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근육


최근 친한 후배에게 들었던 말이다.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단지 보기에 좋은 정도로만 근육을 키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맨날 운동한다면서 의외로 힘을 잘 못 쓴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긴 지금의 내 상태는 그런 말을 들어도 반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긴 하다. 3년 전 교통사고로 오래 운동을 쉬어서 근육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후 가끔 근육을 회복해보고자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예전처럼 근육이 잘 늘지 않아서 포기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은 차라리 먹는 양을 줄여서 날씬한 몸매라도 유지해보려고 하는데, 이것도 나이 탓인지 쉽지 않다.


그래, 차라리 패션 근육이라도 좋으니, 그 정도 근육이라도 회복하면 좋겠다. 예전에 샤워 후에 내 몸을 보며 만족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노력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걸 잘 안다. 운동을 다시 열심히 해야 하는데, 나는 늘 일에 치여, 피곤하다고, 바쁘다고 운동을 미루고 있다. 가끔 미친듯이 운동을 할 때도 있는데, 젊었을 때처럼 근육이 성장하지 않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빠진다. 역시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923 기후정의행진 선전전


어제 저녁 퇴근시간에는 유동인구가 무척 많은 지하철 역 출입구에서 1시간 반 동안 피켓을 들고 선전전에 참여했다. 내 피켓을 보고 단 한명이라도 더 많이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할 수 있다면 1시간 반이 아니라 몇 시간이라도 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1시간 반 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더라. 가만히 서 있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고 지루했다. 1시간이 지나면서부터 급격하게 체력이 방전되고,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차라리 걸으면서 선전전을 하는 거라면 두시간이나 세시간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만히 서있는 것이 이렇게 힘들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래도 유동인구가 워낙 많은 곳이라 퇴근하는 인파가 한 무리씩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나와 피켓을 살피고 지나가는 시선을 느끼며, 저 분들 중에 10%만이라도 아니 1%만이라도 토요일에 거리에 함께 나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서 있었다. 거기 서 있는 동안 몇 가지 흥미로운 일들이 있었다.


#1

나와 동료들은 각 출구마다 1명씩 맡아서 출구에서 나오는 인파에게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을 찾아 서 있었다. 6시부터 7시 반까지 1시간 반이었다. 내가 처음 피켓을 들고 갔을 때부터 몇몇 분들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 대부분은 약속한 친구나 연인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유독 한 여성 분은 계속 나와 함께 그 공간에 남아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그 자리에 있었고, 40분이 지날 때까지 계속 함께였으니, 그 분은 최소 40분은 누군가를 기다렸던 것이다.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건, 어디서 산 것인지는 몰라도 작은 과자나 사탕, 젤리 등을 손에 들고 있었다. 어디 가방이나 봉투에 넣은 것도 아니고 불편하게 한 손에 여러 봉지를 쥐고 있었다.


그 시간에 만나는 것이라면 아마도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한 것일텐데, 저 군것질 거리들은 선물하기 위한 것일까? 아님 식사를 다 마치고 함께 나눠 먹기 위한 것일까? 가방도 메고 있던데, 왜 가방에 넣지 않고 40분 넘게 손에 들고 있었을까?


함께 그 공간에 서 있은지 30분이 넘어가면서부터, 저 분도 참 힘들겠다. 누굴 기다리는 건지 몰라도 왜 굳이 역 앞에 계속 서 있는 것일까? 어디 먼저 들어가서 전화나 문자를 남겨도 될텐데. 뭐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기다리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혼자 궁금해했다. 저렇게 오래 기다리는 사람은 과연 저 분에게 어떤 존재일까?


40분이 조금 더 지나서 마침내 그 분이 반가운 표정으로 맞이한 사람은 그 분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이었다. 친구? 아니면 가족? 얼굴이 닮지 않아서 직계 가족은 아닐 것 같았다. 아주 친한 친구일지도 모르겠다. 암튼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2

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곳이라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은 대체로 휴대폰을 쳐다보면서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와서 나를 비롯해 주위에 시선을 주지 않고 그대로 걸어 나왔다. 중년부터 어르신들은 대체로 나와 피켓에 한번씩 눈길을 주고 빠르게 스쳐갔다. 간혹 몇몇 어르신들은 글씨를 읽느라 혹은 내용을 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내 앞에 멈춰서서 한참을 쳐다보고 계시기도 했다. 간혹 남성 어르신들이 내 피켓을 쳐다보며 표정이 일그러질 때면 혹시라도 시비를 걸어오는 것은 아닐지 긴장이 되기도 했다. 만약 소리를 지르거나 시비를 걸면, 능청스럽게 대처해야지 하고 어떻게 답할지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도 했다. 


제일 눈에 잘 띄는 것은 사람들의 옷차림이었다. 정장과 캐주얼, 트레이닝 복 같은 간편한 차림과 아주 한껏 멋을 낸 원피스 같은 옷들이 끊임없이 눈 앞을 스쳐갔다. 사람들의 머리 스타일도 눈에 잘 들어왔다. 남성들은 대체로 짧은 머리, 물론 그 안에서도 아주 짧은 흔히 스포츠 머리라고 부르는 형태나 옛날말로 상고 머리라고 부르는 귀 주위와 뒷머리만 밀어 올린 형태 등 다양하게 나뉜다. 간혹 나처럼 남성인데도 긴 머리도 있었다. 여성들은 전반적으로 짧은 커트 머리나 단발 머리가 많았고, 긴 머리는 적었다. 


그 와중에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내 반대편에 조금 멀리 거리를 두고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단발머리에 체격이 크고 조금 살이 찐 몸매였다. 편한 트레이닝 복 상하의를 입고 신발도 크록스 샌들을 신고 있었다. 조금 거리가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실루엣만 보고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잘 구분하기 어려웠다. 처음엔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단발머리에 조금 살이 있는 몸매의 형태가 그렇게 보였다. 무엇보다 (이렇게 표현해서 정말 죄송하지만) 가슴 쪽에 살이 도드라져 보여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 분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가끔씩 눈길이 갔는데,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얼굴형이 어쩐지 남성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뭐, 남성이건 여성이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때는 좀 지루하기도 했고, 슬슬 허리도 아프고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해서 나도 모르게 그 분에게 자꾸 시선이 갔다. 한번 남성인 것 같다고 생각이 바뀌자 이젠 여성으로 보이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그 분이 반가운 표정으로 출구 쪽으로 다가왔다. 출구에선 인파에 섞여오던 한 여성 분이 그 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반갑게 껴안았고, 기다리던 그 분이 출구에서 나온 여성 분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뺨에 입을 맞췄다. 목소리가 들렸는데, 확실히 남성이었다. 여성 분은 세미정장 차림이었는데, 세련된 느낌이었다. 두 사람은 팔짱을 낀 채 저쪽으로 멀어졌다.


