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아침에 집을 나서서 계단을 내려와 1층 건물 현관을 도달했는데, 바닥에 온통 시꺼먼 벌레들 사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대충봐도 수십마리. 일단 여기까지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늦기 전에 빨리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손잡이를 잡은 손에 뭔가가 만져졌다. 역시 벌레 사체였다. 윽! 이번만큼은 신음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손을 빼고 사체를 털어냈다. 손에 액체가 묻어있었다. 얼른 문을 열고 나오는데, 맙소사! 이번에는 수백마리의 동일한 벌레 사체가 입구에 흩어져있었다. 이게 뭔 일이지? 간밤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이 집에 5년째 살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동네 뒷산 중턱이라 벌레도 많고 각종 새 울음 소리도 잘 들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지간한 등산 코스처럼 느껴지는 집이지만, 이렇게 수백마리의 벌레가 하얀 디딤돌 위에 흩어진 모습을 볼 줄은 몰랐다. 이게 혹시 무슨 자연현상의 전조 현상은 아닌지 조금 불안했으나 더 늦기 전에 움지여야 할 상황이라 일단 걸음을 옮겼다.

장면2.

경사가 급한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는데, 왼쪽 무릎과 발목에 약한 통증이 느껴졌다. 여기저기 온 몸의 관절에 통증이 옮겨다니는 증상이 나타난지도 6년째 정도 되는 것 같다. 이런 관절로 이 동네에 사는 건 무척 괴롭고 힘든 일이다. 오르막길을 올라 돌아오는 길은 그래도 괜찮지만, 내려가는 일은 무릎과 발목에 부담을 줘서 절뚝거리거나 뒤뚱거리며 내려갈 수 밖에 없다. 매번 누군가 뒤에서 날 보면 참 우습겠다고 생각하며 조심조심 내려간다.

그러는 와중에 골목 오른쪽 한 신축빌라 현관에서 20대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윽!˝, ˝어우씨!˝ 등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펄쩍 뛰는 모양새로 현관을 나섰다. 왜 그러나 싶어서 봤더니 그 신축빌라 현관에도 수백마리의 벌레가 죽어 흩어져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우리집 현관에서 본 놈들과 같은 놈들이 아닐까 싶었다. 그 젊은 남성은 진절머리를 치며 내리막길을 빠르게 내려갔다. 우리집은 바로 뒤가 산으로 오르는 입구라 벌레가 그렇게 많은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이 집은 골목을 조금 내려온 위치라 여기에도 이렇게 많은 벌레가 있다니 좀 이상하다 싶었다. 하얀 디딤돌 위에 새까만 벌레 사체들이 눈에 확 들어오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우리집처럼 수십년 된 낡은 빌라가 아니라 최근에 지은 신축빌라라서 더욱 눈에 잘 띄었다.

장면3.

이번엔 내리막길을 완전히 내려와 차도를 건너 평지의 골목길을 한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일방통행로 한쪽으로 인도가 있어서 인도를 걷고 있었는데, 연세가 무척 많아 보이는 허리가 많이 굽은 할머니 두 분이 길 가에서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두 분 중에 허리가 조금 덜 굽은 분이 손에 싸리 빗자루를 쥐고 바닥을 쓸고 계셨는데, 그 동작이 좀 힘이 없고 어설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두 분의 대화가 얼핏 들렸는데, 건물 현관 입구에 웬 벌레들이 떼로 죽어있어서 이게 뭔 일이냐고 말씀을 나누는 거처럼 들렸다.

내가 두 분 곁을 지나친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정확히 그 내용을 유추하기는 어려웠지만, 확실히 들은 몇몇 단어와 상황은 그랬다. 마음으로는 잠시 걸음을 멈춰 두 분의 대화를 더 듣고 싶었지만, 뭔가 오해를 살만한 상황일 수도 있고 나도 시간에 쫓기고 있어서 그냥 지나쳤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우리 집은 워낙 산 중턱에 위치해있어서 평소에도 벌레가 많은 곳이지만, 여기는 한참을 내려와 완전 평지에 대규모 주거밀집지역 한 가운데에 위치한 곳인데, 여기도 같은 현상이라고? 이거 정말 뭔가 이상하다 생각이 들었다.

기후변화

사실 이렇게 어떤 특정한 벌레들이 대규모로 나타나 사람들이 놀라는 일은 벌써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몇몇 뉴스 장면에서는 정말 징글징글하게 많은 벌레떼의 출현을 전해주기도 했다. 우리 동네 다른 뒷산에서는 대벌레가 너무 많아졌다는 뉴스가 재작년과 작년 2년 연속으로 나왔었다. 어딘가 다른 동네에서는 무슨 나방이 갑자기 급증해서 골치거리라고 했고, 또 어느 동네에서는 무슨 애벌레가 급증해서 난리라고도 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온도가 바뀌면 먼저 서식하는 식물 종이 달라지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그 식물들을 섭취하는 곤충들이 바뀐다. 이때 그 서식환경에 딱 맞는 어떤 특정한 종은 갑자기 개체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딱 그 지점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점점 아열대 기후로 바뀌는 한반도의 모습을 지켜보며 살고 있는 것이다.

장마와 동시에 폭염과 열대야가 나타나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기상 캐스터가 전했다. 며칠 전 강릉의 최저기온이 30도를 넘겼는데, 6월 최저기온이 30도를 넘긴 것은 기상관측 역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 캐스터가 최저기온과 최고기온을 잘 못 말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수를 깨닫고 정정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뒤이은 설명에서 최고 기온은 31도로 최저기온과 최고기온의 온도차가 약 1도 밖에 되지 않는 일도 매우 드믄 일이라고 했다. 실수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더 놀란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1인당 전기 소비량

우리 집에는 아직 에어컨이 없다. 고지대에 살아서 여름에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이 잘 통하기도 하고, 선풍기 3대를 잘 활용하면 폭염에도 그럭저럭 버틸만하다. 무엇보다 혼자 살기 때문에 옷을 벗고 지내고, 더우면 곧바로 가볍게 찬 물을 덮어쓰고 선풍기 바람에 몸을 말리는 것으로 버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열대야가 계속 이어지는 날은 힘들기는 하다.

일터에서도 나는 상대적으로 에어컨을 덜 켜고, 온도 설정을 잘 활용해서 전기를 덜 쓰도록 조정한다. 가끔 외근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온도가 확 낮춰져 있는 걸 확인하는데, 곧바로 적정온도인 26도로 다시 올려둔다. 그럼 에어컨은 냉방 기능을 멈춘다. 이미 실내온도가 그만큼 낮춰져 있다는 뜻이다.

지금도 나는 홀로 일터에 앉아 있는데, 아직 에어컨을 켜지 않고 선풍기 하나로 잘 지내고 있다. 아까 무지 더울 때에는 켜고 싶었으나 꾹 참고 선풍기 바람으로 열을 식혔다.

얼마전 jtbc 뉴스룸에서 우리나라 1인당 전기 소비량이 세계 3위라는 말이 맞는지 팩트체크하는 장면이 나왔다. OECD 가입국 기준 1인당 전기 사용량을 따져보면 3위가 아니라 8위라고 했는데, 독일이나 영국 그리고 일본 등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큰 나라들보다 더 높다고 했다. 그러나 이건 전체 전기 사용량을 단순히 인구수로 나눈 수치이고, 가정용 전기 사용량을 인구수로 나눈 1인당 가정용 전기 사용량을 따져보면 훨씬 더 낮은 수치로 하위권에 속한다고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정용 전기 사용량보다 산업용 등의 전기 사용량이 월등히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가 맨날 국민들에게 전기 아껴쓰라고 말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절약을 실천하고 살고 있었다. 정부는 오히려 과다 소비하고 있는 산업용 전력을 어떻게 통제하고 정상화 시킬지를 고민하고 제도를 개선해야 했는데, 자본 친화적이고 기업 친화적인 과거 정부들은 언제나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들의 전기 요금을 깎아주고 어떻게든 혜택을 더 주고 있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대기전력 좀 줄여보겠다고 애써온 국민들 입장에서는 기도 안 찰 노릇이다.

우리나라의 가정용 전기 사용량은 약 13~14%에 이른다. 일본이 20%가 넘고 미국이 33%를 넘는 것에 비하면 무척 낮은 수준이다. 유럽의 많은 선진국들도 20~30% 수준이다. 이는 우리나라 산업 구조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수치다.

