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어느 시기에 어떤 말을 하는지, 어느 시기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느 시기에 몸무게와 키는 얼마나 되고, 이빨은 몇 개나 나는지 등을 자꾸만 신경쓰고 남들과 비교하게 된다. 첫아이 때는 모든 게 처음이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비교하곤 했다. 하루가 다르게 아이가 뭔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당시 이용하던 블로그에 간단히 기록해두기도 했다.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라도 확실히 저마다 재능과 성격과 성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둘째를 키우면서 확실히 느끼게 된다. 가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예전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찾아 읽곤 한다. 이 두 녀석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겠다.

 

우선 첫째는 말이 확실히 빨랐고, 행동발달은 아주 느렸다. 어머니 증언에 의하면 내가 그랬다고 한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녀석이 말은 정말 빨라서 못하는 말이 없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느끼기에 첫째 녀석이 그랬다. 반면 둘째는 말은 조금 느리다 싶은데, 행동은 엄청 빠르다. 제 덩치보다 더 크고, 제 몸무게보다 더 무거워보이는 물건들을 번쩍번쩍 들어 옮긴다. 아무리 힘에 부쳐도 끙끙대며 끝까지 들어 옮기는 모습을 보노라면 신기하기만하다. 뭔가 장애물을 만났을때의 반응도 남다르다. 호기심을 갖고 끝까지 정복하고야 마는 성격이다. 뛰어다니는 모습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활동적이다. 첫째는 이정도 월령때 이렇게 뛰지도 못했고, 장애물을 만나면 피하거나 안아달라고 떼를 썼다.

 

오늘은 아이들이 주로 하는 말들을 한번 비교해보고 싶다.

 

◎ 선생님

큰아이 - 뗀뗀님

작은아이 - 넨넨님

 

몇 해가 지나도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앞에 나서서 설치다가 전경 지휘관이 휘두르는 작은 방패에 배를 맞고 피멍이 들었다. 배에 검푸른 피멍이 들어서 웃기만해도 아팠다. 그때 아직 어렸던 큰아이가 다가와서 "아포? 아포? 내가 호~ 해주께. 아빠, 아빠, 내가 의사 뗀뗀님이야. 내가 호~ 해주께" 라고 말하면서 내 배를 살피고 또 문질러 주었다.

 

작은아이는 큰아이와 달리 '넨넨님'이라고 발음한다. 그래서 "별님반을 부르면~" 이라고 선창하면 "네! 네! 넨넨님!"이라고 대답하는데, 그 발음이 너무 재밌다! 뗀뗀님과 넨넨님. 왜 이렇게 발음이 다른건지 궁금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선생님'이라는 말은 아이들이 발음하기에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 계란

큰아이 - 기랑(독일어 R발음)

작은아이 - 예량, 계앙

 

큰아이 키우면서 정말 놀랐던 일은 동양인들(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렵다는 독일어 R 발음을 아이가 너무 정확하게 발음했을 때였다. 제 엄마가 독일어로 밥먹고 살고 있지만, 오히려 제 엄마보다 더 정확했다. 제일 대표적인 발음이 계란을 말하는 '기랑'이었다. 어찌나 계란을 좋아하는지 엄마, 아빠 등 가족들 호칭 다음으로 제일 빨리 한 발음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이 발음을 잊어버렸다. 이제는 스스로 그렇게 발음했다는 사실을 기억도 못하고, 시켜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한다. 독일어 신동이 하나 나올 줄 알고 기대를 살짝 가졌는데,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언어에 대한 감각이 유난히 좋은 것은 확실한 듯 하다.

 

작은아이도 혹시 큰아이와 같은 발음을 하지 않을까 기대를 가졌는데, 역시 똑같은 법은 없나보다. 요녀석은 초기에는 '예앙'이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예량'으로 바꿔 부르더니, 최근에는 '계앙'으로 바뀌었다. 서서히 제 발음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누가 자매아니랄까봐 계란 좋아하는 식성은 똑같아서 삶아먹든, 구워먹든, 찜을 해먹든 넉넉하게 하지 않으면 둘이 싸움이 난다.

 

◎ 똑같아

큰아이 - 꼬까때

작은아이 - 또따때

 

어느날 갑자기 아이가 비슷하게 생긴 것들을 찾아다니며 '꼬까때'를 외치기 시작했다.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잠시 한눈을 팔고 있으면 다가와서 어깨를 치거나 뺨을 툭툭 건드리면서 와서 보라고 난리다. 젖가락, 숟가락, 책, 연필, 신발, 양말 등등 같은 물건을 찾아다니며 '꼬까때'를 선언하는 모습이 참 재밌었다.