문득 누군가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나를 보고 저 사람 남자야? 여자야? 하고 궁금해하지 않을까? 몇 차례 남자 화장실에서의 에피소드도 있었고, 얼핏 보면 잘 알아채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나처럼 머리를 기른 남성이 많아지면 이런 편견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내 주위에 여러 명 있었다. 머리가 짧은 여성은 이미 충분히 많은 것 같았다. 이제 머리를 기른 남성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3

가끔 눈에 확 띄는 사람들이 지나가곤 했다. 키가 크거나, 몸매가 빼어나거나, 옷을 잘 입었거나, 얼굴이 잘 생기고 예쁘거나. 거기 서 있으면서 내가 워낙 눈에 띄지 않는 편이라는 점에 실망을 하게 되었다. 머리를 길렀다는 점 외엔 딱히 눈에 들어오는 외모는 아니다. 이럴 때에 내가 연예인처럼 외모가 빼어나다면 지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내 외모에 호감을 가지게 된다면 토요일에 거리에 함께 나서주지 않을까? 순간 내 외모에 대한 실망 아니 절망감이 들었다. 좀 더 키가 컸다면, 좀 더 체격이 좋았다면, 좀 더 얼굴이 잘 생겼다면 좋았을텐데. 뭐, 어쩌겠는가? 이미 이렇게 태어난 걸 이제와 무슨 수를 써도 어쩔 수 없는 것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한 여성 분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평범한 옷이 아니었다.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이나 입을만한 옷, 독특한 모양의 까만 원피스였다. 게다가 옷의 모양으로 보아 누구나 쉽게 소화하기 어려우리라 짐작했다. 어지간히 몸매에 자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옷이었다. 게다가 그 원피스의 길이가 무척 짧았다. 짧은 치마 아래로 늘씬하게 긴 하얀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일부러 보려고 쳐다보지 않아도 그냥 눈에 들어온 정보였다. 


나는 기후정의행진을 홍보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그 여성분을 눈으로 쫓지 않았다. 내가 그 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면, 나를 향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인파들 중에 상당 수가 내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 지 눈치챘을 것이고, 그 다음 순간 나를 향해 욕을 하거나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나는 일부러 그 방향을 보지 않으려고 몸을 돌리고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서던 한 중년의 아저씨는 그 여성 분을 쳐다보더니 눈을 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숱이 급격하게 줄고 있는 입장에서 무척 슬픈 단어이지만) 그 대머리 아저씨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면서도 그 여성 분을 눈으로 쫓았고, 다음 순간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하는 모습을 연출해, 그 자리에 함께했던 수많은 인파들에게 마치 한 편의 코메디를 보는 것 같은 장면을 제공했다.


아, 아저씨. 알아요. 누구라도 그럴 수 있어요. 나도 모르게 계속 쳐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이상한 변태 같은 마음을 먹어서가 아니라 그냥 저절로 눈이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요.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쳐다보면 안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어야죠. 아무리 눈이 가도 한번 봤으면, 이제 그만 쳐다보고 눈길을 돌려 계단을 인지하고 발을 디디셨어야죠. 곁에 동반자(아내나 연인이나 가족)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조심히 가세요. 


#4

가끔 그렇게 거리에 서면 아는 사람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예전부터 1인 시위, 선전전, 캠페인, 서명운동, 연설회, 기자회견 등을 하다보면 자주 아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어제는 내가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동료 활동가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가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나도 반가움에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그는 바빠서 그랬는지 자전거를 멈추지는 않고 손짓으로 수고하라는 의미를 전하며 멀어졌다.


그가 멀어지고 나서 또 아는 사람을 몇 명이나 더 마주칠지 예측을 해봤다. 유동인구가 워낙 많고 이쪽 동네에 아는 사람도 많아서 아마 두 세명은 더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러다가 다시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일부는 지금 다른 지하철 역의 다른 출구에 서 있구나 하는 사실도 깨달았다. 아, 그럼 또 아는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쉽지는 않겠네. 한참 시간이 지나서 일부러 나를 보러 온 선배 한 명을 만난 것 외에 다른 지인을 만나지는 못했다.


#5

그렇게 서 있으면서 몇 가지 감정이 들었다. 하나는 부러움이었다. 그 전철역 앞 출구를 약속 장소로 정한 사람들은 끝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들은 한결같이 약속한 사람을 만나 반가워하며 악수를 나누거나 포옹을 나누거나 심지어 뺨이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손을 잡고 혹은 팔짱을 끼고 혹은 어깨에 손을 얹고 사라졌다. 나는 그들이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하며, 나도 저렇게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저렇게 반갑게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두번째는 서러움이었다. 나는 배가 고팠다. 7시 반에 선전전을 마치면 피켓을 사무실에 갖다 놓고 서둘러 회의를 하러 이동해야 했다. 회의는 아마 9시 반은 되어야 마칠 것이다. 9시 반에 누군가 나와 함께 밥을 먹어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들 이미 저녁을 먹었을테니. 나는 그 시간에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어야 할까? 그 늦은 시간까지 일에 매여서 밥도 못 먹고 돌아다니는 내 팔자가 문득 서럽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나는 피로를 느껴고 허리 통증을 느꼈다.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 씻고 편히 쉴텐데, 나는 땀에 쩔은 옷차림으로 아직도 다음 일정이 남아 있는 이 상태라는 것이 서러웠다. 


마지막은 그래도 희망이었다.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 소수이기는 하지만, 나를 향한 눈빛에서 호감을 느낄 수 있는 분들이 있었다. 말로 전하지는 않았지만, "응원하고 있어요." 혹은 "고마워요. 함께 할게요." 라거나 "그날 만나요." 등의 의사가 내게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그래. 적어도 내가 이 피로와 허리 통증과 지루함을 감수하고 1시간 반을 서 있었던 것은 이 분들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서였어. 비록 부러움과 서러움의 감정을 다 메워버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피로를 이겨내고, 허리 통증 참으며 끝까지 시간을 채우고, 다음 회의 장소로 서둘러 이동할 정도의 동기를 만들어주었다.


내일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야겠다. 이번주 토요일 저와 데이트 하시지 않을래요? 거리를 맘껏 쏘다니며 소리도 지르고 몸짓도 해봐요. 자동차가 독점했던 아스팔트를 잠시나마 차지하는 특별한 경험을 함께해요. 수많은 사람들이 한 몸이 되어 함께 걷고, 함께 뛰며, 한 목소리로 외치는 신기한 경험을 함께해요. 9월 23일 오후 2시 세종대로에서 만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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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9-19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감은빛 2023-09-27 19:0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잉크냄새님. ^^

희선 2023-09-21 0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곳에 오래 서 있으면서 이런 저런 사람을 보셨군요 여러 가지 과자 사탕 젤리 들고 계시던 분 오랫동안 기다리셨네요 만나기로 한 사람 만나서 다행입니다 안 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누군가를 만나는 모습이 글 속에 있었네요 피켓 보고 뭔가 안 좋은 말이라도 하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 들 것 같아요 그런 사람도 없어서 다행입니다 감은빛 님이 하시는 일 거의 좋게 생각했겠지요


희선

감은빛 2023-09-27 19:0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희선님.
제 글을 읽으며 혹시 저 분이 기다리던 분을 못 만나면 어쩌나 생각하셨을까요?
평소 글과 댓글을 읽으며 희선님의 감수성이 무척 풍부하다고 느껴요.
제가 들고 있던 피켓을 보고 어르신들이 시비를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신거죠?
네, 그런 일이 없어서 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만나거든요. 막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사람이거나,
인상을 쓰며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들.