문재인 정권은 핵발전소를 계속 짓고 있으면서 말로만 탈핵을 외쳤고, 대규모 석탄 화력발전발전소들을 계속 지으면서도 입으로는 온실가스 절감을 떠드는 코메디를 보여줬다. 술을 마시고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뭐 이런 코메디를 몸소 보여주시느라 참 수고가 많았다. 이번 윤정권은 아예 시간을 거슬러 이명박 정권 시절의 핵발전 중심 에너지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얼마나 무식하고 멍청하고 우스운 짓인가. 전세계에서 핵발전소를 계속 짓고 있는 나라는 채 5개가 되지 않는다. 왜 다른 선진국들이 답이 없는 핵을 포기하고 재생에너지를 위해 노력하는지 안 보이는 것 같다. 아니 보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이제 우리 국민들은 개인적인 실천들 보다 정부 차원의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티핑 포인트를 지나칠지도 모른다. 세계 정상들 앞에서 ˝How dare you ~ ˝ 를 외친 그레타 툰베리의 표정과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사상 유래 없는 고물가 시대에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올랐다. 그럼에도 내년 최저시급은 별로 오르지 않았다. 내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넋두리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 모습이 되었다.

한전 적자 구조의 핵심은 가정용 전기요금이 아니다. 산업용 요금이다. 전기요금을 올리지 말란 뜻이 아니다. 비정상정인 이 나라의 전력 사용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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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7-03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마철 기온은 높고 습도 장난 아니고.... 집에서 도저히 못견뎌서 에어컨 제습기능부터 시작이네요. 올해는 유난히 에어컨을 빨리 튼듯해요. 제가 휴직하고 집에 있는데다 고등학생들이 없어지고 일찍 방학을 맞은 대학생 둘이 낮에 집에 있는 이유도 큰 거 같고.... 기후변화를 생각하며 약간의 더위를 못참는 몸뚱아리를 생각하며, 그래도 더 중요한건 감은빛님 말씀대로 전력 사용구조라는걸 생각하며.... 아 어지럽네요. 어쨌든 무엇이든 작게라도 노력하겠다는 마음과 실천이 중요하다고 또 생각해봅니다.

감은빛 2022-07-07 15:42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올해 유난히 더위가 빨리 왔다고 기상 전문가가 말하더라구요.
당연히 에어컨을 일찍 가동할 수 밖에 없지요.

우리나라 국민들은 에어컨 켜면서 너무 큰 부담을 느끼지요.
기후변화에 대한 죄책감과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감.
더울 때는 온열 질환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에어컨을 사용해야죠.
저처럼 없는 집이라면 선풍기를 활용해 잘 버텨야 하구요.

2022-07-05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벌레 아주 유명하더군요.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건데...무슨 러브 버그란 이름 같습니다. 일주일 정도 살다가 죽는데, 교미하면 수컷은 바로 죽는답니다. 요즘 엄청나게 많이 출몰하는 거 같아요. 강남에서도 강동에서도...
경기도는 말할것도 없구요..

yamoo 2022-07-05 09:13   좋아요 0 | URL
이건 제가 비로그인 된걸 모르고 단거에요^^;;

확실히 환경이 예전같진 않나 봅니다.

감은빛 2022-07-07 15:43   좋아요 0 | URL
딱 지난 주말이 피크였어요.
주말이 지나자마자 벌레가 거의 보이지 않아요.

알라딘은 가끔 로그인 상태에서 아무 변화도 없다가 갑자기 로그인이 풀리곤 하더라구요. ^^
 

도를 아십니까

아직 부산에 있을 때였으니 아마 2001년이나 2002년이었을 것이다. 서면에서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좀 늦는다고 연락이 와서 길에서 좀 긴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심심하던 차에 젊은 여성 둘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딱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이분들 그쪽 분들이겠구나. 역시나 첫 마디가 인상이 참 좋으세요. 라고 했다. 나는 심심하던 차에 이분들과 수다나 떨면서 놀아야지 생각했다.

조상님이 어쩌고, 복을 많이 받을 상인데 아직 뭔가 부족하다고 자기들과 어딜 가서 얘길 들어보면 앞으로 만사가 다 잘 풀릴 상이라고 했다. 나는 일부러 좀 어리숙한 티를 내면서 들어주다가 이것저것 질문을 자꾸 던졌다. 이분들은 길에서 이러지 말고 자기들과 같이 가보면 다 알 수 있다고 했으나, 나는 사람을 기다려야 해서 움직일 수는 없고, 궁금하니 여기서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잘 들어주고 또 잘 꼬시면 따라올 것 같으니 그들은 나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동조하는 듯 하다가도 결정적인 곳에서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들이 나를 설득하려는 핵심적인 내용이 뭔지 알아보려고 했다.

아마 30분 이상 그러나 1시간이 넘지는 않는 정도의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평소에는 피해 다니기 바빴는데, 얘기해보니 의외로 재밌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재밌었던 건 아니고 부실한 내용으로 나를 설득해보려고 애쓰는 그들의 태도를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결국 그들은 여자친구가 나타날 때까지 내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갔다.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잘 될 것 같았는데, 괜히 시간만 날렸다고 생각 했으려나.

보이스 피싱

이것도 꽤 오래 전 일이다. 2010년쯤 되었으려나. 지인들 중에 여러 명이 보이스 피싱 전화를 받아봤다고 하길래, 나도 한번은 받아보고 싶었다.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나를 홀릴지 궁금했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내게도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이 어디어디 소속 검사라고 했다. 금융거래 상 문제에 휘말려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뭔가 그럴듯한 용어들을 써가며 겁을 주려고 했다.

드디어 나도 전화를 받아보는 구나. 속으로 웃음을 꾹 참으며 당황한 척 연기를 했다. 뭔가 복잡한 용어를 빠르게 말하길래,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으니 차근차근 하나씩 제대로 설명해달라고 했다. 그러니 대뜸 설명해줘도 모를거니까 무조건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하더라. 나는 억지로 겁 먹은 것처럼 연기하면서도 계속 설명을 요구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따라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고 했다. 아마 그때부터는 좀 지리하게 비슷한 논리를 반복적으로 강요했던 것 같다. 좀 그럴듯하게 겁을 줄 것을 기대했는데, 실망이었다. 꽤 긴 시간 통화를 했는데도 제대로 설명도 설득도 못 하길래, 나도 좀 지겹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연기를 그만두고 먼저 계속된 고압적인 태도부터 지적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설명을 요구했는데 계속 무시했던 점을 상기시키고, 맨 처음에 빠르게 말해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소속을 정확하게 밝히라고 요구하면서 당신 말이 사실인지, 당신 소속이 정확히 맞는지 먼저 확인하고 내가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는 뭔가 빠르게 얼버무리듯 말을 하더니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최근에는 그런 피싱 전화를 받으면 이미 뭔가 악성 프로그램이 설치된 이후라 전화를 끊고 내가 정확한 검찰청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그쪽에서 통화를 가로채서 걔들이 다시 전화를 받는다고 들었다. 앞서 내가 전화를 받았을 당시에는 그런 정도는 아니어서 그렇게 허술하고 실망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알려진 소식 중에 가장 신기했던 건, 해외에서 전화를 걸때 뒤자리 8개의 번호가 같으면 내 폰에 저장된 사람의 이름으로 전화가 걸려온다고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아이의 번호가 010-1234-1234 라면 해외에서 같은 번호를 만들어 나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내 폰에는 아이가 전화를 걸은 것으로 화면에 나온다는 뜻이다. 이건 정말 속을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목소리를 잘 알아채거나, 폰에 저장된 이름을 확인했어도 도중에 끊고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가족이 다쳤다거나, 납치했다거나 하는 전화를 받는다면 놀라고 당황해서 그렇게 할 정신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이런 피싱 범죄가 더욱 기승이라고 하더라. 부디 더는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안 생기기를. 악랄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은 싹 잡혀서 감옥에서 긴시간 썩어가기를 바란다.

로맨스 스캠

스캠(scam)은 신용사기나 사기라는 뜻이다. 언젠가 실화탐사대 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로맨스 스캠에 대해 나오는 걸 봤다.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사기를 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외국인과 SNS를 통해 친밀감을 형성하다가 마치 연인인 것처럼 대하는 과정을 겪는 걸 로맨스 스캠이라고 한다고 들었다. 일단 한번 마음이 움직이고 나면 그 다음은 간단한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돈을 보내야 하는데, 자신이 어딘가에 보관해놓은 돈을 찾으려면 한국에서 누군가가 보증료 성격의 돈을 먼저 보내야 한다는 식으로 사기를 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속임수가 있는 것 같았다.


예전에도 몇 차례 쓴 적이 있는데, 나는 서로 익히고 싶은 언어를 등록한 이용자들을 연결해 대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앱을 몇 년째 이용하고 있다. 내가 한국어 네이티브에 영어를 익히고 싶다고 등록하면 영어 네이트브 중에 한국어를 익히고 싶다고 등록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재밌어서 지금까지도 종종 이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영어만 등록했다가 나중에 중국어, 터키어 등을 등록했었다. 중국어를 등록하는 순간부터 수없이 많은 중국인 여성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의 패턴은 매우 유사했다. 먼저 간단한 인사말을 하고, 나이와 이름, 사는 동네 등을 묻고 직업이 뭔지 묻는다. 사실 이 앱에 가입하려면 생년월일을 반드시 입력해야 하고 이름도 입력해야 하고, 사진도 등록해야 한다. 그러니 그들이 내게 말을 걸기 전에 그들은 분명 내 나이와 얼굴과 이름을 보았다. 아, 이름은 한글로 적어 놓았으니 한글을 읽지 못한다면 모를 수도 있겠다. 다만 한국어를 익히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한글을 읽는 것 정도는 하는 경우가 많아서 굳이 다시 묻는 이유가 궁금하다.


