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오늘 쓴 글들
자주 접속하지는 않지만, 가끔 북플에 들어올 때는 꼭 '지난 오늘' 메뉴를 클릭한다. 과거 오늘 날짜에 어떤 글들을 적었는지 확인해보는 일이 재밌다.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를 살펴보고 기억을 떠올리는 일이 즐겁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즐거움은 당시 서재 이웃들이 달아주신 댓글들과 그에 대해 내가 달았던 답글들을 읽는 재미다. 그 시절 활동하셨던 이웃분들 중에서 특히 나와 교류했던 분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고, 이 분이 이때 댓글을 달아주셨었구나 하고 알 수 있어서 신기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거 6월 22일에 쓴 글은 3개였다. 가장 오래된 글은 12년 전, 그러니까 2010년에 쓴 글인데,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책을 읽고 쓴 서평이었다.
이 책은 예전에 공저자로 참여했던 [100인의 책마을]에도 소개했던 책이다. 환경운동가로서의 삶을 살면서 가장 많이 공감하고, 주위에 많이 권했던 책이기도 하다. 과거에 들었던 고 김종철 선생님의 강의와 내 환경운동의 경험을 짧게 언급하여 적은 글이었다. 이 글을 다시 읽으며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님을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선생님 기일이 이즈음이었을텐데. 장례식장에서 돌아와 지인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슬퍼했던 기억이 났다.
그 다음 오래된 글은 11년 전, 2011년 6월 22일에 쓴 글인데, 오강남, 성해영의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책에 대한 서평이었다. 이 당시에 종교에 대한 책을 제법 읽었고, 특히 오강남 씨의 책을 여럿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주위에 독실한 신자들이 제법 많았다. 순전히 내 기준으로 종교는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종교라는 걸 믿을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진지하게 믿음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보면 또 그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 당시에 종교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이 글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종교와 관련한 4개의 장면을 통해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번째 글은 2016년 6월 22일에 썼다. 3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처음은 여름에 주로 입던 청바지가 해져서 새 청바지를 샀는데, 허리 치수로 맞추면 허벅지와 사타구니가 너무 꽉 끼어서 못 입고, 허벅지에 맞추면 허리가 커서 불편해서 고민하다가 결국 허리가 조금 큰 바지를 샀는데, 자꾸 흘러내려서 후회했다는 이야기. 두번째는 몇 년만에 만난 한 선배가 늙어 보인다고, 근육질의 청년은 어디갔냐고 묻는 말에 서운했다는 이야기. 근육은 다 줄고 늙어버린 중년 아저씨가 되어버린 건 인정하지만, 막상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대놓고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리는 없는 법. 당시 그 선배와 밤늦게 만나 새벽까지 긴 시간을 이런 저런 수다를 떨었던 게 기억이 난다. 이혼 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때라서 그 선배는 내 이혼 소식에 꽤나 놀랐었고, 그래서 그랬는지, 나보고 꽤 좋은 남자라고, 자기가 좀만 더 어리고 싱글이었으면 관심을 가졌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난 선배처럼 기가 세고 직설적인 분이면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속으로만 생각했었다. 마지막 이야기는 책 이야기. 업무 관련 책만 주로 읽다가 최근 소설을 몇 권 읽었는데, 갑자기 다시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는 내용이었다. 뭐 이건 지금도 늘 마찬가지다. 언제나 꿈만 꾸는 것. 다시 소설을 쓰는 건 언제나 가능할까? 아이들이 다 자라면 매일 출퇴근 해야 하는 일터를 그만두고 비정기적으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두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벌써 오래전부터 하고 있다. 나중에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계속 꿈을 꾸고 있어야지.
오늘 이 글을 남겼으니, 내년 6월 22일엔 북플 '지난 오늘' 메뉴에 4개의 글이 나오겠네.