늘 고맙습니다! ^^
 


개인적인 기념일


지난 일요일인 9월 10일은 나에게 일종의 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는 날이 되었다. 전날인 9월 9일 토요일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두 세개의 행사를 동시에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날이었다. 무거운 짐을 나르기도 했고, 엄청 더운 날씨에 땀을 계속 흘리며 야외에 오래 서있기도 했다. 그 무더위가 아니었다면 그래도 좀 괜찮았을텐데. 더워도 너무 더웠던 토요일 오후에 태양열 조리기로 메추리알 300개와 계란 60개를 삶아서 나눠줬다. 혹시라도 날이 흐려서 준비한 재료들을 다 못 삶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와는 달리 아침부터 햇빛은 쨍쨍했고 정오가 되기 전에 이미 준비한 재료의 절반 가까이를 다 삶았다. 사람들은 간단한 원리로 이렇게 물이 끓고 계란을 삶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문제였다. 태양열 조리기의 가운데는 물이 끓을 정도로 온도가 높다. 잘못 손을 댔다가는 화상을 입는다. 나도 오랫동안 이 조리기를 사용하면서 몇 차례 가벼운 화상을 입기도 했었다. 뭣 모르고 달려드는 아이들을 말리기 위해 나는 그늘에서 쉬지 못하고 땡볕에 조리기 근처에 서있어야 했다. 아이들은 정말 빨랐다. 저 한참 떨어진 그늘에 있다가 아이들이 다가오는 걸 발견하고 뛰어오면 이미 늦었다. 암튼 그 더위에 그 땡볕에 오래 서 있는 일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해질 무렵이 되어 운영하던 부스를 철수하면서 1톤 트럭을 빌려와 짐을 싣고 옮긴 후에, 저녁 행사를 위해 그 장소에 다시 갔다. 저녁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이뤄지는 몇 개의 프로그램을 내가 준비했었고, 내가 섭외한 분들이 각각의 장소에서 동시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다른 누구에게 이 일을 맡길 수도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무거운 짐들을 또 옮기고, 사람들이 제 시간에 오는지 연락하는 등 일을 했다. 밤 10시가 되어 전체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에 또 참여해야 했고, 그렇게 하루 일과가 끝나는 10시 반쯤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진행팀의 테이블, 의자, 그리고 자잘한 짐들을 옮겨야 했다.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고, 무릎과 발목의 피로가 심각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거의 밤 11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육체가 아침 일찍부터 15시간 넘게 이어진 노동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었다. 현장에서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와서 남은 짐들을 정리하고 철수하는 사람을 정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이만 가야겠다고 의사를 표시하며, 죄송하지만 내일(일요일) 아침에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내일 아침에 육체노동을 하게 될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미 준비 단계에서 많은 역할을 했으니 좀 봐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암튼 그렇게 현장을 떠나 집으로 향하는데, 집까지 걸어가야 할 한 30분 정도의 거리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발이 무거워 자꾸 질질 끌렸다. 


마침 아까 저녁 때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친한 후배가 한 말이 떠올랐다. "만약 여기서 자야 할 상황이 되면, 밤 늦게 사람들 몰래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요.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서 돌아가면 모를 거 아냐?" 그러니까 여기 현장에서 잠을 자야 할 상황이라면 그리 멀지 않은 자기 집에 와서 편하게 자고 가라는 말이었다. 비록 현장에서 안 자도 되는 상황이어서 집에 가려고 했지만, 집이 너무 멀게 느껴질만큼 피곤했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배는 너무나 흔쾌히 어서 오라고 했다. 배 고프지 않냐고 묻길래, 배 고프다고 했더니 뭔가 만들어 놓겠다고도 했다.


암튼 그렇게 후배 집에서 하루 자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이었다. 멍하니 둘이서 티비를 보고 있다가 그 친구가 "뭐 할까요?" 묻길래, 나는 건성으로 "어디 놀러나 갈까?" 했다. 그 녀석이 몇 달 전에 산 차가 있는데, 아직 운전이 조금 서툴다고 할 정도라서 그 친구도 내가 옆에 타고 코치해주기를 바라곤 했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그 후배가 해준 맛있는 점심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한 동안 누워서 다시 티비를 봤다. 그러다 문득 "자전거를 배웁시다." 라고 하길래, "응, 그럴까?" 하고 자전거를 타러 이동했다.


나는 오십이 가까운 사십대 중반의 나이인데, 아직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릴 때 가난했던 우리 집엔 자전거가 없었고, 자전거를 타볼 기회도 없었다. 자전거 라는 물건은 나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것이라 저걸 못 타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후배들이 내가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걸 알고 놀려댔다. 나는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자꾸만 그 사실을 들먹이는 건 귀찮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배워야지 생각만 했다.


처음 환경운동을 시작한 건 아직 대학생이었을 때였고, 졸업과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환경단체의 지역 조직에 들어갔다. 그때가 2003년으로 20년 전이었다. 그해 봄 아직 신입활동가였을 당시에 선배 활동가가 내게 심부름을 하나 시켰다. 지하철 역으로 한 두세 정류장 정도 거리의 어딘가 사무실에 가서 서류를 받아오는 일이었는데, 자전거 위치를 알려주며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면 금방 갔다 올 거라고 했다. 나는 자전거를 못 탄다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그것도 못 하냐며 무시 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말을 멈췄다. 어쩔 수 없이 타지도 못하는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4층에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전거 라는 물건은 크고 무거운 것이구나. 골목에서 자전거를 타 보려고 시도를 했다. 비틀비틀. 양 발을 패달 위에 올리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패달을 밟아 앞으로 나가는 일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발로 자전거를 밀고 앞으로 가면서 계속 어떻게든 양 발을 패달 위에 올려보려고 애를 썼다. 비틀거리다가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넘어질 뻔 하다가 간신히 버티기도 하면서 골목을 나아갔다. 이대로라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서 심부름을 시킨 선배가 이상하게 여기겠다고 생각할 때쯤에 "어!" 우연히 양 발이 패달 위에 올라갔다. 비틀거리며 다시 넘어질듯 균형을 잃으려 할 때 나는 패달을 밟는데 성공했고,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갔다. 자연스럽게 다음 발이 패달을 밟았고,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갔다. "와! 이게 되네." 난생 처음 자전거를 탄 순간이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골목길은 차도와 만났다. 나는 이 비틀대는 상태로 차도를 건너거나 다른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지날 자신은 없었다. 마주 오는 차에 갖다 박거나, 옆을 지나는 사람을 덮치지 않을까 겁이 났다.


