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수키 김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아침 9시의 담배는 공허함이다.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는 날씨 혹은 지하철 역 앞 맥도날드 앞이 아니었다면 담배를 물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지만, 정오가 되기 전에 담배를 꺼내 무는 일은 드물었다. 그가 아직 어렸을 때, 그러니까 거의 가족이 아직 한국에 있을 당시에 아버지는 일이 없었다. 가끔 막노동일을 나가기도 했지만, 평소에는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새벽에 어머니가 일을 나가고, 늦게 일어난 언니와 그가 배가 고파 부엌을 뒤질 무렵 깨어난 아버지는 이불 위에 앉아 담배부터 찾아 물었다. 성냥갑을 열고, 성냥 하나를 치익 그어 불을 붙이고 천천히 담배에 대고 불을 당겼다. 어린 그는 단칸방 아래켠에서 눈치를 살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담배에서 연기가 올라오면 아버지는 손을 휘저어 성냥불을 끄고 재떨이에 던졌다. 천천히 깊게 한 모금을 들이마신 후, 아버지는 아주 깊은 한숨처럼 연기를 내뱉았다.

 

목표는 다섯 걸음 옆에 있었다. 그 역시 담배를 물고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지켜본 결과, 아주 오랜만의 외출이었고, 아주 이른 시간의 외출이었다. 통역사라는 직업이 이렇게 불규칙적으로 일을 받는다면, 목표는 어떻게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뭔가 숨겨진 돈이 없다면, 묵고 있는 방의 월세와 지금 입고 있는 값비싼 옷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공허함을 달려려고 담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뱉는 것과 달리 다섯 걸음 옆의 목표는 담배를 몇 번 빨지 않고 그냥 타들어가게 내버려 두고 있다. 뭔가 고민하고 있는 듯 보이던 목표가 갑자기 맥도널드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는 마지막 한 모금을 깊이 빨았다가 내뱉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목표를 따라 걸었다. 목표가 비를 피해 실내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그는 다시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냈다. 흰 연기를 내뿜으며 유리창 너머로 목표를 주시한다. 목표는 계산대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건지는 알 수 없다. 한 참 후에야 커피 한잔을 받아 들고 빈 자리를 찾아 두리번 거린다. 마침 한 남성이 맞은 편 빈 자리를 권한다. 목표와 같은 동양계 남성이다. 어쩌면 목표와 그리고 그와 같은 한국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가 이 일은 맡은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뒤를 밟고, 정보를 캐고, 감시하는 일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런 경험을 쌓아 잘 처리할 수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우연히 목표와 같은 나라 출신이고, 목표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으며, 급하게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이 일이 훨씬 더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고, 돈을 위해서라면 위험도 각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지금까지는 평범했다. 목표는 외출이 거의 없었고, 간혹 외출을 해도 특이사항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렇게 거금을 들여 목표를 감시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의뢰인에게 그 이유를 물을 수는 없다.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목표의 맞은 편에 앉아있던 중년 남성이 밖으로 나온다. 둘이 대화를 나눈 것 같지는 않았다. 남성은 자리를 권했지만, 목표가 앉자마자 신문을 펼쳐들고는 내내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둘이 비밀 접선을 했을 가능성을 떠올려본다. 아니. 곧바로 머리를 가로젖는다. 그는 목표에게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자리를 권했다. 비밀 접선이라면 그렇게 눈에 띄는 행위를 했을 리 없다. 남성은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오늘 아침 뉴욕 변두리에서 공허한 동양인을 또 만난다. 그는 중년 남성의 눈빛에서 아주 오래전 아버지의 눈빛을 본다.

 

****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머리 속에 외전 격의 곁이야기가 떠올랐다. 수지를 감시하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 그 그림자는 그레이스가 고용했을 수도 있고, 해마다 아이리스를 보내는 누군가가 보냈을 수도 있다.(그 누군가가 그레이스 아니라면) 혹은 KK단의 누군가가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민국의 누군가가 고용했을 수도 있다.

