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신드롬


오래 전 영화 [쉬리]가 개봉했을 때, 주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영화를 봤다고 얘기하곤 했었고, 언론에서도 다루는 걸 봤었다. 나는 이상하게 삐딱한 기질이 있어서 남들이 다 하는 건 일부러 피하곤 하는데, 남들이 다 보는 영화는 이상하게 보고 싶지 않았었다. 그래서 영화관을 찾지 않았다. 남들이 잘 보지 않을 것 같은, 그러나 나에게는 뭔가 끌리는 영화를 찾아보곤 했었다. 문득 [쉬리]의 관객수가 궁금해 찾아보니 580만 가량이다. 언젠가부터 천만 관객 영화가 종종 나오곤 했던 걸 생각하면 [쉬리]는 내 기억과는 달리 그렇게 크게 유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일까? 아니면 당시로서는 그 정도 관객수도 많았던 것일까? 내 기억에 비슷한 시기에 [쉬리] 보다 더 크게 흥행했던, 정말 내 주위에 안 본 사람을 찾을 수 없었던 영화 [타이타닉]의 흥행성적도 궁금해 찾아보았다.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했던 것으로 아는데, 우리나라에서는 590만으로 추정한다고 나온다. 재개봉 포함 전국 635만이라고 나온다. 그럼 확실히 당시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의 총 인원수가 적었던 것이다.


암튼 삐딱한 나는 저 두 영화를 일부러 보러 가지 않았다. 남들이 그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듣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두 영화는 아주 나중에 티비로 봤다. [쉬리]는 재미있었지만, 그냥 딱 재미있는 오락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그렇게 유행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과 일부러 극장을 찾지 않은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타이타닉]은 달랐다. 와! 영화의 스케일 자체가 달랐고, 그때까지 보았던 어떤 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압도하는 느낌이 있었다. 저 영화는 극장에서 보았으면 더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올해 초 나는 우연히 작은 아이와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을 극장에서 보았다. 원래 영화를 볼 계획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즉흥적으로 영화를 보자고 했고, 마침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들 중 제일 끌리는 영화가 바로 그거였다. 암튼 그렇게 아바타를 보고 또 한번 감탄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극장에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비나 태블릿으로 봤으면 이 정도의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 [쉬리]와 [타이타닉] 이야기를 한 것은 요즘 언론과 사람들 사이에 폭발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 때문이다. 지금 이 분위기 어쩐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만 떠올려보니 딱 저 두 영화의 개봉 시기의 내 기분이 지금과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외에 다른 영화들도 제법 있었을 것이다. 이 사회는 좀 과할 정도로 유행에 민감하고, 뭔가 하나가 회자되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그에 편승해 더 많은 이야기들을 퍼트린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다만, 내 개인적인 기억에서는 저 두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올랐을 뿐이다. 최근의 흐름으로 보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나 [더 글로리]의 흥행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서울의 봄] 흥행은 두 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일단은 12월 12일이 다가오는 시기에 저 군사 쿠테타의 부당함과 죄상을 전 국민들에게 다시 상기시키고, 그래서 다함께 전씨와 그 일당들에게 분노하는 국민적인 유행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가운 감정이다. 아마 저 영화가 이렇게까지 흥행할 수 있는 요인 중에는 전씨와 노씨의 죽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과거 영화 [26년]은 제작과정에서 수차례 외압을 받아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와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고 들었다. 게다가 전씨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이 영화에 저렇게 유명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 며칠 동안 언론과 각종 유튜브 채널에서는 앞다투어 그날의 실제 이야기, 영화 속 배역의 실제 인물들, 당시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를 결정적인 순간들 등의 다양한 연관 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내용들이 충분히 널리 알려지는 것은 이 영화의 힘이자, 매우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도둑질 했던 독재자의 죽음 이후 다시 또 다른 군부 독재자가 내란을 통해 정권을 훔친 과정을 잘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후 우리나라는 87년까지 많은 희생을 치르며 간신히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으나, 그것은 제도적 민주화에 그쳤을 뿐, 살인마이자 학살자의 친구가 다시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후 삼당 야합으로 이뤄진 소위 말하는 문민정부 역시 권위주의 정권으로서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민주화라는 관점에서 얼마나 많이 퇴보하게 만든 사건인지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면 좋겠다.


두 번째 드는 생각은 아쉬움이다. 물론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내 의견을 잘못된 편견일 수도 있다. 일단 [서울의 봄]이란 제목은 80년 5월 15일 서울역 회군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광주 학살의 간접적인 원인이 된 이 일로 인해 1212 군사 쿠테타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그 사건 말이다. 결국 오지 못한 '서울의 봄'을 제목으로 쓴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 이 답은 나중에 영화를 본 후에 더 고민해봐야겠다.


이 영화는 결국 내란이 성공해 군대 내부 일부 장교들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와 그 수장인 전씨가 권력을 손에 넣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게다가 대체로는 실제 역사적 사건의 흐름을 담아냈겠지만, 일부 내용은 현실과 다르게 그렸다고 들었다. 이미 성공한 군사 쿠테타를 세부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폭도들을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거둔다. 비록 전씨와 노씨는 죽었지만, 당시 쿠테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폭도들 중 다수는 아직 막대한 부와 권력을 틀어쥐고 잘 살고 있다. 혹시 이들은 이 영화를 보며 자랑스럽게 자신의 무용담을 떠올리지는 않을까? 특히 저 내란을 주도했던 폭도들의 두목인 전씨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생각은 좀 과한 것일 수 있다. 다만 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영화라는 틀로 담아낼 때 그 영향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불재? 누칼협?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내가 속한 여러 조직들은 서로 어울려 노는 자리에서 초성 퀴즈를 자주 하곤 했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내가 초성 퀴즈를 잘 할 거라고 예상하며, 문제가 나오면 나를 보곤 했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초성 퀴즈를 정말 잘 하지 못했다.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의 뇌는 초성만 가지고 그에 맞는 특정 단어를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몇 년 동안 종종 초성 퀴즈를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순발력이 좋은 몇몇 사람들이 유난히 잘 맞추는 것을 깨달았다. 약간의 선입견을 갖고 말하자면 저들은 그다지 어휘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암튼 그랬다.