 

반면 작은아이는 최근에서야 '또따때'를 하기 시작했고, 그 전에는 그저 똑같이 생긴 물건 두 개를 번갈아 가르키며 '어! 어!'하고 소리만 낼 뿐이었다. 심지어 귀찮을때는 소리도 안내고 그냥 손가락으로 물건만 번갈아 가르키기도 했다.

 

 

이외에도 여러개가 더 있을텐데, 다음에 또 생각해봐야겠다. 누구나 자신만의 독특한 '유아어'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아또'였다. 수많은 친척들의 증언에 의하면 나는 분유나 우유는 절대 안먹고 무조건 야쿠르트만 먹었다고 한다. 가난한 형편에 나름 귀했던 야쿠르트가 미처 준비되지 못한 날에는 '아또'를 찾아 밤새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의 불호령에 엄마, 아빠, 삼촌, 고모들이 '아또'를 사기 위해 온 동네를 다 뒤지기도 했다고 한다. 처가의 큰 조카의 경우 '아찌미'가 있다. 그 아이는 아이스크림에 맛을 들여서 '아찌미'를 찾아 울고 고집을 부리곤 했다고 한다. 우리 큰아이는 '기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쩜 그렇게 매끄럽게 R 발음을 처리할 수 있는지! 평생 잊지 못할 일이다. 작은아이는 '뚜뚜'가 될 것 같다. 잠이 올때 잠투정을 심하게 하는 편이라 공갈젖꼭지를 종종 물렸는데, 엄마는 이것을 '쭈쭈'라고 불렀고, 아이는 '뚜뚜'라고 발음했다. 잠들기 전 미처 '뚜뚜'가 준비되지 못한 날이면, 아이는 '뚜뚜'를 애타게 부르짖으며 밤새 울곤 한다. 그러고보니 작은아이만 실제로 먹는 음식이 아니구나. 그만큼 특별히 집착하는 음식이 없어서인지. '뚜뚜'를 너무나도 의지하기 때문인지는 한번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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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5-10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정겨운 페이퍼에요. 전 가장 기억나는 단어가 '띠꾸'. 계산할 때 바코드리더기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우리 큰애는 계산하다를 항상 띠꾸하다라고 했어요. 그 바람에 지금은 온 가족이 다 계산이라는 말 대신 띠꾸가 입에 붙어서 자주 실수한답니다. ㅎㅎ

감은빛 2012-05-11 11:39   좋아요 0 | URL
'띠꾸'라는 말 정말 재밌네요!
역시 누구에게나, 어느 집에나 재밌는 '유아어'들이 꼭 있다니까요! ^^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2-05-10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정겨운 페이퍼에요.2

출근길 버스에서 스맛폰으로 읽고 막 웃으면서 추천했어요. 7월달에 두 돌되는 조카 생각이 나서요. 요즘 이 조카가 새로 습득한 말은 '삼촌'인데 당연히 삼촌이라고 발음하지 못하죠. 들어보면 '사쭈'라고 하는것 같아요. 그래도 거실에 걸린 삼촌 사진 보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쭈 라고 하는걸 보고 듣노라면 가슴속에 사랑이 폭발할 것 같습니다. 하핫.

요즘 조카는 코끼리에 흠뻑 빠져있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움직이며 깡총깡총 하기를 좋아해요.

아, 그리고 제 조카는요, 후훗, 뜌뜌 라고 해요. ㅋㅋㅋㅋㅋ 제 엄마가 쮸쮸라고 일렀었거든요.

감은빛 2012-05-11 11:41   좋아요 0 | URL
'사쭈'라고 했군요.
우리 큰아이는 독특하게도 삼촌을 '찌쭝'이라고 했어요.
작은아이는 '땀똔'이라고 했구요.

쭈쭈는 뚜뚜가 되고, 쮸쮸는 뜌뜌가 되는 군요. ^^

순오기 2012-05-11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정겨운 페이퍼에요.3 ^^
우리 아이들도 저 어릴 때 얘기 들려주면 참 좋아하더라고요.
이런 걸 기억하고 글로 써 놓은 아빠는 많지 않을거에요, 그래서 더 감동스럽네요.
추천을 무제한으로 드리고 싶은 페이퍼!