암튼 그렇게 아주 기본적인 대화를 하고 나면 거의 대부분은 위챗으로 대화하기를 요구한다. 해당 앱이 대화를 나누기엔 불편하다는 이유다. 이 앱이 카톡을 비롯한 다른 메신저 처럼 편하지 않다는 건 나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또 그렇게 불편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암튼 그들은 거의 대부분 위챗을 요구한다. 그래서 처음엔 위챗을 깔고 가입을 했다. 가입처리가 되고 나서 대화를 나누려고 하니 한국에서는 이용할 수 없다는 안내가 나왔다. 중국 본토를 제외하면 이용할 수 없는 것인지,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에서는 이용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위챗을 이용할 수 없었고, 이를 그들에게 알렸는데, 그들은 계속 그럴 리가 없다며 끊임없이 위챗을 요구했다. 그런 경우엔 더는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다른 몇몇 사람들은 다음으로 왓츠앱이나 라인을 요구했다. 그래서 그 두 앱도 모두 설치하고 가입했다. 그들 중국인 여성들은 대부분 라인과 왓츠앱에서 통역기를 통해 대화했다. 그런데 우리말과 중국어의 어순이 다르고 어법이 달라서 그런지 통역기를 통한 대화는 원활하지 않았다. 자꾸 엉뚱한 말로 번역되어 뜻이 왜곡된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영어로 대화하기를 원한다고 전하곤 했다. 영어라면 서로 뜻이 통하니 번역기의 오류를 피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가까스로 왓츠앱이나 라인으로 대화를 이어가게 되고 나면 서로 일상 이야기도 하고, 음식 사진이나 풍경 사진 등을 주고 받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원래 외국어를 익히기 위한 앱에서 만났다는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상태가 된다. 즉, 한국어를 익히는데 도움을 주거나 중국어를 익히는데 도움을 받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다시 대다수는 꼭 주식이나 코인 이야기를 꺼냈다. 나중에 투자를 유도하는 경우까지도 봤다. 여기서 이게 혹시 중국에서 유행하는 신종 사기 수법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잠시 했었다. 그 앱을 꽤나 오래 사용했었는데, 어느 특정한 시점부터 워낙 압도적으로 많은 대화 요청이 들어오고, 그들 대다수가 꽤 매력적인 젊은 여성의 사진을 프로필로 사용하고, 대부분이 자신이 패션(의류, 화장품, 미용 등) 계통 사업(혹은 가게)을 하고 있다고 했으며, 거의 반드시 주식이나 코인 이야기를 꺼냈다. 


아, 물론 그렇지 않고 그냥 일상 이야기만 주고 받으며 길게 대화를 나눈 경우도 소수였지만, 분명 있었고, 제법 한국어를 잘 했던 어느 여성은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한국어를 많이 물어보기도 했다. 다만 앞서도 말했듯이 이들은 정말 소수였고, 아주 많은 수는 바로 위에 언급한 것과 똑같이 행동했다. 어쩜 그렇게 젊고 아리따운 사업가 여성들이 중국에는 그렇게 많은 것인가. 그들 대다수가 주식과 코인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데, 그걸 곧이 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달간 수많은 경우를 겪어보다가 그 앱의 익히고 싶은 언어에서 중국어를 삭제해버렸다. 


이건 작년 초에 겪었던 일인데, 이름에 Kim 이라고 적은 동양계 여성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미국인인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에 와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현재 중국의 어느 중소 도시에서 건설 노동자들을 위해 식당을 운영 중이라고 했고, 공사가 완료되면 식당 계약이 끝나니 한국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는 내게 이 앱은 대화하기 불편하니 카톡으로 대화하자고 했다. 또 그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냥 자신의 성인 김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내가 나 역시도 성이 김씨라고 했는데, 성이 같다고 더 친근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카톡으로 대화의 장을 옮겨오면서부터 더 자주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나에게 친근감을 표현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자주 설명했다. 우리 개념으로 따지면 함바집 같은 식당을 운영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현장소장과의 마찰이 종종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반복적으로 이 힘든 식당 일을 빨리 마치고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했고, 한국에 오면 내게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서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서는 나를 달링이라거나 마이 디어 라고 부르며 마치 연인에게 하는 것처럼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부터 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서로 나눈 대화 내용만 봐서는 그가 나를 연인처럼 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점점 친해지는 단계라고 봐야지. 처음엔 그런 표현이 자신이 힘들다고 할 때 호응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 같은 건가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오겠구나. 돈을 요구하거나 무리한 요청을 해올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의 의심은 중국어로 말을 걸어봐도 반응이 없음을 확인하고 생겼다. 계속 영어로 소통했지만, 중국에 있다고 하길래 나는 가끔 중국어 문장을 보내기도 했다. 중국어 연습도 함께 할 겸해서. 그런데 중국어 문장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답을 하지 않았다.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었을 때, 그는 큰 일이 생겼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엄마가 많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는데, 자신은 식당을 비울 수 없어서 병간호도 제대로 할 수 없고, 병원비가 걱정이라고 했다. 곧 공사를 마치면 현장 소장이 약속한 잔금을 주기로 했지만, 지금 당장은 돈이 부족하다고 했다. 음, 이거였구나 싶었다. 마치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대하더니 (아, 그렇다고 막 사랑한다는 등의 애정표현을 했던 건 아니었다.) 이런 걸 노린 거였구나 싶었다. 만약 사기가 아니었다고 하고 정말 진짜로 그런 일이 벌어져서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해도 나는 도울 여력이 없었다.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중국으로 가서 뭔가 도움이 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작년은 코로나로 인해 중국도 우리나라도 서로 봉쇄 중이 아니었던가.


나는 의심스러운 마음에도 최대한 마음을 표현했다. 자주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지만, 빨리 회복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그대로 말했다. 빌려줄 돈도 없고, 내가 갈 수도 없는데 뭘 도울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로부터 며칠동안 그는 내게 원망의 말을 몇 차례 보냈고, 나는 그때마다 미안한 마음과 걱정스런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는 더이상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약 한 달 정도의 긴 여정이 그렇게 끝났다.


이 일을 돌아보며 나는 계속 헷갈렸다. 이게 처음부터 사기를 치기 위해 접근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져서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을까? 사실 의심의 여지는 너무나도 많았다. 처음부터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 아버지의 나라라는 것 말고는 다른 연고는 없는데 계속 곧 한국으로 갈 거라고 말한 것. 의도적으로 보이는 과도한 친밀감 형성과 표현들. 등등. 그런데 혹시라도 그게 아니었을 가능성을 하나 생각해본다면 거의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이었고, 그 시간동안 어쨌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생긴 나름의 친밀감이었다. 사기를 노리고 일부러 접근한 것이었다면 왜 한 달씩이나 시간을 끌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최근에 겪은 일 덕분에 더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이 마지막 이야기는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전날 늦게까지 일하고 아침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전 반차를 썼던 날이었다. 아침에 그 외국어 익힘 앱에서 이름을 Hi 라고 적어놓은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은 분명 한국인 같았다. 중국인이나 일본인 같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아버지는 미국인이라고 했고,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8살때 교통사고로 부모님 모두 돌아가셨다고 했다. 누군가 친척이(누군지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음) 자신을 미국으로 데려가서 미국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군인이 되어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복무중이라고 했다. 


사실 그 앱에서는 처음에 조금 인사를 나누다가 카톡으로 대화를 요구했고, 카톡으로 옮겨와서 위 정보들을 쏟아내듯이 내게 보냈다. 그리고 자신의 사진을 한 장 보냈다. 군복을 입은 사진이었는데, 명찰에 GARDEN 이라고 적혀 있었다. 먼저 내가 이름을 물었을 때 자신의 성이 Seo 이고, 이름이 가든 이라고 말했었다. 군복은 영화에서 보면 중동 쪽에서 작전을 펼치는 미군들이 주로 입고 다닌 것과 같은 형태로 보였다. 여기까지만 읽고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시리아에 복무중인 한국계 미군 여성이라니.


그런데 이 사람은 성질이 급해도 너무 급했다. 내가 제대로 소화할 틈도 없이 계속 뭔가 긴 문장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법에 맞지 않는 이상한 한글이라서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영어로 적어서 보내라고 했다. 내용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엄마의 고향은 부산이고, 복무기간이 끝나면 부산으로 올 생각인데, 나보고 도와달라고 했다. 자신은 지금 군대에서 너무 힘들다고 하루빨리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작전 중에 큰 돈을 찾았는데, 이 중에 일부를 받았고, 이 돈을 금고에 넣어두었다. 이 금고를 한국에 보내려면 한국에서 누군가 보증금을 내야 한다. 돈을 내면 이 금고를 무사히 받을 수 있다. 제발 도와달라. 뭐 이런 내용을 계속 반복적으로 보냈다.