초성을 단어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분명 아는 사람이 맞는 것 같긴 한데, 그가 누구인지 얼른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아주 친한 사람과 가족들의 얼굴을 못 알아보기도 했었다. 어쩌면 나는 시각적인 정보를 빠르게 내가 아는 정보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초성 퀴즈에 유난히 약한 것처럼 줄임말에도 약한 편이다. 아, 그런데 초성 퀴즈는 눈으로 보고 단어를 유추하는 것이라 시각 정보가 중요한 것이 맞지만, 줄임말은 기본적으로 발음으로 단어를 유추하는 것이라 또 성격이 다르긴 하다. 둘 다 전체 정보가 바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 정보만을 제한적으로 제공한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물론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널리 퍼지는 줄임말들이 있고, 이미 익숙해진 줄임말은 읽거나 듣는 순간 바로 본 뜻과 연결된다. 다만 요즘은 젊은? 아니 어린? 암튼 육체적 나이로든 문화적 나이로든 나이 차에 따라 유행하는 줄임말의 숫자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아, 내 지인들이 내가 초성퀴즈를 잘 할 거라고 오해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상식 퀴즈와 같은 것들을 상대적으로 잘 하기 때문이다. 한때 국문과 전공이었다는 점, 편집자였다는 점 등이 그런 오해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와 친한 다른 국문과 전공자와 편집자들도 초성퀴즈는 썩 그리 잘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것과 그것은 크게 관계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아이들이 대화할 때 전혀 모르는 단어가 들리곤 한다. 그 뜻을 물으면 아이들은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외국어 아니 외계어라도 들은 느낌이 든다. 큰 아이의 자세한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다른 적절한 표현이 분명 있을텐데, 왜 저렇게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 표현을 일부러 쓰는 걸까? 저 아이들은 모두 저 표현의 정확한 표현을 알고 쓰는 걸까? 하고 궁금해지기도 한다.


오늘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저 두 단어를 보았다. 스불재와 누칼협. 전혀 뜻을 짐작할 수 없는 단어였다. 평소 하는 것처럼 검색을 해 보려다가 한번 맞춰보고 싶어서 조금 생각을 해봤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연관되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검색 대신 댓글들을 읽었다. 댓글들 중에도 정확한 뜻을 알려주는 것은 없었다. 한 절반 정도는 나처럼 그게 뭐냐는 질문을 남기고 있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는 않았다. 음, 결국 검색을 해야겠네 하며 새 창을 띄우려다가 갑자기 어떤 느낌이 떠올랐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이것저것 떠맡은 일들이 많아 여러가지 일들의 마감에 쫓기고 있다는 뉘앙스의 글을 쓰면서 저 두 단어를 썼다. 갑자기 누칼협의 칼이 그 칼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누가 칼로 협박한 것도 아닌데' 라는 말이 떠올랐다. 스불재는 좀 더 고민하다가 갑자기 신해철 형님의 노래 가사가 문득 떠올랐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 즉, 시시각각 다가오는 여러 원고 마감에 쫓기는 이 상황이 남 탓이 아닌 제 탓이란 의미다.


여기까지 이해하고 나니 동지를 만난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나 역시 딱히 원하지는 않았지만, 또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은 이런저런 일들을 자주 떠안는 편이라 동시에 여러 개의 마감에 쫓기는 일이 잦다. 내일은 아이들과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는데, 월요일 오전까지 마쳐야 할 일을 아직 절반도 못 했기 때문에 이 새벽까지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일하다 말고 약간의 리프레쉬를 위해 서재에 글을 써본다. 자, 이제 다시 일하자. 내일 운전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잠들어야지. 


마지막으로 책 이야기















어쩌다 이 책의 북콘서트 진행을 맡았다. 미리 책을 다 읽어야 재미있는 질문도 뽑고, 원활하게 진행을 할 수 있을텐데. 다가올 10일 안에 공부모임도 있어서 읽어야 할 책이 또 한 권 있다. 두 권을 최대한 빨리 읽으면서도 내용을 잘 이해할 방법을 터득하면 좋겠다. 아! 빨리 일하자. 빨리 책 읽고 빨리 대본도 작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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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2-0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의 봄...겁나 재밌게 봤습니다.
스토리를 다 알았지만...배우들의 연기가 보는 내내 몰입하게 되더군요.
근래 본 한국영화 중 최고였습니다..^^

감은빛 2023-12-11 18:50   좋아요 0 | URL
네, 야무님.
보신 분들 모두 연기가 좋았다고 하시더라구요.
편집을 잘 했다는 분들도 계셨구요.
저도 기회를 만들어 꼭 보려고 합니다.
 

완벽주의자


또 누군가에게 '완벽주의자'라는 얘길 들었다. 지역의 중요한 행사를 준비하는 기획회의에서 경험이 많아서 사람들을 척 보고 그 사람의 성향을 통찰력으로 파악하는 분을 만났다. 그날 회의에 어느 분이 못 나와서 사전에 합의된 준비사항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져서 몇몇 분들이 평소 그 분이 좀 미덥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그 통찰력 있는 분이 그날 못 나온 사람을 딱 한 마디로 설명했는데, 다들 그 말에 동의하고 수긍했다. "타고난 에너지가 적은 사람으로 소소한 일들을 잘 해내지만, 좀 큰 일이 주어지면 소화하기 어렵다." 정확한 표현이나 단어는 다를 수 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더니 그 통찰력 있는 분이 그 자리에 계신 다른 선배 한 분을 향해서도 딱 한 마디를 했는데, 그 표현에 대해서도 다들 딱 맞는 설명이라고 동의했다. 그 분의 표현이 짧으면서도 딱 적절하다고 느껴 다들 놀라워했다. 경험이 많은 것에 대해 타로 카드나 아로마 카드 등으로 상담도 하고 계시다고 했다.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 덕분에 그 분은 나중에 나에게도 한 말씀 하셨는데, 그게 바로 저 완벽주의자 라는 단어였다.


일하면서 늘 들어왔던 말이고, 나도 잘 알고 있는 점이다. 가끔은 득이 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득보다는 실이 될 때가 더 많은 성향이다. 평소 생활은 썩 그렇지 못한데, 일을 할 때면 늘 저 완벽주의자 기질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좋은 방향으로 잘 살리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으니, 자연히 저 기질을 좀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곤 한다. 저 선생님이 말씀하신 의미도 좋은 뜻과 그렇지 못한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말투로 깨닫는다. 사람의 성향이나 기질이 원한다고 그리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평생 못 고치고 그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대개 좋지 않은 쪽으로 결과가 나올 때는 일이 내 기준으로 완벽하게 될 때까지 계속 손을 댄 다거나(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기준으로는 적당히 괜찮다고 여겨도 나는 성에 차지 않는 경우), 아니면 어떤 완벽한 타이밍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거나 하는 경우다. 반대로 좋은 결과가 나오는 때도 있다. 대개 짧은 시간에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일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다. 몇 해전 친한 친구와 같이 어느 국회의원 보좌관들과 회의를 했을 때, 내가 회의를 진행하고 정리하는 모습을 본 친구가 깜짝 놀랐다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보좌관들과 환경단체 활동가들 등 한 20여명이 참여한 회의였는데, 사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는 분들이 자꾸 논점을 흐리거나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면 내가 바로 잡아주고, 발언들 중간중간에 핵심을 정리해주고, 거의 두 시간이 넘는 회의를 마칠 때 참여한 분들의 발언을 전부 정리하고 요약해서 공유했었다. 회의를 진행해야 할 상황이라 별도로 기록을 해두지 않았음에도 각 발언자들의 순서와 발언의 요지를 머리 속에 잘 담아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사무실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짧은 시간 안에 간이 회의록을 폰으로 만들어서 공유까지 했었다. 당시 그 친구는 내가 일할 때 그 정도로 집중한다는 것을 깨닫고 놀랍다고 했다.


