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 부르는 가족

 

어려서부터 본명이 아닌 가명을 쓰거나 필명을 쓰는 것에 대해 멋지다는 생각을 가끔 했지만 별명을 부르는 것은 그닥 내키지 않았다. 아마도 별명이란 것을 스스로 짓는 경우보다는 대개 친구들이 놀리듯이 붙여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리라. 지금 쓰고 있는 '감은빛'은 온라인에서 필명으로 쓰기 위해 스스로 지은 것이고, 그 전에 불리던 별명은 '갈매기'였다. (야)구도(시)로 유명한 부산의 상징, 갈매기. 형들은 '갈매가'(갱상도 특유의 억양이 중요포인트!)라고 불렀고, 후배들은 '갈매기 오빠야'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나 서울에 자리를 잡은 후에는 이 별명이 내 외모나 내 말투와 그닥 와닿지 않는다는 평을 자주 듣게 되면서, 그리고 그 별명을 주로 부르던 사람들과 더이상 자주 만나지 않게 되면서 스스로도 안쓰게 되었다.

 

엊그제였던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큰아이가 뛰어나오며 우리 집에서는 이제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기로 했단다. 엄마는 '한알', 큰아이는 '딸기', 작은아이는 '당근'이란다. 무엇을 기준으로 지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다들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땀에 젖은 웃옷을 벗고 있는데, 큰아이가 빨리 내 별명을 정하라고 난리다. 그 순간 '갈매기'가 떠올랐으나, 다들 2글자 별명이니 부르기 쉽게 맞춰야겠다 싶었다. 뭐가 있을까? 일단 옷부터 벗고 하면 안될까? 시간을 끌면서 고민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러다가 뭐를 연상해서 그랬는지 큰아이가 '감자'라고 불렀다. 그러자 아이엄마는 대뜸 반발하며 '감자'가 얼마나 맛있는데, 이런 아저씨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내가 오래전에 쓰던 온라인 별명 '흰긴수염고래'를 떠올리며, '고래'라는 별명을 쓰겠다고 큰아이에게 말했더니, 이번에도 아이엄마는 곧바로 '술고래'라고 받아쳤다. 그래! 역시 그 반응이 나올줄 알았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엄마가 '매기'라고 불렀다. '갈매기'에서 앞글자 빼고 '매기'란다. 이쯤되면 나도 거의 포기상태. 뭐 좋다. '매기'든, '감자'든, '고래'든 뭐든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라. 아니 세개 다 별명으로 쓰면 어떤가?

 

아침에 큰아이 학교 교문 앞에서 "딸기씨, 재밌게 놀다와!" 그랬더니, "매기씨, 다녀올게요!" 하고는 장난스런 웃음을 짓는다. 개구쟁이 녀석!

 

찌쭝과 땀똔

 

가족들 호칭 중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처음에는 그리 쉽지 않은 발음이다. 큰아이는 함미(할머니)를 먼저 발음했고, 하뻐지(할아버지 - 이 발음은 솔직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를 나중에 발음했다. 동생네 조카들은 둘다 함미(할머니), 하삐(할아버지)라고 발음했다. 재밌는 건 우리 작은녀석은 거의 처음부터 원 발음에 가깝게 말했다. 함머니(할머니)와 하라머지(할아버지). 특히 할아버지 발음은 글자가 4개이므로 대부분 처음에는 2글자나 3글자로 줄이는 듯 한데, 요 녀석은 일찍부터 4글자의 발음을 들려줬다. (큰아이에 비해) 말이 늦은 편이지만 알아들을만한 단어를 구사할 때는 제법 원 발음에 가깝게 말하는 편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닫는다.

 

그럼 가족들을 부르는 말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당연히 삼촌이다! 큰아이는 신기하게도 삼촌을 '찌쭝'이라고 불렀다. 그 발음이 너무 재밌어서 자꾸만 삼촌을 불러보라고 해놓고, 온 식구들이 모두 웃곤 했다. 작은아이는 '땀똔'이다. 역시 말하는 시점이 늦은 대신 원 발음에 가깝다.

 

지난 [뗀뗀님과 넨넨님] 글 마지막즈음에 좋아하는 먹거리에 대한 '유아어'를 떠올리면서 우리 작은아이는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고, '공갈젖꼭지'를 뜻하는 '뚜뚜'를 적어놓았었다. 그런데 그 글을 쓴 이후 잘 생각해보니, 요 녀석이 좋아하고 유난히 찾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비줍'이다! 이게 뭘 말하는 걸까? 생협에서 박스채 시켜먹는 '배즙'을 말한다. 이 배즙은 달인 배즙이 아닌 생 배즙이다. 큰아이는 달인 배즙의 경우 잘 안먹는데, 생 배즙은 종종 먹는다. 그리고 작은아이는 아주 생 배즙의 귀신이라고 할만큼 좋아한다. 뭔가 기분 안좋은 일이 있으면 무조건 '비줍'을 찾으며 울어댄다. 기분이 안좋으니 일단 자기가 좋아하는 배즙으로 기분 전환을 하겠다는 뜻이다.

 

큰아이와 작은아이의 발달단계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 큰아이는 어떤 물건을 볼때마다 무조건 '엄마꼬', '아빠꼬', '함미꼬', '안야꼬(자기꺼)' 등으로 분류를 하고는 확인하듯이 물어보곤 했다. 무엇이든 물건을 보면 무조건 자신이 생각하기에 주로 쓰는 사람걸로 분류해냈다.