돈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바로 눈치를 챘다. 그리고 인터넷에 seo garden 을 검색해보니 이미 누군가 올린 글이 있었다. 다마스쿠스에 복무한다면서 이름과 얼굴을 바꿔가며 연락해오는 사기꾼 여성들이 많다고 적어놓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저 서가든이었다.


지금 내용을 적으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확실히 저 앞의 중국 식당의 Kim 과 유사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 건은 한 달 후에 돈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이건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돈 얘기를 바로 꺼냈다. 나는 여기서 바로 대화를 끊지 않고, 일단 잠시 속아주는 것처럼 연기를 해보기로 했다.


아, 근데 속는 척 하려고 해도 뭔가 이야기가 진척이 되어서 친밀감이 형성이 되었어야 속아줄텐데, 다짜고짜 돈 이야기부터 꺼냈으니 연기를 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스스로 이야기에 구멍이 있음을 깨닫게 하려고 돈이 어떻게 생겼고, 왜 그 돈을 보내려고 하는지 구체적인 내용들을 물었다. 그런데 그는 내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미리 만들어놓은 문장인 것 같은 장문을 계속 보내왔다. 그가 보내온 내용 중에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을 타겟으로 한 것 같은 부분도 있었다. (검색했을 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도 확인했다. 심지어 인스타는 계정이 여러개였다.) 즉, 나에게는 처음부터 다른 앱에서 말을 걸었으니 완전 말이 안되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어법에 맞지 않는 한글 문장은 정말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건 일부러 자신이 우리말이 서툴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컨셉인건지, 번역기를 돌리고 있다는 걸 어필하려는 컨셉인건지.


암튼 내 질문들에 제대로 답을 해주지 않아 연기를 하는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그가 계속 돈을 강조할 수록 나는 왜 그러냐고 이유를 요구하기만 했다. 결국 디테일한 내용에서 헛점을 들쑤셔 보려고 했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의 계속된 돈 요구에 질문으로 귀찮게 하는 것으로 그를 괴롭혀 보려고 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에게 다른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에 불과할테니 별로 괴롭히는 것이 되지는 못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다시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드디어 나도 로맨스 스캠을 겪어보는 구나 하고 잠시 신기해 했지만,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도 않고 곧바로 돈 얘기부터 꺼내는 안일함에 좀 김이 새는 느낌이었다. 나와 대화를 나눈 이가 과연 어느 나라의 어떤 사람인지 무척 궁금했지만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누군지 모를 사기꾼이 나한테 쏟은 시간만큼 다른 사람에게 사기칠 시간을 빼았겼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그래서 일부러 그 카톡 대화방에서 나가지 않고 대기 중이다. 또 말을 걸면 자꾸 질문을 해서 시간을 빼았아야지.


다시 아까 중국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던 Kim 의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보면, 한 달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는 걸 제외하면 사실 서가든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과연 그도 실제로는 어느 나라의 누군지 모를 사기꾼이었을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공을 들여 사기를 치려고 했던 것일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서가든 이란 이름을 가진 미군은 실제로 존재하는데, 사진을 도용당한 것일까라고 잠시 생각을 해보았으나, 서가든은 그냥 만든 이름이고, 사진에서 본 군복의 명찰 글씨 정도는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으리라고 깨닫는다. 얼굴 역시도 딥페이크나 합성 등의 방법을 이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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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6-27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이야기해 주신 미군 여성은 Tv 고발프로에서 본 내용과 유사하네요. 순진한
남성들이 거기 속아 돈도 보내고 마음도 다쳤다고해요. 누구하나 걸리길 바라고 열심히 복붙하고 다니나 봅니다.

보이스피싱 전화는 한번 받아봤었는데 제가 쓰질 않은
카드사라고해서 어느지점에서
전화한거냐 이름이 뭐냐하니 조선족
특유의 말투로 빈정대며 끊더라구요. 워낙 걸려드는 사람이 많으니 이 사기가 오랫동안 이어지는구나 싶어요.

감은빛 2022-07-01 13:10   좋아요 0 | URL
미미님께서 본 프로그램이 그거였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글에 쓴 실화탐사대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다뤘던 것 같아요.
본 지 시간이 좀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정말 손 쉽게 돈 벌려고 사기치는 인간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렇게 큰 돈을 잃으면 너무 허무하고 억울할 것 같구요.

yamoo 2022-06-28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를아십니까...보이스피싱...이 두 개는 알겠는데 로맨스 스캠은...글을 보고야 알았네요..
그래두 도를 아십니까는 후자들보다는 좀 양호한게 아닌가 합니다..ㅎ

감은빛 2022-07-01 13:13   좋아요 0 | URL
야무님. 거기도 끌려가서 제사 지내고 어쩌고 하면 돈 몇 백 그냥 날라간다고 하더라구요. 실제로 끌려갔었다는 사람 몇 명 봤어요.

로맨스 스캠은 외로움을 한다는 측면에서 너무 악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transient-guest 2022-06-29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십 건 수백 건을 해서 하나만 걸려도 큰 돈이 되니 계속 봇을 돌리는 것 같아요. 이곳에서는 주로 노인들이 그 대상이 되는데 실제로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주 합법적으로 공기관에서 온 우편물처럼 해서 돈을 내는 것을 유도하고 밑에 작은 글씨로 우리는 공기관이 아니다, 이것은 bill/invoice가 아니다. 이것은 solicitation이다 이렇게 disclaimer가 들어가 있더라구요. 뭔가 등록 혹은 광고에 등록하게 유도하는 식으로 뻔한 사기를 칩니다.

대순 아이들이 하는 짓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네요. 예전에 잘 알던 의대 다니던 형이 거기에 꼬여서 5년 정도를 길바닥에서 지내다가 정신을 차리고 돌아온 적이 있는데 지금도 YouTube보면 많이 나오더라구요. 사실 다른 종교/종파의 일부 단체들이 하는 짓이 그다지 다르지도 않고 해서 저는 ‘선교‘라는 말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감은빛 2022-07-01 13:16   좋아요 1 | URL
아, 공기관에서 온 우편물처럼 보내면 정말 쉽게 속을 것 같아요.
뻔한 사기인데, 그 수법을 모르면 그냥 당하고 말 것 같네요.
제 주위에 실제로 피싱을 당한 사람은 거의 없고,
피해 금액도 크지 않은데,
가끔 언론에 나오는 경우를 보면 피해금액이 무척 크더라구요.

요즘도 길에서 종종 보입니다.
두 명씩 짝 지어서 돌아다니는 모습.
말씀하신 것처럼 30년이 지났어도 달라진 것이 없나봐요.

희선 2022-07-01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여러 가지로 사기를 치는군요 감은빛 님은 검사라고 하는 사람한테 전화 받고 놀라지 않다니, 그런 말을 들어도 실제 일어나면 놀랄 것 같은데... 다른 사람 전화번호를 똑같이 쓸 수 있다니 그건 속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런 거 못하게 해야 할 듯한데... 못하면 다른 걸 만들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감은빛 2022-07-01 13:25   좋아요 0 | URL
희선님.
그 당시에 검사를 사칭한다는 얘기가 워낙 유명했어요.
게다가 실제로도 그런 일에 검사가 직접 전화하지 않아요.
보통 검사보가 그런 전화를 걸죠.

내 폰에 저장된 번호라 그 사람 이름이 뜨면 정말 속을 수 밖에 없겠죠.
목소리로 구분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일부러 목소리를 잘 안 들리게 하겠죠.
이쪽 분야도 나날이 기술이 발전되어 가는 것 같아요.
 

지난 오늘 쓴 글들


자주 접속하지는 않지만, 가끔 북플에 들어올 때는 꼭 '지난 오늘' 메뉴를 클릭한다. 과거 오늘 날짜에 어떤 글들을 적었는지 확인해보는 일이 재밌다.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를 살펴보고 기억을 떠올리는 일이 즐겁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즐거움은 당시 서재 이웃들이 달아주신 댓글들과 그에 대해 내가 달았던 답글들을 읽는 재미다. 그 시절 활동하셨던 이웃분들 중에서 특히 나와 교류했던 분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고, 이 분이 이때 댓글을 달아주셨었구나 하고 알 수 있어서 신기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거 6월 22일에 쓴 글은 3개였다. 가장 오래된 글은 12년 전, 그러니까 2010년에 쓴 글인데,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책을 읽고 쓴 서평이었다. 