지겹게 듣고 있는 저 완벽주의자 소릴 또 들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어쨌거나 버릴 수 없는 기질이라면 잘 활용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숫자 착오 /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의 어려움


며칠 전 퇴근 시간에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파주행 좌석 버스를 탔다. 언젠가부터 자동차 전용 도로를 이용해 경기도를 오가는 좌석버스들은 입석을 금지하고 좌석이 꽉 차면 승객을 더 태우지 않고 그냥 출발했다. 작년 겨울에는 이것 때문에 추위에 1시간 넘게 서너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고 속수무책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곤 했다. 아이들이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화가 나고 짜증도 났다. 입석으로라도 타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해도 벌금을 맞는다며 매몰차게 출발해버리는 버스 기사님들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여유있게 버스를 타려면 무조건 퇴근시간 보다 조금 일찍 정류장으로 가야 하는데, 사람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원하는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퇴근 시간에 버스를 타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유독 겨울에 버스 타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이게 내가 기다리는 정류장에 오기 전에 이미 좌석이 다 차서 오면, 기다리는 입장에서 달리 방법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그 정류장 보다 몇 정류장 앞으로 가서 기다려야 하는데, 좌석 버스는 정류장 간격도 길고 퇴근 시간에 그 거리를 이동하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려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암튼 며칠 전에도 버스를 기다리면서 작년 겨울 몇 차례 1시간씩 추위에 떨며 버스들 여러 대를 그냥 보내곤 했던 기억이 나서 좀 조마조마했다. 마침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고, 그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분주히 버스 정차 위치를 예측해 움직였다. 남은 좌석 수를 정확히 보지 못했으나 몇 좌석이 안 남았을 것이 뻔했기에 무조건 앞쪽에서 타야 한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내 앞에 이미 여러 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예의 없이 그 사람들을 미쳐내고 버스를 탈 수도 없었다. 정말로 다행히 나까지 버스에 올라 카드를 찍고 나서 기사님께서 다음 사람을 제지했다. 딱 내 차례에서 좌석이 다 찬 것이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안심하며 앉을 자리르 찾았는데, 어라! 빈 자리가 없었다. 기사님은 버스를 출발시켰고, 내가 혹시 잘 못 봤나 싶어서 여러 번 전체 좌석을 훑으며 빈 자리를 찾고 있을 때, 내게 얼른 앉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자리가 없어요 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서너번을 둘러봐도 정말 자리가 없었다. 기사님께서 숫자를 착각해 나 한 사람을 더 태운 것이다. 나는 30분 넘게 자동차 전용 도로를 서서 가더라도 버스를 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 바로 뒷사람이 아니라 나부터 거부 당했다면 이번에도 또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야 할 상황이 되었을지 모른다. 배차 간격이 긴 이 좌석버스들은 자주 오지도 않아서 한 대를 보내면 마냥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기다린 버스도 좌석이 없다고 또 그냥 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운이 좋았던 것은 자동차 전용 도로에 오르기 직전 정류장에서 딱 한명의 승객이 내렸다. 그 분은 내게 자신의 자리에 앉으라고 친절하게 말씀하시고 내렸다. 나는 감사한 마음을 자리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님도 내가 앉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출발했다.


올 겨울에 몇 번이나 더 그 좌석 버스를 타고 파주를 가야할지 모르지만, 겨울은 이제 시작되었으니, 그때마다 이렇게 가슴을 졸이며 빈 좌석이 있는 버스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게 참 경기도민은 어떻게 서울로 출퇴근을 하라는 말인지. 차라리 입석 금지 조치를 풀어주면 좋으련만, 아마도 안전 문제 때문에 내린 그 조치를 쉽게 취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 안에만 있을 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경기도의 버스 상황이 이렇게 열악한 줄 몰랐다. 다행히 전철역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라면 그래도 괜찮았지만, 거리가 멀어서 버스로 갈아타야 하거나 특정 좌석 버스 노선 밖에 방법이 없다면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버스 회사 입장에서도 이게 참 쉬운 문제가 아닌 것이 그 노선에 탑승객이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나만해도 아이들을 보러 파주에 갈 때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닌 낮이나 밤에 버스를 타면 거의 대체로 대여섯 명도 안 되는 승객이 탄 것을 본다. 어떤 경우엔 나 혼자 타고 제2 자유로를 30분 넘게 달리기도 한다.


경기도지사가 경기도를 경기북도와 경기남도로 나눌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좀 바뀔까? 뭐든 대안이 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공부모임


지역의 여러 협동조합에서 경영을 책임지거나 조직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몇몇 분들이 모여 공부모임을 만들었다. 사회적 경제 영역과 복지 영역이 만나 이 지역에 꼭 필요한데, 아직 잘 구현되지 못한 가치와 활동을 만들어가자는 취지였다. 지난 10월 첫 모임을 가졌고, 두 번째 모임은 12월에 예정되어 있다. 다들 정말 바쁜 분들이라 모임 날짜를 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12월에는 [래디컬 헬프]를 읽고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책은 일찍 공지가 되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구매해도 읽지 못할 것 같아서 미루고 있다가 최근에야 구매했다. 이번 주말부터 읽기 시작해서 최대한 빠르게 1번 읽고, 모임 직전에 중요한 내용들만 다시 읽을 생각이다.
















지난 첫 모임에선 [생협이 왜 이런 것까지 할까]라는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눴었다. 약 2시간 가량의 모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우선 참가자들 모두 지역에서 10년 이상 20년 가까이 활동하신 분들이라 그 내공이 어마어마했다. 한 분 한 분 말씀하실 때마다 배울 점들이 보였다. 책의 내용을 두고 나눈 대화는 많지 않았다. 이 일본의 굉장한 사례를 어떻게 우리 동네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 우리에게 지금 부족한 것과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접근하는 방향이 각자 달랐는데, 그래서 더 좋은 시간이었다. 긴 시간 같은 사람들을 주로 만나며 약간 틀에 박힌 활동이 지속되는 것에 대해 경각심과 위기감을 갖고 있었디 때문에 이런 공부모임이 무척 반가웠다. 그날 마지막 소감으로 나는 이 자리가 나에게 힐링이 되어 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었다.
















