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었다. 새벽 4시쯤 잠에서 깨어 멍하니 누워 있다가 음악이라도 들으려고 유튜브를 켰다. 바로 음악을 검색하지 않고 먼저 유튜브가 내 취향에 맞게 골라주는 첫화면에 올라온 영상들을 먼저 훑어보았다. 티비가 없는 나는 주로 유튜브로 뉴스를 보는데, 새로 올라온 뉴스가 없는지를 먼저 살폈다. 그러다가 내가 구독하고 있는 운동정보 채널에 오랜만에 새 영상이 올라온 것을 발견하고 클릭했고, 그 영상에 이어 자동으로 다른 운동과 관련한 영상들이 계속 재생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팔씨름 선수가 악력 기르는 방법을 찍은 영상이 재생되었다. 다양한 장력의 악력기를 이용해서 훈련을 하고, 특히 고장력의 악력기를 잘 활용해서 꾸준히 노력하면 악력을 빠르게 기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다른 힘이 비해 악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인데, 특히 왼손 악력은 유난히 약했다.

어려서부터 늘 힘이 센 편이라고 생각해왔던 내가 유독 악력이 약하다는 걸 깨달았던 건, 군대에서 진지공사를 하면서였다. 전방으로 배치되었던 내 군생활의 절반은 경계근무였고, 나머지 절반은 진지공사였다. 포대에 각목 두 개를 집어넣어 만든 단카(알고보니 이 단어 일본어로 들것이었다.) 라고 부르는 걸로 흙, 돌, 씨멘트 등 온갖 무거운 것들을 실고 먼거리를 이동하는 일이 많았다. 단카는 두 명이서 들어야 했는데, 나보다 키도 작고 체구도 작은 고참이 뒤에서 들고, 나는 앞에서 들었는데,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상황이었다. 가다보니 어느 순간 분명 그 무게를 들 수 있는 힘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그 당카 손잡이 즉 각목을 쥘 힘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왼손이. 결국 나는 이동 중에 왼손이 풀려 당카 손잡이를 떨어뜨렸고, 당카에 실려있던 것이 쏟아졌고, 뒤에 고참에게 어마어마한 욕설을 들었다. 그 일은 내게 충격이었다.

제대하고 몇 년 후에 운동을 꾸준히 하다가 악력을 기르려면 악력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악력기를 사러 체육사에 갔다. 작은 가게라 악력기가 두 종류 밖에 없었다. 횟수를 표시해주는 일반 악력기와 나무로 된 단순한 모양의 악력기였는데, 그 나무 악력기가 장력이 세다고 추천해줬다. 그걸 사와서 자주 쥐었는데, 오른손으로는 쉽게 여러번 쥘 수 있었지만, 왼손으로는 한 번 쥐어서 두 손잡이를 마주치게 하는 것(영상에서는 이걸 클로즈한다고 표현하더라.)조차 안 되었다. 그 당시 같이 살던 선배가 그 모습을 보고 비웃으며 니 왼손은 니 손 아니냐고? 왜 그렇게 힘을 안 키웠냐고 막 뭐라고 했었다. 그 나무 악력기가 내가 처음으로 구매한 악력기였고, 그때부터 그걸로 꾸준히 노력해서 점점 왼손 악력을 길렀다. 어느 순간 처음으로 왼손으로도 손잡이를 마주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후 그 횟수가 늘었다.

두 번째 악력기를 산 것은 몇 년 전이었다. 우연히 레인보우 악력기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단계별로 색이 다른 악력기를 정복해나간다는 컨셉이 재미있어서 알아보았는데, 아무 생각없이 나 정도면 두 번째 단계는 쉽게 하겠지라고 생각해서 두 번째 단계인 파랑색을 주문했다. 받아보니 웬걸. 오른손으로도 손잡이 마주침을 할 수 없었다. 젖먹던 힘까지 다 이를 악물고 힘을 써서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로 느껴질만큼의 틈 밖에 없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간 했는데 마주쳐지지가 않았다. 왼손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건 처음 나무 악력기를 샀을 때보다 더 처참한 상황이었다. 다시 악력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이후 근육이 싹 빠지고 나서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근력을 잃어버리고 운동에 흥미도 잃었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없으니, 운동이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운동을 안 할수는 없으니 가벼운 운동 중심으로 조금씩 하고는 있었지만, 운동 능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늘 봄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 여름에 몸에 붙는 옷을 입고 다니는데, 작년에 다시 운동을 시작한 후에도 코로나 때문에 외출도 자주 못하고, 여름 휴가도 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냥 운동도 대충하고 말았다.