 













이 책은 예전에 공저자로 참여했던 [100인의 책마을]에도 소개했던 책이다. 환경운동가로서의 삶을 살면서 가장 많이 공감하고, 주위에 많이 권했던 책이기도 하다. 과거에 들었던 고 김종철 선생님의 강의와 내 환경운동의 경험을 짧게 언급하여 적은 글이었다. 이 글을 다시 읽으며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님을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선생님 기일이 이즈음이었을텐데. 장례식장에서 돌아와 지인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슬퍼했던 기억이 났다.


그 다음 오래된 글은 11년 전, 2011년 6월 22일에 쓴 글인데, 오강남, 성해영의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책에 대한 서평이었다. 이 당시에 종교에 대한 책을 제법 읽었고, 특히 오강남 씨의 책을 여럿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주위에 독실한 신자들이 제법 많았다. 순전히 내 기준으로 종교는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종교라는 걸 믿을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진지하게 믿음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보면 또 그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 당시에 종교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이 글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종교와 관련한 4개의 장면을 통해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번째 글은 2016년 6월 22일에 썼다. 3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처음은 여름에 주로 입던 청바지가 해져서 새 청바지를 샀는데, 허리 치수로 맞추면 허벅지와 사타구니가 너무 꽉 끼어서 못 입고, 허벅지에 맞추면 허리가 커서 불편해서 고민하다가 결국 허리가 조금 큰 바지를 샀는데, 자꾸 흘러내려서 후회했다는 이야기. 두번째는 몇 년만에 만난 한 선배가 늙어 보인다고, 근육질의 청년은 어디갔냐고 묻는 말에 서운했다는 이야기. 근육은 다 줄고 늙어버린 중년 아저씨가 되어버린 건 인정하지만, 막상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대놓고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리는 없는 법. 당시 그 선배와 밤늦게 만나 새벽까지 긴 시간을 이런 저런 수다를 떨었던 게 기억이 난다. 이혼 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때라서 그 선배는 내 이혼 소식에 꽤나 놀랐었고, 그래서 그랬는지, 나보고 꽤 좋은 남자라고, 자기가 좀만 더 어리고 싱글이었으면 관심을 가졌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난 선배처럼 기가 세고 직설적인 분이면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속으로만 생각했었다. 마지막 이야기는 책 이야기. 업무 관련 책만 주로 읽다가 최근 소설을 몇 권 읽었는데, 갑자기 다시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는 내용이었다. 뭐 이건 지금도 늘 마찬가지다. 언제나 꿈만 꾸는 것. 다시 소설을 쓰는 건 언제나 가능할까? 아이들이 다 자라면 매일 출퇴근 해야 하는 일터를 그만두고 비정기적으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두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벌써 오래전부터 하고 있다. 나중에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계속 꿈을 꾸고 있어야지.


오늘 이 글을 남겼으니, 내년 6월 22일엔 북플 '지난 오늘' 메뉴에 4개의 글이 나오겠네.


고마움


오후에 강의를 하나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한 달 전에 청탁 받은 건인데, 준비를 미루고 미루고 있다가 오늘 오전에야 강의자료를 완성해 보내고 점심도 거르고 강의를 다녀왔다.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였다. 강의에 들어가기 직전, 말을 많이 하면 허기가 질 것 같아서 아주 달달한 캔 커피 하나를 마셨다. 평소엔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강의에 집중하기 위해 카페인이 필요했고, 체력 소모에 대비해 당분이 필요했다.


이 분들과 함께하는 건 세번째였다. 처음에 연락을 받고 강의를 했는데, 이어서 2개의 연강을 더 요청했다. 오늘까지 그 세번의 강의 모두 참가자들이 매우 집중해서 강의를 들어줘서 무척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 처음에는 조금 조심스러운 면도 있었고, 정확하게 어떤 내용을 원하는  지 잘 몰라서 두루뭉실하게 설명한 부분도 있었는데, 두번째부터는 익숙해지기도 했고, 사전에 필요한 부분을 미리 알려줘서 훨씬 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강의 참가자가 소수여서 한 분 한 분 모두 눈을 맞춰가며 마치 대화하듯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무척 편한 분위기였다. 질의응답 때에도 다들 적극적으로 질문을 해주셔서 나도 신나서 더 열심히 아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런 강의를 하고 나면 나 스스로가 어떤 만족감으로 꽉 찬 느낌을 받는다. 보잘것 없는 나라는 존재가 이분들에게는 그래도 쓸모있는 사람이구나. 뭔가 도움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자존감이 충족되었음을 느낀다. 그런 느낌을 느낄 수 있어서 고마운 날이다. 오늘로 이분들과 사전에 정해둔 일정은 끝났지만, 이후에 또 기회를 만들어 나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나는 꼭 그렇게 해달라고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오겠다고 했다.


오늘은 저녁에 좀 머리가 아픈 회의가 있어서 어제까지만 해도 그 회의를 준비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하필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강의가 정해져서 마음이 많이 바빴지만, 강의에서 힘을 받고 돌아온 덕분에 기분 좋게 회의에 임할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긴다.  


책 선물


며칠 사이에 책을 두 권 받았다. 하나는 알라딘 북펀드에 참여해서 받았고, 또 하나는 친한 선배가 내 책상에 두고 가셨다. 친한 선배에게 선물 받은 책은 송경동 선배의 시집이다. 이 책 출간 소식을 알고 사야지 생각하고 보관함에 담아두었었는데, 그러고 그냥 깜빡 지나쳤었는데, 어떻게 알고 선배가 선물해주셨다. 그것도 사인본으로. 송경동 선배랑 한창 자주 마주칠 때에도 시집에 사인 받을 생각은 한번도 못했는데, 얼굴을 못 본지 아주 오래된 지금 이렇게 사인본을 받는다는 것도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암튼 덕분에 우리 집에 송경동 선배의 모든 시집을 다 채웠다. 
















북펀드에 참여해서 받은 책은 [색이름 사전]이다. 출판사에 다니던 시절 엄청 친하게 지냈던 선배가 독립해서 만든 출판사에서 북펀드를 한다고 하길래 참여했다. 인간의 눈은 빛의 스펙트럼 중에 특정한 색깔을 받아들이는데, 이를 인지하는 뇌는 있는 그대로의 색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 비춰 색을 인지한다고 들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다양한 색이 있겠지만, 이 중에서 내가 인지할 수 있는 색은 과연 몇 개나 될까? 얼마나 많은 색을 우리는 활용하고 있을까 등이 궁금해서 참여했다. 다 읽고 나면 친한 디자이너나 예술가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아침부터 이래저래 바쁘게 지냈고, 이제 퇴근시간이 되었는데, 아직 퇴근하려면 한참 멀었다. 저녁 회의 때문이다. 얼른 회의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샌드백을 두드리며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 요즘 오후 서너시만 되면 자꾸만 샌드백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나 아무래도 샌드백과 사랑에 빠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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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22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쯤이면 퇴근하셔서 샌드백과 사랑을 나누고 쉬고 계신거 맞죠? 아직도 퇴근 못했으면 아 그건 좀 많이 불행입니다. ㅎㅎ
저도 북플에 매일 뜨는 옛날의 오늘에 제가 쓴 글들 꼭 봐요. 저는 책얘기도 있지만 우리 애들 어릴 때 사진들이랑 이야기들이 많아서 아 얘들이 이렇게 작았구나. 얘들이 이런 말을 했었구나 하면서 잠시 추억에 흐뭇하다죠. ^^
저기 책 중에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저도 저맘때쯤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던 책인데 다시 보니 좋네요. ^^

얄라알라 2022-06-23 01:29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께서도 북플 소환 옛기억 챙기시는군요..
전 제목만 봐도 대 부분은 휘리릭 피하고 싶어졌는데, 글도 삶도 달라져야한다는 강박때문일까요?^^;

감은빛님, 바람돌이님의 말씀과 비교되네요.

바람돌이 2022-06-23 11:44   좋아요 0 | URL
저는 아이들과의ㅠ일상이나 여행글 같은거 챙겨봐요. 제가 쓴 리뷰는 저도 다시 안봅니다. 부끄러워서.... ㅎㅎ

감은빛 2022-06-27 17:07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저 시간에는 샌드백 두들기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있었던 것 맞아요.

아이들 사진이랑 이야기들을 많이 남겨두셨군요.
그런 건 보다보면 시간이 휙 흘러가죠. ^^

비슷한 시기에 같은 책을 인상적으로 읽었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얄라알라 2022-06-23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인사드린지 꽤 지났는데 반가우십니다.

저는 북플에서 자동으로 올려주는 옛날 글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글인데 외면하게 되더라고요.