감은빛 2012-05-11 11:43   좋아요 0 | URL
작은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큰아이에게 고맘때 얘길 들려주면 엄청 좋아해요.
순오기님 댁은 3남매니까 더 추억할 이야기들,
들려주고픈 이야기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라주미힌 2012-05-1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조카가 들은 대로 바로 말한 단어 '매꼬이' 가 생각나네요..
넥타이....

감은빛 2012-05-11 11:43   좋아요 0 | URL
넥타이는 '매꼬이' 요것도 신기하네요! ^^

마녀고양이 2012-05-14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페이퍼... ^^

그런데 요즘 감은빛님 술 많이 드시는거 아니죠?
혹시 속상하실까 싶어서. 술 좋아하시구 별로 취하지도 않는 감은빛님,
건강 챙기시면서 일하시구 술두 드시구, 5월도 즐기셔요.... 음,
노동자의 날이 있는 5월, 버스 타고 광화문에서 매번 보는 쌍용자동차 텐트를 보면
너무 속상하긴 하지만 말이죠... 이렇게 이쁜 페이퍼에 제 댓글이 영... 에공.

감은빛 2012-05-15 17:10   좋아요 0 | URL
속상할 일이 많죠!
술은 늘 먹다보면 많이 먹게 되더라구요.
그래도 다음날 출근하기 위해 나름 조절은 하고 있습니다.

마녀고양이님께서 예쁜 페이퍼라고 해주시니, 영광입니다! ^^
 

연이어 가슴 아픈 소식들이 들린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중 22번째 죽음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오늘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였던 고 이윤정씨가 뇌암(뇌종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고 황유미씨와 고 이숙영씨 등이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가 백혈병 등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지만, 삼성측은 산재 인정을 하지 않았다.

 

2007년부터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삼성전자 반도체 및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에서 병에 걸린 노동자 21명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보상을 청구했다. 이 가운데 최근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 중 처음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한 사람을 제외한 19명은 모두 거부당했다. 1명은 아직 심사 중이다. 거부당한 19명 중에는 이미 세상을 등진 황유미·이숙영씨가 있다. 이 두사람의 경우 정부가 산재를 인정하지 않아 행정소송을 제기해 법원에서 지난해 산재를 인정받았았으나, 정부가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다고 한다.

 

이번에 돌아가신 고 이윤정 씨는 만 32세라고 한다. 여덟살, 여섯살 아직 어린 아이들을 두고 있다. 엄마 없이 살아갈 아이들을 생각하면 몹시 마음이 아프다. 윤정씨는 고 3이던 1997년 삼성 반도체 온양 공장에 입사했다. 입사 이전에 매우 건강했으며, 가족 중에 뇌종양 등의 관련 질환자는 전혀 없다고 했다. 채용 당시에 삼성측에서 실시한 건강검진에도 전혀 이상이 없었다고 나온다. 윤정씨는 고온테스트 (MBT burn-in) 공정에서 6년간 근무했으며, 일하는 중 고온에 타버린 반도체 칩의 검은 연기를 흡입하거나 벤젠 등 발암물질에 노출되었다. 퇴사후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살다가 2010년 갑자기 악성 뇌 종양 진단을 받았다.

 

새삼 삼성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 무노조 삼성. 사상 초유의 기름오염 사건을 일으키고도 보상을 외면한 삼성. 용산 재개발 사업주로서 용산참사의 숨은 배후 삼성. 그리고 역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의 사업주로서 구럼비 바위를 발파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을 하지 않고, 오히려 돈으로 부모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삼성! 

 

이런 더러운 기업이 이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라고? 지난 1월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스위스 시민단체 ‘베른선언’이 세계 최악의 기업을 선정하는 ‘공공의 눈’(Public Eye) 온라인 투표에서 삼성전자가 3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보면, 이미 국제적으로도 삼성의 추악한 이면은 많이 알려져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로지 국내에서만 삼성, 삼성 떠받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구럼비 발파로 인해 SNS를 통해 조금씩 퍼져가던 '삼성 불매운동'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아래 책들이 널리 읽혀서 추악한 삼성의 진실이 더 널리 알려지고, 그런 과정을 통해 삼성 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도 모두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된 기업 경영을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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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5-0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까지 꽃다운 나이에 들어와 죽은 삼성 직원이 15명, 무조건 돈막음만으로 해결되면 다 덮을 수 있다는 아주 꼼수스러운 마인드를 가진 이건희와 그 일당들. 전 저 혼자라도 삼성불매 합니다.