 

물론 작은아이도 짧은 기간동안 '엄마꼬', '아빠꼬'를 했지만, 길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게모야?'라는 질문을 더 많이 했다. 알면서도 물어보는 질문, 한번 시작하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질문. 처음에는 아이 말투를 따라해가며 재밌게 대답하다가도 세번, 네번 심지어 열댓번씩 질문이 반복되면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마련이다. 점점 굳어져가는 표정과 말투를 느끼면서도 아이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그때쯤 대답을 멈추고 가만히 있으면 제 풀에 지쳐 아이가 먼저 물건의 이름을 말하곤 한다.

 

또 하나 다른 점은 아이의 이름을 말하는 시기와 발음의 차이이다. 큰아이는 비교적 빨리 자기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안야'(물론 유아어)라고. 또박또박 발음했다. 우리가 뭔가를 대신 해주려고 하면 '안야가! 안야가!'를 큰 소리로 외쳤다. 자기가 하겠다는 소리다. 자기 물건은 '안야꼬!'라고 강조하면서 절대 안주려고 했다.

 

그에 비해 작은아이는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또박또박 한 글자씩 불러줘도 발음이 모호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갑자기 자기 이름에 가까운 발음을 시작했다. '이떵이'(역시 유아어)이라고 말이다. 요 녀석도 요즘 '이떵이가! 이떵이가!'를 외치며 자기가 양말을 신겠다거나, 바지를 입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물론 아직 혼자서는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것이라고 생각되는) 물건에 대해서도 '이떵이꺼!'를 분명하게 외치며 안뺏기려고 한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큰아이보다 개월수로 대략 3~4개월 이상 늦은 것 같다.

 

대신 작은아이는 확실히 행동발달이 빠르다. 큰아이도 아침마다 무겁다고 투덜대는 책가방을 작은아이가 번쩍 들어서 옮기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무척 놀랐다. 큰아이는 지금도 거의 하지 않는, 높은 곳에 올라가는 행동도 작은아이는 겁도 없이 거침없이 하는 것을 종종 본다. 역시 사람들은 다 저마다 개성을 갖고 태어나는구나! 새삼 아이들을 바라보며 깨닫는다. 나 역시 늘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뭔가 남들보다 잘 하는 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서 용기를 얻으며 또 한번 열정을 태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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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5-24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큰애때는 제법 꼼꼼히 기록한 게 많은데, 작은애 기록은 별로 없어 늘 미안해요. 님의 페이퍼를 보며 반성하게 됩니다.

감은빛 2012-05-24 09:59   좋아요 0 | URL
저는 큰아이 때도 많이 써놓지 못했구요.
작은아이도 여전히 많이 쓰지 못하고 있네요.
그래도 조선인님이 좋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

봄나무 2012-05-24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사시는군요!

감은빛 2012-05-30 16:55   좋아요 0 | URL
재밌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

hnine 2012-05-2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땀똔'이 무엇인지 제목만 보고 알았어요 ^^
'찌쭝'은 정말, 재미있는 연구대상인데요. 어떻게 그렇게 발음하게 되었을까...

감은빛 2012-05-30 16:56   좋아요 0 | URL
앗! 제목만 보고!
그렇죠. 땀똔은 아무래도 쉽게 알 수 있죠.
찌쭝은 저도 늘 궁금해하고 있어요.
정작 큰아이는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구요. ^^
 

며칠 전 아내가 말했다. 큰아이 반 엄마들이 선생님 선물을 준비하는데, @@만원 미만의 선물은 해도 소용없다며 얼마 이상을 내야 한다고 말했단다. 가난한 형편에 선생님 선물로 그런 큰 돈을 쓸 여유도 없지만, 돈이 있다고 해도 '스승의 날'이라는 형식적인 날 그리 큰 돈을 쓰고 싶지는 않다. 이 나라의 공교육이라는 것이 참 암담하다는 생각을 또 한번 하면서, 이 지옥같은 학교 생활을 헤쳐나갈 아이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애초에 커피(공정무역)나 차(유기농) 따위의 간단한 선물을 생각했던 아내는 그런 표도 안나는 선물은 하지 말라는 다른 엄마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 역시 그러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가 포장해준 손수건이나 양말 한 켤레를 가져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땐 대부분이 양말이나 손수건이었던 것 같다. 다만 형편에 따라 상표(메이커)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선택의 폭이 넓어졌겠지만, 큰 돈을 들이지 않는 한 선물은 대개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학자금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혹은 먹고 살기 위해 학원 강사 생활을 좀 했었다. 학원 강사도 선생님이라고 스승의 날 선물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다녔던 학원은 제법 규모가 있는 보습학원으로 유명한 우범지역(즉 가난한 동네)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수업을 맡았으며,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처음 스승의 날 선물을 받았을 때의 느낌은 묘했다. 학원 선생님까지 챙겨야 하는 어머니의 수고로움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신경써야겠다는 의무감 등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재미있게도 여전히 선물의 대세는 양말이었다. 양말 선물세트가 2개와 와이셔츠 1벌을 받았다. 그리고 담임을 맡지 않았는데도 몇몇 여학생들에게는 카드와 편지, 꽃 한송이 등을 받았다.

 

당연하겠지만 학원 선생님들 중에서도 인기에 따라 선물의 편차는 무척 크다! 대개 여선생님들 보다는 남선생님들이 더 선물을 많이 받거나, 더 좋은 선물을 받고, 학생들에게 편지나 카드나 꽃 등을 받을 때도 남선생님들이 더 많이 받는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학원강사를 시작한 한 남선생님은 키도 크고, 얼굴도 비교적 준수한 편이어서 들어오자마자 그 학원 최고의 인기 선생님으로 등극했는데, 스승의 날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았다. 꽃다발과 케이크가 여러개였고, 크고 작은 포장된 상자들이 제법 쌓였다. 그 친구는 받은 선물들을 한번에 집으로 가져갈 수 없어서 책상위에 쌓아놓고 여러날에 걸쳐서 옮기느라, 우리의 질투심에 더욱 불을 질러댔다.