 

아, 소설에서 그림자의 존재는 확실치 않다. 다만 수지가 누군가의 감시를 받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을 뿐이다. 그 생각은 착각일수도 있고, 실제일수도 있다. 나는 그 그림자가 실제이고, 그가 수지와 같이 한국에서 어릴때 떠나온 젊은이라는 가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 흥미로운 책에 뻔한 미사여구로 감상을 붙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쓴 함량미달의 글이 이 책에 폐를 끼치겠지만, 나로서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는 것이라는 점을 알리며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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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8-13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오래 전에 읽었는데, 그래서 자세한 스토리는 기억이 가물가물해가는데, 그럼에도 감은빛님의 이 리뷰 첫줄을 읽는데 금방 알겠는거예요, 이 책이 이렇게 시작했다는걸.
은근히 긴장감을 더해주는 스토리에, 비밀스러움,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외로움, 쓸쓸함이 짙게 전해져 왔었지요.

감은빛 2013-08-14 11:37   좋아요 0 | URL
'오전 9시의 담배는 절망감의 표현이다.'로 시작하죠.
저도 이 문장이 인상적이어서 따라해봤어요.
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비밀스럽고 차분한 전개에 은근한 긴장감이 있죠.
외롭고 쓸쓸하고 축축하고 무거운 느낌이 글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요.
그런 점이 무척 끌리는 책이었습니다.

마녀고양이 2013-08-14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최고의 찬사.
책이 좋은가 보네요.

감은빛님, 잘 지내시죠?
아침 9시의 담배는 공허함이군요, 제게 있어 커피가 다소 그렇다는... ^^

감은빛 2013-08-14 11:41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예요. 마녀고양이님!

이 책 제법 좋았습니다.

아침에 피는 담배는 늘 공허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커피도 그렇군요.
저는 커피를 졸음을 쫓기 위해 마시는 편이라 그 느낌을 잘 모르겠네요.

yamoo 2013-08-14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다는 단어가 반복되는 거 보니, 정말 재밌나보군요! 서점에서 한 번 훑어보고 재밌으면 그냥 서점에서 읽어야 겠어요^^

감은빛님 흡연자이시군요~ㅎ 아침에 피는 담배는 공허하다란 말을 누구한테선가 좀 들었습니다. 아마 친구들이 그랬던거 같아요. 저는 비흡연자라 저얼대 그 느낌을 알 수 없다는^^;;

감은빛 2013-08-14 14:47   좋아요 0 | URL
어, 동어반복이었군요. 막판에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랬나봅니다.
서점에서 읽기에는 분량이 좀 많지 않을까 싶은데,
야무님 책을 빨리 읽으시나요? 속독법?

오랫동안 흡연자였구요.
끊었다고 해놓고 참고 참고 또 참는
(그러다가 도저히 못 참고 간혹 한 대 피우기도....)
생활을 한지도 제법 되었네요.

담배를 피워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알수 없죠! ^^

무해한모리군 2013-08-14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다음책을 내지 않나 궁금한 작가중에 하나입니다.
누구나 한권의 책을 쓸만한 이야기는 가지고 있다라는 얘기가 생각나기도 하고...

감은빛 2013-08-16 16:57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왜 차기작이 없을까요?
그 말 멋지네요.
휘모리님께서도 책 여러 권 쓰실만한 이야기 갖고 계시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들려주세요. ^^
 

 

1. 녹조라떼의 귀환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이름하여 녹조라떼!

 

최근 이명박과 그 일당들이 대운하 사업을 4대강 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추진한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감사원은 감사 과정에서 대량으로 파기된 관련 자료들을 컴퓨터 하드에서 복원했다고 밝혔다. 이제 대운하 사기극, 대국민 사기극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올해 1월 이명박이 박근혜 정권 끝난 뒤, 차기 정권때 4대강을 대운하 사업으로 완성할 뜻을 밝혔다는 조선일보 기사(4월 22일자)도 눈에 띈다. 역행침식이 계속 일어나고, 여름마다 녹조가 창궐하고, 부실공사로 인한 댐(저들은 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댐이다.)의 누수, 해마다 악화된 수질을 관리하고 댐을 유지 관리하기 위한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결국 5~6년쯤 버티다가 다시 대운하를 시도하겠다는 저들의 계획은 참 황당하다.

 

더 말이 필요없다. 지금이라도 당장 댐을 허물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과 4대강 전도사를 비롯해 여기에 연루된 사람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조사해서 그에 걸맞는 댓가를 치뤄야 할 것이다.

 

낙동강 물을 식수원으로 쓰는 수많은 국민들은 저 녹조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까?