결국 나는 그 자전거를 끌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4층에 자전거를 돌려 놓았다. 나는 전철을 타고 심부름을 다녀왔고,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는 질문에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못 타겠더라구요. 다시 돌려놓고 전철로 다녀오느라 오래 걸렸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 봄날로부터 20년이 지난 올해 가을이 될 때까지 나는 단 한번도 자전거를 다시 타지 않았다. 타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배우려고 시도했을 때에도 아빠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르니 그냥 뒤에서 잡아주는 역할만 하겠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는 요령은 엄마나 다른 사람한테 배우라고 했다. 암튼 그렇게 자전거는 나와는 계속 인연이 없는 물건이라 여기며 살고 있었는데, 최근에 내 주위 몇몇 사람들이, 특히 친하게 지내는 후배들 몇 명이 자꾸만 내게 자전거를 배우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금방 배울 수 있다고, 얼른 배워서 자기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자고 권하곤 했다. 나는 약간 귀찮다는 투로 배울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곤 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달리기를 하자고 역으로 권하곤 했다. 그 중 한 후배는 내가 자전거를 배우겠다고 약속하면 자신도 달리기 모임에 들어오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무료한 일요일에 나의 자전거 이슈를 잘 아는 후배가 문득 권한 한 마디를 나는 거절하기 어려웠다. 결국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자전거를 타러 갔다. 앞서 달리기 모임과 자전거 배우기를 거래했던 후배도 마침 그 근처에 있어서 오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 두명은 자전거를 무척 잘 타는 사람들이었다. 양 손을 다 놓고 자전거를 타기도 했고, 나에게는 거의 서커스 같은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내게 자전거를 배우라고 종용했던 사람들에게 나는 계속 20년 전의 저 경험을 이야기하곤 했었다. 혼자 어떻게든 해보려고 한참을 비틀거리다보니 어떻게 타기는 했었다고. 그래서 두 사람은 내가 금방 배울거라고 예상했다. 내게 자전거를 앞으로 밀고 출발하면서 올라타고 양 발을 패달에 올리는 것까지만 해보라는 것이 첫 주문이었다. 나는 그냥 한 번에, 그러니까 첫 시도에 그 일을 쉽게 해냈다. 몰론 내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다. 약간 긴장한 상태로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어떻게 발을 올렸는지도 모르게 발이 올라갔다. 그 후로 그들은 방향을 바꾸는 법과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알려주고, 주차금지 콘 두 개를 세워놓고 그 사이를 8자로 계속 돌라고 시켰다. 시키는 것들을 어떻게든 해내기는 했지만, 그냥 앞으로만 가는 것과 방향을 틀고 자연스럽게 곡선으로 도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자전거 안장이 닿는 사타구니 부위가 생각보다 많이 아프고 불편했다. 아, 자전거는 서울시의 공용 자전거인 따릉이를 이용했다. 처음에 자전거나 배우자고 권유했던 그 후배가 1년 이용권을 내게 선물해줬다. 내가 아프다고 하니, 따릉이는 안장이 좋은 편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은 안장을 사려고 돈을 많이 쓴다고도 했다. 암튼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자전거를 탄 날이 되었다. 두 사람은 내가 생각보다 잘 한다고 칭찬하면서 불광천 변 자전거 도로를 달리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 불광천까지 가기 전에 사고가 날 것 같다고 자신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두 명 사이에 내가 달리면 괜찮을 거라고 두 사람이 앞 뒤에서 사고를 막아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시키는대로 두 명 사이에서 골목을 달렸다. 도중에 자꾸만 사람들이 나타나고, 차들이 나타났으며, 리어카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속도를 줄인 뒤에 한 발을 땅에 짚고 멈췄다가 가곤 했다. 아! 내가 드디어 제대로 자전거를 타는 구나 하고 약간의 성취감을 느끼며 패달을 밟다가 저 멀리서 한 사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앞선 후배가 속도를 줄이며 다가오는 사람을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길가로 붙어서 달렸다. 나도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르려고 했다. 속력을 줄이려고 뒷브레이크를 슬며시 잡기 시작했는데, 잘 잡히지 않았다. 나는 원하는대로 속력이 줄지 않아서 조금 당황하며 좀 더 힘을 줘서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여전히 속력이 그대로였다. 설마 그새 고장이라도 난 걸까?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해서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저 사람을 덮칠지도 몰라 라고 생각한 순간 나는 왼발로 땅을 짚고 멈추려고 했다. 그러나 멈추기엔 속도가 너무 빨랐던 자전거는 뒤집히듯 쓰러졌고, 나는 다가오던 보행자 앞에서 큰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후배들은 내가 한번도 넘어지지 않고 금방 자전거를 배워서 조금은 실망한 눈치였다. 아무리 금방 배우리라 예상을 했어도 이렇게 단번에 바로 성공할 줄은 몰랐던 듯. 한번쯤은 가볍게 넘어지는 연출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넘어짐은 그렇게 가볍지는 않았다. 땅을 짚은 내 왼손에는 작은 찰과상 두 개와 긁힌 자국이 생겼고, 무릎에도 작은 상처가 몇 개 생겼다. 금방 피가 배어나왔다. 그리고 너무 놀랐던 나는 넘어진 상태로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그 상태로 나보다 더 놀란 마주오던 그 보행자에게 "죄송합니다!" 하고 여러번 사과를 했다.


불광천까지 가려던 시도는 이 사고로 인해 중단되었다. 우린 갑자기 배고픔을 느꼈고, 마침 근처였던, 어제 내가 하루 묵었던 그 후배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마지막에 혼자 넘어지는 작은 사고를 겪긴 했지만, 어쨌든 자전거를 배우겠다는 시도는 대성공이었다. 따릉이를 반납하기 위해 다시 자전거를 타보니 브레이크가 고장난 것은 아니었다. 아까 그 순간 내가 긴장해서 실수했던 거였다.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는 성공했으나, 여전히 자전거를 몰고 도로를 나가거나, 사람들과 차량이 많은 곳을 달리는 일은 어렵겠다. 이건 달리 말하면 아직 자전거를 탄다고 말할 수 없는 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한동안 달리는데 성공한 날이라는 의미로는 어느 정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십이 가까운 나이에 평생 자전거를 못 탔는데, 단번에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다니. 이 정도면 기념일이라고 여길만 하다고 생각했다.



대중교통 인상과 기후동행카드


기후위기의 주 원인은 온실가스이고,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행위는 화석연료를 태우는 일이다. 주요하게는 석탄화력발전소가 있고,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이 있다. 자가용의 이용은 기후위기를 심화시킬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기후위기 대응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자전거와 대중교통 이용이다. 얼마 전에 서울시는 대중교통 요금을 인상했다.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하기 위해 요금을 인하하거나 무상교통으로 가지는 못할 망정, 요금을 올리겠다는 발상이 이 기후위기 시대에 가능하다니!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현 서울시장의 행보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기에 뭐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그런데 이번에는 서울시가 내년부터 기후동행카드라는 정액권을 판매하겠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그런데 그 정액권의 가격이 정액권이라고 부를 수준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아니 이게 애들 장난도 아니고 가격 할인 혜택이 거의 없는 걸 정액권이라고 부를 수 있나? 거기다 '기후동행'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놓았다. 적어도 이 이름을 쓰려면 지금 가격의 절반 이하로 판매해야 어울릴 것이다. 게다가 경기와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의 다른 지역들과는 연계해 사용할 수 없단다. 이미 수도권은 출퇴근으로 다 연결되어 있어 서울 안에서만 통용되는 대중교통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정액권을 팔려면 어떤 방법으로든 경기도와 인천을 연결해야만 한다.


이름만 거창하고 실속이 전혀 없는 것을 우리는 빛 좋은 개살구 라고 부른다. 이건 아마도 시민들을 농락하고 우롱하려는 처사일 것이다. 우리 시민들은 이런 일에 분노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해야하겠지.


마침 다가오는 9월 23일 토요일에는 세 번째로 기후정의 행진이 열릴 예정이다. 이날은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정부 차원의 기후대응을 촉구하고, 이번 서울시 대중교통 정액권과 같은 그린 워싱을 비판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을 그날 거리에서 뵐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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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9-15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20대에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배웠어요. 넓으니 다칠 걱정이 없었죠. 원리를 알게 되니 쉽더라고요. 자전거가 균형을 못 잡고 넘어질 것 같으면 페달을 세게 밟으며 속도를 내서 달리면 저절로 균형이 잡힙니다. 반대로 천천히 가면 자전거가 쓰러져요. 여행지에서 자전거를 탈 기회가 있었는데 오랜만이라 겁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자전거 의자에 앉자마자 잘 타더라고요.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걸 그때 경험했어요. 뭐든 배워두면 몸이 기억하는가 봐요. 저도 한 손으로도 자전거를 타요. 한손으로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탔던 기억이 납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은빛 2023-09-19 19:03   좋아요 1 | URL
페크님은 20대에 자전거를 배우셨군요.
저도 이 글에 썼던 신입활동가 시절이 20대 중후반이었어요.
그때 배웠으면 좋았을텐데, 20년이 지나서 다 늙어서야 배웠네요.
아직은 서툴지만 자꾸 타다보면 또 익숙해지겠지요.
그때는 페크님처럼 한 손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겠지요. ^^

우끼 2023-09-16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923에서 뵈어요!