 

그리 오래지 않은 기간동안 여러 학원을 옮겨다니며 담임을 맡았던 게 너댓번 쯤 된다. 몇 차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기억나는 선물은 역시 양말이었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 조용한 편이어서 차분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치고보니 성적이 무척 좋지 않았다. 전화상담 결과 부모님들도 걱정을 많이 하고 계셨다. 아이는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들은 시장에서 가게를 하시는 데, 새벽에 일찍 나가시고, 밤 늦게 돌아오셔서 아이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셨다. 부모님께서는 이왕 학원에 보내고 있으니,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하기를 바라셨지만, 나는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아이가 더 빗나가지 않기를 바랬다. 학원 강사로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개별적으로 공부를 좀 더 봐주는 것으로 그 아이를 붙잡으려 했다. 처음에는 성공이었다. 거의 전 과목을 1대1로 봐주었더니, 기말고사에서 그 아이의 성적이 확 올랐다. 아이는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까지 학원으로 끌어들여서 더욱 열심히 다니는 듯 했다. 다음 해 그 아이가 중3이 되어서도 나는 계속 담임을 맡았다. 그 양말은 그해 스승의 날에 받은 것이다. 전화를 통해 작년에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우리 아이가 성적이 많이 올라서 고맙다는 말씀을 여러차례 하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아이의 성적은 다시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1학기를 마치고 학원을 그만두었다.

 

나를 대신하여 담임이 된 친구와 친하게 지냈기에 종종 그 아이의 소식을 물었다. 성적은 계속 떨어졌으며, 같은 학교에 다니는 조금 불량해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을 더 학원으로 데려와서 같이 다니고 있으며, 예전보다 수업태도도 많이 나빠졌다는 소식이 돌아왔다. 안타까웠다. 그 친구 역시 학원 방침에 따라 부모님과 전화상담을 종종 하는데, 예전 담임이었던 내 얘기를 가끔 한다고 했다. 나에게는 아르바이트로 잠깐 스쳐가는 학원 강사였는데, 그 아이와 부모님들께는 또 다른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은 채 2년이 안되지만, 그때 받은 양말은 한 4~5년쯤 신었던 것 같다.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 양말을 찾아 신다가 문득 그 양말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그 아이가 생각났다. 지금쯤 얼마나 자랐을까? 이젠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도 못 알아보겠지. 부디 더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았기를,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그 아이을 떠올리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옷을 껴입곤 했다.

 

선물이라는 건 그런 의미인 것 같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을 바라보면 잠시 선물했던 사람을 떠올리고, 그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그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선물 아닐까? 값비싼 선물들이 잔뜩 받는 선생님이라면 과연 나중에 그 선물로 인해 아이들을 떠올리고, 아이들의 안부를 궁금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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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5-16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글은 참 감동적이네요.
근데 촌지와 관련해서 사실 서울의 몇몇 지역은 뭐 그냥 한번 인사가는데 몇 십만원은 기본이라고 하더군요.그래선지 몇 지역은 5년이 한도라고 합니다.정말로 아이들 교육에 헌신하는 많은 교사분들이 몇몇 미꾸라지 선생덕분에 도매급으로 욕을 먹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감은빛 2012-05-18 14:21   좋아요 0 | URL
촌지 문제는 마치 다 해결된 것인양,
이제는 그런 선생님은 아예 없는 것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이를 학교에 보내보니 여전히 촌지 문제는 남아 있었습니다.
게다가 스승의 날 선물은 차라리 상징적인 문제이구요.
소풍, 견학, 체육대회 등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각종 행사들에
아이들 간식이나 선생님 식사 등이 부모들의 몫으로 떨어지고,
교실청소나 급식담당 등의 자잘한 일들에 학부모들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참, 우습지도 않은 현실입니다.
부모들이 학교에가서 아이들, 선생님들 뒷바라지나 하고 있어야 하니 말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5-17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미국의 어느 도시에 학교촌지가 번지기 시작했다네요.처음엔 미국교사들이 질겁을 했는데 나중엔 적응이 되어 은근히 바라는 교사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웃은 기억이 있습니다.알다시피 미국교사들은 방학 때는 급료를 못받아 수입이 낮으니 한국학부모들이 주는 돈이 살림에 보탬이 된 게 아니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이런 것도 문화수출인가요...

감은빛 2012-05-18 14:24   좋아요 0 | URL
허! 참 자랑스러운 한국문화의 세계화로군요!
미국에서는 교사들이 방학때 급료를 못받는 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조건 교사가 최고라는 인식이 있는데,
(공무원이고, 방학도 있잖아요!)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겠군요.

마녀고양이 2012-05-17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동네는 일체 선물 금지 공문이 5년째 날아오고 있어요.
심지어 카네이션도 안 된다고 하네요, 비싼 선물을 해야 한다고 하는 말도 슬프지만
이렇게 일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날아오는 것도 슬퍼요.... 자연스럽지 않아요. ㅠ

감은빛 2012-05-18 14:25   좋아요 0 | URL
자연스럽지 않죠!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물이라면 주고 받는 것이 정상일텐데,
그것을 강제로 막는 다는 것도 참 웃기는 짓이네요.
부모와 학부모는 또 다른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아침에 큰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한마디 했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니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재밌게 놀다와!" 그말에 아! 오늘이 스승의 날이구나 싶었다. 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작년 어린이집 담임선생님께 그림편지를 쓸 거라고 했다. 교문 앞에서 재밌게 놀다오라고 머리를 쓰다듬은 후 들여보내고, 지하철 역을 향하면서 새삼스레 스승의 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사실 학창시절부터 선생님께 감사나 존경의 감정을 느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내가 겪어 온 여러 선생님들 중에서 스승답다고 생각할만한 분은 거의 안계셨다.

