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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간이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5월
평점 :
어김없이 돌아온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이야기. 연작소설이긴 했지만, 사실 초반에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조금은 심심한 구석이 있어서 느릿느릿 읽어갔는데(게다가 이번에는 나만의 느낌인지는 몰라도 첨자로 설명이 올라간 부분이 늘어난 듯) 본격적인 이야기인 <긴 그림자>에서 '역시 미미 여사는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의 에피소드는 어디까지나 떡밥이었을 뿐. 본격적인 이야기는 뜸을 들인 뒤에 시작되니 초반에 포기 하지 않으면 쏠쏠한 재미가 기다리고 있을 책.
과연 왜 '얼간이'라고 하는 건지는 갸웃하지만, 어쩐지 어리숙하면서도 속정 깊은, 헤이시로가 이번에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혼조 후카가와 지역에서 야채 가게 집의 청년이 괴한에게 살해당한다. 이 일로 관리인 규베가 떠나고, 규베를 대신해 젊은 관리인 사키치가 새로 후카가와에 온다. 하지만 사키치가 온 뒤 이상하게도 마을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한 가구씩 이곳을 떠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헤이시로는 일련의 사건의 배후에 미나토 상회가 있음을 알게 된다. 대체 무엇 때문에 미나토 상회에서는 모종의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
미미 여사의 다른 에도 이야기도 그랬지만, 이 책도 사건 자체의 매력보다는 등장인물에 더 애정이 갔다. 어딘가 느슨해보이는 헤이시로, 아직은 어리숙한 젊은 관리인 사키치, 겉으로는 마냥 괄괄한 것 같지만 정이 넘치는 과부 오토쿠, 너무나 빼어난 외모 때문에 다른 길로 빠질까 헤이시로의 아내가 양자로 점찍은 조카 유미노스케 등의 캐릭터는 이야기의 재미를 더했다. 특히나 오토쿠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는데, 이래저래 새로운 사람들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던 그녀가 사키치를 인정해가는 모습이나 초면에 죽은 남편이 자신을 찾았다는 얘길 꺼내 삐걱거렸던 오쿠메와의 관계가 유머러스하게 그려지는 점이 재미있었다. 또 하나, 아직도 오줌싸개를 벗어나지 못한 어린 유미노스케의 비현실적인 영특함은 같은 시대극인 <샤바케>가 떠오르기도 했다.(물론 <샤바케>의 도련님과 유미노스케는 설정이나 캐릭터 자체가 다르긴 하지만.)
시대적인 배경은 한 번도 경험한 적도 없는 에도 시대인데도 어쩐지 미미 여사의 시대물을 읽을 때면 따뜻함이 느껴져서 좋다. 물론 그 시대에도 노름 빚에 딸을 팔아넘기려는 파렴치한 아버지도 있고, 남편과 정을 나눈 여자를 질투해 자신의 딸마저도 험담하는 어머니도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 책에는 '정'이 흐른다. 지금처럼 남의 집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모두가 암묵적으로 비밀(혹은 마을의 구성원)을 지켜주기도 하고, 마치 한 가족처럼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기댈 수 있는 모습. 어쩌면 이제는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미미 여사의 시대물에서 그런 정을 찾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추리소설으로서 읽는다면 어딘가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을 작품. 하지만 미미 여사의 에도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이전에 나온 에도 이야기에 비해서도 꽤 괜찮은 듯. 초반의 뱀발 다발 지역을 무사히 넘긴다면 그 뒤로는 술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