긴 시간 여유가 없는 삶을 살다보니 꾸준히 나가던 독서모임들도 다 그만두었고, 등산모임도 못 나간지 오래되었다. 늘 나오라는 사람들은 많은데 나는 늘 힘들다. 피곤하다. 죽을 것 같다고 답하며 이 삶을 지속하고 있다. 이젠 좀 하고 싶었던 것들도 찾아볼 수 있는 삶이 되었으면. 내가 더 즐겁게 활동하기 위해서라도 내 관심에 맞는 일들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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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1-2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엔날에는 완변주의 성향이 강했는데, 그보단 계속 수정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게 훨씬 편하고 스트레스도 덜하더라구요..ㅎㅎ

저도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지만 비교적 서울 직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경기도라 출퇴근엔 그리 불만이 없습니다. 그래도 거리가 멀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되는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거 같아요..

공부모임은 이제 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임에 이제는 회의감이 드는지라...이제는 뭐든 혼자하고 혼자 잘 할 수 있는 배움의 루트를 찾고 있죠. 찾아보니 참 많더군요. 모임은 모임대로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많아 이제는 피하게 되요~^^

감은빛 2023-12-09 03:41   좋아요 0 | URL
야무님, 성향을 바꾸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근데 확실히 스트레스는 덜할 것 같아요.

경기도는 거리의 문제도 있지만,
전철로 연결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도 있더라구요.
경기도의 일부 지역 버스는 정말 답이 안 나올 정도였어요.

저도 대체로는 야무님처럼 공부 모임에는 부정적입니다.
다만, 이 글에서 언급한 모임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 모임 구성원들이 죄다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라,
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배울 것들이 많고,
그 분들의 경험담들을 듣는 것이 재미있었거든요.
 

대체 왜 이래?


지금 살고 있는 언덕 꼭대기 낡은 빌라로 이사 온 지 5년 6개월 가량 지났다. 이 집에 살면서 위 아래층에서 물이 새는 문제를 여러 번 겪었다. 아래 층에서 물이 샌다고 연락 받은 것이 총 3번, 위 층에서 우리 집으로 물이 샌 적이 한 번 있었다. 위 층에서 물이 샜던 경우에는 위층에서 누수공사를 해서 해결한 후에 물이 샌 자리 도배를 새로 해줬었다. 아래층에 물이 샜던 3번 중에 첫 번째는 지금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가벼운 문제였던 것 같다. 두번째 물이 샜을 때, 좀 심하게 새서 화장실 바닥을 다 깨부수고 새로 바닥을 깔았었다. 그리고 한 2년 가량 지난 최근에 다시 아래층에서 또 물이 샌다고 연락이 왔다. 아! 진짜 이 놈의 낡아빠진 집. 정말! 안그래도 피곤한 인생인데, 나한테 대체 왜 이래? 그새 집주인이 바뀌어서 새 집주인에게 2년 전에도 비슷한 증상으로 물이 샜었고, 그때 공사를 했었다고 설명을 했다. 그리고 2년 전에 공사했던 업체 사장님이 이번에도 오셨다. 나도 기억을 못 했고, 그 분도 처음엔 기억을 못 하다가, 우리집 화장실을 보고서야 "어! 이거 내가 했던 건데." 하고 말하시더라. 제대로 된 세면대도 없는 우리집 화장실의 열악한 환경이 그 사장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었던가보다.


화장실에서 물을 쓸 때마다 물이 새는 것 같다고 했고, 사장님과 업체 직원 한 분이 우리 집과 아랫집을 여러 차례 오가더니 하수관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고, 시멘트를 부수는 드릴과 망치로 바닥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그 분들을 맞아 공사를 시작하는 걸 보고 출근했다. 씻지 못한 상태가 너무 마음에 걸려서 출근길에 근처 후배 집에 들러 씻었다. 나중에 연락 받았는데, 결국 두 군데 누수지점을 찾아 공사를 마쳤다고 들었다. 깨부순 바닥에 다시 시멘트를 발라 놓았으니 내일까지 장판을 덮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했고, 화장실에서도 물을 쓰지 말라고 했다. 오늘과 내일은 씻지도 못하고, 집도 엉망진창일 거라서 아침에 잠시 들러 씼었던 후배 집에 하루 재워달라고 요청해놓았다.


수능 전날


내일은 수학능력시험 치는 날이다. 큰 아이가 내일 수능을 본다. 앞서 한 번 글에 적었듯이 아이는 최근에 몇 군데 대학에 수시 원서를 넣고 면접과 실기시험 등을 보았었다. 아직 제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은 곳도 있고, 결과 발표를 했는데, 바로 합격하지 못하고 예비 합격자 순번을 받은 곳도 있다. 내일 수능 결과에 따라 정시에도 응시를 하겠지.


내가 대학 갈 때와는 제도 자쳬가 워낙 많이 바뀌어서 지금의 이 입시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너무 쓸데없이 복잡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아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겠지. 엄청나게 비싼 대학 등록금이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직 합격도 못 했는데, 벌써 등록금을 걱정하는 것은 오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늘은 저녁 늦게까지 회의를 하는 날이다. 회의 자료 출력을 걸어놓고 지금 이 글을 빠르게 두드린다. 에휴 피곤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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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11-15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불편하셨겠어요. 그래도 누수 지점 찾아 해결이 됐으니 다행입니다. 아드님이 수능을 보는군요! 잘 보기를 기원합니다.

감은빛 2023-11-24 20:0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블랑카님.
누수가 한 번에 해결되지 않고 또 반복되어서 정말 불편하고 힘들었어요.
다행히 오래가지 않고 해결이 되긴 했는데,
워낙 낡은 집이라 또 문제가 생길까 두렵네요.

아들이 아니라 딸이에요.
조심스레 잘 봤냐고 물었더니, 어려웠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3-11-15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쪽이든 물이 새면 불편하고 공사를 해야 하니 정말 번거롭죠.
그나마 누수지점을 잘 찾아 다행입니다.
아드님, 내일 수능 시험 잘 봐서 꼭 대학 합격하기를 기원합니다.
요즘은 제가 학교 다닐 때와는 다르게 국가 장학금제도가 잘 되어 있더라고요.
최저임금이 괜찮아 알바를 조금 하면 충분히 용돈 벌이도 가능하고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감은빛 2023-11-24 20:01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맞아요.
물이 샌다는 얘길 들은 날부터 해결될 때까지
빨래도 못 돌리고, 씻을 때에도 제대로 못 씻고,
최대한 빨리 가볍게 씻곤 했어요.
어떤 날엔 가까이 사는 후배 집에 가서 씻기도 했구요.

아들이 아니라 딸이 수능을 봤는데,
어려웠다고 하네요.
평소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어려웠겠죠. ㅎㅎ

아마 당장은 합격하더라도 장학금을 받을 성적은 못 될 것 같고요.
알바를 할 생각은 하고 있더라구요.
그래봐야 알바로 학비까지 충당하기는 쉽지 않을거예요.
본인 용돈 정도 벌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희선 2023-11-16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 새는 건 정말 안 좋아요 그런 일 여러 번 있고 오랫동안 있기도 했군요 물이 새는 곳을 찾고 공사해서 다행입니다 여러 날 걸리지 않고 하루 만에 한 것도 다행이네요 감은빛 님을 재워주는 후배 분이 있는 것도...