기억의집 2012-05-08 19:15   좋아요 0 | URL
15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방금 기사 보니 30명이 넘네요. 에휴.

감은빛 2012-05-09 14:32   좋아요 0 | URL
돌아가신 분만 그정도 숫자라면
발병해서 고통을 겪고 계신 분들은 훨씬 더 많겠군요!
삼성 불매하는 사람들은 주변에는 제법 있는데,
조금만 벗어나면 삼성을 마치 없어서는 안될 존채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구요.

삼성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여
과연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듭니다.
제발 저 억울한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봄나무 2012-05-09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공감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고 이윤정씨의 명복을 빕니다.

감은빛 2012-05-09 14: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봄나무님.
굳이 따져서 죄송하지만,
제가 제기한 문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아닌,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조금의 양심과 뉘우침도 없이 외면해버린
기업 경영 윤리에 대한 부분입니다.

아시다시피 삼성은 무노조 경영이라는 아주 말도 안되는
원칙을 세워놓고 노조를 만들었던 사람들에게(대표적으로 김성환 위원장)
억지로 죄를 덮어 씌워 감옥에 처넣는 기업이죠.

자기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스스로 다루고 있었던 온갖 유해한 발암물질에 대한 교육을 하지 않았고,
그 발암물질로 인해 젊은 나이에 발병하여 결국 세상을 떠나도,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노라고
인간이하의 태도를 보이는 집단입니다.

단순한 사회적 책임이라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아주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라는 생각에 길게 말씀드립니다.
부디 다시 한번 읽어주시고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카스피 2012-05-09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삼숑도 파인애플 못지 않군요.파인애플은 중국에 있는 하청공장인 팍스콩의 살인적인 업무 강도로 인한 종업원의 자살이 문제지요.
파인애플이야 대만에 있는 기업에 하청을 주었으므로 자살 문제에는 책임 소재에 관해선 한발 빗겨나가 있지만 팍스콩 노동자의 자살문제로 큰 곤란을 겪고 있지요.삼숑의 경우는 직접 운영하는 공장에서 벌어진 일이라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만 발병한 암과 직업과의 정확한 인과관계를 따지기 힘든 경우입니다.즉 심증적으로 확증은 가나 물증이 부족한 상태란 거죠.
아무튼 두 기업의 사례를 보면서 세계 1,2를 하는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부려 먹어여 높은 이익을 올릴수 있다는 것에 새삼 분노를 금치 못하겠군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번 사태는 소리 소문없이 가라앉을 것이고(삼숑의 직요한 로비와 광고물량때문에...),대한 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삼숑에 들어가려고 기를 쓸거란 생각이 듭니다ㅜ.ㅜ

감은빛 2012-05-09 14:56   좋아요 0 | URL
애플은 그래도 직접적으로 유해(발암)물질에 노출되어
발병한 경우는 아닌가보네요.
유럽과 미국의 경우는 우리나라보다 일찍 이러한 문제들이 발견되어,
그나마 많이 나아졌다고 들었습니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작업과 발병한 질병에 대한 내용은,
아마도 충분히 입증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산재로 분명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건 해외사례 등을 살펴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삼성이 갖고 있는 권력구조 때문에,
정부가 쉽사리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겠지요.
일부 사람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노무현 조차도 삼성 편에 서있던 이였으니,
지금 정부야 뭐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5-09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기업의 문제점이 이렇게 드러나면 언젠가는 인권을 생각하고 건강을 생각하는 기업들이 될까요? 저는 그런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더 절망스러운 것 같아요....
그래도, 그러니까 더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소리를 내야겠죠?