 

유일하게 '스승'이란 표현을 인정해 주고 싶은 분은 중학교 1, 2학년 2년간 담임을 맡았던 음악선생님이다. 키가 크고, 근육질 몸매에 아주 잘생긴 얼굴의 남자 음악선생님이었다. 학창시절부터 권투를 했다고 했는데, 어깨에서부터 팔뚝까지 내려오는 근육이 장난이 아니었다. 주먹은 또 어찌나 컸는지 그 큰 주먹이 정면으로 날아오는 상상만으로도 맞설 생각이 싹 달아날 것 같았다. 그 선생님은 여러모로 나에게 영향을 많이 미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늘 관대하고 공평하고 학생들을 믿어주는 태도 때문이다. 나는 조금 말썽을 일으키는 편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그런 관대함과 공평함과 무심함(실은 무심함을 가장한 신뢰)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비교적 키가 작고, 덩치가 작은 편이었기에 약해보였던 나는 곧잘 덩치 큰 아이들과 부딪치곤 했다. 점심 도시락 반찬을 뺏아먹으려는 녀석들과 한 판. 샤프나 볼펜 따위의 학용품을 뺏으려는 녀석들과 한 판. 회수권이나 푼돈 따위를 뺏으려는 녀석들과 한 판. 예쁜 여배우(소피마르소?) 사진을 코팅한 책받침을 뺏으려는 녀석들과 또 한 판. 별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걸거나 장난을 거는 녀석들과도 한 판. 어쩌다보니 나는 우리 반에서 싸움을 제일 많이 한 녀석으로 낙인이 찍혀있었다. 상대 전적도 나쁘지 않았다. 완승을 거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완패를 당한 경우는 아예 없었다. 당시의 기준(코피, 울음, 패배시인)으로 봤을 때, 대부분은 판정승 정도로 인정받았다.

 

치고 받고 싸우고나면 늘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순하게 생긴 놈이 심심하면 싸움박질이나 하고 상처투성이였으니, 담임 선생님이 몰랐을 리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싸운 건으로 훈계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다만 학년이 바뀔 때 마지막으로 개별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는 한마디 하셨다. "내년에는 싸움 좀 고마해라! 니가 우리반에서 싸움 제일 많이 한다매? 덩치도 작은 놈이 무슨 싸움을 그리 하노?" 그러나 다음 해에도 나는 또다시 싸움을 반복해야 했다. 먼저 시비를 걸고, 뭔가를 뺏으려 드는 놈들에게 맞서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봄에는 덩치가 엄청 큰 - 마치 곰같은- 놈과 싸우다가 눈 아래를 찢어놓았다. 그 놈은 이틀인가 학교를 못나왔다. 선생님은 잘못해서 눈을 다쳤으면 큰일 났을 거라고 한마디 하셨지만 심하게 야단치지는 않았다. 가을에는 내 물건을 훔쳐간 녀석과 싸움이 붙었는데,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좀 심하게 패버렸다. 바닥에 쓰러뜨려놓고, 몸통을 깔고 앉아서 두들겼는데, 나중에는 주먹 쥘 힘이 없어서 손등이나 손바닥으로 때렸다. 그 녀석은 얼굴이 완전히 부어올라서 알아보기 힘든 지경이었고, 나도 초반에 얻어맞은 덕분에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이때도 선생님은 싸움을 했다는 사실보다는 너무 과하게 때렸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조심하라고 하셨다.

 

당시 다른 반 담임선생님들은 싸움이 일어나면 개인의 잘잘못과 관계없이 싸운 사실만으로 매질을 했다. 만약 내가 다른 선생님을 만났다면 그 2년동안 수없이 매질을 당하느라 허벅지와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선생님은 단지 싸움질만 용서해 준 것이 아니라, 웬만하면 학생들 일에는 되도록 관여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었다. 숙제를 안해가면 어김없이 회초리를 들었던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숙제 좀 안할수도 있지만, 그래도 해오는 게 니한테 좋을끼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가난한 형편에 육성회비나 보충수업비 따위의 학비를 제때 내지 못했던 나를 위해 소액의 장학금을 알아봐주시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별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로 정말 많이 맞으면서 자랐는데, 당시 기준으로 맞을 짓을 많이 하고도 그 선생님께 매를 맞은 기억은 없는 듯 하다.(혹 반 전체가 손바닥을 맞거나, 아주 사소한 일로 맞은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선생님이건 남선생님이건 당시에 한번도 나를 때리지 않은 선생님은 거의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앞서도 말했듯이 솔직히 별로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없어서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어도 별 감흥이 없는데, 아주 가끔 그 선생님은 어디서 뭘하고 계실까 궁금하기는 하다. 당시 선생님 나이가 아마도 지금 내 나이쯤 되었을까? 아니 좀 더 젊었으리라 생각된다. 이후로도 계속 관대함과 공평함과 무심함을 가장한 신뢰로 나 처럼 예민한 학생들을 더 빗나가지 않게, 스스로의 가치 판단에 따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주셨으리라. 비록 직접 들려드릴 수는 없지만, 이 미욱한 글로서라도 감사하고 또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본다.

 

※ 아래는 본문과는 관계없는 스승의 날 권할 만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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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5-15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대함은 선생으로서의 덕목뿐 아니라 부모가 지녀야 할 덕목이지요.. 저는 그닥 인상적인 선생님을 못 만났어요.