 

녹조라떼의 귀환 ⓒ정수근(대구환경운동연합)

 

녹조라떼 3종 세트 ⓒ정수근(대구환경운동연합)

 

강정고령보에 창궐한 녹조 ⓒ정수근(대구환경운동연합)

 

2. 강정 평화대행진

 

올해도 강정 평화대행진이 시작되었다. 작년과 거의 비슷한 기간인 듯하다. 작년과 올해 모두 마음은 함께 걷고 싶으나, 일터와 가족에게 매인 몸을 빼내기가 쉽지 않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따져보면 이만한 기회가 없다. 걷기 좋아하고, 제주의 경치를 좋아하고, 강정 마을을 살려야 한다는 대의에 공감하고, 해군기지를 반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여름을 가장 재미있고 바람차게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비록 몸은 사무실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평화대행진을 걷고 있다. 함께 가자고 권했던 사람들.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페이스북 사진들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3. 정전 60주년

 

몰랐는데, 올해가 정전 60주년이란다. 종전도 아니고 정전협정을 맺은 걸 굳이 기념해야하나 생각이 들었다가 그 악몽같은 전쟁이 멈춘 것 자체가 큰 의의가 있겠다 싶었다. 재밌는 사실 하나는 우리나라는 정전협정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니 이승만 정권이 고의적으로 빠진 것이 아닐까 싶다. 미국(연합국)과 중국과 북한, 이 3자가 맺은 정전 협정이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전쟁을 끝내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북으로 올라가서 영토를 넓히기를 원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읽고 또 들었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서울 시민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남으로 도망갔던 주제에 전쟁이 길어지고, 국민들의 목숨과 삶 따위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연합국 덕택에 조금이라도 더 영토를 넓히고자 했다니! 정말 이승만과 그 똘마니들은 역사앞에 죄인이 아닐 수 없다!

 

철책선 근무를 섰던 건 겨울에서 봄까지 였다. 그래서 여름의 철책선은 기억에 없다. 함박눈이 내리는 철책선 너머로 어두운 북녘땅을 바라보던 기억과 날씨가 풀려 얼음이 녹고 푸른 초원이 펼쳐진 DMZ를 바라본 기억은 선명하다. 밤새 근무를 서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몸은 힘들고 마음은 아프지만, 이렇게 멋진 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은 기쁘고, 아무나 누리기 힘든 행운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상상을 해봤다. 푸른 군복과 방탄모에 군화 차림이 아니었다면, 실탄 75발과 수류탄 1발 수령을 복창하고, 총구를 앞세워 지뢰지대 푯말과 철책선을 따라 걸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와 망원경과 수첩과 연필을 들고 느긋하게 걸어다니면서 산과 초원과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들을 보고, 그리고, 기록하면서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정전 60주년, DMZ가 만들어진 지 60주년을 맞아

 DMZ 주변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해

 조곤조곤 들려주는 책이 나왔다.

 

 60년간 인간이 발길이 닿지 않아,

 비밀의 숲이 되어버린 DMZ 안에는

 어떤 생명들이 살고 있을까?

 궁금해?

 궁금하면 (5백원....이 아니라) 읽어 보시라! ^^

 

 

 제목처럼 DMZ에서 함부로 공을 차다가는

 지뢰밭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절대 공을 차면 안된다!

 (거기서 근무했던 짧은 기간동안  사고사례 전파를 통해

 전해들은 지뢰 사고가 여러 건 있었고,

 그 중에는 축구하다가 여러명이 희생된 사고도 있었다.)

 

 물론 이 책이 비무장지대 안에서 공을 차자는 의미는 아니다.

 DMZ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오늘날 DMZ의 존재 의의에 대해 알아보는 책이다.

  

 

 

 

4. 7월의 마지막 날

 

시간 참 빠르다! 벌써 7월의 마지막 날이라니!

7월의 단어를 꼽아보자.

 

① 이사준비

지겹고 또 지겨운 이사. 시간이 날때마다 집을 알아보러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중간중간 비대하게 늘어난 짐 정리(주로 책정리)도 해야했다. 더운 날씨와 쉼없이 쏟아붓는 비에도 불구하게 이사갈 집을 구해야 했다. 하도 집을 많이 봐서 나중에는 이 집이 이랬는지, 저 집이 저랬는지 헷갈렸다. 살면서 가장 많은 집을 보러 다닌 시기였다.

 

② 맥주

여름이라 그랬는지, 비가 많이 와서 그랬는지 맥주를 참 많이도 마셨다. 운동을 시작하면서는 자연스레 술도 줄겠지 싶었는데, 밤 늦게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맥주와 안주를 사는 나를 발견했다. 집 주인과의 마찰과 이사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도 한 몫 했다.

