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길 운전


맨 처음 매일 하루 4시간 배송 일을 제안 받았을 때는 고마운 마음 뿐이었다. 꽤 오랜 시간 정기적인 수입이 없이 그때 그때 비정기적인 수입을 찾아 헤메는 일이 힘들었고, 그닥 성과도 좋지 않았다. 나는 매달 아이들 양육비를 보내야 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으로 나의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수입이 필요한데, 그 최소한의 수입을 제대로 벌어들이는 것이 어려워 진 상황이 벌어진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정말 얼마 되지도 않던 모아두었던 돈들을 다 소진했고, 그 다음엔 내가 여러 협동조합들에 출자했던 돈들을 차례로 돌려받았다. 그래도 긴 시간 여러 협동조합에서 활동하면서 적지 않은 출자금을 냈던 과거의 나를 칭찬했다. 그때 그 출자금들이 없었다면 나는 최소한의 생계비가 없어서 파산했을 것이다. 몇 달이 지나며 그 출자금들도 다 까먹고 나서는 정말 방법이 없었다. 그때 도움을 받은 곳이 공동체 은행 '빈고'였다. 정말 이젠 더는 방법이 없구나. 희망을 잃었을 때 기적처럼 빈고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배송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 내가 참 멍청하고 바보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래도 인복은 있구나.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늘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운전을 오래 하기도 했고,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다. 그래서 배송이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초기엔 좀 적응이 필요했지만, 한 2주 정도 매일 운전을 하면서 점점 익숙해졌다. 그 와중에 주위에 걱정해주는 사람들과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일이 조금 힘들기는 해도,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그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도 좋았고, 그 경험이 또 나에게 쌓여서 새로운 이야기 꺼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내 삶의 경험이 다양하고 풍부해진다면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고 보니까.


그런데 어제 내가 일을 시작했던 오후부터 비가 계속 내렸다. 잠깐씩은 아주 많은 비가 퍼붓기도 했다. 그제서야 떠올랐다. 내가 빗길 운전과 야간 운전을 조금 어려워했었다는 예전 기억들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눈이 나빴다. 눈이 나빠서 뭔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다. 국민학교 저학년이었던 시절에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서 필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잘 안 보여서 못 썼다고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렸는데, 그 당시 선생은 내가 거짓말을 하면서 일부러 필기를 안 한다고 여겼던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그걸 빌미로 어머니께 촌지를 요구했었다고 아주 나중에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셨었다. 암튼 늘 눈이 나빠서 잘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명절마다 만나왔던 나를 아껴주셨던 오촌 당숙 두 분이 안경원을 운영하고 계셨다. 그분들은 당장 눈이 나빠도 너무 어려서부터 안경을 쓰면 오히려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나중에 중학생이 되면 데리고 오라고 안경을 맞춰준다는 얘기를 아버지에게 했었다고 한다. 사실 내 눈이 비정상적으로 나쁘다느 것은 국민학교 1학년 때 신체검사 결과로 알았었다. 그걸 6년 동안 그냥 방치해두고 있었던 거였다.  


중학교 때부터 안경을 끼고 살았다. 드디어 칠판 글씨가 정상적으로 보였고, 조금만 거리가 멀어도 보기를 포기했던 많은 것들을 이젠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상이 선명하게 맺히지 않고 흐려보였던 증상도 훨씬 또렸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긴 시간 안경을 쓰고 살면서 크게 불편이 없었다. 가끔 안경 다리가 부러지거나, 안경 알이 깨지거나 하는 일들이 생기기는 했지만. 몽골에서 일본 대학생들과 놀다가 안경테가 부러졌던 때, 나 혼자 인천 공항에 내려서 서울역으로 갔다가 거기서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가고,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안경이 없는 상태의 나는 거의 시각장애인 수준이었다. 당장 공항 청사를 나와서 서울역으로 가는 공항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 번호조차 보이지 않았다. 매번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고 그 다음날 안경을 다시 맞췄었다. 그날의 그 기억은 나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지금도 가끔 안경이 없어서 세상이 흐려 보이고, 조금만 멀어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하는 악몽을 꾼다.


