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어린이날 노래'를 배웠다고 자랑하며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중간 중간 가사를 잘 모르길래, 나도 오랜 기억을 더듬어 가사를 가르쳐주었다. 그러고보니 어린 시절 이 노래를 부르며 '오월이 푸르다는 사실'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나는 온통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 둘러쌓인 대도시에 안쪽에 살고 있었다. 좀 걸어나가면 제법 큰 천(川)이 하나 있었지만, 그 천 마저도 콘크리트로 덮혀있었고, 일년의 대부분은 쫄쫄쫄 가는 물줄기의 냄새내는 똥물만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오월과 푸르다는 단어는 전혀 뜻이 통하지 않는 관계없는 말이었다.
나중에 조금 더 자라서 변두리 지역으로 이사했을 때, 비로소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에 따라 자연이 바뀐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TV 화면이 아닌) 보게 되었다. 산을 오르내리고, 계곡과 들판과 언덕을 뛰어다니던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연과 가까이 살았던 시절이다. 지금 그 곳에 가보면 이미 계곡과 들판과 언덕은 다 사라졌고, 오르내리던 산 마저도 중턱까지 아파트가 올라가있다. 지금 아이들은 뛰어놀 언덕과 들판과 계곡을 잃어버리고, 집 앞까지 들어온 자동차와 오토바이 덕분에 골목에서 조차 맘껏 뛰어 놀지 못하고 있다. 모래조차 없이, 폐타이어를 깔아놓은 좁은 놀이터에서 간신히 미끄럼틀과 그네 정도만 타고 놀아야 하는 아이들.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직 도시 안쪽에 살았던 그 시절에도, 비록 콘크리트 바닥이긴 했지만, 어린 나이때부터 동네를 쏘다니며 아이들끼리 어울려서 놀곤 했다. 유치원 따위는 다니지도 않았고, 매일 아침먹고 나가서 놀다가 점심 무렵 들어와서 밥먹고 잠시 졸다가 또 뛰어나가 놀았고, 해질녁에야 겨우 들어와서 다시 저녁을 먹었다. 흙 한 톨 없는 아스팔트 바닥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놀았다. 그때는 골목으로 차가 거의 다니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 뛰어다니다가 차에 치일 일은 없었다. 가끔 덩치 큰 개와 자전거를 조심해야 했다. 그시절과 비교해보면 지금 우리 아이들은 정말 불쌍하다. 큰 아이는 초등학생이지만 집앞 골목길을 함부로 내보낼 수가 없다. 차에 치일까봐 혹은 험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말이다. 큰 아이는 여전히 길을 걷다가 차나 오토바이가 달려오면 무서워하며 내 손을 꼭 잡는다. 동네 놀이터에 한번 가려고 해도 꼭 부모와 함께 다녀야 한다. 동네 구멍가게(이런 가게가 이젠 거의 남아있지도 않지만)에 심부름을 한번 보내는 것도 안심할 수 없어서 눈에 보이는 곳까지 따라가서 지켜봐야 한다.
게다가 오월이 너무 덥다! '지구 온난화'라는 말보다는 '기후변화'라는 말을 써야한다고 하는데, 어쨌든 오월 초의 날씨가 거의 초 여름 수준이다. 이 더운 날씨에 뛰어 놀으라고 했더니, 금방 땀을 뻘뻘 흘린다. 게다가 아이들은 모두 반팔을 입었다. 기억 속의 내 어린이날들 중에서 한 번도 반팔을 입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얇은 봄 잠바를 입고 있는 사진은 기억난다.
그래도 오월이다. 그래도 어린이날이다. 아이들은 열심히 뛰어놀고 또 열심히 자란다. 아이들 선물과 조카들 용돈에 주머니는 가벼워졌지만,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은 좋다.
아래는 어제 파주 어린이책잔치에 가서 구경하거나 구매한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