 

③ 운동

그렇게 맥주를 마셨음에도 운동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몸매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하루 이틀 운동을 해나갈수록 몸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몸매를 위해서 하는 운동이 아닌, 몸을 위해 하는 운동으로 생각도 바꿨다. 명품 복근을 만들어준다는 운동보다는 기본부터 차근차근 다지는 운동 위주로 하고 있다. 그랬더니 몸매는 정말 덤으로 따라온다는 느낌이다.

 

 ④ 비

올해 7월을 한 글자로 정리하려면 '비'라고 하면 된다. 지겹게 쉼없이 내리기도 했지만 짧은 시간에 어마어마한 양을 쏟아붓기로도 대단했다. 덕분에 날마다 술이 땡기는 시간이었고, 비를 핑계로 사람들 불러내기 좋은 시기였다. 물론 나는 운동 덕분에 많이 자제했지만, 운동이 아니었다면 아마 날마다 취해서 지냈을 듯하다.

 

 

5. 책 읽기

 

이사를 위해 책정리를 하다보니, 구석구석 숨겨져 있던 책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 이 책도 샀었지. 아, 이 책은 한참 찾아도 안보여서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여기 있었네. 어, 이런 책도 집에 있었나? 책 정리를 하다말고 한 권을 펼쳐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기 일쑤다. 이 책, 저 책 조금씩 야금야금 읽다 말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운동과 맥주 덕분에 평소보다 더 책을 많이 읽었다. 평소라면 밖에서 사람들과 술을 마실 일이 더 많았을텐데, 저녁 시간에 운동을 하다보니 운동을 마치고 밤 늦게 혼자 맥주와 책을 붙들고 보낸 시간이 꽤 있었다.

 

쓰다보니 자꾸 길어지네. 이만 마무리하고 빨리 일을 마저 해야겠다. 오늘과 내일만 버티면 휴가다. 대신 월말, 월초에 몰리는 바쁜 일들과 휴가기간 동안의 업무 인수인계 준비까지 정신없이 바쁜 시간이다.(바쁘다며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뭐냐?) 빡세게 일하고 뜨거운 휴가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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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7-31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조라떼, 기발합니다.
맥주를 마시며 책을 보시다니... 취하지 않는 음주 실력인 듯... ㅋ
올해 7월을 한 글자로 정리하면 '비'이군요.
즐거운 휴가 보내세요. ^^

감은빛 2013-08-01 01:07   좋아요 0 | URL
작년 여름의 녹조라떼도 아주 심각했습니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좀 괜찮으려나 싶었는데,
남쪽에는 이른 폭염과 함께 녹조라떼가 아주 극심했나 봅니다.

맥주 뿐 아니라 가끔 소주를 비롯한 여러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어요.
저번 글에도 썼지만, 술 마시며 책을 읽다보면
책에 빠져서 술을 마시던 사실조차 잊게 되기도 합니다.

페크님은 휴가 안가시나요?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겠습니다.

yamoo 2013-07-31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거가 녹조라떼군요! 아주 끔찍합니다. 저렇게 담아놓으니 맛있게는 보이네요..ㅡㅡ;; 운동 못한지 2년이 넘어갑니다.ㅜㅜ 대신 살이 오르고 있어요~ 제갠살이 필요하거든요..ㅋ 대신 뱃살도..ㅠㅠ

감은빛 2013-08-01 01:09   좋아요 0 | URL
아주 끔찍하죠!
명바기의 계획에 의하면 앞으로 매년 여름마다 저 지경이 될겁니다.
살이 필요하신 분이라니!
이 살과의 전쟁 시대에 아주 희귀한 분이시군요!

Mephistopheles 2013-08-02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XVIII...!!!!

감은빛 2013-08-06 02:11   좋아요 0 | URL
어머! 이건 무슨 뜻일까요?
로마자로 17인가요?
궁금해요!!!!

Mephistopheles 2013-08-06 10:43   좋아요 0 | URL
XVIII = 18 (본의아니게....근데 정말 욕나오는 상황이다 보니...)

감은빛 2013-08-13 17:37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뜻이었군요!
네, 누구라도 욕이 나올 수 밖에 없죠!

마녀고양이 2013-08-14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조 라떼, 색은 이쁘구만요.... ㅠㅠㅠㅠㅠㅠㅠㅠ(깊은 한숨)

더운 날 이사 잘 하셨나요?
정말 더워도 너무 덥네요, 그래도 운동도 하시고 기초 체력도 차근차근 쌓으신다니,
참 좋네요. 알차게 생활하시는 모습이 그려져요. 운동 하나 안 하고 살찌는 저는 어쩜 좋을까요?