따님 대학에 붙겠지요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즐겁게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희선

감은빛 2023-11-24 20:03   좋아요 0 | URL
희선님, 안녕하세요.
물이 샌다고 듣고 공사업체를 부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말씀처럼 다행히 업체가 하루만에 해결해줘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아직은 합격한 곳이 없지만,
결과 발표가 나지 않은 곳들이 있으니 희망을 가져봅니다.

고맙습니다!!

잉크냄새 2023-11-24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수는 복층 건물의 숙명이군요. 타인과 결부된 문제라 처리도 머리 아프고요.

대입시의 간결함만으로 따지면 선지원 후시험제의 학력고사가 제일 화끈했던 것 같아요.

감은빛 2023-11-24 20:07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안녕하세요.
정말 낡은 빌라에서 누수 문제는 피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저 같은 세입자의 고충이 있고, 또 집 주인의 고충이 있겠지요.
일단 물이 새면 모두 피해를 볼 수 밖에 없고
누수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아 정말 머리가 아픈 문제인 것 같아요.

학력고사 세대이시군요. ㅎㅎ
수시라는 제도가 생겨서, 수시와 정시로 복잡하기만 한
요즘 입시제도는 참 이해하기 어렵더라구요.
 


자전거 VS 달리기


9월 초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제대로 타는 것을 성공했다. 그 당시 글에도 적었지만, 그 전에 시도했던 건 20년 전이었고, 그때도 골목에서 조금 타는 것은 성공했으나, 차도를 만나자마자 도저히 더 탈 수가 없어서 그냥 포기했었다. 자전거를 평생 못 탈거라고 생각하고 시도할 생각도 안 하고 살았는데, 자전거를 정말 좋아하는 후배들 덕분에 다시 해봤고, 첫 시도에서 바로 자전거를 탔다. 당일 사람 없는 곳에서 두 시간 정도 연습하다가, 우리 동네 천변 자전거 도로를 같이 달려보자는 후배들 말을 믿고 따라가다가 골목에서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고 괜히 혼자 긴장해서 어버버 하다가 넘어져서 손가락과 손바닥이 까져 피가 났다. 그리고는 다시 한 달 이상 자전거를 안 탔다. 최근에 어쨌든 이번에는 꼭 제대로 자전거를 익히고 싶어서 다시 짧게 연습했다. 두 번. 그래서 지금까지 세 번 자전거 연습을 한 셈이다. 사람이 없는 곳을 그냥 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시야에 사람이나 차량이 보이는 순간 긴장해서 자꾸만 균형을 잃는다. 아주 조금씩 익숙해지는 듯도 한데, 다음 순간에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암튼 자전거를 타면 긴장해서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조금만 타도 엄청 힘들고 피곤하다. 익숙하지 않은 일은 이렇게 힘들구나. 게다가 서울시 공유 자전거 따릉이는 무거워서 초심자들이 타기에 적절치 않다고 지인들이 전했다. 그렇구나. 뭐 가벼워도 나는 여전히 잘 타지 못할 것 같지만. 결국은 내가 자전거를 타도록 만들어 준 두 후배는 늘 내게 칭찬만 한다. 잘 탄다고. 처음 타는데 이 정도면 엄청 잘 하는 거라고. 두번째인데 이 정도면 정말 잘 하는 거라고. 며칠 전 세번째 탈 때에는 그 두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내가 자전거 연습을 하는 그 공간 전체를 한 바퀴를 돌았다. 도중에 계속 사람들을 마주치고 심지어 차량도 마주쳤는데,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잘 왔다. 물론 중간에 위태로운 순간이 여러 번 있었지만, 아주 낮은 플라스틱 과속방지턱이 한 대여섯 개 정도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긴장하며 속도를 줄이고 조심조심 넘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좀 타고 나서는 달리기를 했다. 자전거는 아직 걸음마를 떼는 단계라면, 달리기는 제법 자신 있는 종목이다. 아직 해본 적은 없지만, 단거리 경주를 해본다면 한 2~30미터 정도까지는 내가 자전거 보다 더 빠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전거는 속도를 내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는 바로 전력질주가 가능하니까. 한 50미터 이상 넘어가면 자전거가 앞서가기 시작해서 100미터 이상 지나면 차이가 벌어지겠지만.


여름 동안 너무 더워서 달리기를 쉬었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다시 달리기를 조금 했는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10월엔 달리기를 별로 못 했다. 그걸 반성하는 의미로 10월 말부터 그러니까 이번 주부터 다시 매일 조금씩이라도 달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1킬로미터 최고 속도를 찍기도 했다. 엊그제 달리기를 마치고 앱에서 기록을 확인해보니 올해 거의 95킬로미터를 달렸더라. 4월과 5월에 좀 많이 달렸고, 6월부터 7월까지는 확 줄었고, 8월엔 거의 달리지 않았었다. 9월에 다시 조금 달리기 시작했고, 10월엔 다시 확 줄었다. 암튼 욕심 내지 않고 하루에 1~2 킬로미터 정도로, 1주일에 5킬로미터 정도를 목표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도중에 분명 못 달리는 기간이 생길테니, 연말까지 120 킬로미터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저번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던 마라톤을 취미로 하는 선배와 최근에 달리기 이야기를 좀 했었다. 그 양반은 매주 금요일에 달리기 모임을 이끌고 있고, 나는 매주 목요일에 달리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 그 분은 거의 준 프로에 가까워서 본인의 달리기 실력은 뭐 말이 필요 없지만, 다른 참가자들을 챙기는 데에는 조금 신경을 덜 쓰는 듯하다. 나는 평소 달리기를 할 일이 거의 없는 평범한 사람들 보다는 잘 달리지만, 그래도 그냥 아마추어라 내 실력은 아직 내세울 것이 없다. 다만 내가 어렵게 힘들게 폐활량을 키우고, 주법을 익히며, 바른 자세와 호흡법을 배웠던 과정을 생생히 알고 있기 때문에 달리기 경험이 별로 없는 다른 참여자들에게 이런 부분들을 많이 알려주고,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해주는 편이다.


그 형이랑 제대로 달리기를 딱 두 번 했는데, 확실히 장거리 달리기를 주로 하는 사람을 내가 따라가기가 정말 어렵더라. 나는 단거리, 무호흡, 전력질주 중심으로 훈련하는 사람이라, 장거리 달리기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도 폐활량을 키우기 위해 장거리를 안 할 수 없지만, 가능하면 1킬로미터나 2킬로미터 단위로 끊어서 달리고 쉬기를 반복하는 편이다. 목요일에는 하루에 5킬로미터까지 달리지만, 나머지 평일에는 보통 1킬로에서 멈추고, 좀 컨디션이 좋다 싶으면 2킬로까지 가곤 한다. 그런데 저 형은 제일 짧게 달리는 것이 6킬로 이상이다. 도중에 전혀 멈추거나 쉬지 않는다. 나로서는 그런 훈련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따라가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기는 했다. 진짜 머리가 멍해지고, 시야가 노랗게 변했다가 회색빛으로 변했다가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함부로 저 사람이랑 같이 달릴 일이 아니구나 깨닫기도 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내게 좋은 자극이 되어서 아주 가끔 도전해 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짧게 달리기를 자주 하고, 매주 목요일엔 쉬지 않고 달리는 거리를 조금씩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할 생각이다.