잘 지내셨죠? 세상은 뒤숭숭하고 사회는 더 어지러운데
우리 아이들은 참 잘도 크고 있네요~ 아이들 생각하면 부모로서, 한 나라의 사회인으로 책임감이 느껴져요~

나는 봤다 2012-05-09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 한겨례신문 헤드라인에 삼성반도체 노동자 핵혈병 뇌종양으로 사망과 관련 기사와 유튜브동영상을 보고 참 남일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주변에도 반도체 엘시디에서 각종 산성케미칼을 다루며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그러고보면 요즘 한국 환경이 급속히 나빠진걸 보면 이런 관련 업종이 전국적으로 생겨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한 회사에서 그것도 같은 공정에서 일한 사람이 수십명이 죽었는데 사회적으로 이슈가 안되고 있으니 한국이란 나라 문제가 많습니다. 돈과 권력 앞에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은 먼지만도 못한 것인지... 혹 주변에 친구나 가족분들 중 반도체, 엘시디 아니면 관련 화학물질들을 취급하는 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있다면 한겨례영상을 한 번 보세요. 동영상을 보니 산성약품을 취급하는 작업자가 반도체 엘시디 현장에서 착용하는 기본 비닐 장갑만 끼고 작업을 하는 영상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대한민국 1위를 달리는 기업의 현장작업이 저렇게 허접했는지를 보고 놀랬습니다. 월래 산성케미칼을 취급하면 특수 고무장갑에 특수 마스크를 착용은 기본인데 황산, 불산, 아세톤, 각종 식각약품 등을 사용하는 현상에서 저렇게 허접하게 일을 하다니. 보통 사람들은 텔레비젼으로만 봐서 항상 작업자가 우주복 같은 옷을 입고 눈만 내놓고 깔끔한 곳에서 일하는 장면만 봐서 좋은 이미지를 같고 있는지는 모르나 실제 그 현장에 들어가보면 많은 종류의 설비들이 있고 많은 화확물질들의 공급배관을 타고 설비내부에서 사용되고 있죠. 자동화 설비라 모두 저절로 처리된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현장 작업자들은 자주 저런 물질들을 직접 취급을 하는 것이 현실이죠. 설비에 문제가 생기거나 정기적으로 청소 같은 것들도 해야하는데 어떻게 피부에 안 닿겠습니까 또 산성물질들은 화학반응을 하면 끓는 물처럼 증기같은 흄이 날리는데 아주 열악한 설비를 갖춘 공정이 있다면 안 마실래야 안 마실수가 없겠죠. 어쨌던 같은 회사의 같은 공정에서 수십명이 죽었다면 팔 다리가 잘리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문제는 약자를 보호는 의미에서 관심 갖고 기사를 봐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동생, 아들, 딸이 저런 곳에 취직을 할지 모르는 일

나도 2012-05-09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즘 한국 애들 피부병에 시달리는 애들이 많아진 것 같다.

452 2012-05-09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반도체 엘시디의 특정공정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사이에는 속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어느 공정에서 작업하는 누구는 장가가면 딸만 낳을 것이다. 아니면 0자가 된다더라는 등 이런 농담을 장난삼아 이야기하는 것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상식적으로 일반인들이라도 생각해보면 자기 집안에 인테리어가 자연소재가 아닌 각종 화학제품들로 꾸며졌다면 피부 트라블이 생길까 안 생길까요? 물어보나마나 당연한 것 아닌지? 요즘 안그래도 아토피니 뭐니 해서 피부병환자가 많이 증가했는데 당연히 각종 산성화확약품을 취급하는 곳은 물어보다마나죠. 인체에 좋을리없겠죠.

dhkslw 2012-05-10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삼성이 산재인정을 않하는 것과 일본이 위안부 인정을 하지않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명예, 자존심, 이미지 손상 등으로 입게 될 파장 아닌가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어린이날 노래'를 배웠다고 자랑하며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중간 중간 가사를 잘 모르길래, 나도 오랜 기억을 더듬어 가사를 가르쳐주었다. 그러고보니 어린 시절 이 노래를 부르며 '오월이 푸르다는 사실'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나는 온통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 둘러쌓인 대도시에 안쪽에 살고 있었다. 좀 걸어나가면 제법 큰 천(川)이 하나 있었지만, 그 천 마저도 콘크리트로 덮혀있었고, 일년의 대부분은 쫄쫄쫄 가는 물줄기의 냄새내는 똥물만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오월과 푸르다는 단어는 전혀 뜻이 통하지 않는 관계없는 말이었다.