오늘 하늘이 참 맑습니다.

감은빛 2013-08-14 11:47   좋아요 0 | URL
색은 예쁘죠! ㅠ.ㅠ

이사 아직 안했어요.
날이 더우니, 9월 말에 이사하자고 주인을 설득했어요.
지금 책 정리와 짐 정리를 해야하는데,
날씨가 더워서 암 것도 못하고 있어요.

마녀고양이님, 오늘도 즐거운 날 되시길 바랍니다! ^^
 

아침이 오는 소리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 '너를 사랑해(한동준)'는 "아침이 오는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라고 시작한다. 이 '아침이 오는 소리'라는 표현이 참 좋아서 오래 자주 흥얼거리곤 했다. 아침이 오는 소리는 과연 뭘까?

 

오랫동안 내게 아침이 오는 소리는 어머니가 깨우는 소리였다. 혹은 어머니가 아침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였다. 밤잠이 없고 아침잠이 많은 나는 전형적인 야행성 인간이었다. 늘 새벽까지 깨어서 책을 읽거나 뭔가를 끄적였고, 아침에 누군가 깨워주기 전에는 일어나지 못했다. 아침을 먹지 않는 습관도 이미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늦게 일어난 주제에 아침까지 챙겨먹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자취할 때부터 아침이 오는 소리는 달라진다. 물론 생활 패턴 상 아침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 때가 더 많았지만, 집안에 있는 누군가가 내는 소리가 아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침과 함께 찾아왔다. 우선 새소리. 그 유명한 일찍 일어나는 새에 대한 경구처럼 새들은 정말 일찍 일어나나보다. 날이 채 밝기도 전부터 새 소리가 들렸다. 분명 주택가였고, 주변에 나무가 많지 않았음에도 새 소리는 매일 아침 들렸다. 산 아래 마을이었고, 거리가 좀 있긴 했지만 저 위로 숲과 공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땐 깨닫지 못했지만 아침마다 새소리를 듣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그리고 분주하게 비탈길을 내려가는 사람들 소리가 이어진다. 출근길과 등교길. 소리만 들어도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알수 있다. 운동화, 남성 구두, 뾰족구두, 통굽구두, 슬리퍼 다양한 신발들이 콘크리트 바닥을 밟으며 비탈길을 내려갔다. 매일 들리는 소리는 아니지만, '재첩국 사이소~!' 재첩 아지매 소리도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갈 때 종종 듣는 소리다. 밤새 술을 마신 날엔 슬리퍼를 끌면서 나가 한 그릇 사 마시고 잠이 들기도 했다. 커다란 들통을 머리에 이고 그 경사가 급한 골목길을 어찌 다니시는지 참 대단한 분이셨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에는 고시원에서 지냈다. 이때 아침이 오는 소리는 뭐였을까? 고시원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가는 소리였겠지. 좁은 방, 얇은 벽 덕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옆방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다 알수 있다. 대학 근처였기에 학생들도 많았고, 나처럼 사회생활 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아침이면 공동 화장실과 공동 세면장을 다른 사람보다 빨리 쓰려고 경쟁이 치열했다.

 

지금 아침이 오는 소리는? 휴대전화 알람 소리다. 아내와 나 그리고 큰 아이의 휴대전화에서 각각 다른 시간에 다른 소리로 알람이 울린다. 우리 식구들 모두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여러번 알람이 울려도 금방 깨지 않는다. 아니 설마 깼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끄겠지. 난 조금이라도 더 잘래. 하고 다시 기절하듯 잠이 든다. 세 개의 전화기가 경쟁하듯 시끄럽게 한참을 울고 나서야 아내와 나 둘 중 하나가 깨서 알람을 끈다. 그제서야 이웃 집 나무에서 울어대는 새소리도 들리고, 계단을 쿵쾅거리며 내려가는 윗집 사람들의 발 소리도 들린다.

