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 개정판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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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혁명? 군대? 좀 더 어렸을 때에는 아마 이런 답이 나왔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 하나의 정치적인 결단이나 사건으로는 세계를 바꾸거나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이보다 더 보편적인 사건, 이를테면 수많은 개인들의 자발적인 변화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여기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인도의 위대한 영혼(마하트마) 간디다.

 

간디라는 단어가 입력되면 나의 뇌는 자동으로 비폭력, 무저항, 인도 독립 등의 단어를 내놓는다. 간디는 내게 영국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이끈 독립운동가 혹은 민족지도자 정도로 인식되어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간디가 단순한 독립운동가는 아니라고 깨닫는다. 그는 서구 자본주의와 산업의 발달이 인류를 파멸로 끌고 가리라고 예상했고, 그에 맞서 세계를 구원할 대안을 종교와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사상가이자 이를 몸소 실천하고 전파한 실천가였다.

 

이 책의 핵심 단어는 스와라지와 스와데시이다. 스와라지는 정치적 의미의 자치를 뜻하고, 스와데시는 경제적인 자립을 뜻한다. 간디는 서구 산업자본주의가 착취구조를 바탕에 두고 점점 더 사람들을 못살게 만든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마을 단위의 자치와 자립을 제시한다. 마을은 자치와 자급자족이 가능한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구조다. 권력과 부의 축적과 폭력과 강제가 없이 모두가 자발적인 경제활동과 협력을 통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마을이다. 얼핏 들으면 실현 불가능한 이상향을 그리는 듯한데, 간디는 이를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각 개인의 역할과 같은 작고 세세한 부분부터 마을 연맹과 국제 교류와 같은 큰 부분까지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려놓았다. 단순히 그림만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해나가면서 이를 보완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정도쯤 되면 쉽게 불가능한 상상이라 몰아세우기 어렵겠다.

 

책에는 비노바 바베와 간디가 주로 주장한 ‘나이탈림’이라는 새로운 교육운동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배움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을 함께 읽던 아내가 말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책을 읽고도 어떻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어?” 나이탈림은 수공예를 통한 교육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서 학교에서 배우는 죽은 지식이 아닌 삶 속에서 배우는 살아있는 지식을 말한다. 간디는 아이들이 물레로 실을 잣는 방법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산수와 역사와 생물학과 경제학과 지리와 농업 등에 대해 알아간다고 했다. 매일 아이의 산수 숙제 때문에 끙끙대는 입장에서 진심으로 공감하고 또 실천해보고 싶은 내용이다.

 

군대와 경찰을 대신할 비무장, 비폭력의 집단을 설계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평화 여단’, ‘비폭력 자원부대’ 등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들은 종교분쟁을 평화적인 노력으로 해결하거나, 마을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거나, 비상 시에 다친 사람들을 돕고, 전쟁 및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간디 자신이 인정했듯이 이 방법이 실현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무척 높은 도덕성과 살신성인의 정신과 종교적 헌신이 요구되는 이런 집단이 과연 마을마다 만들어질 수 있을까? 분명 현실적인 한계가 명확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 자체가 무척 대단하고 또 흥미롭다.

 

이 책의 훌륭한 내용과 별개로 아쉬움도 제법 있다. 우선 책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내용이 많다. 구성 상 여러번 나올 내용이라면 앞에는 간단히 다루고, 뒤에 자세히 설명하던가, 반대로 앞에서 자세히 설명하면, 뒤에는 언급만 하고 지나가야 할텐데, 앞에서도 또 뒤에서도 반복되는 내용이 여럿 있다. 이건 간디가 직접 하나의 책으로 작업한 것이 아니라 여러 매체에 쓴 글을 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글을 묶은 편집자가 손을 봐야 할 몫이었다고 본다. 번역 후에 교정 과정에서 이 지점을 간과한 우리나라 편집자도 역시 책임이 있다고 본다. 또 하나는 번역의 문제다. 이번에 읽은 책은 개정판이어서 그래도 수정이 많이 되었던데, 그 전의 번역은 훨씬 더 심각했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녹색평론 책들이 대체로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아쉽다. 마지막으로 내용 설명을 하다 만 것처럼 끊기는 문제다. 구체적인 개념으로 들어가면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조금 설명하다가 끊기거나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 점 역시 앞서 말한 것처럼 간디가 여기저기 필요에 따라 쓴 글을 모았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일텐데, 거의 하나의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해내면서 사소한 부분들에 신경을 덜 쓴 느낌이다. 이건 좀 과한 바램일 수도 있지만 좀 더 꼼꼼한 설명이 있었다면 훨씬 좋았겠다 싶은 아쉬움이 있다.

 

요즘 ‘사회적 경제’, ‘마을 만들기’, ‘협동조합’ 등의 단어들이 자주 들린다. 시골의사 박경철도 마트가 아닌 동네 시장을 이용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라고 했다. 거의 한 세기 이전에 인도에서 쓰인 이런 개념들이 지금 이 나라에서 유행하는 의미를 곰곰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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