 

나중에 조금 더 자라서 변두리 지역으로 이사했을 때, 비로소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에 따라 자연이 바뀐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TV 화면이 아닌) 보게 되었다. 산을 오르내리고, 계곡과 들판과 언덕을 뛰어다니던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연과 가까이 살았던 시절이다. 지금 그 곳에 가보면 이미 계곡과 들판과 언덕은 다 사라졌고, 오르내리던 산 마저도 중턱까지 아파트가 올라가있다. 지금 아이들은 뛰어놀 언덕과 들판과 계곡을 잃어버리고, 집 앞까지 들어온 자동차와 오토바이 덕분에 골목에서 조차 맘껏 뛰어 놀지 못하고 있다. 모래조차 없이, 폐타이어를 깔아놓은 좁은 놀이터에서 간신히 미끄럼틀과 그네 정도만 타고 놀아야 하는 아이들.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직 도시 안쪽에 살았던 그 시절에도, 비록 콘크리트 바닥이긴 했지만, 어린 나이때부터 동네를 쏘다니며 아이들끼리 어울려서 놀곤 했다. 유치원 따위는 다니지도 않았고, 매일 아침먹고 나가서 놀다가 점심 무렵 들어와서 밥먹고 잠시 졸다가 또 뛰어나가 놀았고, 해질녁에야 겨우 들어와서 다시 저녁을 먹었다. 흙 한 톨 없는 아스팔트 바닥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놀았다. 그때는 골목으로 차가 거의 다니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 뛰어다니다가 차에 치일 일은 없었다. 가끔 덩치 큰 개와 자전거를 조심해야 했다. 그시절과 비교해보면 지금 우리 아이들은 정말 불쌍하다. 큰 아이는 초등학생이지만 집앞 골목길을 함부로 내보낼 수가 없다. 차에 치일까봐 혹은 험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말이다. 큰 아이는 여전히 길을 걷다가 차나 오토바이가 달려오면 무서워하며 내 손을 꼭 잡는다. 동네 놀이터에 한번 가려고 해도 꼭 부모와 함께 다녀야 한다. 동네 구멍가게(이런 가게가 이젠 거의 남아있지도 않지만)에 심부름을 한번 보내는 것도 안심할 수 없어서 눈에 보이는 곳까지 따라가서 지켜봐야 한다.

 

게다가 오월이 너무 덥다! '지구 온난화'라는 말보다는 '기후변화'라는 말을 써야한다고 하는데, 어쨌든 오월 초의 날씨가 거의 초 여름 수준이다. 이 더운 날씨에 뛰어 놀으라고 했더니, 금방 땀을 뻘뻘 흘린다. 게다가 아이들은 모두 반팔을 입었다. 기억 속의 내 어린이날들 중에서 한 번도 반팔을 입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얇은 봄 잠바를 입고 있는 사진은 기억난다.

 

그래도 오월이다. 그래도 어린이날이다. 아이들은 열심히 뛰어놀고 또 열심히 자란다. 아이들 선물과 조카들 용돈에 주머니는 가벼워졌지만,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은 좋다.

 

 

 

아래는 어제 파주 어린이책잔치에 가서 구경하거나 구매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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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5-07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죠~?^^
정말 '푸르다'를 '덥다'로 개사해서 불러야할 것 같아요.
윤달이 들어서일까요?
아님, 지구온난화가 가져온 이상기후 때문일까요?^^

감은빛 2012-05-09 14:58   좋아요 0 | URL
양철님! 오랫만이지요?
한반도의 기후 패턴 자체가 바뀐게 아닐까라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요 몇 해동안 늘 정상적인 날씨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잘 지내시고, 언젠가 약속을 지킬 기회를 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

기억의집 2012-05-08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린시절 변두리에 살아서 그런지 주변이 다 배밭이어서 무서울 때가 있었어요. 학교 갈 때 작은 산도 넘어갈 정도였는데, 그 나트막한 산도 이십대 시절에 아파트단지로 변하더라구요. 초등학교땐 동네에 개천이 있을 정도였으니깐요. 불과 이십년이 넘은 그 기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한 것 같아요. 강남이 80년대 초중반서부터 개발되었으니깐요.

도시화가 무섭긴 하죠. 딸애가 11살인데 학교등하교를 제가 다 해 줍니다. 혹시나 해서.

감은빛 2012-05-09 15:04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그랬죠. 80년대 초만해도 왠만한 변두리는 아직 자연이 남아 있었을텐데요.
2~30년 사이에 자연이 참 많이 망가지고 없어졌습니다.

11살인데도 여전히 등하교를 다 해줘야하는군요.
저희는 아침에 제가 데려가고,
점심식사후에 아내가 데리러 갑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하나 조금 고민이 되네요.
 