감은빛 2023-09-19 19:01   좋아요 1 | URL
네, 우끼님. 토요일에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인류 전체를 상대로 한 범죄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이 지난 8월 24일부터 방사성 오염수 투기를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자꾸 '방류' 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물이나 액체를 정상적으로 내보내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고, 일본 정부가 방사성 물질로 오염된 폐기물을 불법으로 버리는 행위는 '투기'라고 표현해야 한다. 이는 명백한 범죄행위이고, 이를 막지 못하는 현실이 한 편의 블랙 코메디처렴 여겨진다. 아, 이에 대해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비판 글을 적을 수 있지만, 이미 여러 차례 성명서 초안도 쓰고, 논평 초안도 썼지만, 그걸 여기에 반복하는 일은 그닥 의미가 없으리라.


24일 방류 시작 소식을 접하고 그 다음날인 25일까지 허무함과 무력감이 정말 컸다. 일에 대한 아무 의욕이 없었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계속 멍하니 뉴스만 찾아보고 있었다. 이제는 오래 전 일이 되어버린 새만금 반대 투쟁과 고속철도 반대 투쟁이 떠올랐다. 정말 치열하게 싸웠는데, 명분도 있었고, 과학적인 근거도 있었는데, 두 국책사업은 모두 고 노무현 대통령 임기 때 폭력적으로 추진되었다. 내가 굳이 노무현 이란 이름을 올린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이 두 국책사업을 모두 원점에서 재검토 하겠다고 공약을 냈으나, 임기 첫 해에 그 공약을 어기고 그대로 추진했다는 점을 기억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누구나 다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인정하는 그가 바로 환경 분야에서는 최악의 대통령이었다는 점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암튼 그때 현장에서 묵묵히 일했던 무명의 활동가였던 나는 그 두 사업이 결국 추진된 후에 엄청난 무력감과 우울증에 빠졌다. 환경운동이라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구나. 내가 죽어라 열심히 일해도 자연은 이렇게 쉽게 무참히 파괴되고 마는구나. 이런 무력감 때문에 한동안 아무것도 제대로 열심히 할 수 없었다. 잠시 환경단체 일을 그만두고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학원 강사로 취직해서 영혼 없는 기계처럼 단순한 일상을 반복하며 일했었다.


한 선배가 최근 내게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라] 티셔츠를 선물했다. 동네에서 [수라] 공동체 상영을 준비할 때 나도 참여했었는데, 정작 나는 영화를 보지는 못했다. 그 시간에 내가 매장을 보고, 후배 활동가에게 영화를 보라고 했다. 암튼 내게 티셔츠를 선물한 그 선배는 내게 새만금 투쟁 당시에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이 입어야 할 옷이라며 그 옷을 건넸다. 그 옷을 받아들고 보니 삼보일배를 비롯해 목숨 걸고 방조제 공사를 막기 위해 피, 땀, 눈물을 흘렸던 여러 순간들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그 무력감, 패배감, 우울감이 뒤따라 왔다.


최근 페이스북을 보니 친분이 있는 한 활동가가 24일에 짧은 글을 하나 올렸다. 매년 그렇듯 오늘도 여러 분들께 많은 선물을 받아서 감사하다고 적은 후에 그런데 하나 자신을 충격에 빠뜨린 선물이 있었다고. 하필 오늘이냐고, 일본 방사능 오염수를 언급했다. 그렇구나. 그 날은 누군가의 생일이거나 기념일 일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즐거운 날에 이런 소식을 접했다면 그 기분은 과연 어떨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오염수 투기는 이제 막 시작했고, 아직 절망할 상황은 아니다. 앞으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투기를 중단시켜야 할 일이다. 일본 정부는 30년을 말했지만, 어림도 없는 말이다. 저 30년은 수소폭발이 일어났던 4기의 핵발전소를 폐로 시킨다는 가정 하에 나온 기간이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저 4기를 정상적으로 폐로 시킬 수 없다. 할 수 있었다면 벌써 했을 것이다.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현실을 누구보다 자신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이대로 오염수 투기를 계속 묵인한다면 아마 100년? 아니 300년이나 500년이 걸릴지 장담하기 어렵다. 현재 인류의 과학기술로는 저 치사량에 가까운 방사능 피폭을 감수하고 데브리(녹아버린 핵 연료봉)를 처리할 방법이 없다. 100년 후에는 과연 가능할까? 글쎄 장담할 수 없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강의할 때 자주 쓰는 내용인데, 86년 체르노빌 사고 때는 단 1기의 핵발전소가 터졌다. 터져버린 건물을 콘크리트로 다시 막는데 6개월 이상이 걸렸지만, 결국은 막긴 막았다. 그 임시로 막은 콘크리트가 수명을 다하니, 다시 다른 좀 더 견고한 구조물을 덧씌워서 어쨌든 방사능 물질이 새어나오지는 않도록 막았다. 그러나 후쿠시마는 4기가 터졌고, 사고가 난지 12년이 지나도록 터진 건물을 막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 폐허 속에서 데브리가 어떤 상태인지 조차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 하고 있다. 지금도 그 터진, 그러니까 열린 건물에서 데브리로부터 뿜어 나오는 수백가지 방사능 물질들이 공기 중으로 나오고 있고, 지하수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그 중 지하수만 따로 모아둔 것을 두고 저장 용량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며 바다에 버리겠다는 것이다.


바쁜 와중에 이렇게 글이라도 써야 그래도 조금은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잠시 짬을 내서 두드린다. 이제 일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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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8-28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것을 적극옹호하는 우리 윤ㅅㅂㄹ 정부 때문에 더 화나고 무력감에 빠집니다!
글로 푸시고 기운 내시길요!

감은빛 2023-09-11 15:57   좋아요 1 | URL
참! 할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그걸 다 풀어놓을 여유가 없네요. ㅠㅠ

단발머리 2023-08-28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방류되는 시간에 친구가.... 친구야... 방류 시작됐대.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하니.... 하는데 정말 할말이 없더라구요. 방류를 막기 위해 애쓰던 분들의 절망과 탄식이 마음에 사무칩니다.
서명하는 일 말고 또 무슨 일을 해야하나. 또 거리로 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좀 무겁습니다.
감은빛님 글 읽어서 위로가 되고 또 걱정도 되구요 ㅠㅠㅠㅠㅠ

감은빛 2023-09-11 15:58   좋아요 0 | URL
뭐든 해야하겠지요.
거리로 나가기도 하고, 온라인 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있을 것이구요.
이번 9월 23일(토) 기후정의행진에도 꼭 참여해주세요.

잉크냄새 2023-08-29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가장 웃기고 슬픈 반응은 4년 동안은 이상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외로 많다는 겁니다.

