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어느 시기에 어떤 말을 하는지, 어느 시기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느 시기에 몸무게와 키는 얼마나 되고, 이빨은 몇 개나 나는지 등을 자꾸만 신경쓰고 남들과 비교하게 된다. 첫아이 때는 모든 게 처음이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비교하곤 했다. 하루가 다르게 아이가 뭔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당시 이용하던 블로그에 간단히 기록해두기도 했다.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라도 확실히 저마다 재능과 성격과 성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둘째를 키우면서 확실히 느끼게 된다. 가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예전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찾아 읽곤 한다. 이 두 녀석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겠다.
우선 첫째는 말이 확실히 빨랐고, 행동발달은 아주 느렸다. 어머니 증언에 의하면 내가 그랬다고 한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녀석이 말은 정말 빨라서 못하는 말이 없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느끼기에 첫째 녀석이 그랬다. 반면 둘째는 말은 조금 느리다 싶은데, 행동은 엄청 빠르다. 제 덩치보다 더 크고, 제 몸무게보다 더 무거워보이는 물건들을 번쩍번쩍 들어 옮긴다. 아무리 힘에 부쳐도 끙끙대며 끝까지 들어 옮기는 모습을 보노라면 신기하기만하다. 뭔가 장애물을 만났을때의 반응도 남다르다. 호기심을 갖고 끝까지 정복하고야 마는 성격이다. 뛰어다니는 모습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활동적이다. 첫째는 이정도 월령때 이렇게 뛰지도 못했고, 장애물을 만나면 피하거나 안아달라고 떼를 썼다.
오늘은 아이들이 주로 하는 말들을 한번 비교해보고 싶다.
◎ 선생님
큰아이 - 뗀뗀님
작은아이 - 넨넨님
몇 해가 지나도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앞에 나서서 설치다가 전경 지휘관이 휘두르는 작은 방패에 배를 맞고 피멍이 들었다. 배에 검푸른 피멍이 들어서 웃기만해도 아팠다. 그때 아직 어렸던 큰아이가 다가와서 "아포? 아포? 내가 호~ 해주께. 아빠, 아빠, 내가 의사 뗀뗀님이야. 내가 호~ 해주께" 라고 말하면서 내 배를 살피고 또 문질러 주었다.
작은아이는 큰아이와 달리 '넨넨님'이라고 발음한다. 그래서 "별님반을 부르면~" 이라고 선창하면 "네! 네! 넨넨님!"이라고 대답하는데, 그 발음이 너무 재밌다! 뗀뗀님과 넨넨님. 왜 이렇게 발음이 다른건지 궁금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선생님'이라는 말은 아이들이 발음하기에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 계란
큰아이 - 기랑(독일어 R발음)
작은아이 - 예량, 계앙
큰아이 키우면서 정말 놀랐던 일은 동양인들(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렵다는 독일어 R 발음을 아이가 너무 정확하게 발음했을 때였다. 제 엄마가 독일어로 밥먹고 살고 있지만, 오히려 제 엄마보다 더 정확했다. 제일 대표적인 발음이 계란을 말하는 '기랑'이었다. 어찌나 계란을 좋아하는지 엄마, 아빠 등 가족들 호칭 다음으로 제일 빨리 한 발음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이 발음을 잊어버렸다. 이제는 스스로 그렇게 발음했다는 사실을 기억도 못하고, 시켜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한다. 독일어 신동이 하나 나올 줄 알고 기대를 살짝 가졌는데,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언어에 대한 감각이 유난히 좋은 것은 확실한 듯 하다.
작은아이도 혹시 큰아이와 같은 발음을 하지 않을까 기대를 가졌는데, 역시 똑같은 법은 없나보다. 요녀석은 초기에는 '예앙'이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예량'으로 바꿔 부르더니, 최근에는 '계앙'으로 바뀌었다. 서서히 제 발음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누가 자매아니랄까봐 계란 좋아하는 식성은 똑같아서 삶아먹든, 구워먹든, 찜을 해먹든 넉넉하게 하지 않으면 둘이 싸움이 난다.
◎ 똑같아
큰아이 - 꼬까때
작은아이 - 또따때
어느날 갑자기 아이가 비슷하게 생긴 것들을 찾아다니며 '꼬까때'를 외치기 시작했다.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잠시 한눈을 팔고 있으면 다가와서 어깨를 치거나 뺨을 툭툭 건드리면서 와서 보라고 난리다. 젖가락, 숟가락, 책, 연필, 신발, 양말 등등 같은 물건을 찾아다니며 '꼬까때'를 선언하는 모습이 참 재밌었다.
반면 작은아이는 최근에서야 '또따때'를 하기 시작했고, 그 전에는 그저 똑같이 생긴 물건 두 개를 번갈아 가르키며 '어! 어!'하고 소리만 낼 뿐이었다. 심지어 귀찮을때는 소리도 안내고 그냥 손가락으로 물건만 번갈아 가르키기도 했다.
이외에도 여러개가 더 있을텐데, 다음에 또 생각해봐야겠다. 누구나 자신만의 독특한 '유아어'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아또'였다. 수많은 친척들의 증언에 의하면 나는 분유나 우유는 절대 안먹고 무조건 야쿠르트만 먹었다고 한다. 가난한 형편에 나름 귀했던 야쿠르트가 미처 준비되지 못한 날에는 '아또'를 찾아 밤새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의 불호령에 엄마, 아빠, 삼촌, 고모들이 '아또'를 사기 위해 온 동네를 다 뒤지기도 했다고 한다. 처가의 큰 조카의 경우 '아찌미'가 있다. 그 아이는 아이스크림에 맛을 들여서 '아찌미'를 찾아 울고 고집을 부리곤 했다고 한다. 우리 큰아이는 '기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쩜 그렇게 매끄럽게 R 발음을 처리할 수 있는지! 평생 잊지 못할 일이다. 작은아이는 '뚜뚜'가 될 것 같다. 잠이 올때 잠투정을 심하게 하는 편이라 공갈젖꼭지를 종종 물렸는데, 엄마는 이것을 '쭈쭈'라고 불렀고, 아이는 '뚜뚜'라고 발음했다. 잠들기 전 미처 '뚜뚜'가 준비되지 못한 날이면, 아이는 '뚜뚜'를 애타게 부르짖으며 밤새 울곤 한다. 그러고보니 작은아이만 실제로 먹는 음식이 아니구나. 그만큼 특별히 집착하는 음식이 없어서인지. '뚜뚜'를 너무나도 의지하기 때문인지는 한번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