 

한동준의 저 달콤한 노랫말에 어울리는 아침이 오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역시 새소리가 제일 어울리지 않을까? 아직 이사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제발 빵빵거리는 차 소리나 쿵쾅거리며 지나가는 열차소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음주 독서!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맥주와 함께 책을 읽을 계획이다. 지난 주에 읽었던 [통역사]는 정말 재미있었다. 그 문체와 분위기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맘에 쏙 들었다. 다만 결말이 좀 아쉬웠는데 전개 과정에서 던져진 이야기들을 다 수습하지 못하고 끝낸 듯한 느낌이 든다. 사실 거의 끝 부분에서 집중력이 좀 떨어졌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다. 나중에 맨 뒷부분만 한번 더 읽어볼 생각이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어볼까? 쌓아놓은 책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 되는데, 일단 뽑는 기준은 무조건 재미다. 한 주간 머리 아프고, 신경쓰이는 일들이 너무 많았는데, 주말에도 공부와 정보를 위해 책을 읽고 싶진 않다. 이런 성향은 최근 영화를 선택할 때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예전에는 오락물이나 가벼운 영화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뭔가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고 스토리가 탄탄한 영화에만 눈길을 보냈다. 요즘은 그저 시간 때우기용(킬링 타임이라고 하던데) 영화도 괜찮다 싶다. 생각할 꺼리와 탄탄한 스토리를 갖추면서 재미도 있는 영화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이젠 지향이 재미로 바뀌었다. 오락물 자체의 재미와 영화를 보면서 이런 방법으로 재미를 쫓는구나.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구나 등 분석하는 재미도 있으니 굳이 영화 자체가 철학적일 필요는 없겠다 싶다.

 

이야기가 영화로 새버렸는데, 오늘의 후보 도서를 골라보자. 운동을 마치고 맥주를 사와서 책상에 앉은 순간 제일 끌리는 책으로 선택할테다.

 

 

 다락방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의 추천도서였다.

 워낙 소개 글을 많이 봐서 내용은 대충 알고 있는데,

 잔뜩 기대를 갖고 읽었다가 실망하면 어쩌나?

 

 

 

 

 

 

 

 

 

 

 

 더글라스 케네디 책이 재밌다고 하길래

 오래전에 사 놓았는데, 여태 묵혀두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기욤 뮈소랑 비슷한 느낌이란

 글을 보고 살짝 망설여진다.

 아내가 사놓은 기욤 뮈소 책을 두 권 읽었는데,

 너무 뻔한 스토리에,

 문체나 구성이나 하나도 맘에 드는 게 없었다.

 

 어쨌거나 일단 읽어보고 판단해야겠지.

 

 

 

 

 

 이 책도 재밌다고 추천을 여러 번 받았다.

 사놓고 묵혀두다가 아주 뒤늦게 펼쳐든 게

 대략 1년 전쯤이었던가?

 그때 조금 읽다 말고 다시 묵혀두는 중.

 

 이번에 붙잡으면 한방에 끝내야지.

 과연 오늘 선택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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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3-07-2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픽쳐 뻔~ 하진 않아요. 재밌어요. 어딘가 슬프기도하지만 ^^

감은빛 2013-07-30 15:53   좋아요 0 | URL
네, 북극곰님의 말씀을 믿고 조만간 도전해보겠습니다. ^^

다락방 2013-07-27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읽고 후기 써주실건가요? 저 후기 읽고 싶어요!!

감은빛 2013-07-30 15:55   좋아요 0 | URL
제가 어떤 책을 읽었으리라 생각하고 후기를 바라신 건가요?
후기를 쓰고 싶긴 한데, 이번 주는 많이 바쁘네요.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한번 시도해보겠습니다.

다락방 2013-08-05 07:52   좋아요 0 | URL
당연히, 새벽 세시요!

감은빛 2013-08-06 02:13   좋아요 0 | URL
네. 그 책을 선택해서 단숨에 읽어버렸어요.
그리고 후기를 쓰고 싶지만, 손을 못 대고 있네요.
노력해보겠습니다!

따라쟁이 2013-07-2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후기!

감은빛 2013-07-30 15:56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님께서도 기대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노력해볼게요! ^^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개정판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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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4월 15일 타이타닉호는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다. 침몰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타이타닉이 밤에 전속력으로 항해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고, 망루에 망원경이 없어서 육안으로 전방을 관측했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다. 또 몇 차례 빙산과의 충돌 위험을 보고 받고도 안일하게 대처한 선장을 탓하기도 한다.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이타닉은 눈 앞에 다가온 빙산과의 충돌을 피하지 못했다.