감은빛님께서는 지난 기록을 차곡차곡 모으시고 또 다시 살피며 현재와 연결지으시니 풍성하십니다!^^

강의 만족스럽게 잘 풀어내셨다니 좋습니다

감은빛 2022-06-27 17:08   좋아요 1 | URL
알라님. 외면하는 심리도 뭔지 알 것 같아요.
다만, 저는 저때 뭘 어떻게 적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는 것 같아요. ^^

transient-guest 2022-06-23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 샌드백을 두고 복싱을 하시나봅니다. 종종 그렇게 땀을 흠뻑 내시고 스트레시를 푸시면 좋겠습니다. 날이 갈수록 맨정신으로 (영어로 보통 Sanity를 갖고) 사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는 시절 같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아니 세계가 혼란에 빠져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환경위기로 인해 식량, 자원, 연료, 물, 땅 등등 부족해지면 필연적으로 큰 전쟁이 나곤 했었는데 어쩌면 그 길목으로 들어선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하루 하루 견디고 살면서 큰 사건사고 없길 바래봅니다.

감은빛 2022-06-27 17:13   좋아요 2 | URL
복싱으로만 끝나지는 않고, 태권도 발차기나 무에타이 발차기 등을 곁들이는 편입니다. 어려서 잠시 배운 운동이 태권도와 권투와 무에타이를 섞어 놓은 잡종이었거든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아주 심각한 위기를 살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무척 괴롭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만한 사회로 만들어보려고 노력 중이지만, 늘 한계를 느낍니다.

transient-guest 2022-06-29 01:23   좋아요 0 | URL
저는 점점 더 사회운동에 회의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요. 그냥 기대치가 낮아졌다고 해야할까요? 트럼트 당선 이후 지금까지, 그리고 최근 대법원의 Roe v. Wade reverse를 보면서, 한국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냥 다수의 ‘민중‘이라는 것에 애정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더더욱 님처럼 노력하는 분들이 존경스럽습니다.

yamoo 2022-06-27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감은빛님 강의도 하시네욤!!
강의는 건강에 유의해야 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감은빛님 서재에 댓글을 남깁니다. 저도 서재 복귀한지 한 달 정도밖에 안돼어서 적응하고 있어요~

건재하시니 반갑습니다~!

감은빛 2022-06-27 17:16   좋아요 1 | URL
야무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무척 반갑습니다!

강의는 아주 가끔 합니다.
저는 강의 할 때 재미도 느끼고 보람도 느끼는 것 같아요.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단발머리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키가 크고 덩치가 큰 남자 영어 선생님이 계셨는데, 머리 스타일이 단발머리였다. 하얀 얼굴에 단발머리. 그래서 그 분 별명은 ‘앙드레‘였다. 앙드레 김이라는 유명한 디자이너의 머리 스타일과 유사해서 붙여진 별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머리를 더 길게 길러서 묶고 다니거나 늘어뜨리고 다니는 장발은 까까머리 남자 고등학생들에게 원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락을 즐겨 들었고, 노래 실력 때문에 락커를 꿈꾸지는 못했지만, 락밴드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끄적거리곤 했던 나는 대학생이 되면 머리칼을 장발로 길러보려고 생각하곤 했다. 장발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있었던 나는 뉴스 자료화면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70년대 장발 단속 장면 같은 것이 궁금했다. 그 시절은 어떻게 저렇게 머리칼을 기른 남자들이 많았을까? 어떤 사회 분위기가 장발을 단속하게 만들었을까?

지금 단발머리를 주제로 이 글을 두드리는 건 한 3주전에 미용실에서 내 머리칼을 단발머리로 잘랐기 때문이다. 대학시절에도 또 30대 중반 무렵에도 머리칼을 길러보려고 하다가 중간에 흔히 말하는 거지구간을 참지 못하고 늘 실패했었는데, 참 어이없게도 교통사고를 당하고 일을 쉬는 동안 머리칼을 자르지 않았더니 장발이 되어 있었다. 그대로 계속 자르지 않고 기른 시간이 대략 1년 10개월쯤 되니 머리 스타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중간에 한번도 다듬은 적이 없어서 머리카락 길이가 들쭉날쭉 엉망이었다. 그래도 평소엔 늘 묶고 다녀서 별로 상관이 없긴 했는데, 이젠 묶어도 끝 부분이 등 윗부분에 늘어질 정도로 길어서 내가 생각했던 포니테일 스타일의 장점을 별로 느낄 수가 없었다. 머리를 묶지 않고 다니기엔 너무 지저분해 보였다. 게다가 날이 점점 더워지면서 긴 머리가 답답하게 여겨졌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짧은 머리 스타일로 돌아가기도 싫었다.

어쨌거나 머리칼을 한번 자르자는 생각을 몇 주째 하고 있다가 거의 2년 전에 마지막으로 들렀던 단골 미용실에 갔다. 주인장인 미용사는 처음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가 내가 안내받은 의자에 앉고 나서야 뒤늦게 알아보고 손뼉을 쳤다. 어떻게 자르고 싶냐는 말에 어깨 언저리쯤의 길이로 해달라고 말했다. 그게 단발머리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몰랐다. 지금 제일 긴 머리칼이 가슴까지 내려오고, 제일 짧은 머리칼이 어깨쯤에 걸리니까 그렇게 길이를 맞추면 좋지 않을까 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처음으로 머리칼을 길러본 것이었고, 어떻게 머리 스타일을 만들고 꾸미는 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그 미용사는 어쨌든 솜씨가 좋은 분이었고, 내가 예상한 것보다 짧은 시간에 가위질을 마쳤다. 안경을 쓰고 보니 내 생각보다 머리칼이 더 짧다고 느껴졌다. 그 모습이 너무 어색했다. 그리고 이젠 예전처럼 머리를 감겨주지 않았다. 딸들을 데리고 같이 가면 나는 머리를 감겨주지만, 딸들은 감겨주지 않아서 예상은 했었다. 이젠 나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지 않겠구나.

집에 돌아와서 머리를 감는데, 약 한뼘 언저리 길이로 머리칼이 짧아졌을 뿐인데, 머리 감기가 엄청 수월하게 느껴졌다. 머리를 말리는 시간도 훨씬 줄어들었다. 이래서 단발머리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머리를 다 말리고 머리칼을 묶어봤는데, 너무 짧뚱하게 묶여서 뭔가 어색했다. 그리고 뒷머리 일부는 너무 짧아서 묶이지 않았다.

며칠간 이런저런 실험과 시도를 해보다가 그냥 머리칼을 묶지 않고 단발머리로 다니기로 했다. 처음에는 보는 사람들마다 다들 놀란 반응이었다. 긴 시간 쉬다가 복귀할 때 장발로 나타났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들 놀란 표정과 멈춘듯한 동작은 보여줬다. 누군가는 계속 주기적으로 놀래킨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미용사가 솜씨가 좋다고 칭찬한 사람도 있었다.

머리를 묶고 다닐 때는 그렇게 티가 많이 나지 않았던 흰머리가 상대적으로 훨씬 더 돋보이게 되어 나이들어 보인다는 단점이 생기기는 했지만, 처음 해보는 이 스타일이 나도 아주 싫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살면서 이 정도 길이의 머리 스타일을 한 경우는 맨처음 얘기한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과 원빈 밖에 보지 못한 것 같다. 원빈은 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 선생님의 경우 내 편견 때문인지 몰라도 그다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었다. 내 경우는 모르겠다. 내 지인들이니까 다들 내게 괜찮다.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나는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으니 그냥 다시 머리칼이 더 길어서 안정적으로 묶고 다닐 수 있을때까지 이렇게 살아야지. 뭐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누군가 농담으로 야한 생각을 많이 하면 머리칼이 잘 자란다는 말을 해줬다. 그렇다면 나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대꾸해줬다.

인라인 스케이트

아이들은 제법 규모가 큰 공원 옆에 살고 있다.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그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데, 매번 시간대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친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편안하게 쉬러 온 사람들도 많더라. 아이들이 이 집으로 이사오고, 이 공원을 처음 걸었을 때 나는 아이들과 이 공원에서 자주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고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여러 이유로 집에 머물기를 원했다. 이렇게 좋은 공원을 바로 앞에 두고 집에만 있는 건 나로서는 참기 힘든 상황이지만, 사춘기 딸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엊그제 아이들을 보러 가는 길에 공원에서 작은 꼬마아이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불안하게 비틀거리며 나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대여섯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은 아주 어린 여자아이였다. 아이가 내 바로 코 앞에서 비틀 넘어질 것 처럼 옆으로 기울어져서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빠르게 손을 다시 거둬들이며 살짝 아이를 지나쳐 걸었다. 아이는 정말 운이 좋게도 넘어지지 않고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멈췄다. 아이의 손이나 팔을 잡아 넘어지지않게 부축하려던 내가 순간적으로 나가던 손을 다시 거둬들인 이유는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아이의 부모가 함부로 자신의 아이에게 손을 댔다고 기분나빠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마도 여자아이여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만약 내 아이가 그렇게 어리고, 넘어져 다칠지도 모를 상황이었었는데, 알지도 못하는 중년 사내가 나타나 아이의 손이나 팔을 잡으면 과연 나는 기분이 나쁠것인가? 나는 곧바로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마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이 나처럼 고마워했다고 하더라도 정말 소수일지라도 이 일로 시비를 걸어올 사람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혹시라도 그런 시비에 휘말리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주 짧은 순간 뇌리를 스쳤고, 나는 손을 거둬들이고 부자연스런 동작으로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애쓰며 아이를 스쳐 지나갔다. 아이가 넘어지지 않고, 다치지 않았던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아이가 넘어져 다쳤다면 나는 죄책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이를 지나쳐 공원을 걷는데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먼저 우리집 책장 위 구석에 먼지에 쌓인 인라인 스케이트 가방이 떠올랐고, 그걸 선물받은 시점이 떠오른 것이다.