고마움
오후에 강의를 하나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한 달 전에 청탁 받은 건인데, 준비를 미루고 미루고 있다가 오늘 오전에야 강의자료를 완성해 보내고 점심도 거르고 강의를 다녀왔다.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였다. 강의에 들어가기 직전, 말을 많이 하면 허기가 질 것 같아서 아주 달달한 캔 커피 하나를 마셨다. 평소엔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강의에 집중하기 위해 카페인이 필요했고, 체력 소모에 대비해 당분이 필요했다.
이 분들과 함께하는 건 세번째였다. 처음에 연락을 받고 강의를 했는데, 이어서 2개의 연강을 더 요청했다. 오늘까지 그 세번의 강의 모두 참가자들이 매우 집중해서 강의를 들어줘서 무척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 처음에는 조금 조심스러운 면도 있었고, 정확하게 어떤 내용을 원하는 지 잘 몰라서 두루뭉실하게 설명한 부분도 있었는데, 두번째부터는 익숙해지기도 했고, 사전에 필요한 부분을 미리 알려줘서 훨씬 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강의 참가자가 소수여서 한 분 한 분 모두 눈을 맞춰가며 마치 대화하듯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무척 편한 분위기였다. 질의응답 때에도 다들 적극적으로 질문을 해주셔서 나도 신나서 더 열심히 아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런 강의를 하고 나면 나 스스로가 어떤 만족감으로 꽉 찬 느낌을 받는다. 보잘것 없는 나라는 존재가 이분들에게는 그래도 쓸모있는 사람이구나. 뭔가 도움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자존감이 충족되었음을 느낀다. 그런 느낌을 느낄 수 있어서 고마운 날이다. 오늘로 이분들과 사전에 정해둔 일정은 끝났지만, 이후에 또 기회를 만들어 나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나는 꼭 그렇게 해달라고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오겠다고 했다.
오늘은 저녁에 좀 머리가 아픈 회의가 있어서 어제까지만 해도 그 회의를 준비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하필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강의가 정해져서 마음이 많이 바빴지만, 강의에서 힘을 받고 돌아온 덕분에 기분 좋게 회의에 임할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긴다.
책 선물
며칠 사이에 책을 두 권 받았다. 하나는 알라딘 북펀드에 참여해서 받았고, 또 하나는 친한 선배가 내 책상에 두고 가셨다. 친한 선배에게 선물 받은 책은 송경동 선배의 시집이다. 이 책 출간 소식을 알고 사야지 생각하고 보관함에 담아두었었는데, 그러고 그냥 깜빡 지나쳤었는데, 어떻게 알고 선배가 선물해주셨다. 그것도 사인본으로. 송경동 선배랑 한창 자주 마주칠 때에도 시집에 사인 받을 생각은 한번도 못했는데, 얼굴을 못 본지 아주 오래된 지금 이렇게 사인본을 받는다는 것도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암튼 덕분에 우리 집에 송경동 선배의 모든 시집을 다 채웠다.
북펀드에 참여해서 받은 책은 [색이름 사전]이다. 출판사에 다니던 시절 엄청 친하게 지냈던 선배가 독립해서 만든 출판사에서 북펀드를 한다고 하길래 참여했다. 인간의 눈은 빛의 스펙트럼 중에 특정한 색깔을 받아들이는데, 이를 인지하는 뇌는 있는 그대로의 색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 비춰 색을 인지한다고 들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다양한 색이 있겠지만, 이 중에서 내가 인지할 수 있는 색은 과연 몇 개나 될까? 얼마나 많은 색을 우리는 활용하고 있을까 등이 궁금해서 참여했다. 다 읽고 나면 친한 디자이너나 예술가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아침부터 이래저래 바쁘게 지냈고, 이제 퇴근시간이 되었는데, 아직 퇴근하려면 한참 멀었다. 저녁 회의 때문이다. 얼른 회의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샌드백을 두드리며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 요즘 오후 서너시만 되면 자꾸만 샌드백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나 아무래도 샌드백과 사랑에 빠졌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