 

현재 지구와 인류는 총체적인 위기에 처해있다.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의 고갈, 기후변화, 사막화, 식량위기, 핵폭발의 위험(핵폭탄 혹은 핵발전소의 폭발), 전 지구적 차원의 파괴와 오염 등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 1972년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를 출간했고, 같은 해 스톡홀름에서는 ‘유엔 인간환경회의’를 개최하여 이 날을 ‘세계 환경의 날’로 지정했다. 이처럼 우리는 1972년에 이미 지구 환경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2013년이 된 지금 우리는 위기에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지금의 지구를 타이타닉에 비교해보자. 우리는 현재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퍼올리고, 핵 발전소를 짓고, 산을 깎고, 숲을 파괴하고, 갯벌을 매립하고, 강을 막고, 흙과 공기를 오염시키며 발전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눈 앞에는 석유고갈, 해수면 상승, 핵폭발, 식량위기 등 여러 이름의 빙산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대로 계속 속력을 높이다가는 이들 빙산에 충돌할 것이 뻔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빙산이 다가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당신이 타이타닉호의 승객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침몰이 자명한 배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뛰어내릴 것인가? 선장을 설득해 배를 멈출 것인가? 힘으로 배를 장악하고 속도를 늦출 것인가? 조용히 방에 틀어박혀 침몰을 기다릴 것인가? 침몰의 순간까지 장렬하게 음악을 연주할 것인가?

 

경제성장을 위해 지구가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지만, 대부분 타이타닉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처럼 안일하게 여기고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두가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는 이 경제성장이라는 종교는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저자는 1949년 1월 20일 트루먼 대통령의 취임 연설에서 처음 사용된 ‘미개발 국가(under-development country)’라는 단어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밝혀낸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경제성장이라는 신앙은 사실 미국이 다른 국가들을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과거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아 물질적인 풍요를 누렸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친 후 미국은 다른 나라를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산업화시켜 전 세계적인 착취구조를 완성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다. 산업화가 어떻게 착취구조가 되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제시하는 증거들을 살펴보면서 그동안 가려졌던 눈이 번쩍 뜨이는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저자는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성장을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상식이 되어버린 ‘성장 이데올로기’ 대신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생산과 소비 등 경제활동을 줄이고 문화와 여가를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외에도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게 된 원인을 살펴보고 그 결과 더 많은 국민들이 국가의 폭력으로 희생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내고,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선거를 통한 대표자 선출 방식이 사실은 공화주의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해답을 제시하기도 한다.

 

더글러스 러미스는 이 책의 제목을 ‘21세기의 상식(커먼센스)를 위하여’라고 짓고 싶었다고 한다.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던 토마스 페인의 『상식(커먼센스)』처럼 사회를 바꾸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저자의 바램처럼 더 늦기 전에 상식이 바뀌는 날이 오기를 나도 간절히 바란다!

 

여러 해 전에 이 책을 읽은 후 지금까지 읽은 책들 중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책이 되어버렸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리고 누군가가 책 소개를 원하면 0순위로 소개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부족하기만한 원고를 실었던 [100인의 책마을]에 소개한 책들 중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책도 이 책이다. 최근 마을의 공부모임에서 함께 읽기로 해서 책을 찾았더니 없었다. 누군가에게 빌려준 기억도 없는데 왜 없을까? 며칠을 어지럽게 쌓여있는 책 더미를 뒤졌지만 못 찾았다. 결국 개정판을 새로 사서 읽었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널리 알리고픈 마음에 소개를 쓴 후로 또 몇 년이 지났다. 여전히 지구는 빙산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어떤 샌택을 해야할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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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3-07-26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점점 그 '상식'과 반대로 가는 것 같아 걱정이군요. 저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감은빛 2013-07-26 19:3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저 '경제성장이라는 거짓 신화'에 빠져있지요. 물론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쫌 심한 편입니다.

제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좋은 한 권을 뽑으라면 이 책을 선택할 겁니다.
읽어보시면 후회 없으실 겁니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 개정판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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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혁명? 군대? 좀 더 어렸을 때에는 아마 이런 답이 나왔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 하나의 정치적인 결단이나 사건으로는 세계를 바꾸거나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이보다 더 보편적인 사건, 이를테면 수많은 개인들의 자발적인 변화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여기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인도의 위대한 영혼(마하트마) 간디다.