젊은 때는 그래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아마 30대 후반 무렵부터 야간 운전을 하면 빛이 번져 보여서 운전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낮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밤에 운전을 하면 눈이 너무 피로하고 힘들었다. 그리고 어느 비 오는 날 운전을 해보니, 비 오는 날도 마찬가지로 빛이 너무 심하게 번져 보였다. 짧은 시간이라면 조심하며 운전할 수 있지만, 비 오는 날 장시간 운전은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제 이 배송 일을 맡은 이후 처음으로 비가 왔다. 비가 내리면 도로와 바퀴 사이의 마찰계수가 줄어들어 미끄러질 확률이 높아지고 제동 거리가 늘어난다. 당연히 평소보다 조심 조심 운전을 해야 하지만, 내 경우엔 빛이 번져 보이는 문제가 겹쳤다. 아, 운전을 좋아하고 잘 한다고 생각해서 이 배송 일이 그리 어렵지 않겠다고 여겼는데, 세상에는 비도 오고 눈도 오는 구나! 하고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안경을 끼고 일을 하고 있고, 비가 온다고 운전을 못할 정도로 막 안 보이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생각해보면 어느 비 오는 명절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장시간 운전을 했던 기억 때문에 좀 과장해서 빗길 운전을 두려워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당분간은 이 일을 무조건 해야 하고, 그에 더해 추가로 일을 더 해야 최소한의 생계비를 마련할 수 있다. 빗길 운전에도 적응을 해야 한다. 아주 다행인 것은 오랜 시간 운전을 하면서 안전 운전에 대한 습관은 확실히 뼈에 새겨져 있어서 조금이라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멈추고 확신이 들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직관


운전을 하다보면 아주 짧은 순간 빠르게 선택을 해야 할 순간들이 있다. 요 직전에 말한 것처럼 운전은 습관이 미치는 영향이 큰데, 만약 내가 어느 정도 속도로 달리는 중에 갑자기 저 앞에 노란불이 들어온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물론 정답은 그 시점의 속력과 교차로까지 남은 거리에 달려 있다. 현재 속력이 너무 빨라 교차로까지 차를 정상적으로 세우기 어렵다면 차라리 속력을 더 높여 빨간불로 바뀌기 전에 교차로를 벗어나는 것이 정답일테고, 속력이 빠르기는 하지만, 남은 거리를 감안하면 충분히 멈출 수 있다면 멈추는 것이 정답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다행히도 긴 시간 운전을 하면서 안전 운전이라는 측면에서 습관이 형성되어 있다. 지난 글에도 쓴 것처럼 아이들이 아기였던 시절부터 태우고 운전을 했기에 더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 배송 일에 맞지 않는 운전 습관이란 생각을 했었다. 너무 느긋하고 편안하게 운전을 하는 것이다. 암튼 운전을 한다는 것은 매 순간 실시간으로 앞 차, 양쪽 옆 차, 뒷 차들까지 신경 쓰면서 그들의 속도와 방향을 머리 속으로 늘 계산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내가 원활하게 옆 차선으로 이동할 수 있을지 없을지. 만약 앞 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 내가 어떻게 피해야 할지 등을 매 순간 머리 속으로 그리며 본능적으로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밟는 행위이다.