 

의욕상실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다. 작년 가을부터 녹색당을 창당하기 위해 뛰기 시작하여, 총선일정에 맞춰 어렵게 창당을 이루고, 쉴 틈도 없이 총선준비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내가 지지하는 정당을 위해 선거운동이란 것도 했다.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즐거웠다. 뭔가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현실이었다. 기적처럼 어렵게 창당한 녹색당은 선거에서 득표율 2%를 채우지 못해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 녹색당 뿐 아니라 이번 총선에 참여한 신생(소수)정당들은 모조리 같은 운명이 되었다. 진보신당도, 청년당도 모두 등록취소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어이없는 결과가 나왔다. 녹색당의 결과도, 진보신당의 결과도, 새누리당의 결과도 모두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물론 냉정하게 생각해서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다. 다만 기적같은 창당을 이룬 녹색당이 뭔가 이변을 가져오기를 간절히 바랬고, 그랬기에 그토록 열심히 움직였던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거의 넋을 놓고 며칠을 보낸 듯 하다. 밤 늦도록 술도 많이 마셨다. 낮엔 또 일터에서 미처 신경 못쓰고 있던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었다. 대체 지금 내가 무슨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여러번 하고 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더 늦기전에 멘붕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언가 전환점이 필요하다. 그 전환점이 되어줄 사건을 이번 주말에는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봄에는 도감을

 

봄이 오긴 왔나보다. 마음은 아직 춥기만 한데, 몸은 따뜻한 날씨에 반응하고 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올리는 봄 꽃 사진들을 보며 얼어붙어버린 마음을 조금씩 녹여가야겠다. 봄이다. 이번 봄에는 아이들과 함께 도감을 열심히 들여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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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싸리 2012-04-21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운 내세요. 도감들고 들로 산으로 나가보는 것도 좋겠네요.

감은빛 2012-04-27 17:49   좋아요 0 | URL
날씨가 따뜻했다가 또 추워지고,
주말에 나가려고 했더니 또 비가오고.....
이번 봄엔 뭔가 잘 안맞는 듯 하네요.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카스피 2012-04-21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술에 배부를순 없지요.통합 진보당의 경우 13석의 의석을 갖기위해서 수십년간 각곡의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까? 녹색당의 진심도 조만간 국민들이 알아줄날이 옵겁니다.
감은빛님 기운내셔요^^

감은빛 2012-04-27 17:50   좋아요 0 | URL
네, 카스피님의 말씀 덕분에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

차트랑 2012-04-23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매체를 바라보는 국민의 의식이 매체의 질을 결정하듯....
국민이 녹색당의 참 뜻을 이해해 줄 날이 올것이라 믿습니다.
원자력의 위험성과 청청에너지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긍정적 변화과정을 겪고 있다고 봅니다.

박혜령 후보가 출마한 울진은 공해에 찌든 서울에 비하면
참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곳이더군요...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다음을 위해 다시 준비하셔야죠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감은빛 2012-04-27 18:03   좋아요 0 | URL
차트랑공님 늘 따뜻한 응원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게다가 시까지 남겨주시다니!
천천히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녹색당은 이미 '녹색당 더하기'라는 임시 이름으로 재창당에 들어갔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차트랑 2012-04-27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창당을 하셨군요.
제 발로 뛰지는 못하더라도 관심과 응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더욱 힘 내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2012-05-08 17:5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봄나무 2012-05-0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른길을 위한 목소리는 소수여도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계속 수고해주시길!!! 저도 관심가지고 지켜볼게요

감은빛 2012-05-08 17:51   좋아요 0 | URL
봄나무님 고맙습니다!
녹색당의 존재에 대해 주위 분들에게도 알려주세요! ^^
 
나무 심으러 몽골에 간다고요? 웃는돌고래 그림책 1
김단비 글, 김영수 그림, 푸른아시아 감수 / 웃는돌고래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나무 심으러 몽골에 가보자!

