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내가 말했다. 큰아이 반 엄마들이 선생님 선물을 준비하는데, @@만원 미만의 선물은 해도 소용없다며 얼마 이상을 내야 한다고 말했단다. 가난한 형편에 선생님 선물로 그런 큰 돈을 쓸 여유도 없지만, 돈이 있다고 해도 '스승의 날'이라는 형식적인 날 그리 큰 돈을 쓰고 싶지는 않다. 이 나라의 공교육이라는 것이 참 암담하다는 생각을 또 한번 하면서, 이 지옥같은 학교 생활을 헤쳐나갈 아이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애초에 커피(공정무역)나 차(유기농) 따위의 간단한 선물을 생각했던 아내는 그런 표도 안나는 선물은 하지 말라는 다른 엄마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 역시 그러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가 포장해준 손수건이나 양말 한 켤레를 가져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땐 대부분이 양말이나 손수건이었던 것 같다. 다만 형편에 따라 상표(메이커)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선택의 폭이 넓어졌겠지만, 큰 돈을 들이지 않는 한 선물은 대개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학자금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혹은 먹고 살기 위해 학원 강사 생활을 좀 했었다. 학원 강사도 선생님이라고 스승의 날 선물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다녔던 학원은 제법 규모가 있는 보습학원으로 유명한 우범지역(즉 가난한 동네)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수업을 맡았으며,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처음 스승의 날 선물을 받았을 때의 느낌은 묘했다. 학원 선생님까지 챙겨야 하는 어머니의 수고로움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신경써야겠다는 의무감 등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재미있게도 여전히 선물의 대세는 양말이었다. 양말 선물세트가 2개와 와이셔츠 1벌을 받았다. 그리고 담임을 맡지 않았는데도 몇몇 여학생들에게는 카드와 편지, 꽃 한송이 등을 받았다.
당연하겠지만 학원 선생님들 중에서도 인기에 따라 선물의 편차는 무척 크다! 대개 여선생님들 보다는 남선생님들이 더 선물을 많이 받거나, 더 좋은 선물을 받고, 학생들에게 편지나 카드나 꽃 등을 받을 때도 남선생님들이 더 많이 받는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학원강사를 시작한 한 남선생님은 키도 크고, 얼굴도 비교적 준수한 편이어서 들어오자마자 그 학원 최고의 인기 선생님으로 등극했는데, 스승의 날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았다. 꽃다발과 케이크가 여러개였고, 크고 작은 포장된 상자들이 제법 쌓였다. 그 친구는 받은 선물들을 한번에 집으로 가져갈 수 없어서 책상위에 쌓아놓고 여러날에 걸쳐서 옮기느라, 우리의 질투심에 더욱 불을 질러댔다.
그리 오래지 않은 기간동안 여러 학원을 옮겨다니며 담임을 맡았던 게 너댓번 쯤 된다. 몇 차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기억나는 선물은 역시 양말이었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 조용한 편이어서 차분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치고보니 성적이 무척 좋지 않았다. 전화상담 결과 부모님들도 걱정을 많이 하고 계셨다. 아이는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들은 시장에서 가게를 하시는 데, 새벽에 일찍 나가시고, 밤 늦게 돌아오셔서 아이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셨다. 부모님께서는 이왕 학원에 보내고 있으니,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하기를 바라셨지만, 나는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아이가 더 빗나가지 않기를 바랬다. 학원 강사로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개별적으로 공부를 좀 더 봐주는 것으로 그 아이를 붙잡으려 했다. 처음에는 성공이었다. 거의 전 과목을 1대1로 봐주었더니, 기말고사에서 그 아이의 성적이 확 올랐다. 아이는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까지 학원으로 끌어들여서 더욱 열심히 다니는 듯 했다. 다음 해 그 아이가 중3이 되어서도 나는 계속 담임을 맡았다. 그 양말은 그해 스승의 날에 받은 것이다. 전화를 통해 작년에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우리 아이가 성적이 많이 올라서 고맙다는 말씀을 여러차례 하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아이의 성적은 다시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1학기를 마치고 학원을 그만두었다.
나를 대신하여 담임이 된 친구와 친하게 지냈기에 종종 그 아이의 소식을 물었다. 성적은 계속 떨어졌으며, 같은 학교에 다니는 조금 불량해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을 더 학원으로 데려와서 같이 다니고 있으며, 예전보다 수업태도도 많이 나빠졌다는 소식이 돌아왔다. 안타까웠다. 그 친구 역시 학원 방침에 따라 부모님과 전화상담을 종종 하는데, 예전 담임이었던 내 얘기를 가끔 한다고 했다. 나에게는 아르바이트로 잠깐 스쳐가는 학원 강사였는데, 그 아이와 부모님들께는 또 다른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은 채 2년이 안되지만, 그때 받은 양말은 한 4~5년쯤 신었던 것 같다.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 양말을 찾아 신다가 문득 그 양말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그 아이가 생각났다. 지금쯤 얼마나 자랐을까? 이젠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도 못 알아보겠지. 부디 더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았기를,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그 아이을 떠올리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옷을 껴입곤 했다.
선물이라는 건 그런 의미인 것 같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을 바라보면 잠시 선물했던 사람을 떠올리고, 그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그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선물 아닐까? 값비싼 선물들이 잔뜩 받는 선생님이라면 과연 나중에 그 선물로 인해 아이들을 떠올리고, 아이들의 안부를 궁금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