운전 중에는 정말 다양한 변수가 발생하고 그 중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다. 실시간으로 예측 가능한 거의 모든 변수를 계산하며 운전을 해도 갑자기 미친 놈이 미친 짓을 하는 곳이 도로라는 곳이다. 그런 경우 아주 짧은 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 그때 직관이 영향을 미친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건 순수한 본능은 아닌 것 같고, 본능에 더해 아주 짧은 순간적인 판단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며칠 전에 두 차례 사고 날 뻔 한 장면들이 있었다. 하나는 차량이었는데, 내가 충분한 거리를 두고 깜빡이를 켜고 왼쪽 차선으로 이동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왼쪽 뒤에서 오고 있는 차량과 충분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처음엔 조심스럽게 그리고 일단 왼쪽으로 진입한 이후엔 과감하게 들어갔는데, 문제는 뒷 차량이 들어오고 있는 나에게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돌진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대로면 뒷차가 그대로 나를 들이받는 상황이 될 것 같았다. 순간 머리 회전이 빨라졌다. 나는 이미 왼쪽 차선으로 들어섰는데, 앞 차는 속력을 줄여 브레이크 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당연히 그 앞부터 신호 대기에 걸렸으리라. 만약 앞이 비어있다면 나도 속력을 높여 뒷 차가 돌진해도 안전할 정도의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정답이겠지. 하지만 앞 차가 멈춰 있으니 그건 기각. 그럼 이대로 뒷 꽁무니를 들이 받혀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급 가속해서 다시 원래 있던 오른쪽 차선으로 돌아나가야 하나? 그게 가능한 거리와 각도라면 그게 정답일 수도 있겠지만, 이미 속력을 줄이며 왼쪽으로 옮겨 온 상황에서 아무리 급가속을 해도 적절한 속력으로 뒷 차를 피하기는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주 짧은 순간에 판단한 것이다. 결국 정답은 뒷차가 들이받거나, 다행히 멈추거나 아니면 뒷 차가 나를 피해 옆 차선으로 옮겨가거나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정말 다행히도 그 차는 나와 부딪히기 직전에 정신을 차리고 원래 내가 있었던 오른쪽 차선으로 옮겨 가면서 속력을 줄였다. 아마도 그는 뭔가 딴 짓을 하느라 전방 주시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한 건은 오토바이였는데, 거의 똑같은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충분한 거리를 두고, 미리 깜빡이를 켜두고 충분히 주의를 줬다고 판단하고 들어갔는데, 오토바이가 속력을 줄이지 않고 그대로 다가왔다. 앞서의 차량 건과 차이는 나와 그들과의 거리다. 앞의 차량은 충분히 거리가 멀었고, 이번 오토바이는 좀 애매했다. 그래서 절반 이상 들어간 시점에서도 오토바이가 속력을 줄이지 않고 돌진하자 내 직관은 차를 다시 빼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속력을 줄이며 부드럽게 옆 차선으로 옮겨 가다가 순간적인 판단으로 엑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밟고 빠르게 원래 차선을 돌아갔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 자리에 오토바이가 돌진하더니 마치 곡예를 하듯이 앞에 멈춘 차량을 피해 속력을 줄이며 나에게서 먼 방향으로 다시 차선을 옮겼다. 


아, 어쩌면 방금 이 두 건은 정말 실제로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이었는데, 이게 내가 말하고 싶었던 직관을 잘 설명하는 사례는 아닌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아주 짧은 순간 계산의 영역을 벗어난 순간적인 판단이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꿈 이야기


어제는 사실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그 전전날 밤에 태양광발전소 수익 분석 자료를 만드느라 새벽까지 일을 해서 잠을 거의 자지 못했었고, 그래서 엊그제 오후는 일하는 내내 무척 힘들었다. 졸리는 것은 껌과 사탕 그리고 에너지 음료 등으로 해결했지만, 계속 정신이 조금 멍한 상태로 지내는 것은 좀 겁이 났다. 사람이 잠을 못 자면 평상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신경써서 알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그 정도로 피곤한 상태에서는 급박한 상황에서 반응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고,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나의 뇌가 피로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게 될까 두려웠다. 정말 다행으로 엊그제는 세 곳의 매장에서 배송 건수가 평소보다 적었고, 이동 거리도 평소보다 훨씬 적었다. 다행히 아무 문제 없이 일을 잘 마치고 저녁에 아이들을 만났다. 계산해보니 36시간 동안 잠을 약 1시간 남짓 밖에 못 잤었다. 아이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기절하듯이 잠에 빠졌었고, 어제 점심무렵까지 약 12시간 가까이 잤다. 그리고 오후 출근을 하려니 비가 왔던 것이다.