한창훈의 꽃의 나라를 묘사된 기시감을 느꼈어요. 저는 여중여고라 맞지 않고 다녔는데 남자학교는 아니였나 봅니다. 다음에 남동생 만나면 너도 그렇게ㅡ맞았냐고 물어봐야겠어요.

감은빛 2012-05-16 12:05   좋아요 0 | URL
네, 관대함은 기본적으로 어른이 아이들을 대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꽃의 나라]를 강추하는 분들이 계셔서 읽어야지 생각만했는데,
기억의집님께서도 언급하시네요. 정말 꼭 읽어야겠어요.

남학생들은 정말 많이 맞았습니다.
물론 학교에 따라 조금씩 달랐겠지만, 폭력이 일상화된 공간이 바로 학교였죠.

blanca 2012-05-15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평함. 맞아요. 저 학창시절에도 좋은 선생님을 얘기할 때 이 대목이 빠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너무 충격적이었던 교사를 만나--;;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답니다. 시작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가 처음 하는 학교 생활에서는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런데 감은빛님 학창 시절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참 짠하네요.

감은빛 2012-05-16 12:10   좋아요 0 | URL
뭐든 시작이 중요하죠.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충격적인 교사를 만나셨다니!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하네요.
저희 큰 아이도 올해 1학년이라 첫 선생님을 만났어요.
나이가 많고, 많이 보수적이고,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하는데,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으로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대부분 나이 많은 선생님들이 저학년(특히 1학년)을 맡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차트랑 2012-05-1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고등학교 때 어느 국어 선생님께서는
무더운 여름 나 깜빡 졸기라도하면
등에 손을 가만히..얹으시고 수업을 하셨습니다.
등이 따듯해서 눈을 떠보면
바로 국어선생님이었죠.

너무도 죄송해서
다음부터는 졸 수가 없었답니다.
멋진 선생님이시죠?

감은빛 2012-05-16 12:12   좋아요 0 | URL
정말 멋진 선생님이시네요!
대개는 분필을 집어던지거나,
호통을 치거나,
옆으로 가서 책상을 쾅 두드리거나,
머리를 쥐어박거나 했던 것 같은데요.

차트랑 2012-05-16 12:55   좋아요 0 | URL
출석부로 머리를 팍~!!^^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어느 시기에 어떤 말을 하는지, 어느 시기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느 시기에 몸무게와 키는 얼마나 되고, 이빨은 몇 개나 나는지 등을 자꾸만 신경쓰고 남들과 비교하게 된다. 첫아이 때는 모든 게 처음이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비교하곤 했다. 하루가 다르게 아이가 뭔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당시 이용하던 블로그에 간단히 기록해두기도 했다.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라도 확실히 저마다 재능과 성격과 성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둘째를 키우면서 확실히 느끼게 된다. 가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예전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찾아 읽곤 한다. 이 두 녀석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겠다.

 

우선 첫째는 말이 확실히 빨랐고, 행동발달은 아주 느렸다. 어머니 증언에 의하면 내가 그랬다고 한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녀석이 말은 정말 빨라서 못하는 말이 없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느끼기에 첫째 녀석이 그랬다. 반면 둘째는 말은 조금 느리다 싶은데, 행동은 엄청 빠르다. 제 덩치보다 더 크고, 제 몸무게보다 더 무거워보이는 물건들을 번쩍번쩍 들어 옮긴다. 아무리 힘에 부쳐도 끙끙대며 끝까지 들어 옮기는 모습을 보노라면 신기하기만하다. 뭔가 장애물을 만났을때의 반응도 남다르다. 호기심을 갖고 끝까지 정복하고야 마는 성격이다. 뛰어다니는 모습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활동적이다. 첫째는 이정도 월령때 이렇게 뛰지도 못했고, 장애물을 만나면 피하거나 안아달라고 떼를 썼다.

 

오늘은 아이들이 주로 하는 말들을 한번 비교해보고 싶다.

 

◎ 선생님

큰아이 - 뗀뗀님

작은아이 - 넨넨님

 

몇 해가 지나도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앞에 나서서 설치다가 전경 지휘관이 휘두르는 작은 방패에 배를 맞고 피멍이 들었다. 배에 검푸른 피멍이 들어서 웃기만해도 아팠다. 그때 아직 어렸던 큰아이가 다가와서 "아포? 아포? 내가 호~ 해주께. 아빠, 아빠, 내가 의사 뗀뗀님이야. 내가 호~ 해주께" 라고 말하면서 내 배를 살피고 또 문질러 주었다.

 

작은아이는 큰아이와 달리 '넨넨님'이라고 발음한다. 그래서 "별님반을 부르면~" 이라고 선창하면 "네! 네! 넨넨님!"이라고 대답하는데, 그 발음이 너무 재밌다! 뗀뗀님과 넨넨님. 왜 이렇게 발음이 다른건지 궁금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선생님'이라는 말은 아이들이 발음하기에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 계란

큰아이 - 기랑(독일어 R발음)

작은아이 - 예량, 계앙

 

큰아이 키우면서 정말 놀랐던 일은 동양인들(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렵다는 독일어 R 발음을 아이가 너무 정확하게 발음했을 때였다. 제 엄마가 독일어로 밥먹고 살고 있지만, 오히려 제 엄마보다 더 정확했다. 제일 대표적인 발음이 계란을 말하는 '기랑'이었다. 어찌나 계란을 좋아하는지 엄마, 아빠 등 가족들 호칭 다음으로 제일 빨리 한 발음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이 발음을 잊어버렸다. 이제는 스스로 그렇게 발음했다는 사실을 기억도 못하고, 시켜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한다. 독일어 신동이 하나 나올 줄 알고 기대를 살짝 가졌는데,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언어에 대한 감각이 유난히 좋은 것은 확실한 듯 하다.