올해도 그런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그냥 가끔 생각나면 운동을 했고, 늘 운동기구들이 눈에 보이니 한번씩 하나씩 이용해준다는 개념으로 해왔다. 그러다 아까 말한 그 악력 기르는 법 영상을 본 것이었다. 곧바로 잊고 있었던 레인보우 악력기를 꺼냈다. 내가 오른손으로 이걸 정복했던가 못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일단 오른손으로 해봤다. 어렵지 않게 손잡이를 마주치게 했고, 두세번 더 할 수도 있었다. 왼손으로도 조금만 더 하면 마주칠만큼 가까이 잡을 수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 앱을 열어서 레인보우 악력기를 검색했다. 첫번째 단계인 체리색과 세번째 단계인 오렌지 색을 구매했다. 오른손은 파랑색을 정복했으니 오렌지에 도전해야 하고, 왼손은 아직 파랑색이 안되니, 체리색으로 단련해서 다시 도전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악력기를 주문하면서 권투 스트랩도 주문했다. 샌드백을 칠 때마다 글러브가 너무 커서 그 안에서 손이 겉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목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스트랩이 필요했다.

항상 운동에 재미가 붙을 때는 새로운 운동기구를 샀을 때였다. 악력기와 스트랩이 도착하고 나니 갑자기 운동이 재미있어졌다. 양 손에 붕대를 감고 나니 글러브를 끼지 않아도 샌드백을 칠만하다고 느꼈다. 붕대를 감은 채로 글러브를 끼니 훨씬 더 샌드백을 치는 감이 좋아졌다. 기분 탓인지 펑펑 하고 나는 소리도 더 좋은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보다 훨씬 더 긴 시간 샌드백을 두들기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펀치가 잘 적중되었을 때의 쾌감을 즐겼다. 글러브 속의 붕대가 땀에 젖을 때까지, 지쳐서 더는 주먹을 들어올릴 수 없을 때까지 즐기고 나서야 비로소 샌드백 두드리기를 멈췄다.

땀을 씻어내면서 오랜만에 참 기분이 좋았다. 다시 땀흘리는 기쁨과 근육통의 쾌감을 되찾았다. 당장 예전만큼 근육을 회복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올 여름에 몸에 붙는 옷을 입을 정도는 되겠지. 내년 여름에는 예전의 근육량을 회복하고 원하는 모든 운동을 다시 할 수 있도록 운동능력이 향상되기를 바라며 열심히 운동해야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22-06-05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운동이라고는 걷기밖에 안하는 사람이지만 이 글을 읽으니까 막 뭔가 있어보이는 느낌이랄까? 막 좋네요. ㅎㅎ 열심히 운동하셔서 올 여름에는 멋진 핏을 자랑하시길.... ^^

감은빛 2022-06-06 17:09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걷기라도 꾸준히 하시는 게 중요하죠. 걸으시다가 가끔 아니 하루에 딱 한 번만 아주 짧은 거리를 뛰어보시는 것 추천합니다. 좀 더 가능하시면 짧게 뛰고 길게 걷기를 반복해도 좋구요.

아직 새로 산 운동기구들과 친해지는 단계라 의욕이 충만합니다. 적어도 두 달은 열심히 운동하게 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북극곰 2022-06-06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기분 느껴보고 싶네요! 여기저기 몸이 망가지니 운동이 절실한데, 늘 실행은 어렵네요. 우리집 비쩍 마른 남자 고등학생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은 뭐가 있을까요? 나도 안하면서 아들 운동시키고 싶은 욕심. ㅋㅋ 근데 샌드백에 집에 있으신 거에요?!!

감은빛 2022-06-06 17:15   좋아요 0 | URL
북극곰님도 지금부터 조금씩 찬찬히 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각자의 컨디션에 맞게 가볍게 시작하셔도 됩니다. 아들과 같이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집에서 할 수 있는 맨몸운동도 엄청나게 많구요. 덤벨이나 케틀벨 등 간단한 기구 한 두 가지만 있어도 운동 가능한 운동 종류는 수십가지로 늘어납니다. 우리 집에 모셔서 운동 알려드리고 싶네요. ㅎㅎ

샌드백을 작년 여름에 샀어요. 이거 왜 진작 안 샀을까 엄청 후회했어요. 스트레스가 많은 날 퇴근하자마자 두드리면 기분이 꽤 풀립니다. 땀을 씻고 나면 더 상쾌하니 기분이 좋아지구요. 설치는 문틈에 하면 되구요. 저는 베란다쪽 문에 설치했어요. 직장인의 필수품이라 생각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