감은빛 2023-09-11 15:59   좋아요 0 | URL
그 4년 후에는 어디 이민이라도 가실 생각인지? ㅎㅎㅎㅎ
말씀처럼 웃기고 슬픈 반응이네요.
제 주위엔 벌써 해산물 안 먹는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yamoo 2023-08-31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한 범죄입니다. 헌데 이 방류가 잘못됐다고 언급하면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보수들은 좌파로 몰아가더군요.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입니다..ㅎㅎ

감은빛 2023-09-11 15:59   좋아요 0 | URL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잘 못 정립되었지요.
원래라면 보수인 민주당이 진보라고 불리니 말이죠.
 
언더커버 브로맨스 브로맨스 북클럽 2
리사 케이 애덤스 지음, 최설희 옮김 / 황금시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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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이라고 되어 있는데, 1편은 안 읽고 이 책만 읽었다. 잘 생기고, 몸도 좋고, 돈도 많고, 유명한 남성들이 모여서 로맨스 소설을 읽는 북클럽이라니! 뭔가 무척 비현실적인 느낌이 드는데, 주인공인 남성을 제외하면 나머지 멤버들은 비중이 거의 없다. 주인공 남성의 친구이자, 주인공 여성의 형부인 사람만 조금 자주 나오고, 나머지는 등장하는 장면이 별로 없다 보니 이름을 외울 기회도 별로 없다. 거의 맨 마지막에서야 본명이 나오는 '러시아인'으로 불리는 사람이 그나마 확실하게 개성이 있게 그려져서 기억에 남을 뿐이다.


남성들이 삶의 태도와 연애에 대해 로맨스 소설에서 배웠다는 내용이 좀 공감이 되지 않았다. 중간쯤에 이 북클럽 멤버로 합류하게 되는 전직 경찰 할아버지가 로맨스 소설을 읽은 이후로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퉁명스럽게 대하기만 했던 할머니와 잘 풀려서 성공적인 연애를 하게 된다는 내용도 그럴 수 있겠지만, 크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책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게 꼭 로맨스 소설로 한정된다는 점이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면 나는 로맨스 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소설을 그리 많이 읽지 않았다. 어느 장르나 로맨스는 있을 수 있다. 추리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에도 로맨스는 들어가곤 하니까. 내가 읽은 책들 중에 로맨스 소설로 분류할만한 책이 뭐가 있을까 떠올려보니 아주 어릴 때 읽었던 그 유명한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와 [닥터스]가 생각났다. 닥터스는 정말 재밌게 읽었고 아마 3번 인가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 소꼽친구와 의사 놀이를 하는 도입부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이 책의 큰 줄거리는 주인공 여성이 티비에도 출연하는 유명한 음식점 사장의 직원 성폭행을 목격하고 그 사장에게 죗값을 치르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지지부진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이걸 하기 위해 주인공 남녀가 협력한다는 내용인데, 막판까지 거의 하는 일이 없다. 그저 두 사람의 밀당만 계속 이어진다. 밀고 당기고, 밀어내고 다시 당기기를 반복한다.


두꺼운 책의 분량에 비해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이 너무 없다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의 밀도가 좀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긴장감도 그닥 없다. 저 악덕 사장을 응징한다는 스토리가 긴장감이 없으면, 주인공 남녀의 연애라도 긴장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못 해냈다. 두 사람의 티격태격 밀당은 이어지지만, 결국은 잘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긴장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마지막까지 읽은 이유는 저 악덕 사장을 어떻게 응징하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거 하나 보려고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었는데, 그것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사실 다 떠나서 이 부분만 기막히게 잘 그려냈다면 점수를 후하게 쳐줄 수 있었을텐데.


주인공 여성이 지금까지 악덕 사장에게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던 사람들을 찾아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과정도 전혀 설득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 여성과 그 언니 그리고 농장 할머니는 아주 입체적인 캐릭터로 잘 그렸다고 생각하는데, 그 외 다른 인물들은 너무나도 평면적이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주인공 여성의 친구이자 이전 식당에서 잠깐 같이 일했던, 그리고 지금은 자기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너무 작위적이란 느낌이서 감정 이입하기 어려웠다. 절대적인 악인으로 그려지는 악덕 사장은 또 어떤가? 너무나도 나쁜 면모만 드러낸다. 실제로도 그런 사람이 분명 있을 수 있지만, 현실이라면 그런 사람도 어쨌거나 다른 면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주인공 남성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뒤쪽에서 약간의 반전 같은 역할을 하는데, 그 임팩트가 너무 약하기도 하고, 그게 뭐 어때서? 왜? 뭐가 문제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겨우 그 정도 일로 왜 다들 난리인거야? 싶기도 하다. 아니 물론 현실이었다고 해도 그런 이야기가 그리 쉬운 이야기는 물론 아니겠지만, 누구나 그런 과거 한 두개 쯤은 숨기고 살고 있는 거 아닌가?


암튼 이래저래 좋지 않은 평을 잔뜩 남기게 되었지만, 그래도 읽는 동안에는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1편이 궁금해졌다. 과연 1편은 2편 보다는 재미있을까?


아, 연애 소설을 읽고 나니 최근 친한 사람들과 나눈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최근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 중 거의 절반은 이혼한 사람들이다. 일부러 그렇게 만나려고 한 것도 아닌데, 공교롭게도 그렇게 어울리게 되었다. 나머지 절반 정도는 나이는 중년에 접어들었는데 아직 결혼을 안 했거나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현재 연애 중인 사람이 한 명도 없네. 하긴, 연애 중인 사람이라면 연인과 시간을 보내느라 나하고 자주 어울리지 못 하겠지만. 얼마 전에 이 사람들이 전복을 싸게 구매해서 전복 파티를 열었다. 그 자리에 8명이 있었는데, 나를 포함해 4명이 이혼한 사람들이었고, 3명이 미혼이었다. 딱 한 명만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분을 10년도 훨씬 넘게 알고 지내지만, 어떻게 보면 이혼만 안 했을 뿐, 이혼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암튼 그 자리에서 여러 의견들이 많이 나왔는데, 결국 안 하는 것 보다는 해보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났다. 연애도, 결혼도 그리고 심지어 이혼도.


그리고 또 다른 자리에서 실연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눌 기회도 있었는데, 친한 후배 하나가 자신은 평생 단 한 번도 연애를 해 본적이 없어서 실연의 아픔도 겪어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했다. 정말? 40대 중반의 나이에 한번도 연애를 못 해봤다고? 아니! 짝사랑이라도 해 본적이 있을 것 아닌가? 암튼 순간적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저 앞에 얘기한 것처럼 안 해보는 것 보다는 해보는 것이 낫다는 시각이라면 실연의 아픔도 안 겪어 본 것보다는 겪어 보는 것이 더 좋은 것일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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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18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 들어와 위로 슥슥 올리면서 이 책 표지 보고 아니, 알라딘에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어? 했는데 감은빛 님이네요 ㅋㅋㅋㅋㅋ

감은빛 2023-08-21 16:1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서 페미니즘 입문서라고 언급하셔서 열심히 읽었는데, 제게는 그런 느낌은 별로 없었어요. 분량에 비해 좀 헐거운 구조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좀 더 짜임새 있는 구성이었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단점을 계속 지적하긴 했지만 읽는 동안 재미는 있었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3-08-19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책이든 영화든 순서를 바꾸어 보는 게 재밌어요. 중간에서 끝까지 보고 나서 처음부터 보는 거죠. 그러면, 아, 저렇게 만난 사이구나, 그땐 사이가 좋았구나, 이런 걸 알아가면서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된답니다. 소설을 재독할 경우, 초반부를 다시 볼 때도 새로운 걸 알게 돼서 재밌어요.
당연히 실연의 아픔도 겪어 봐야지요. 그래야 마음의 근육이 생길 것이고 정신적 성장도 할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이고...

