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아침에 집을 나서서 계단을 내려와 1층 건물 현관을 도달했는데, 바닥에 온통 시꺼먼 벌레들 사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대충봐도 수십마리. 일단 여기까지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늦기 전에 빨리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손잡이를 잡은 손에 뭔가가 만져졌다. 역시 벌레 사체였다. 윽! 이번만큼은 신음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손을 빼고 사체를 털어냈다. 손에 액체가 묻어있었다. 얼른 문을 열고 나오는데, 맙소사! 이번에는 수백마리의 동일한 벌레 사체가 입구에 흩어져있었다. 이게 뭔 일이지? 간밤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이 집에 5년째 살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동네 뒷산 중턱이라 벌레도 많고 각종 새 울음 소리도 잘 들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지간한 등산 코스처럼 느껴지는 집이지만, 이렇게 수백마리의 벌레가 하얀 디딤돌 위에 흩어진 모습을 볼 줄은 몰랐다. 이게 혹시 무슨 자연현상의 전조 현상은 아닌지 조금 불안했으나 더 늦기 전에 움지여야 할 상황이라 일단 걸음을 옮겼다.
장면2.
경사가 급한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는데, 왼쪽 무릎과 발목에 약한 통증이 느껴졌다. 여기저기 온 몸의 관절에 통증이 옮겨다니는 증상이 나타난지도 6년째 정도 되는 것 같다. 이런 관절로 이 동네에 사는 건 무척 괴롭고 힘든 일이다. 오르막길을 올라 돌아오는 길은 그래도 괜찮지만, 내려가는 일은 무릎과 발목에 부담을 줘서 절뚝거리거나 뒤뚱거리며 내려갈 수 밖에 없다. 매번 누군가 뒤에서 날 보면 참 우습겠다고 생각하며 조심조심 내려간다.
그러는 와중에 골목 오른쪽 한 신축빌라 현관에서 20대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윽!˝, ˝어우씨!˝ 등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펄쩍 뛰는 모양새로 현관을 나섰다. 왜 그러나 싶어서 봤더니 그 신축빌라 현관에도 수백마리의 벌레가 죽어 흩어져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우리집 현관에서 본 놈들과 같은 놈들이 아닐까 싶었다. 그 젊은 남성은 진절머리를 치며 내리막길을 빠르게 내려갔다. 우리집은 바로 뒤가 산으로 오르는 입구라 벌레가 그렇게 많은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이 집은 골목을 조금 내려온 위치라 여기에도 이렇게 많은 벌레가 있다니 좀 이상하다 싶었다. 하얀 디딤돌 위에 새까만 벌레 사체들이 눈에 확 들어오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우리집처럼 수십년 된 낡은 빌라가 아니라 최근에 지은 신축빌라라서 더욱 눈에 잘 띄었다.
장면3.
이번엔 내리막길을 완전히 내려와 차도를 건너 평지의 골목길을 한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일방통행로 한쪽으로 인도가 있어서 인도를 걷고 있었는데, 연세가 무척 많아 보이는 허리가 많이 굽은 할머니 두 분이 길 가에서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두 분 중에 허리가 조금 덜 굽은 분이 손에 싸리 빗자루를 쥐고 바닥을 쓸고 계셨는데, 그 동작이 좀 힘이 없고 어설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두 분의 대화가 얼핏 들렸는데, 건물 현관 입구에 웬 벌레들이 떼로 죽어있어서 이게 뭔 일이냐고 말씀을 나누는 거처럼 들렸다.
내가 두 분 곁을 지나친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정확히 그 내용을 유추하기는 어려웠지만, 확실히 들은 몇몇 단어와 상황은 그랬다. 마음으로는 잠시 걸음을 멈춰 두 분의 대화를 더 듣고 싶었지만, 뭔가 오해를 살만한 상황일 수도 있고 나도 시간에 쫓기고 있어서 그냥 지나쳤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우리 집은 워낙 산 중턱에 위치해있어서 평소에도 벌레가 많은 곳이지만, 여기는 한참을 내려와 완전 평지에 대규모 주거밀집지역 한 가운데에 위치한 곳인데, 여기도 같은 현상이라고? 이거 정말 뭔가 이상하다 생각이 들었다.
기후변화
사실 이렇게 어떤 특정한 벌레들이 대규모로 나타나 사람들이 놀라는 일은 벌써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몇몇 뉴스 장면에서는 정말 징글징글하게 많은 벌레떼의 출현을 전해주기도 했다. 우리 동네 다른 뒷산에서는 대벌레가 너무 많아졌다는 뉴스가 재작년과 작년 2년 연속으로 나왔었다. 어딘가 다른 동네에서는 무슨 나방이 갑자기 급증해서 골치거리라고 했고, 또 어느 동네에서는 무슨 애벌레가 급증해서 난리라고도 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온도가 바뀌면 먼저 서식하는 식물 종이 달라지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그 식물들을 섭취하는 곤충들이 바뀐다. 이때 그 서식환경에 딱 맞는 어떤 특정한 종은 갑자기 개체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딱 그 지점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점점 아열대 기후로 바뀌는 한반도의 모습을 지켜보며 살고 있는 것이다.