 

작은아이도 혹시 큰아이와 같은 발음을 하지 않을까 기대를 가졌는데, 역시 똑같은 법은 없나보다. 요녀석은 초기에는 '예앙'이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예량'으로 바꿔 부르더니, 최근에는 '계앙'으로 바뀌었다. 서서히 제 발음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누가 자매아니랄까봐 계란 좋아하는 식성은 똑같아서 삶아먹든, 구워먹든, 찜을 해먹든 넉넉하게 하지 않으면 둘이 싸움이 난다.

 

◎ 똑같아

큰아이 - 꼬까때

작은아이 - 또따때

 

어느날 갑자기 아이가 비슷하게 생긴 것들을 찾아다니며 '꼬까때'를 외치기 시작했다.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잠시 한눈을 팔고 있으면 다가와서 어깨를 치거나 뺨을 툭툭 건드리면서 와서 보라고 난리다. 젖가락, 숟가락, 책, 연필, 신발, 양말 등등 같은 물건을 찾아다니며 '꼬까때'를 선언하는 모습이 참 재밌었다.

 

반면 작은아이는 최근에서야 '또따때'를 하기 시작했고, 그 전에는 그저 똑같이 생긴 물건 두 개를 번갈아 가르키며 '어! 어!'하고 소리만 낼 뿐이었다. 심지어 귀찮을때는 소리도 안내고 그냥 손가락으로 물건만 번갈아 가르키기도 했다.

 

 

이외에도 여러개가 더 있을텐데, 다음에 또 생각해봐야겠다. 누구나 자신만의 독특한 '유아어'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아또'였다. 수많은 친척들의 증언에 의하면 나는 분유나 우유는 절대 안먹고 무조건 야쿠르트만 먹었다고 한다. 가난한 형편에 나름 귀했던 야쿠르트가 미처 준비되지 못한 날에는 '아또'를 찾아 밤새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의 불호령에 엄마, 아빠, 삼촌, 고모들이 '아또'를 사기 위해 온 동네를 다 뒤지기도 했다고 한다. 처가의 큰 조카의 경우 '아찌미'가 있다. 그 아이는 아이스크림에 맛을 들여서 '아찌미'를 찾아 울고 고집을 부리곤 했다고 한다. 우리 큰아이는 '기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쩜 그렇게 매끄럽게 R 발음을 처리할 수 있는지! 평생 잊지 못할 일이다. 작은아이는 '뚜뚜'가 될 것 같다. 잠이 올때 잠투정을 심하게 하는 편이라 공갈젖꼭지를 종종 물렸는데, 엄마는 이것을 '쭈쭈'라고 불렀고, 아이는 '뚜뚜'라고 발음했다. 잠들기 전 미처 '뚜뚜'가 준비되지 못한 날이면, 아이는 '뚜뚜'를 애타게 부르짖으며 밤새 울곤 한다. 그러고보니 작은아이만 실제로 먹는 음식이 아니구나. 그만큼 특별히 집착하는 음식이 없어서인지. '뚜뚜'를 너무나도 의지하기 때문인지는 한번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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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5-10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정겨운 페이퍼에요. 전 가장 기억나는 단어가 '띠꾸'. 계산할 때 바코드리더기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우리 큰애는 계산하다를 항상 띠꾸하다라고 했어요. 그 바람에 지금은 온 가족이 다 계산이라는 말 대신 띠꾸가 입에 붙어서 자주 실수한답니다. ㅎㅎ

감은빛 2012-05-11 11:39   좋아요 0 | URL
'띠꾸'라는 말 정말 재밌네요!
역시 누구에게나, 어느 집에나 재밌는 '유아어'들이 꼭 있다니까요! ^^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2-05-10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정겨운 페이퍼에요.2

출근길 버스에서 스맛폰으로 읽고 막 웃으면서 추천했어요. 7월달에 두 돌되는 조카 생각이 나서요. 요즘 이 조카가 새로 습득한 말은 '삼촌'인데 당연히 삼촌이라고 발음하지 못하죠. 들어보면 '사쭈'라고 하는것 같아요. 그래도 거실에 걸린 삼촌 사진 보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쭈 라고 하는걸 보고 듣노라면 가슴속에 사랑이 폭발할 것 같습니다. 하핫.

요즘 조카는 코끼리에 흠뻑 빠져있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움직이며 깡총깡총 하기를 좋아해요.

아, 그리고 제 조카는요, 후훗, 뜌뜌 라고 해요. ㅋㅋㅋㅋㅋ 제 엄마가 쮸쮸라고 일렀었거든요.

감은빛 2012-05-11 11:41   좋아요 0 | URL
'사쭈'라고 했군요.
우리 큰아이는 독특하게도 삼촌을 '찌쭝'이라고 했어요.
작은아이는 '땀똔'이라고 했구요.

쭈쭈는 뚜뚜가 되고, 쮸쮸는 뜌뜌가 되는 군요. ^^

순오기 2012-05-11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정겨운 페이퍼에요.3 ^^
우리 아이들도 저 어릴 때 얘기 들려주면 참 좋아하더라고요.
이런 걸 기억하고 글로 써 놓은 아빠는 많지 않을거에요, 그래서 더 감동스럽네요.
추천을 무제한으로 드리고 싶은 페이퍼!

감은빛 2012-05-11 11:43   좋아요 0 | URL
작은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큰아이에게 고맘때 얘길 들려주면 엄청 좋아해요.
순오기님 댁은 3남매니까 더 추억할 이야기들,
들려주고픈 이야기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라주미힌 2012-05-1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조카가 들은 대로 바로 말한 단어 '매꼬이' 가 생각나네요..
넥타이....

