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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이에몬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교고쿠 나츠히코의 책은 늘 장광설에 정신이 반쯤 나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시작했다. 힘들게 읽어내려가면서도 그의 소설을 끊을 수 없었던 것은 역시 그럼에도 교고쿠 나츠히코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쁜 나날 속에서 짧은 호흡으로 읽을 책을 찾다보니 자연스레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이 한 권 두 권 쌓여가기 시작했고, 마치 마음의 부채처럼 그의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등장한 <웃는 이에몬>. 무엇보다 기존의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는 말에 끌려(그리 두껍지 않다는 것도 한 몫했다) 오랫만에 교고쿠 나츠히코의 이야기를 만났다.
이야기는 일본의 유명 괴담인 '요쓰야 괴담'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정작 교고쿠 나츠히코가 풀어가는 이야기는 요쓰야 괴담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풍긴다. 요쓰야 괴담이 '괴담'이라면 <웃는 이에몬>은 기묘한 사랑 이야기에 가깝다. 우직하고 통 속을 알 수 없는 무사 이에몬이 병 때문에 아름다움은 사라졌으나 자신만의 굳셈을 지닌 이와와 결혼을 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불화를 거듭하다 자신의 상식과 맞지 않는 것은 망쳐버리는 남자 이토 기헤이의 계략에 흔들리는 이야기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쉽게 말하면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두 남녀(이에몬과 이와)의 서툰 사랑 이야기가 <웃는 이에몬>을 이룬다.
그동안 읽어온 교교쿠 나츠히코의 소설에는 뭔가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웃는 이에몬>은 이전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일단 늘 나를 긴장케했던 장광설도 없고, 등장인물도 이와와 이에몬, 기헤이, 우메, 나오스케, 소데, 다쿠에쓰, 마타이치 등 몇몇으로 한정되어 있어 살짝 들어간 어깨의 힘도 풀고 읽을 수 있었다. 요괴는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기괴한 느낌을 풍기며 전개되는 이야기. 그 기괴함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다.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과 어둠, 질투와 집착. 이것이 <웃는 이에몬>에 교교쿠 나츠히코다운 면모를 더해줬다.
요쓰야 괴담을 아는 이라면 분명 이미 익히 알려진 괴담을 비트는 데에서 얻는 나름의 재미가 있으리라. 하지만 <웃는 이에몬>의 원전에 낯선 이들도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이 기괴하고 매력적인 사랑 이야기를 읽어가는 데서 재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기존의 교고쿠 나츠히코의 팬과 새로운 독자를 위한 책으로 무색하지 않은 작품. 특히 '항설백물어 시리즈'의 마타이치의 첫 등장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