다. 나는 과연 그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그녀가 남기고 간 씨앗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도 그녀가 기다려온 고전 추리소설들이 출간되고 있다. 그녀가 떠난 다음에 쓰여진 작품들도 많다. 누구보다 그 소식을 빠르게 전했을, 누구보다 즐겁게 그 책들을 읽었을 그녀. 그녀의 빈 자리는 앞으로도 다른 무엇을 채울 수 없으리라.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 나는 한 명의 스승을, 한 명의 동료를, 그리고 한 명의 친구를 잃었다. 그녀는 떠났지만 이렇게나마 글로 다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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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2-04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도,
리뷰도,
정말 멋져요.
물만두님 서평집에만 관심을 기울였었는데,
이 책 오면 즉시 읽어봐야겠어요.

이매지 2011-12-05 23:53   좋아요 0 | URL
저는 서평집은 아껴 읽으려고 일단 에세이부터 읽었어요.
소이진님도 만두님을 아셨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책으로라도 대신 만두님의 매력을 느껴보세요!

비로그인 2011-12-05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책으로나마 물만두님과 만날 수 있게 되어서 기뻐요.
열 개의 공 중 하나를 골랐을 뿐이라는 물만두님의 말씀과 이매지님의 리뷰까지, 모두 감동이에요 ㅠㅠ
책과 소통... 늘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 분일 것 같아요...

이매지 2011-12-05 23:54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제 삶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말없는수다쟁이님도 만두님의 따뜻한 생을 만나보세요!

BRINY 2011-12-0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리뷰 읽고 알게 된 책들, 구매하게 된 책들이 얼마였던가 새삼스럽게 리뷰집을 보고 생각해봤습니다.

이매지 2011-12-05 23:5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예요.
정말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품들도 어쩜 그렇게 꼼꼼히 소개해주셨던지...
저도 만두님 덕분에 참 많은 책을 알게 되었고, 많은 작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2011-12-05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5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1-12-06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에요!! 물만두님을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매지 2011-12-07 14:45   좋아요 0 | URL
아, 뭔가 부끄럽습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