감은빛 2012-05-11 11:43   좋아요 0 | URL
넥타이는 '매꼬이' 요것도 신기하네요! ^^

마녀고양이 2012-05-14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페이퍼... ^^

그런데 요즘 감은빛님 술 많이 드시는거 아니죠?
혹시 속상하실까 싶어서. 술 좋아하시구 별로 취하지도 않는 감은빛님,
건강 챙기시면서 일하시구 술두 드시구, 5월도 즐기셔요.... 음,
노동자의 날이 있는 5월, 버스 타고 광화문에서 매번 보는 쌍용자동차 텐트를 보면
너무 속상하긴 하지만 말이죠... 이렇게 이쁜 페이퍼에 제 댓글이 영... 에공.

감은빛 2012-05-15 17:10   좋아요 0 | URL
속상할 일이 많죠!
술은 늘 먹다보면 많이 먹게 되더라구요.
그래도 다음날 출근하기 위해 나름 조절은 하고 있습니다.

마녀고양이님께서 예쁜 페이퍼라고 해주시니, 영광입니다! ^^
 

연이어 가슴 아픈 소식들이 들린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중 22번째 죽음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오늘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였던 고 이윤정씨가 뇌암(뇌종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고 황유미씨와 고 이숙영씨 등이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가 백혈병 등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지만, 삼성측은 산재 인정을 하지 않았다.

 

2007년부터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삼성전자 반도체 및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에서 병에 걸린 노동자 21명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보상을 청구했다. 이 가운데 최근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 중 처음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한 사람을 제외한 19명은 모두 거부당했다. 1명은 아직 심사 중이다. 거부당한 19명 중에는 이미 세상을 등진 황유미·이숙영씨가 있다. 이 두사람의 경우 정부가 산재를 인정하지 않아 행정소송을 제기해 법원에서 지난해 산재를 인정받았았으나, 정부가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다고 한다.

 

이번에 돌아가신 고 이윤정 씨는 만 32세라고 한다. 여덟살, 여섯살 아직 어린 아이들을 두고 있다. 엄마 없이 살아갈 아이들을 생각하면 몹시 마음이 아프다. 윤정씨는 고 3이던 1997년 삼성 반도체 온양 공장에 입사했다. 입사 이전에 매우 건강했으며, 가족 중에 뇌종양 등의 관련 질환자는 전혀 없다고 했다. 채용 당시에 삼성측에서 실시한 건강검진에도 전혀 이상이 없었다고 나온다. 윤정씨는 고온테스트 (MBT burn-in) 공정에서 6년간 근무했으며, 일하는 중 고온에 타버린 반도체 칩의 검은 연기를 흡입하거나 벤젠 등 발암물질에 노출되었다. 퇴사후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살다가 2010년 갑자기 악성 뇌 종양 진단을 받았다.

 

새삼 삼성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 무노조 삼성. 사상 초유의 기름오염 사건을 일으키고도 보상을 외면한 삼성. 용산 재개발 사업주로서 용산참사의 숨은 배후 삼성. 그리고 역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의 사업주로서 구럼비 바위를 발파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을 하지 않고, 오히려 돈으로 부모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삼성! 

 

이런 더러운 기업이 이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라고? 지난 1월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스위스 시민단체 ‘베른선언’이 세계 최악의 기업을 선정하는 ‘공공의 눈’(Public Eye) 온라인 투표에서 삼성전자가 3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보면, 이미 국제적으로도 삼성의 추악한 이면은 많이 알려져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로지 국내에서만 삼성, 삼성 떠받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구럼비 발파로 인해 SNS를 통해 조금씩 퍼져가던 '삼성 불매운동'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아래 책들이 널리 읽혀서 추악한 삼성의 진실이 더 널리 알려지고, 그런 과정을 통해 삼성 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도 모두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된 기업 경영을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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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5-0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까지 꽃다운 나이에 들어와 죽은 삼성 직원이 15명, 무조건 돈막음만으로 해결되면 다 덮을 수 있다는 아주 꼼수스러운 마인드를 가진 이건희와 그 일당들. 전 저 혼자라도 삼성불매 합니다.

기억의집 2012-05-08 19:15   좋아요 0 | URL
15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방금 기사 보니 30명이 넘네요. 에휴.

감은빛 2012-05-09 14:32   좋아요 0 | URL
돌아가신 분만 그정도 숫자라면
발병해서 고통을 겪고 계신 분들은 훨씬 더 많겠군요!
삼성 불매하는 사람들은 주변에는 제법 있는데,
조금만 벗어나면 삼성을 마치 없어서는 안될 존채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구요.

삼성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여
과연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듭니다.
제발 저 억울한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봄나무 2012-05-09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공감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고 이윤정씨의 명복을 빕니다.

감은빛 2012-05-09 14: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봄나무님.
굳이 따져서 죄송하지만,
제가 제기한 문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아닌,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조금의 양심과 뉘우침도 없이 외면해버린
기업 경영 윤리에 대한 부분입니다.

아시다시피 삼성은 무노조 경영이라는 아주 말도 안되는
원칙을 세워놓고 노조를 만들었던 사람들에게(대표적으로 김성환 위원장)
억지로 죄를 덮어 씌워 감옥에 처넣는 기업이죠.

자기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스스로 다루고 있었던 온갖 유해한 발암물질에 대한 교육을 하지 않았고,
그 발암물질로 인해 젊은 나이에 발병하여 결국 세상을 떠나도,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노라고
인간이하의 태도를 보이는 집단입니다.