 

간디라는 단어가 입력되면 나의 뇌는 자동으로 비폭력, 무저항, 인도 독립 등의 단어를 내놓는다. 간디는 내게 영국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이끈 독립운동가 혹은 민족지도자 정도로 인식되어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간디가 단순한 독립운동가는 아니라고 깨닫는다. 그는 서구 자본주의와 산업의 발달이 인류를 파멸로 끌고 가리라고 예상했고, 그에 맞서 세계를 구원할 대안을 종교와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사상가이자 이를 몸소 실천하고 전파한 실천가였다.

 

이 책의 핵심 단어는 스와라지와 스와데시이다. 스와라지는 정치적 의미의 자치를 뜻하고, 스와데시는 경제적인 자립을 뜻한다. 간디는 서구 산업자본주의가 착취구조를 바탕에 두고 점점 더 사람들을 못살게 만든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마을 단위의 자치와 자립을 제시한다. 마을은 자치와 자급자족이 가능한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구조다. 권력과 부의 축적과 폭력과 강제가 없이 모두가 자발적인 경제활동과 협력을 통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마을이다. 얼핏 들으면 실현 불가능한 이상향을 그리는 듯한데, 간디는 이를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각 개인의 역할과 같은 작고 세세한 부분부터 마을 연맹과 국제 교류와 같은 큰 부분까지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려놓았다. 단순히 그림만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해나가면서 이를 보완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정도쯤 되면 쉽게 불가능한 상상이라 몰아세우기 어렵겠다.

 

책에는 비노바 바베와 간디가 주로 주장한 ‘나이탈림’이라는 새로운 교육운동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배움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을 함께 읽던 아내가 말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책을 읽고도 어떻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어?” 나이탈림은 수공예를 통한 교육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서 학교에서 배우는 죽은 지식이 아닌 삶 속에서 배우는 살아있는 지식을 말한다. 간디는 아이들이 물레로 실을 잣는 방법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산수와 역사와 생물학과 경제학과 지리와 농업 등에 대해 알아간다고 했다. 매일 아이의 산수 숙제 때문에 끙끙대는 입장에서 진심으로 공감하고 또 실천해보고 싶은 내용이다.

 

군대와 경찰을 대신할 비무장, 비폭력의 집단을 설계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평화 여단’, ‘비폭력 자원부대’ 등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들은 종교분쟁을 평화적인 노력으로 해결하거나, 마을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거나, 비상 시에 다친 사람들을 돕고, 전쟁 및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간디 자신이 인정했듯이 이 방법이 실현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무척 높은 도덕성과 살신성인의 정신과 종교적 헌신이 요구되는 이런 집단이 과연 마을마다 만들어질 수 있을까? 분명 현실적인 한계가 명확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 자체가 무척 대단하고 또 흥미롭다.

 

이 책의 훌륭한 내용과 별개로 아쉬움도 제법 있다. 우선 책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내용이 많다. 구성 상 여러번 나올 내용이라면 앞에는 간단히 다루고, 뒤에 자세히 설명하던가, 반대로 앞에서 자세히 설명하면, 뒤에는 언급만 하고 지나가야 할텐데, 앞에서도 또 뒤에서도 반복되는 내용이 여럿 있다. 이건 간디가 직접 하나의 책으로 작업한 것이 아니라 여러 매체에 쓴 글을 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글을 묶은 편집자가 손을 봐야 할 몫이었다고 본다. 번역 후에 교정 과정에서 이 지점을 간과한 우리나라 편집자도 역시 책임이 있다고 본다. 또 하나는 번역의 문제다. 이번에 읽은 책은 개정판이어서 그래도 수정이 많이 되었던데, 그 전의 번역은 훨씬 더 심각했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녹색평론 책들이 대체로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아쉽다. 마지막으로 내용 설명을 하다 만 것처럼 끊기는 문제다. 구체적인 개념으로 들어가면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조금 설명하다가 끊기거나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 점 역시 앞서 말한 것처럼 간디가 여기저기 필요에 따라 쓴 글을 모았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일텐데, 거의 하나의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해내면서 사소한 부분들에 신경을 덜 쓴 느낌이다. 이건 좀 과한 바램일 수도 있지만 좀 더 꼼꼼한 설명이 있었다면 훨씬 좋았겠다 싶은 아쉬움이 있다.

 

요즘 ‘사회적 경제’, ‘마을 만들기’, ‘협동조합’ 등의 단어들이 자주 들린다. 시골의사 박경철도 마트가 아닌 동네 시장을 이용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라고 했다. 거의 한 세기 이전에 인도에서 쓰인 이런 개념들이 지금 이 나라에서 유행하는 의미를 곰곰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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