어제 유난히 힘들었던 이유는 세 가지였는데, 그 첫 번째는 초 장거리 배송이 한 건 추가 된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일을 시작하고 며칠 지난 시점에서 들었었다. 가끔 아주 먼 곳에서 배송 요청이 온다고. 배송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난감하고 힘든 일이지만, 매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한 푼이 아쉬운 마당에 이 배송 건을 거절할 수 없는 거라고. 지금까지는 오전에 매장 간 배송을 맡아주시는 친한 형이 그 배송을 맡아 주셨다고 했다. 그 형이 언젠가는 그게 내 몫으로 옮겨갈 거라고 미리 알고 있으라고 했다. 이 건을 제외하면 다른 거의 모든 배송은 매장에서 아무리 멀어도 10분 거리를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건은 빨리 가도 25분이 넘는 거리다. 이것도 과속 카메라 앞에서만 속력을 줄이고 나머지 구간에서는 기준 속도보다는 조금 더 빨리 달렸을 때 이야기다. 만약 정속을 지킨다면 그 시간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원래라면 오늘도 오전에 그 형이 이 건을 처리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여 그 형은 오늘 이 배송이 없다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배송 요청이 와있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출근 준비를 하던 점심 때, 그 형이 전화로 이 상황을 설명하며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고 미리 경고해줬다.


두번째 요인은 최근 한동안 배송 건수가 좀 줄었다가 오늘 하필 비도 오고 장거리 배송도 있는 날에 배송 건수 자체도 늘었다는 점이었다. 뭐 이건 당장 오늘의 나는 힘들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우리 생협에게 좋은 일이니 뭐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비가 오지 않고, 장거리 배송이 없었다면 그냥 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번째 요인은 유난히 많은 물량과 무거운 짐들이었다. 오늘 아마도 생협에서 탄산수 할인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엔 거의 없던 탄산수가 엄청 많았다. 그저 한 두 박스까지는 손으로 들어 옮길 수 있으니 상관이 없지만, 그 이상의 물량은 일단 보는 순간 긴장하게 만들었다. 물리적으로 두 박스 이상은 들어서 옮길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 탄산수 네 박스에 더해 다른 생활재 한 박스까지, 총 다섯 박스를 옮겨야 하는 배송 건수가 두 개나 있었다. 그 외에도 오늘따라 유난히 무거운 박스가 많았다. 시간이 생명인 배송에서 한 집에 짐을 두세번씩 옮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택배 기사님들은 엘카나 카트 등을 활용한다. 우리 차에도 아주 작은 접이식 엘카가 실려 있다. 다만 이 물건이 고장이 나서 펼치려고 시도할 때마다 허리를 숙여 힘을 써야 하고, 그때마다 매번 욕설을 내뱉어야 한다는 점이다. 욕을 하기 싫어서라도 이 엘카를 쓰고 싶지는 않은데, 오늘은 이걸 여러 차례 쓸 수 밖에 없었다. 원래 고장이 나지 않았다면 작은 크기에 이 정도 효율을 내는 멋진 물건이 없었다고 칭찬을 했을텐데, 고장이 나서 매번 내 욕설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이 녀석도 기구한 운명이다. 


아, 맞다. 꿈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는데, 어제와 엊그제 이틀 연속 너무 힘들게 일을 해서 그 이야기에 몰입해버렸다. 그동안 이 서재에 꿈 이야기를 참 많이 썼다.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고, 꿈마다 다를 수 밖에 없지만, 꿈을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꿈을 꾸지만 깨어났을 때 기억할 수 있는 꿈은 거의 없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자각몽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한다. 꿈을 꾸고 있는 동안 이 것이 꿈이라고 스스로 깨닫는, 즉, 자각하는 것을 자각몽이라고 한다.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자각몽을 자주 꾸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하나는 내가 반복해서 비슷한 패턴의 꿈을 자주 꾸는 편이라는 점이다. 이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 같은데, 청소년기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정말 자주 꾸었다. 어른들은 그런 꿈을 꾸면 키가 큰다고 말을 했지만, 나는 내 나이대에서 간신히 평균에 들거나, 아주 살짝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일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꿈을 꿀 때마다 키가 컸다면 나는 벌써 2미터가 넘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이와 상황에 따라 반복되는 꿈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비슷한 패턴의 꿈을 유난히 자주, 심한 경우에는 하루 밤에도 여러 차례 꾸기도 한다.