어제 목요일 오후에 전혀 예상치 못하게 좀 과한 육체노동을 할 일이 갑자기 생겼다. 처음에 긴팔 티셔츠를 입고 일하다가 한 시간도 안 되어 셔츠가 완전히 땀에 젖어버렸다. 젖은 옷을 입고 계속 일하기가 그래서 티셔츠를 벗었다. 어제 아침에 속에 받쳐 입을 옷이 없어서 여름 휴가 때 해변에서나 입는 새빨간 민소매 셔츠를 안에 입고 나왔던 것이 기억나서였다. 위에 입었던 티셔츠가 다 젖었으니 당연히 민소매 셔츠도 다 젖어 있었고, 몸에 완전히 붙는 옷이라 좀 민망하긴 했다. 게다가 새빨간 색이라서 더욱. 다행히 작업하던 곳에 지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가끔씩 오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신경이 쓰이긴 햇다. 하지만 처음에만 잠시 그랬을 뿐, 나중엔 일하느라 그걸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저녁까지 그렇게 육체 노동을 한 후에 달리기 모임을 위해 잠시 쉬면서도 땀에 젖은 긴팔 셔츠를 입지 않고 민소매 셔츠 차림으로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어 빠르게 땀이 식길래, 조금 고민을 했다. 달리기를 하면 또 땀에 젖을텐데, 이 차림으로 달릴까 아님 지금 조금 몸이 식기 시작하니 젖은 옷이라도 그냥 긴 팔 셔츠를 입어야 하나. 그런데 기다리는 중에 오시기로 한 참여자가 더 늦는다고 연락이 왔고, 슬슬 맨 몸인 팔에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해서 더 고민하지 않고 그냥 옷을 다시 입었고, 참여자가 온 후에 그 상태로 그냥 달리기를 했다. 


믹스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


커피 맛도 잘 모르고,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일을 하기 위해 안 돌아가는 머리를 억지로 돌리려고 가끔 믹스 커피를 타 마신다. 그런데 단 맛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믹스커피는 너무 달다. 그렇다고 커피 맛도 모르는데, 밖에 나가서 비싼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물을 많이 타서 약간 밍밍한 믹스 커피를 종종 마셨다. 최근에 매니저님께서 사무실에 전혀 달지 않고 담백한 맛의 두유를 좀 많이 사 두신 것을 봤다. 잘은 모르지만, 커피에 우유를 타서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는 우유를 못 마시니 두유를 한 번 타서 마셔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믹스 커피 한 잔을 타면서 두유를 엄청 많이 섞어서 마시니 단 맛이 거의 안 느껴지고 담백한 맛이 제법 괜찮게 느껴졌다. 


나는 아침과 점심을 안 먹는 날이 많아서, 저녁 한 끼만 먹는 1일 1식을 하는 편이다. 평소엔 점심을 안 먹어도 별로 지장이 없는데, 가끔 머리를 많이 쓴 날이나, 가끔 육체 노동을 한 날이면 오후에 좀 허전할 때가 있다. 그런 날에 이렇게 믹스 커피와 함께 두유를 섞어 마시니 점심 대용으로도 좋은 것 같았다. 이거 제법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점심을 거르고 일을 하다가 집중이 필요할 때 커피와 함께 두유를 타서 마셨다. 아직 매니저님께서 사두신 두유가 좀 있으니 한동안은 이렇게 계속 마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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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1-03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리기 거리를 미터가 아니라 킬로미터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두 분 다 프로시네요.
자전거를 세 번쯤의 연습으로 타신다면 훌륭합니다. 옆에서 동기부여 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되지요. 커피 좋아하지 않는 점은 참 좋은 점 같습니다. 건강을 위해 커피를 끊고 싶은데 그건 할 수 없겠더라고요. 자기의 기록에 도전하고 새로운 걸 배우며 사는 게 좋아 보입니다. 파이팅!!!

감은빛 2023-11-24 20:09   좋아요 0 | URL
페크님, 안녕하세요. 답이 좀 늦었네요.
보통 한 번 달리면 1~2킬로미터 달립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 기준으로는 적은 거리죠.

자전거는 첫 시도에서 어떻게 타긴 했는데,
말 그대로 그냥 탈 수는 있게 되었지만, 아직 제대로 타지는 못 했죠.

늘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가 않네요.
고맙습니다!

cyrus 2023-11-04 0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말에 평소처럼 삼시세끼를 먹지 않아요. 주말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날인데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하면 어느새 밥 먹는 시간을 놓쳐버려요. 밥 대신에 커피를 마실 때가 많아요.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혀가 심심하면 달콤한 맛이 나는 라떼를 마셔요. ^^

2023-11-11 0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3-11-24 20:12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반가워요.
밥 시간이라고 밥을 챙겨 먹는 사람들이 저는 좀 신기하더라구요.
배가 고프지 않으면 입맛이 전혀 생기지 않아서요.
그런데 아침과 점심을 안 먹는 습관이 길들어진 후로는
낮엔 배고픔을 거의 느끼지 못해서요.

저는 커피도 몸에 안 받아서 잘 마시지 않아요.
단 맛을 싫어해서 라떼는 거의 먹어 본 적이 없구요.
간혹 먹을 일이 생기면 그냥 아메리카노를 마시죠.

주말에 뭔가 집중하면 다른 일은 잊게 마련이죠.
시루스님의 멋진 글들 잘 읽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얄라알라 2023-11-11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향하는 삶을 사시는 감은빛님, 달리는 사람 감은빛님, 1일 1식 감은빛님.

근데 저는 그걸 지키기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ㅎ

감은빛 2023-11-24 20:15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님. 안녕하세요.
저도 저녁만 먹기 시작하기 전에는 낮에 배가 고프지 않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일단 한 번 시도해보시면 어때요?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탄수화물이 적게 들어가면 그만큼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되더라구요.

