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 - 문인 29人의 춘천연가, 문학동네 산문집
박찬일 외 엮음, 박진호 사진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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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1시간 정도만 외곽으로 나가면 도시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조용한 풍경이 펼쳐진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을 발견하기보다는 낯선 사람들을 그저 무관심하게 바라볼 뿐인 서울. 그런 서울의 삭막함이나 무관심과는 달리 길을 걷다가 아는 사람 한둘은 만나게 되는 작은 도시,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그런 폐쇄성 때문인지 그들끼리 더 친밀한 춘천에 대해 스물아홉 명의 문인들이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자란 내게 이들 문인이 전하는 '고향'의 이야기를 읽으며 할머니가 계셨던 시골 큰 집이 생각났다.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사도 가지 않고 똑같은 집에서 살고 있으니 서울이 고향이라 할 법도 하지만 재개발을 한답시고 뚝딱뚝딱 아파트가 올라가는 동네의 낯선 풍경, 하나 둘 떠나버린 이웃들보다는 차라리 휑하게 논밭만 있다 해도 이웃끼리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시골 큰 집이 더 고향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골이 도청소재지가 될 예정이라 이 또한 변하게 될 풍경이겠지만.) 친구나 어머니의 죽음, 혹은 실연의 아픔이나 어두웠던 학창 시절 등 마냥 따뜻한 추억으로 춘천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자에게 춘천이란 언제 어디서라도 항상 만날 수 있는 꺼지지 않는 등대처럼 자리한다. 바쁜 삶을 살면서 자신의 자리를 알려주는 등대 혹은 이정표가 있다는 것. 그들에게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 속에 화자는 저마다 자신의 시선으로 춘천을 바라본다. 사실 읽기 전에는 춘천 출신 혹은 춘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문인들의 이야기를 묶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단순히 그런 문인들의 이야기만 담은 것이 아니고 다른 지역 출신 문인들이 바라보는 춘천의 모습도 그려져서 오히려 더 좋았다. 아무래도 자기 고향을 이야기할 때면 저마다 조금이라도 좋게 포장하려고 애쓸 텐데 너무 주관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춘천을 바라보는 모습도 있어서 균형을 찾을 수 있었다. 또 이야기에 맞는 사진이 곁들여져 글을 읽으며 마냥 '이 곳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29명의 문인의 이야기를 엮다 보니 아무래도 장소가 겹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청평사'의 경우에는 사람마다 다르게 추억하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착시현상을 설명할 때 나오는 소녀 혹은 할머니처럼 인식하는 그림처럼 보는 관점에 따라 색다른 청평사가 다가왔다. 어떤 이는 자신의 연애와 청평사를 연결해 청평사에 세 번 갔지만 세 번 모두 아니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지나간 사랑을 추억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청평사에서 술과 저녁을 먹고 흥에 겨워하다 홀로 강가로 내려가 달빛에 물든 강물을 보며 신비로운 기분에 빠져들고 자유를 느꼈던 것을 추억하기도 한다. 공지천, 춘천가도 등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지명을 듣고 있자면 나도 그곳에 가서 나만의 추억을 하나쯤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동안 춘천하면 '춘천가는기차'와 같은 노래가 전하는 훌쩍 떠나기 좋은 곳이라는 이미지나 영화 <말아톤>에서 본 춘천 마라톤의 모습, 강원 도청 소재지 정도가 떠올랐다. MT로 강촌은 몇 번 가봤지만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춘천은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언젠가 막국수나 닭갈비를 먹으러 가야지'라고 괜한 몽상을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 책 <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을 읽으며 여러 문인의 춘천에 대한 추억이 얽힌 이야기를 읽으며 날씨가 풀리고 알록달록 물이 들 무렵이나 비 오는 어느 날 춘천에 한 번 가서 그들이 사랑하는 춘천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누군가의 춘천이 아니라 나만의 춘천이 될 춘천이, 그리고 그곳에 갈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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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3-1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춘천에 애틋한 추억이 있는 저에게 좋을 책이란 생각이 드네요.

이매지 2009-03-18 23:27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의 춘천에 얽힌 애틋한 추억은 뭘까 궁금해지네요 :)

turnleft 2009-03-19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고향이기도 합니다 ^^;

세실 2009-03-1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아 두었는데 님 글 읽으니 더 호감이 갑니다.
춘천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참 정겨워요.

이매지 2009-03-1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urnLeft님 / 앗. 고향이 춘천이셨군요 :) 한 번 읽어보세요~~
세실님 / 여러 문인의 글을 묶은 책이라 산만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작품 간에 좀 더 재미있고, 살짝 재미없고 이 정도 차이는 있는데 전체적으로 괜찮더라구요. 세실님도 한 번 읽어보세요. 그러고보면 '춘천'이라는 지명 참 예쁜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