자정이 넘어가자마자 확인해봤는데, 지난 오늘 쓴 글은 딱 하나였고, 2019년에 쓴 글이었다. 묘하게도 그날 쓴 글에도 반복적으로 꾸는 악몽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묘하게 기분 나쁜 악몽을 자주 꾼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암튼 그 글에 언급한 것 중에 다시 군대 끌려가는 꿈 이야기가 있었다. 그랬다. 내가 자주 꾸는 패턴 중에 몇 가지가 있다. 가장 자주 꾸는 악몽은 독립운동가로 살다가 일제에 잡혀서 고문당하거나 아니면 잡히는 순간까지의 꿈이다. 앞서 언급한 군대 끌려가는 꿈도 정말 자주 꾸었다. 꼭 군대에 다시 끌려가면 전쟁이 났고, 어떤 경우엔 전쟁이 먼저 나고 군대에 끌려 가기도 했다. 민방위도 벌써 오래 전에 끝났는데 아직도 이런 꿈을 꾸고 있다니! 어떤 존재들, 이를테면 현실의 맹수나 비현실적인 괴물들에게 쫓기는 꿈도 정말 자주 꾸는 꿈이다. 앞에서 말한 독립운동가의 꿈에서는 매번 일본 제국주의 경찰에 쫓기는 장면이 포함된다. 또 다른 패턴은 뭔가 어떤 것을 혹은 어떤 존재를 찾아 끝없이, 하염없이 헤매다니는 꿈이다. 이외에도 많을텐데 그걸 어떤 패턴으로 정형화하기에 서로 겹치는 공통점들 때문에 조금 복잡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암튼 지금 언급한 몇 가지 이야기들은 대부분 과거 이 서재에 꿈 이야기로 쓴 적이 있었다. 이런 꿈 이야기에 달리는 댓글들 중 가장 많은 것은 어떻게 그렇게 상세하게 꿈 이야기를 기억하느냐는 것이었다. 따지는 듯한 느낌의 댓글도 있었고, 의심하는 듯한 뉘앙스도 있었다고 느낀다.


이 이야기도 몇 번 쓴 적이 있었는데, 내가 쓴 꿈 이야기의 대부분은 조금은 선명한 조각들을 이어붙인 것이다. 꿈에서 깬 시점에서 내 기억은 명확하게 선명한 조각들, 조금은 확신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선명한 조각들, 불확실하지만 일정 부분 선명한 조각들, 선명하지 않은 조각들 그리고 흐릿한 조각들. 마지막으로 떠오를 듯 말듯 깜빡 깜빡 하는 조각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큰 줄기나 흐름은 대체로 꿈의 내용을 담아 내지만, 아주 세부적인 부분들에서는 나도 확실하지 않지만 이거였을 거야 라는 불완전한 확신도 섞여 있고, 가끔은 깜빡이는 부분들 중 추측으로 덧붙인 부분들도 있다. 아주 가끔은. 그러니까 나도 꿈 이야기를 옮길 때 완전히 모든 내용을 다 선명하게 떠올리며 옮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큰 줄기는 확실히 옮기고, 세부사항에서는 조금은 비어있는 지점들도 있다는 이야기.


음, 짧게 쓰려던 글이 또 길어졌다. 내일 또 운전을 해야 하니 오늘은 이만 자야지. 어제 저녁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참여한 회의에서 정말 정성이 가득한 맛있는 음식을 대접 받았고, 참여자들인 동네 선배들에게 진심이 담긴 환대를 받았다. 사실 그 회의에 너무 가고 싶지 않았다. 너무 힘든 하루를 보냈기에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얼른 자고 싶었다. 그런데 운영위원 중 한 분과 그 가족이 함께 정성껏 만든 음식을 먹는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을 느꼈다.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 부족한 인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다행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또 고마운 마음을 품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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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26-04-10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전을 많이 하신다 하니 신의 가호가 늘 감은빛님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 늘 마음 급하게 먹지 말고 조금 더 여유를 두시구요.
꿈 이야기 하셔서 하는 얘기인데, 저도 악몽을 꽤 많이 꾸는 편인데요. 저는 이상하게도 학교가 자주 나오는 편입니다. 아무리 걷고 걸어도 출구를 찾을 수 없는 학교. 악몽을 꾸면 잠을 잘 못잤구나 생각하는 편인데 최근에 무슨 연구 결과를 보니 꿈이 선명해도 잠을 잘 자는 거라는 말도 있더군요. 그래서 저도 꿈을 심하게 꾼 날일수록 잠을 더 잘 잔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