 

2000년 여름 몽골을 방문했다. <한국 휴먼네트워크>와 <일본 요코하마시립대학 NGO>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몽골생태투어였다. 당시 나는 어느 학회의 회장을 맡고 있었다. 학회 지도교수님의 소개와 지원 덕분에 우리 학회에서 4명이 생태투어에 참여했다. 생태투어에 앞서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막화방지운동에 참여했다. 학교 내에서 사막화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허브를 판매하여 수익금을 몽골 식수기금으로 보태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한편 생태투어에서 나는 단순 참가자가 아닌 전체 행사 중에 하나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일본 요코하마시립대학 NGO에서 활동하는 학생들과 소통하며 생태투어 중간쯤에 한·일·몽 문화교류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해야 했다. 일본어를 전혀 모르고, 영어도 서툴렀지만 뭔가 해보려는 열정으로 부딪쳐야했다. 게다가 생태투어에 참여하는 후배 3명만으로 행사를 준비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후배들과의 일을 나누고 조율하는 역할을 잘 해내지 못했고, 덕분에 대부분의 일을 혼자 처리했고, 그래서 더욱 후배들과 거리가 생겼다. 몽골에 도착해서도 문화교류행사의 밤을 치루기까지 무척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때 그나마 기분이 풀어지게 된 것은 몽골 청년들과의 만남이었다.

 

문화교류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인교회에 다니는 몽골 청년의 도움을 받았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마른 느낌이었다. 선한 눈동자에 웃는 얼굴이 참 좋았다. 그가 떠듬떠듬 우리말을 조금 했지만, 말이 잘 통하지는 않았다. 뭔가 급하게 물어볼 때,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좀 답답했지만, 손짓 발짓 해가면서 어떻게든 준비를 해나갔다. 둘이서 물건을 사러 울란바토르 시내를 돌아다녔던 햇살이 유난히 따갑던 몽골의 여름 오후가 마치 흑백영화의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돌아간다.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충분히 했던가? 내 스트레스 때문에 좀 더 친절하게 잘 대해주지 못한 것 같은 맘이 들어 살짝 후회가 된다.

 

또 한명의 인연은 좀 별나게 만났다. 우리가 묵었던 외국인 전용 숙소의 야간 경비를 서는 경찰이었다. 문화교류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숙소에서 선, 후배들과 술을 한잔 하다가 혼자 담배를 물고 건물 밖을 나와서 서성였다. 경비사무실에 근무하던 경찰(경비원이 아닌 진짜 경찰이었다.)이 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밤늦게 돌아다니지 마라”는 말이라고 혼자 짐작을 했다. 담배를 끄고 방으로 돌아갔다가 나중에 다시 나왔는데, 이번에도 그 경찰이 다가왔다. 뭐라고 말을 하는데, 당연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계속 듣다보니 같은 말을 반복했고, 나중에는 내가 물고 있던 담배를 가리켰다. 아! 담배를 달라는 뜻이었구나! 흔쾌히 한 개비를 꺼내주고, 불을 붙여줬다.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인 후에 그는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렇게 그와 담배를 나눠 피우고, 간식꺼리를 나눠주기도 하면서 12시 즈음부터 새벽 4시쯤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둘이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그냥 손짓 발짓, 억양과 말투 등으로 판단했고, 나중에는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어렵게 나눈 대화를 통해 그가 나와 같은 나이이고(훨씬 더 많아 보였다!)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되었다. 참 독특한 경험이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책은 몽골에 나무를 심으러 간 힘찬이가 몽골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또 몽골 친구를 사귀고 돌아오는 내용을 짧은 분량에 잘 담고 있다. 이 책을 감수한 단체는 <푸른아시아>로 힘찬이는 바로 <푸른아시아>가 주최하는 에코투어에 다녀온 것이다. 앞서 언급한 <한국 휴먼네트워크>는 이후 이름을 두 번 바꾸었는데, 현재의 이름이 바로 <푸른아시아>이다. 즉 나는 힘찬이보다 십여 년 전에 같은 단체에서 주관하는 같은 프로그램에 다녀온 것이다.(물론 그 동안 프로그램이 훨씬 더 많이 좋아졌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몽골의 경험들이 하나둘 다시 떠올랐다. 말을 타고 달릴 때의 짜릿한 느낌. 양고기 특유의 냄새 때문에 힘겨웠던 식사시간. 시큼한 마유주의 맛. 드넓은 초원과 황량한 사막. 4인용 게르에서 혼자 춥고 외롭게 보낸 밤. 위에서 언급한 친구들 외에도 몽골에서 만난 선한 사람들. 이 책을 읽고 몽골에 나무 심으러 한번 가보시길 권한다. 단순히 나무만 심고 오는 행사가 아니라 몽골의 문화를 겪어보고, 나무도 심어서 사막화를 막고, 기후변화를 극복하는 의미 있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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