내가 애들 엄마에게 호감이 있다고 용기내어 고백했던 시기에 그는 한창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주었고, 데이트는 주로 공원에서 인라인을 타면서 했다. 그는 차근차근 쉽게 인라인 타는 법도 잘 가르쳐주었다. 그때까지 인라인은 커녕 롤러 스케이트조차 한번도 타본 적이 없었던 나는 빠르게 인라인을 배워 그와 함께 공원을 누비게 되었다.

당시 애들 엄마와 동호회 회원들이 주로 했던 컵들을 주욱 늘어놓고 그 컵들 사이로 이런저런 어려운 동작을 펼치며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함께 할 정도는 되지 못했지만, 그냥 공원 안에서 이동하는 정도라면 어디라도 무리없이 갈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연애하던 시절에는 열심히 인라인 스케이트를 탔었는데, 언제부터 그걸 전혀 타지 않게 되었을까?

결혼하고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니, 생각해보니 큰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 근처 공원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아이가 앉은 유모차를 몰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큰 아이가 좀 더 자라서 아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주고 내가 잠깐 가르쳐줬던 기억도 났다. 아마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지금 우리집에 처박혀서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그 인라인은 큰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 탔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 평생 타볼 일은 없을 것이다.

4년 하고도 몇 달전에 이 집으로 이사오기 직전에 이삿짐을 싸면서 역시나 책장 위 구석에서 저 인라인을 발견했을 때,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앞으로 저걸 탈 일이 있을까? 아마 없을거라고 결론 내렸고 그럼 버려야지 생각했지만, 차마 버리지 못했다. 아마 이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간다고 해도 그 집에서도 역시 책장 위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 같다.

다시 운동을 제대로 시작하면서 역대급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다. 몸은 무겁지만 기분은 좋다. 얼른 집에 가서 샌드백부터 두들기고 다른 운동을 해야지. 오랜만에 불가리안 백을 들어볼까? 케틀벨 운동을 해볼까? 바벨을 들어볼까? 몸이 무거우니 가볍게 덤벨 운동으로 만족할까? 조금씩 다 해버릴까? 아마 그러면 내일 출근도 못하고 하루종일 누워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중요한 일정이 있으니 가능한 한 가볍게 하는 걸로 생각하고 있어야지. 물론 그래놓고 순간적으로 흥이 오르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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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06-07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단발이시군요. 요즘 남자 단발이 유행인가봐요. 제 남편도 단발이에요.ㅎㅎㅎ 제 머리끈 같이 쓰고 있답니다.

불가리안백은 진짜 어렵던데요. 대단하세요^^

감은빛 2022-06-08 11:29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님 남편께서도 단발이시라니, 무척 반갑습니다.
단발 스타일을 오래 해오셨는지, 최근 바꾸신 건지 궁금하네요. ㅎㅎ

불가리안백은 운동법이 정말 다양하죠.
스핀 같은 동작은 정말 어려운데, 쉬운 동작도 제법 많아요.
저는 무게 욕심을 부리다보니 100% 활용을 못하고 있는데,
조만간 조금 더 가벼운 무게로 하나 더 구매할 생각입니다.

꼬마요정 2022-06-08 18:00   좋아요 0 | URL
작년부터 열심히 길러서 파마도 하고 매직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조만간 히피펌도 하겠답니다. 제가 단발히피펌인데 뒤에서 보면 똑같겠어요 ㅋㅋㅋㅋ

불가리안 백 스핀 도전했다가 어이쿠 했어요. 도장 코치님이 붕붕 돌리길래 쉬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전 조용히 깨갱 케틀벨 가벼운 거나 들었죠 머 ㅎㅎㅎ

감은빛 2022-06-10 18:57   좋아요 1 | URL
작년부터 기르셨군요. 히피펌이라니! 멋지네요!
꼬마요정님과 닮은 모습이면 더 좋아보이겠네요.

스핀을 잘 하려면 암쓰로우 동작에 먼저 숙달이 되어야 하지요.
가벼운 무게로 암쓰로우를 먼저 연습하시면 곧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스내치, 벤트오버로우, 쉬러그 등을 주로 합니다.
저도 아직 스핀은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아서 어려워요.

바람돌이 2022-06-07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우 단발머리 감은빛님 상상이 안가요. 남자분들 꽁지머리나 긴머리는 차라리 상상이 가는데 단발머리는 여자들도 관리하기 힘든 머리라서 말이죠. ㅎㅎ 어쨌든 멋있을것 같습니다 ㅎㅎ
책도 그렇지만 물건에도 어떤 애틋함이 있는 것들이 있죠. 감은빛님의 인라인 스케이트가 그런것 같네요. 저희 집의 인라인은 그런 의미가 하나도 없어서 안타게 되자 벌써 없애버렸지만 말이죠.

감은빛 2022-06-08 11:31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그렇죠. 저도 늘 꽁지머리로 묶고 다니다가 이번에 단발이 되었네요.
관리하기 힘든 머리인데, 저는 관리를 전혀 안 해서 괜찮은 것 같습니다. ㅎㅎ
애틋함이 묻은 물건들이 있죠.
제 인라인은 미련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잉크냄새 2022-06-07 2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농구부 복귀하기 전 비뚤어져 있던 불꽃남자 정대만도 단발머리죠.

다락방 2022-06-08 07:57   좋아요 1 | URL
아, 잉크냄새 님 이 댓글 왜이렇게 좋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22-06-08 11:32   좋아요 0 | URL
아! 정대만!
잠시 반가웠다가 금방 사람 기죽게 만드는 상황이네요. ㅎㅎ
정대만처럼 잘 생겼다면 어떤 머리든 어울리겠지요.
하지만 제 현실은 ㅠㅠ

다락방 2022-06-08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발머리 라고 하니까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의 ‘하비에르 바르뎀‘이 퐉 떠오르네요. 감은빛 님 이미지와는 완전히 어긋나지만요.

감은빛 2022-06-08 11:35   좋아요 1 | URL
아! 안톤 쉬거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이 있었군요.
두 번이나 본 영화였는데, 떠올리지 못했네요.
제가 지금까지 본 영화들 중에서 최고의 악역으로 꼽을 수 있을 역할인데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잉크냄새 2022-06-08 13:51   좋아요 1 | URL
영화속 주인공이면 월드워Z의 브래드 피트도 단발이죠.
정신 건강을 위해 영화속 주인공은 생각치 않으심이 좋을듯 합니다.
얘네들은 뭘 해도 멋있으니까요.

감은빛 2022-06-08 16:52   좋아요 0 | URL
음. <월드워Z>라 그 영화 본지 엄청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잉크냄새님 말씀처럼 그 분들과 비교하면 못 살죠. ㅎㅎ

저는 제 처지를 잘 아니까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2-06-08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건축탐구 집>이란 다큐를 즐겨 보는데요. 몇 년 전 거기에 나왔던 문훈 소장님이 단발머리였어요. 그후로, 단발머리 남자들을 보면 제 눈엔 창의성과 개성이 넘쳐 보이는 인상이 들곤 하더군요.^^

감은빛 2022-06-08 11:37   좋아요 1 | URL
책읽는나무님. 의외로 단발머리 스타일의 남성들이 꽤 있군요.
저는 뭐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름 개성은 있는 편인 것 같아요.
이런 스타일로 뻔뻔하게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그런 것 같아요. ㅎㅎ

희선 2022-06-10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머리를 깎아서 머리가 가벼워졌겠습니다 이번에 다듬었으니 다시 길러도 괜찮겠네요 머리를 깎으면서 고등학교 때 선생님도 떠올리셨군요

쓰지 않아서 바로 버리는 것도 있고 버리지 못하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기억이 담긴 물건은 쉽게 버리지 못하겠습니다


희선

감은빛 2022-06-10 19:00   좋아요 0 | URL
희선님. 맞아요. 다시 기르려고 이번에 다듬었다는 성격이 강합니다. ㅎㅎ
제가 물건들도, 책도 한번 들어오면 잘 못버리는 성격이긴 합니다.
왠지 희선님도 그러실 것 같아요.
 