감은빛 2023-08-21 16:15   좋아요 1 | URL
네, 페크님. 순서를 바꿔보는 재미가 있죠.
재독할 때는 정말 이래저래 순서를 바꿔보는 것도 재미있더라구요.
저는 아무 페이지나 막 펼쳐서 읽는 버릇이 있는데,
처음부터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어요.

인생은 정말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겪지 않아도 될 경험이란 것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이런저런 인생의 쓴 맛들, 슬픔과 아픔과 괴로움을 겪어봐야
그에 반해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희선 2023-08-20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덕 사장을 혼내주는 게 시원치 않군요 그런 모습이라도 시원하게 나왔으면 나았을 텐데... 저도 로맨스라고 하는 건 거의 안 봤어요 다른 책에 그런 게 조금 나오기는 하지만, 그럴 때는 두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기도 하네요

이런저런 경험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못하면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 제가 못하는 게 많아서 그러네요

감은빛 님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감은빛 2023-08-21 16:17   좋아요 0 | URL
희선님. 맞아요. 작품 속 악당을 제대로 응징했다는 느낌이 안 들어서 좀 많이 아쉬웠어요. 글에도 썼지만, 그것만이라도 잘 했다면 적당히 괜찮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아요.

늘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회의에 불참한 죄


지난 주에 지역에서 일본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투기 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획단에 들어가 몇 차례 회의를 함께 했다. 언제나 이런 류의 연대 단위 모임에 참여하면 가장 적극적으로 챙기는 사람들이 있고, 이름만 걸고 되도록 역할을 맡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워낙 이미 맡고 있는 일이 많은데 이런 류의 회의에 갈 때마다 또 일이 생겨서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한 발 빼려는 입장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큰 역할들을 자처하면 나는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을 가져가는 편이다.


이번에는 준비 단계 회의에는 빠짐 없이 참석했지만, 행사의 얼개를 짜는 중요한 회의 때 발전소 건으로 빠질 수 없는 일정이 생겨서 회의에 불참했다. 그 다음날 회의 결과를 보니 나에게 행사 전체를 진행하는 사회자 역할을 맡겼더라. 역시 회의에 빠지면 이런 역할을 떠맡게 된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나중에 이 행사를 준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분이 전화를 해서 결과를 다시 알려줬다. 회의 참석자들이 만장 일치로 나를 추천했다고. 사회를 그렇게 잘 보신다면서요? 라고 능청스럽게 묻더라. 내가 사회를 보면서 굉장히 어버버 했던 기자회견이 있기도 했고, 또 나름 잘 봤다고 자부할 만한 기자회견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그렇게 잘 본다고 소문날 수준은 절대 아니라서 당연히 과장이고 능청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뭐 회의에 빠진 죄이기도 하고, 다른 분들은 준비 단계에서 또 다른 역할들을 맡을텐데, 나는 당일 진행 정도는 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연쇄 수소폭발 사고에 관한 건은 내가 강의에서도 자주 다루는 내용이고, 지속적으로 정보들을 모으는 주제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번 알프스 성능과 삼중수소 논란 국면에서 과학과 괴담이라는 흑백 논리로 여러 논쟁이 불 붙었을 때 흥미롭게 양쪽 논리를 하나씩 따라잡으려 애쓰기도 했다. 또 이 주제로 여러 사람들과 충분히 여러 차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왕 무엇인가 역할을 맡을 거라면 사회자 역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전체 준비를 총괄하는 담당자가 사회자 대본을 알아서 써달라고 하길래,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굳이 대본까지 쓰지 않아도 적절하게 필요한 내용을 끄집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행사 당일,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나는 일부러 내 목소리 톤을 높여서 활기찬 모드로 내 마음가짐을 바꿨다. 나는 종종 강의할 때, 노래를 부를 때, 이렇게 행사를 진행할 때 마이크를 잡으며 나 자신의 모드를 바꾸곤 한다. 이번엔 좀 활기차면서도 힘있는 진행이 필요한 순간이니 그에 맞는 마음 가짐으로 바꿔 세팅하는 시간을 가졌다.


발언자들의 발언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기도 하고, 강조점을 다시 짚어 보기도 하고, 어떤 단어나 표현을 되새기는 등이 진행자가 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이다. 그래서 발언자의 발언을 누구보다 주의 깊게 잘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에 걸맞는 이야기나 소식 등으로 환기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지루하지 않게 구호도 외치고, 농담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날은 거의 최고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적절하게 진행을 이어갔다.(적어도 내 생각에는) 딱 두 번 정도 특정 단어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서 조금 당황하긴 했는데, 그냥 잘 넘겼다.


행사를 마치고 여러 선배들이 수고했다고, 잘 했다고 칭찬들을 해주셨다. 이 날 칭찬을 제법 많이 받았는데, 나와 그리 친하지 않은 분들도 일부러 와서 아는 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 선배가 마이크를 쥔 내 손이 떨렸던 점을 지적했다. 나는 강의를 하다가, 노래를 부르다가 마이크를 쥔 손이 떨리는 일을 종종 겪는다. 그 선배가 지적한 것처럼 목소리는 전혀 떨리지 않았는데, 손은 자주 떨린다. 이게 수전증이 아닌가 의심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갑자기 문득 손이 떨리는 건 내가 적절한 긴장과 흥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아까 약간 활달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드를 바꿨다고 표현했는데, 손이 떨리는 건, 이 일부러 바꾼 모드를 유지하기 위해 긴장과 흥분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걸 스스로 느꼈던 것은 사실 최근의 일이었다. 예전에 강의를 갔다가 듣고 계신 어르신들께서 너무 지루해 하시길래, 일부러 목소리 톤을 바꾸고 진행 방식도 완전히 바꾼 일이 있었다. 질문도 많이 하고, 어르신들의 질문과 답변과 지적 같은 것들에 적절하게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면서 좀 더 참여자들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준비된 내 강의 내용 중간 중간에 이런 방식을 끼워넣곤 한다. 그런데 이 방식은 생각보다 에너지를 많이 쓰고, 그 적절한 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긴장감과 약간의 흥분이 필요했다. 거기에 나를 맞추다보니 목소리는 차분한데 몸이 떨리거나 손이 떨리더라.


노래방에서도 자주 그랬다. 거의 가수나 마찬가지인 지인들 사이에서 한동안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며 아주 많이 불러서 자신 있는 노래만 한 두개 선택해서 부르곤 했는데, 그게 스스로도 참 못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두성을 배웠고, 조금 자신이 생겨서 힘있게, 자신있게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때 내 목소리가 아닌 두성으로 만들어 낸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려면 몸이 떨릴 정도로 힘을 써야 했다. 손이 떨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래서 강의 중에 문득 내 손이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그 날 강의는 잘 된 것이라고 여긴다. 대체로 참여자들의 평도 좋은 경우가 많다. 지난 주에 그 기자회견 사회를 보다가 손이 떨린 것도(실은 몸도 떨렸었다.) 그런 맥락이었는데, 그걸 지적한 선배에게 이 내용을 다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언젠가 설명할 날이 오겠지.



아는 척


가끔 보면 세상 만사를 다 아는 것처럼, 어떤 일이던 자기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잘난 척 설명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약팍하게 얕은 지식만 가졌을 뿐이면서 다 아는 것처럼 구는 태도를 보면 황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어쩌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만약 나라면, 부끄러워서 절대 저렇게 뻔뻔하게 굴지 못할 텐데.