장마와 동시에 폭염과 열대야가 나타나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기상 캐스터가 전했다. 며칠 전 강릉의 최저기온이 30도를 넘겼는데, 6월 최저기온이 30도를 넘긴 것은 기상관측 역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 캐스터가 최저기온과 최고기온을 잘 못 말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수를 깨닫고 정정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뒤이은 설명에서 최고 기온은 31도로 최저기온과 최고기온의 온도차가 약 1도 밖에 되지 않는 일도 매우 드믄 일이라고 했다. 실수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더 놀란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1인당 전기 소비량
우리 집에는 아직 에어컨이 없다. 고지대에 살아서 여름에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이 잘 통하기도 하고, 선풍기 3대를 잘 활용하면 폭염에도 그럭저럭 버틸만하다. 무엇보다 혼자 살기 때문에 옷을 벗고 지내고, 더우면 곧바로 가볍게 찬 물을 덮어쓰고 선풍기 바람에 몸을 말리는 것으로 버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열대야가 계속 이어지는 날은 힘들기는 하다.
일터에서도 나는 상대적으로 에어컨을 덜 켜고, 온도 설정을 잘 활용해서 전기를 덜 쓰도록 조정한다. 가끔 외근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온도가 확 낮춰져 있는 걸 확인하는데, 곧바로 적정온도인 26도로 다시 올려둔다. 그럼 에어컨은 냉방 기능을 멈춘다. 이미 실내온도가 그만큼 낮춰져 있다는 뜻이다.
지금도 나는 홀로 일터에 앉아 있는데, 아직 에어컨을 켜지 않고 선풍기 하나로 잘 지내고 있다. 아까 무지 더울 때에는 켜고 싶었으나 꾹 참고 선풍기 바람으로 열을 식혔다.
얼마전 jtbc 뉴스룸에서 우리나라 1인당 전기 소비량이 세계 3위라는 말이 맞는지 팩트체크하는 장면이 나왔다. OECD 가입국 기준 1인당 전기 사용량을 따져보면 3위가 아니라 8위라고 했는데, 독일이나 영국 그리고 일본 등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큰 나라들보다 더 높다고 했다. 그러나 이건 전체 전기 사용량을 단순히 인구수로 나눈 수치이고, 가정용 전기 사용량을 인구수로 나눈 1인당 가정용 전기 사용량을 따져보면 훨씬 더 낮은 수치로 하위권에 속한다고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정용 전기 사용량보다 산업용 등의 전기 사용량이 월등히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가 맨날 국민들에게 전기 아껴쓰라고 말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절약을 실천하고 살고 있었다. 정부는 오히려 과다 소비하고 있는 산업용 전력을 어떻게 통제하고 정상화 시킬지를 고민하고 제도를 개선해야 했는데, 자본 친화적이고 기업 친화적인 과거 정부들은 언제나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들의 전기 요금을 깎아주고 어떻게든 혜택을 더 주고 있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대기전력 좀 줄여보겠다고 애써온 국민들 입장에서는 기도 안 찰 노릇이다.
우리나라의 가정용 전기 사용량은 약 13~14%에 이른다. 일본이 20%가 넘고 미국이 33%를 넘는 것에 비하면 무척 낮은 수준이다. 유럽의 많은 선진국들도 20~30% 수준이다. 이는 우리나라 산업 구조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수치다.
문재인 정권은 핵발전소를 계속 짓고 있으면서 말로만 탈핵을 외쳤고, 대규모 석탄 화력발전발전소들을 계속 지으면서도 입으로는 온실가스 절감을 떠드는 코메디를 보여줬다. 술을 마시고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뭐 이런 코메디를 몸소 보여주시느라 참 수고가 많았다. 이번 윤정권은 아예 시간을 거슬러 이명박 정권 시절의 핵발전 중심 에너지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얼마나 무식하고 멍청하고 우스운 짓인가. 전세계에서 핵발전소를 계속 짓고 있는 나라는 채 5개가 되지 않는다. 왜 다른 선진국들이 답이 없는 핵을 포기하고 재생에너지를 위해 노력하는지 안 보이는 것 같다. 아니 보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이제 우리 국민들은 개인적인 실천들 보다 정부 차원의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티핑 포인트를 지나칠지도 모른다. 세계 정상들 앞에서 ˝How dare you ~ ˝ 를 외친 그레타 툰베리의 표정과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사상 유래 없는 고물가 시대에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올랐다. 그럼에도 내년 최저시급은 별로 오르지 않았다. 내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넋두리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 모습이 되었다.
한전 적자 구조의 핵심은 가정용 전기요금이 아니다. 산업용 요금이다. 전기요금을 올리지 말란 뜻이 아니다. 비정상정인 이 나라의 전력 사용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