단순한 사회적 책임이라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아주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라는 생각에 길게 말씀드립니다.
부디 다시 한번 읽어주시고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카스피 2012-05-09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삼숑도 파인애플 못지 않군요.파인애플은 중국에 있는 하청공장인 팍스콩의 살인적인 업무 강도로 인한 종업원의 자살이 문제지요.
파인애플이야 대만에 있는 기업에 하청을 주었으므로 자살 문제에는 책임 소재에 관해선 한발 빗겨나가 있지만 팍스콩 노동자의 자살문제로 큰 곤란을 겪고 있지요.삼숑의 경우는 직접 운영하는 공장에서 벌어진 일이라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만 발병한 암과 직업과의 정확한 인과관계를 따지기 힘든 경우입니다.즉 심증적으로 확증은 가나 물증이 부족한 상태란 거죠.
아무튼 두 기업의 사례를 보면서 세계 1,2를 하는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부려 먹어여 높은 이익을 올릴수 있다는 것에 새삼 분노를 금치 못하겠군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번 사태는 소리 소문없이 가라앉을 것이고(삼숑의 직요한 로비와 광고물량때문에...),대한 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삼숑에 들어가려고 기를 쓸거란 생각이 듭니다ㅜ.ㅜ

감은빛 2012-05-09 14:56   좋아요 0 | URL
애플은 그래도 직접적으로 유해(발암)물질에 노출되어
발병한 경우는 아닌가보네요.
유럽과 미국의 경우는 우리나라보다 일찍 이러한 문제들이 발견되어,
그나마 많이 나아졌다고 들었습니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작업과 발병한 질병에 대한 내용은,
아마도 충분히 입증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산재로 분명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건 해외사례 등을 살펴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삼성이 갖고 있는 권력구조 때문에,
정부가 쉽사리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겠지요.
일부 사람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노무현 조차도 삼성 편에 서있던 이였으니,
지금 정부야 뭐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5-09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기업의 문제점이 이렇게 드러나면 언젠가는 인권을 생각하고 건강을 생각하는 기업들이 될까요? 저는 그런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더 절망스러운 것 같아요....
그래도, 그러니까 더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소리를 내야겠죠?

잘 지내셨죠? 세상은 뒤숭숭하고 사회는 더 어지러운데
우리 아이들은 참 잘도 크고 있네요~ 아이들 생각하면 부모로서, 한 나라의 사회인으로 책임감이 느껴져요~

나는 봤다 2012-05-09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 한겨례신문 헤드라인에 삼성반도체 노동자 핵혈병 뇌종양으로 사망과 관련 기사와 유튜브동영상을 보고 참 남일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주변에도 반도체 엘시디에서 각종 산성케미칼을 다루며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그러고보면 요즘 한국 환경이 급속히 나빠진걸 보면 이런 관련 업종이 전국적으로 생겨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한 회사에서 그것도 같은 공정에서 일한 사람이 수십명이 죽었는데 사회적으로 이슈가 안되고 있으니 한국이란 나라 문제가 많습니다. 돈과 권력 앞에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은 먼지만도 못한 것인지... 혹 주변에 친구나 가족분들 중 반도체, 엘시디 아니면 관련 화학물질들을 취급하는 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있다면 한겨례영상을 한 번 보세요. 동영상을 보니 산성약품을 취급하는 작업자가 반도체 엘시디 현장에서 착용하는 기본 비닐 장갑만 끼고 작업을 하는 영상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대한민국 1위를 달리는 기업의 현장작업이 저렇게 허접했는지를 보고 놀랬습니다. 월래 산성케미칼을 취급하면 특수 고무장갑에 특수 마스크를 착용은 기본인데 황산, 불산, 아세톤, 각종 식각약품 등을 사용하는 현상에서 저렇게 허접하게 일을 하다니. 보통 사람들은 텔레비젼으로만 봐서 항상 작업자가 우주복 같은 옷을 입고 눈만 내놓고 깔끔한 곳에서 일하는 장면만 봐서 좋은 이미지를 같고 있는지는 모르나 실제 그 현장에 들어가보면 많은 종류의 설비들이 있고 많은 화확물질들의 공급배관을 타고 설비내부에서 사용되고 있죠. 자동화 설비라 모두 저절로 처리된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현장 작업자들은 자주 저런 물질들을 직접 취급을 하는 것이 현실이죠. 설비에 문제가 생기거나 정기적으로 청소 같은 것들도 해야하는데 어떻게 피부에 안 닿겠습니까 또 산성물질들은 화학반응을 하면 끓는 물처럼 증기같은 흄이 날리는데 아주 열악한 설비를 갖춘 공정이 있다면 안 마실래야 안 마실수가 없겠죠. 어쨌던 같은 회사의 같은 공정에서 수십명이 죽었다면 팔 다리가 잘리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문제는 약자를 보호는 의미에서 관심 갖고 기사를 봐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동생, 아들, 딸이 저런 곳에 취직을 할지 모르는 일

나도 2012-05-09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즘 한국 애들 피부병에 시달리는 애들이 많아진 것 같다.

452 2012-05-09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반도체 엘시디의 특정공정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사이에는 속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어느 공정에서 작업하는 누구는 장가가면 딸만 낳을 것이다. 아니면 0자가 된다더라는 등 이런 농담을 장난삼아 이야기하는 것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상식적으로 일반인들이라도 생각해보면 자기 집안에 인테리어가 자연소재가 아닌 각종 화학제품들로 꾸며졌다면 피부 트라블이 생길까 안 생길까요? 물어보나마나 당연한 것 아닌지? 요즘 안그래도 아토피니 뭐니 해서 피부병환자가 많이 증가했는데 당연히 각종 산성화확약품을 취급하는 곳은 물어보다마나죠. 인체에 좋을리없겠죠.

dhkslw 2012-05-10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삼성이 산재인정을 않하는 것과 일본이 위안부 인정을 하지않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명예, 자존심, 이미지 손상 등으로 입게 될 파장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