그런 류의 사람들이 일이나 시사 상식 같은 내용에 대해 그렇게 잘난 척을 하면, 그건 그 정도로 들어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아주 틀린 말이 아닌 때들도 있고, 꼭 그 말이 다 맞지는 않다고 해도, 들어줄 만한 수준인 경우들이 있으니까. 일에 대해서도 내가 참고할 만한 어떤 정보 수준으로 참고 들어줄 수 있다. 분명한 건, 내가 그들보다 훨씬 더 일을 잘 한다는 사실이고, 그건 주위 사람들의 태도로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정말 못 참겠는 경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자기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할 때이다. 그러니까 '갑' 이라는 어떤 사람에 대해 '을'이라는 사람과 '병'이라는 사람이 대화하는데, 그 을과 병 두 사람이 아무리 친해도 갑의 삶에 대해 전부를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 그 전제를 깔고 대화를 해야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을은 단정적인 말투를 쓰는 버릇이 있고, 평소 자신이 갑에 대해 많이 안다고 믿는 편이며, 갑의 여러 말투와 행동들이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믿고 있고, 그 내용을 여과 없이 병에게 전한다. 듣는 병은 생각한다. 을이 아무리 갑과 친하다고 해도, 을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면을 자신이 알고 있는데, 을의 주장과는 맞지 않는 면이 많은 것이다. 게다가 을이 자주 쓰는 그 단정적인 말투는 자꾸 거슬린다. 을이 본 갑의 어떤 면과 병이 본 갑의 어떤 면은 분명히 다르고, 각자가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르다. 을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을의 시선에서 본 갑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결코 갑의 전체라고 환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병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대화 자리에는 없지만, 정 이라는 사람과 무 라는 사람이 본 갑의 모습도 또 다를 것이다. 물론 비슷한 어떤 면을 발견하고, 비슷한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다. 그것이 갑의 개성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면이 갑의 전부라고 말하기에는 성급한 것이다.


이를테면 갑의 가족인 자 라는 사람과 축 이라는 사람이 있다면 이 두 사람이 알고 있는 갑의 모습은 을이나, 병이나, 정이나, 무와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같은 가족이라도 갑의 부모가 보는 모습과 배우자가 보는 모습과 자녀가 보는 모습은 또 천차만별일 수 있다.


최근 한 선배가 또 다른 선배와의 작은 갈등을 이야기하면서 너무나도 단정적으로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는 아마도 다른 자리에서 나에 대해서도 그럴 것이다. 아니 실제로 그런 일은 여러 번 있었고, 그런 일화들이 나중에 시간이 지나 내 귀에 들려오기도 했다. 암튼 그 사람이 표현한 그 단정적인 내용은 내가 보기에는 촛점이 맞지 않는 다른 이야기였다.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이 사람이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겉으로만 보고 오해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그 자신은 본인이 그 사람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고 오판한 것이고, 그런 오판은 자만심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였다면 그 사람이 내게 했던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행동이나 말만 전달하면서 그 사람이 혹시 이런 이유로 나에게 이런 일을 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물었을 것이다. 비난하듯 단정적으로 표현한 그 선배의 태도와 내가 조심스럽게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접근하는 내 방식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도 예전에 좀 어리고, 생각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저런 실수를 가끔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제 정신이 박힌 상태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실수다. 어떤 이유로 분노가 극에 치달았거나, 어떤 다른 감정이 극한에 도달했다면 어떨지 모르겠다.


최근 한 지인이 이혼 소송 때문에 무척 힘들다고 내게 개인적인 상담을 해왔다. 내가 벌써 이혼한 지 7년이나 되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분은 내가 부럽다고 했다. 이혼 후에도 아이들과 잘 지내는 모습, 이혼 하고도 계속 교류하고 일상에 크게 지장을 받지 않는 모습 등이. 나는 속으로 이혼에도 여러 모습들이 있을 거라고.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지저분한 소송에 휘말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암튼 그 분의 소송에 대해 내가 크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은 없었다. 그저 잘 들어주고 최대한 열심히 공감해주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 지점에서 열심히 노력했다. 마지막에 그 분이 그 상대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언성은 높이며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막 물었다. 그 말이 내게는 남자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들렸다. 남자라고 다 같지 않다. 실은 나 역시 그 분의 이야기만 듣고, 그 전 남편(아직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전 남편이라고 쓴다.)을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였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테니까.


징검다리 연휴 라고 해야 하나? 월요일인데 너무나도 피곤했고, 매장에는 손님이 없었다. 다른 할 일은 많았으나,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몇 시간을 알라딘에서 보냈다. 내일 푹 쉬고 다음날부터 힘을 내서 열심히 일을 해야지. 할 일이 많다. 집중력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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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8-14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의에 불참한 죄가 행사 진행 사회를 보라는거라니 너무 가혹한거 아닙니까? ㅎㅎ
그래도 준비된 사회자 감은빛님이네요. 항상 감탄합니다.

감은빛 2023-08-18 20:06   좋아요 0 | URL
회의에 빠진 사람에게 뭔가 다들 기피하는 역할을 맡기는 것이
이 바닥의 암묵적인 룰인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잘 아는 주제라 다행이었어요.
예전에 제가 잘 모르는 내용의 기자회견 사회를 맡았을 때에는
엄청나게 버벅거렸어요.
단어들도 낯설고,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항상 바람돌이님의 따뜻한 댓글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희선 2023-08-16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사람 앞에서 말씀하시기 잘 하시는군요 강의를 하시니 행사 사회도 잘 보시겠습니다 그때 칭찬을 많이 들어서 기분 좋으셨겠습니다


희선

감은빛 2023-08-18 20:09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희선님.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사실은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 것이겠지요.
뭔가 잘난 사람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강의나 발표나 사회 등을 자주 맡다 보니까
그래도 조금 익숙하게 하는 것이죠.
언제나 지나고나면 아쉬운 부분이나 부족한 면들이 보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제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한 결과이기 때문에
저는 만족하는 편입니다.

늘 고맙습니다! 희선님.

페크pek0501 2023-08-16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뭐 발표할 때 손이 떨리는 게 아니라 목소리가 떨린 적이 있었어요. 초반에만 그래서 다행이지만 창피하더라고요. 사회자 역할을 하는 건 쉬운 일 아니죠. 경험이 많아야 할 듯해요.
저도 단정적으로 말하는 건 조심스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상대가 누군든 다 알 수 없으니까요. 저 자신에 대해서조차 모를 때가 많은 걸요.
칼럼을 쓸 때만 단정적으로 쓰려고 합니다. 이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일이라 장르 특성상 그래야 하거든요. 수필 문학과 다른 점이죠.
애쓰셨습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하루의 페이지를 넘기셨네요.^^

감은빛 2023-08-18 20:12   좋아요 1 | URL
저도 예전에는 목소리가 떨린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렇게 목소리가 떨린 것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긴장해도 목소리는 떨리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잘 숨겨지지는 않지만, 애써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숨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젠 목소리는 잘 안 떨리는데,
손이나 몸이 떨리는 건 막을 수가 없더라구요.

칼럼은 당연히 단정적인 표현을 써야죠.
저도 가끔 성명서 같은 문서를 쓸때면 아주 강하고 단호한 표현들을 씁니다.
페크님의 칼럼을 재밌게 잘 읽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