며칠 전이었다. 새벽 4시쯤 잠에서 깨어 멍하니 누워 있다가 음악이라도 들으려고 유튜브를 켰다. 바로 음악을 검색하지 않고 먼저 유튜브가 내 취향에 맞게 골라주는 첫화면에 올라온 영상들을 먼저 훑어보았다. 티비가 없는 나는 주로 유튜브로 뉴스를 보는데, 새로 올라온 뉴스가 없는지를 먼저 살폈다. 그러다가 내가 구독하고 있는 운동정보 채널에 오랜만에 새 영상이 올라온 것을 발견하고 클릭했고, 그 영상에 이어 자동으로 다른 운동과 관련한 영상들이 계속 재생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팔씨름 선수가 악력 기르는 방법을 찍은 영상이 재생되었다. 다양한 장력의 악력기를 이용해서 훈련을 하고, 특히 고장력의 악력기를 잘 활용해서 꾸준히 노력하면 악력을 빠르게 기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다른 힘이 비해 악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인데, 특히 왼손 악력은 유난히 약했다.

어려서부터 늘 힘이 센 편이라고 생각해왔던 내가 유독 악력이 약하다는 걸 깨달았던 건, 군대에서 진지공사를 하면서였다. 전방으로 배치되었던 내 군생활의 절반은 경계근무였고, 나머지 절반은 진지공사였다. 포대에 각목 두 개를 집어넣어 만든 단카(알고보니 이 단어 일본어로 들것이었다.) 라고 부르는 걸로 흙, 돌, 씨멘트 등 온갖 무거운 것들을 실고 먼거리를 이동하는 일이 많았다. 단카는 두 명이서 들어야 했는데, 나보다 키도 작고 체구도 작은 고참이 뒤에서 들고, 나는 앞에서 들었는데,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상황이었다. 가다보니 어느 순간 분명 그 무게를 들 수 있는 힘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그 당카 손잡이 즉 각목을 쥘 힘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왼손이. 결국 나는 이동 중에 왼손이 풀려 당카 손잡이를 떨어뜨렸고, 당카에 실려있던 것이 쏟아졌고, 뒤에 고참에게 어마어마한 욕설을 들었다. 그 일은 내게 충격이었다.

제대하고 몇 년 후에 운동을 꾸준히 하다가 악력을 기르려면 악력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악력기를 사러 체육사에 갔다. 작은 가게라 악력기가 두 종류 밖에 없었다. 횟수를 표시해주는 일반 악력기와 나무로 된 단순한 모양의 악력기였는데, 그 나무 악력기가 장력이 세다고 추천해줬다. 그걸 사와서 자주 쥐었는데, 오른손으로는 쉽게 여러번 쥘 수 있었지만, 왼손으로는 한 번 쥐어서 두 손잡이를 마주치게 하는 것(영상에서는 이걸 클로즈한다고 표현하더라.)조차 안 되었다. 그 당시 같이 살던 선배가 그 모습을 보고 비웃으며 니 왼손은 니 손 아니냐고? 왜 그렇게 힘을 안 키웠냐고 막 뭐라고 했었다. 그 나무 악력기가 내가 처음으로 구매한 악력기였고, 그때부터 그걸로 꾸준히 노력해서 점점 왼손 악력을 길렀다. 어느 순간 처음으로 왼손으로도 손잡이를 마주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후 그 횟수가 늘었다.

두 번째 악력기를 산 것은 몇 년 전이었다. 우연히 레인보우 악력기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단계별로 색이 다른 악력기를 정복해나간다는 컨셉이 재미있어서 알아보았는데, 아무 생각없이 나 정도면 두 번째 단계는 쉽게 하겠지라고 생각해서 두 번째 단계인 파랑색을 주문했다. 받아보니 웬걸. 오른손으로도 손잡이 마주침을 할 수 없었다. 젖먹던 힘까지 다 이를 악물고 힘을 써서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로 느껴질만큼의 틈 밖에 없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간 했는데 마주쳐지지가 않았다. 왼손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건 처음 나무 악력기를 샀을 때보다 더 처참한 상황이었다. 다시 악력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이후 근육이 싹 빠지고 나서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근력을 잃어버리고 운동에 흥미도 잃었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없으니, 운동이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운동을 안 할수는 없으니 가벼운 운동 중심으로 조금씩 하고는 있었지만, 운동 능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늘 봄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 여름에 몸에 붙는 옷을 입고 다니는데, 작년에 다시 운동을 시작한 후에도 코로나 때문에 외출도 자주 못하고, 여름 휴가도 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냥 운동도 대충하고 말았다.

올해도 그런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그냥 가끔 생각나면 운동을 했고, 늘 운동기구들이 눈에 보이니 한번씩 하나씩 이용해준다는 개념으로 해왔다. 그러다 아까 말한 그 악력 기르는 법 영상을 본 것이었다. 곧바로 잊고 있었던 레인보우 악력기를 꺼냈다. 내가 오른손으로 이걸 정복했던가 못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일단 오른손으로 해봤다. 어렵지 않게 손잡이를 마주치게 했고, 두세번 더 할 수도 있었다. 왼손으로도 조금만 더 하면 마주칠만큼 가까이 잡을 수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 앱을 열어서 레인보우 악력기를 검색했다. 첫번째 단계인 체리색과 세번째 단계인 오렌지 색을 구매했다. 오른손은 파랑색을 정복했으니 오렌지에 도전해야 하고, 왼손은 아직 파랑색이 안되니, 체리색으로 단련해서 다시 도전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악력기를 주문하면서 권투 스트랩도 주문했다. 샌드백을 칠 때마다 글러브가 너무 커서 그 안에서 손이 겉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목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스트랩이 필요했다.

항상 운동에 재미가 붙을 때는 새로운 운동기구를 샀을 때였다. 악력기와 스트랩이 도착하고 나니 갑자기 운동이 재미있어졌다. 양 손에 붕대를 감고 나니 글러브를 끼지 않아도 샌드백을 칠만하다고 느꼈다. 붕대를 감은 채로 글러브를 끼니 훨씬 더 샌드백을 치는 감이 좋아졌다. 기분 탓인지 펑펑 하고 나는 소리도 더 좋은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보다 훨씬 더 긴 시간 샌드백을 두들기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펀치가 잘 적중되었을 때의 쾌감을 즐겼다. 글러브 속의 붕대가 땀에 젖을 때까지, 지쳐서 더는 주먹을 들어올릴 수 없을 때까지 즐기고 나서야 비로소 샌드백 두드리기를 멈췄다.

땀을 씻어내면서 오랜만에 참 기분이 좋았다. 다시 땀흘리는 기쁨과 근육통의 쾌감을 되찾았다. 당장 예전만큼 근육을 회복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올 여름에 몸에 붙는 옷을 입을 정도는 되겠지. 내년 여름에는 예전의 근육량을 회복하고 원하는 모든 운동을 다시 할 수 있도록 운동능력이 향상되기를 바라며 열심히 운동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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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05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운동이라고는 걷기밖에 안하는 사람이지만 이 글을 읽으니까 막 뭔가 있어보이는 느낌이랄까? 막 좋네요. ㅎㅎ 열심히 운동하셔서 올 여름에는 멋진 핏을 자랑하시길.... ^^

감은빛 2022-06-06 17:09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걷기라도 꾸준히 하시는 게 중요하죠. 걸으시다가 가끔 아니 하루에 딱 한 번만 아주 짧은 거리를 뛰어보시는 것 추천합니다. 좀 더 가능하시면 짧게 뛰고 길게 걷기를 반복해도 좋구요.

아직 새로 산 운동기구들과 친해지는 단계라 의욕이 충만합니다. 적어도 두 달은 열심히 운동하게 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북극곰 2022-06-06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기분 느껴보고 싶네요! 여기저기 몸이 망가지니 운동이 절실한데, 늘 실행은 어렵네요. 우리집 비쩍 마른 남자 고등학생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은 뭐가 있을까요? 나도 안하면서 아들 운동시키고 싶은 욕심. ㅋㅋ 근데 샌드백에 집에 있으신 거에요?!!

감은빛 2022-06-06 17:15   좋아요 0 | URL
북극곰님도 지금부터 조금씩 찬찬히 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각자의 컨디션에 맞게 가볍게 시작하셔도 됩니다. 아들과 같이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집에서 할 수 있는 맨몸운동도 엄청나게 많구요. 덤벨이나 케틀벨 등 간단한 기구 한 두 가지만 있어도 운동 가능한 운동 종류는 수십가지로 늘어납니다. 우리 집에 모셔서 운동 알려드리고 싶네요. ㅎㅎ

샌드백을 작년 여름에 샀어요. 이거 왜 진작 안 샀을까 엄청 후회했어요. 스트레스가 많은 날 퇴근하자마자 두드리면 기분이 꽤 풀립니다. 땀을 씻고 나면 더 상쾌하니 기분이 좋아지구요. 설치는 문틈에 하면 되구요. 저는 베란다쪽 문에 설치했어요. 직장인의 필수품이라 생각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