누구나 어려움이 있지요.
저도 얄라알라님께 부러워하는 점이 있고,
저만의 어려움도 많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선물


오늘은 큰 아이의 생일이다. 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았던 날이 눈에 선한데, 아이는 벌써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이제 어른이 다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 진통 주기가 짧아져서 병원에 문의한 후에 애들 엄마의 손을 잡고 천천히 병원으로 걸어가면서, "오늘 아이가 태어나면 시월의 마지막 날이 생일이 되겠네." 라고 이야기하며 가수 이용의 유명한 노래를 흥얼거렸었다. 나는 정말 숫자를 못 외우는 편이라, 가장 친한 친구들은 물론이고 부모님 생신도 자주 잊는다. 정말 외우기 쉬운 숫자로 된 내 생일도 가끔은 잊는다. 그런데 시월의 마지막 날인 큰 아이의 생일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어쩌면 이런 아빠를 둔 큰 아이의 전략은 아니었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가끔 한다. 작은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아이는 5월 2일에 태어났는데, 5월 1일인 노동절이 생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때도 손잡고 병원으로 걸어가면서 "어제 태어났으면 노동절이 생일이었을텐데. 그럼 내가 행사 때문에 생일을 못챙기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데, 잘 됐다." 이런 말들을 주고 받았기 때문에 작은 아이의 생일도 한번도 잊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는 내게 정말 소중한 보물이자, 태어나줘서 고마운 선물 같은 존재다. 어제 밤 자정을 막 지나 아이에게 축하의 문자를 보내며 지금껏 아이와 지낸 시간들이 영화 필름처럼 머리 속에서 상영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심하게 아픈 적도 없고,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특히 큰 아이는 첫째라 내게는 더 각별한 존재였다. 물론 둘째도 막내로서 내게 중요한 의미이지만, 맏이인 첫째는 철이 일찍 들어서 아빠를 잘 챙기는 편이고, 가끔 친구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오늘은 아이가 학교에서 늦게까지 실기 수업을 하는 날이라 못 만나고, 내일 저녁에 만나 생일을 축하하기로 했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빈 시간이 없이 일정이 꽉 찼고, 오후 워크숍은 약 4시간 동안 혼자 진행해야 해서 엄청 힘든 하루가 될 예정이다. 내일이 휙 지나가고 얼른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떠남


어제는 모친상을 당한 지인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올해 초에 어떤 수술을 받은 후에 갑자기 여기저기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병원에 오래 계시다가 잠시 퇴원해 계셨고, 곧 다시 병원에 가실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새벽에 돌아가셔서 임종을 지키지도 못 했다고 한다. 애써 웃음 짓는 그의 어깨를 쓸어주며,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흰머리 가득한 남자들이 껴안는 모습을 보면 주위 사람들이 당황할 것 같아서 참았다.


나를 비롯해서 내 주위에 참 독특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는 그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특이한 사람이다. 나도 무엇이든 의심하고 보는 편이고, 무엇이든 분석부터 하고 보는 편인데, 이 사람은 나보다 한 백배 정도 더 한 사람이다. 본인 주장이 너무 강한 편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참 안 듣는 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욕도 많이 먹고, 적을 많이 만드는 편인데, 본인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보인다. 나는 그래도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듣기 싫은 이야기도 들어주려 노력하고,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이해해보려고 노력도 하는 편인데, 이 사람에게서 그런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좀 이상하고 고약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이 사람이 참 좋은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가장 냉철하게 판단하고 이해하는 편이다. 그리고 옳은 주장을 펼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 성격 탓에 남들은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 말하지 못하는 일들을 시원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글을 참 잘 쓴다. 내가 이 사람에게서 가장 부러워하는 능력이다. 글을 쓰는데 좀 오래걸리는 것이 흠이지만, 다 쓴 글을 검토해달라고 가장 먼저 내게 보내는데, 읽다보면 정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지?


방금 말한 것처럼 그는 글을 쓰면 대게 제일 먼저 내게 봐달라고 보낸다. 이건 오래 전 그가 시민신문 기자였고, 내가 편집위원이었을 때부터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일인 것 같다. 신문 마감하는 날이면 그가 급하게 마무리한 기사들을 받아서 교정을 보느라 밤을 새곤 했었다. 편집위원을 그만 둔 후에도 가끔 그는 글을 봐달라고 연락을 해왔었다. 그건 그가 기자를 그만두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어제 장례식장에 한동안 앉아 있으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멀리 계셔서 자주 뵙지 못하는 부모님이 생각났고, 돌아가신 할머니와 외할아버지도 생각났다. 장례식장에 앉아 있으니 어쩔수 없이 기억 속의 다른 장례식장 모습들이 겹쳐졌다. 고등학생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 기간 내내 잔심부름을 하며 함께 있다가 장지까지 따라가서 운구를 도왔던 일이 제일 먼저 떠올랐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멍하니 장례식장 구석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역시 장례식 내내 멍하니 지내다가 화장장에서 화로에 관을 넣고 나서야 갑자기 울컥 감정이 솟구쳤던 기억도 났다. 그때 어머니께서 내 품에 안겨서 통곡을 하셨던 것도 함께 떠올랐다. 


장례식장에서 본 많은 지인들은 부모님의 죽음 앞에서도 대개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우리가 못 본 다른 시간에 아주 많이 슬퍼했겠지만.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을 때 애들 엄마는 바쁘게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렇게 슬퍼보이지는 않았다. 장례식 내내 함께 있었지만, 우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물론 마찬가지로 어디 다른 공간에서 혼자 울었을지도 모르지만. 재수없게 여길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 부모님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았다. 과연 나는 담담히 장례식장 앉아서 손님들을 맞아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상상했다. 인간은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헤어짐을 잘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젠가 아이들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오더라도 슬퍼하지마. 아빠는 갈 때가 되어서 가는 거니까. 절대 아빠가 너희를 떠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어쩔수 없이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니, 그대로 잘 받아들이면 좋겠어." 물론 쉽지 않을 일일 것이고 나 역시도 마음과 달리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아이들이 나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나는 삼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거의 죽을 뻔 했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했었다. 현대 사회는 워낙 많은 일들이 예상하지 못하게 벌어지니 우리 모두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야 하는 상황에 너무 쉽게 노출되어 있다.


이태원 참사와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오늘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다가 우연히 1999년 10월 30일 벌어진 인천 인현동 화재 사건에 대한 글을 읽었다. 당시 1층 고기집 손님들과 3층 당구장 손님들은 모두 무사히 잘 대피했는데, 유독 2층 호프집 손님들은 갇혀 있다가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56명이 죽고 78명이 큰 부상을 당했는데, 대부분이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당시 2층 호프집은 그 화재 7개월 전에 안전기준 미달로 영업 정지를 당했었는데,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으로 영업을 계속 해왔다고 했다. 그날은 학교 축제를 마친 고등학생들이 그 호프집을 가득 채웟다고 했다. 비상구도 없는 호프집은 창문들도 모두 석고보드로 막아두어서 유일한 탈출구는 출입문 하나였는데, 불이 나서 대피하려는 학생들을 주인이 못 가게 막았다고 했다. 술값을 내고 가라는 이유로 그랬단다.


예전에 이 뉴스를 흘려 들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몰랐는데, 정말 몰상식한 일이다. 게다가 이 고등학생들은 술집에 갔다가 죽었다고 오히려 손가락질을 당했다고 한다. 유가족들이 얼마나 큰 상처와 고통을 당했을 지 상상도 못할 지경이다. 나는 주말부터 계속 작년 이태원 참사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았었다.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전 국민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이태원 참사. 그런데 99년에도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유로 56명의 고등학생들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니! 


오늘은 할일이 많았는데도 마음이 심란하여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곳 알라딘에 들어와 다른 사람들의 글들을 읽다가 이 글을 쓴다. 내일 워크숍 준비 때문에 계속 머리 속이 복잡하지만, 나는 늘 임기응변에 강한 편이니, 내일의 나를 믿고 오늘을 그냥 보냈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거겠지.


공부만 하셨어요?


9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약 두 달 반 정도 주말마다 일정이 있다. 계속 주말을 온전히 쉬지 못해 피로가 많이 쌓였다. 일정이 계속 있다는 건, 그 준비를 위해 어마어마한 업무가 기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제나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늘 가장 바쁜 사람으로 언급되는 편인데, 이번 두어달은 정말 역대 최악으로 정신이 없이 지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 달 더 남았다. 죄다 중요한 일정들이고 잘 준비해야 하는데, 나는 늘 피곤하다는 말만 하고 있다.


10월 중순 어느 토요일에 동네 축제에 판매 부스와 체험 부스를 운영한 날이었다. 무대가 가까이에 있었고, 무대 스피커 음량이 너무 커서 부스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방문하는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데, 소음 때문에 자꾸 내 목소리가 지워져 계속 목을 많이 써야했다. 그래도 최근 후배에게 두성을 배운 것을 응용해 가급적이면 성대를 쓰지 않고 배 힘으로 목소리를 내려고 애를 쓰긴 했지만, 설명을 하다보면 목을 아예 안 쓸수는 없어서 금방 목이 가버렸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몇 주째인지 기억도 못할만큼 계속 주말을 못 쉬었기에 너무너무 피곤했다. 그날 우리 체험 부스를 방문했던 친한 언니들이 다들 내 얼굴을 보고 너무 피곤해 보인다고 한 마디씩 하셨다.


암튼 축제를 마칠 때쯤 짐을 정리하면서 손수레에 여러 박스를 쌓고 고무줄로 고정하고 있었다. 이런 손수레를 별로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고무줄을 어떻게 잘 묶어야 할지 몰라 조금 헤매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시던 매니저님이 내게 아주 약간 언성을 높이며 "이사님, 공부만 하셨어요?" 라고 물었다. 그러더니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서 아주 익숙하게 고무줄로 짐들을 고정시켰다. 아, 내가 이런 일에 너무 서툴러서 공부만 했느냐고 물었던 거구나. 하고 깨달았다.


사실 공구를 사용하거나, 뭔가 도구들을 사용하는 일을 별로 해보지 않았다. 매니저님의 말씀처럼 공부만 했던 건 당연히 아니고, 나도 막노동도 많이 했고, 이런저런 힘쓰는 일들을 많이 해봤는데, 도구 사용에 조금 익숙치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올해 초에 차를 구매한 후배가 가까이에 살고 있다. 업무 상 짐을 옮길 일이 많은데, 우리 법인은 차가 없고, 나도 차가 없어서 공유카 서비스를 이용하는 편이다. 그날은 근처에 비어있는 공유카가 없어서 후배에게 연락해 차를 잠시 빌렸었다. 저녁에 그 후배가 퇴근하면서 우리 사무실에서 차를 받아갔는데, 차 오른쪽 뒷바퀴 공기압이 낮다는 경고가 떴다고 했다. 나는 내가 운전하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 후배 집에 놀러 갔다가 생각난 김에 차 바퀴를 살펴보기로 했다. 주차타워에서 차를 꺼내 뒷바퀴를 보니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센서에서는 압력이 낮다고 나오니 타이어에 공기를 좀 더 넣어보기로 했다. 트렁크에서 전기에어펌프를 꺼낸 그 후배의 손놀림이 좀 많이 어설퍼 보였다. 차를 운전하고 관리한 경험이 적으니 그건 당연했다. 나는 예전에 차가 있을 때 손 펌프나 발 펌프를 주로 사용했었는데, 이런 전기식 펌프는 본 적이 없어서 그냥 뒤로 물러나 있었다. 한참을 후배가 애쓰는데, 전혀 해결이 안 되는 눈치였다. 그 전기펌프의 소음이 너무 커서 잘 몰랐는데, 공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계속 새고 있었다. 내가 자세히 보니 연결 부위를 끝까지 돌려넣지 않아서 생긴 문제로 보였다. 설명을 했는데도 그 친구가 잘 이해를 못 한거 같아서 내가 나서서 해결해줬다. 한번에 문제가 해결되었다.


내가 전반적으로 이런 류의 경험이 부족해 뭔가 고치는 등 손으로 하는 작업을 잘 하는 편은 아닌데, 차는 그래도 오래 몰았었고, 간단한 점검과 정비는 직접 했었기 때문에 경험이 있는 일은 또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공부만 해서 이런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심지어 나는 국민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공부를 열심히 한 경험도 별로 없는 사람이다. 공부를 잘했던 사람도 절대 아니고.


그 손수레의 고무줄 고정하는 방법도 매니저님이 보여주셔서 다음에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암튼 순하고 조용조용한 매니저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나한테 저런 말을 했을까? 생각할 때마다 웃음이 나는 재밌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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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1-01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월 마지막 날이 첫째 따님이 태어난 날이었군요 오늘 만나시겠네요 몇 시간 뒤에...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님이 숫자 기억 못하는데 두 따님은 기억하기 좋은 날 태어나서 잊지 않겠습니다 감은빛 님이 쓰신 것처럼 보물처럼 여기니 더 기억하는 거겠지요 사랑은 내리사랑이죠

사람은 다 죽고 그렇게 헤어지기도 하죠 그런 일을 평소에 생각하면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덜 슬플지... 많이 슬프지 않도록 평소에 잘 지내면 좋을 듯합니다 떠나는 사람이나 남는 사람이나... 그렇게 할 시간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군요 감은빛 님은 따님하고 지낼 시간은 만들기도 하시는군요 앞으로도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처음 하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못해도 한번 하면 다음엔 잘 하기도 하죠 감은빛 님 십일월 즐겁게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감은빛 2023-11-24 20:18   좋아요 0 | URL
와! 제가 이 댓글에도 답을 안 달았었군요.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두 딸아이의 생일만큼은
어떤 이유를 달아서라도 외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죠. 사랑은 내리사랑이니까요. ㅎㅎ

저 며칠 전에도 해외에서 만든 이태원 참사 다큐를 보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계속 우느라 멈췄다가 다시 보다가 또 울고 그랬네요.

늘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2023-11-03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24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