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변화


어제 어느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나를 초대한 주최측은 작년에도 토론회에 나를 발제자로 초대했었다. 큰 주제 아래 세부 주제 별로 토론회를 이어가는데, 매번 나를 발제 혹은 토론으로 초대하고 있다. 작년 토론회에서는 발제자가 여러 명이었는데, 당연하겠지만, 사람 별로 편차가 컸다. 특히 주최측이 요청한 내용과 달리 발제자가 본인의 특정한 사항을 과시하는 듯한 내용을 길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같은 내용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좀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실망스럽다고 여겼는데, 나중에는 나름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잘 전달한 것 같아서 조금은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암튼 내 발제는 늘 그렇듯 주최측의 요구를 잘 반영하면서도 내 나름의 특성을 담아서 독창적인 방식으로 소개했다. 나와 함께 오래 일했던 몇몇 동료들이 자주 했던 말. 발표나 발제나 강의 등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소개하는 일을 내가 맡은 경우에 절대 걱정이 안 된다는 말. 어제 토론도 그랬다. 사실 미리 받아본 발제 내용이 좀 모호하고 쟁점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답답했다. 안그래도 주최측에서 이 점이 걱정이 되어 미리 나와 소통을 하기도 했다. 토론문을 제출해야 하는 마감일 밤에 긴 시간 고민을 했다. 발제문에 대한 토론을 쓰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쟁점을 다 버리고, 일반적인 내용으로, 다만, 참여자들이 잘 알기 어려운 전문적인 정보들을 전달하는, 또 하나의 발제문처럼 적어서 보냈다. 그리고 주최측과 소통을 했다. 이러저러해서 쟁점을 명확하게 드러내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니, 어설프게 토론문을 쓰는 것보다 이런 방식을 선택했으니, 양해해달라고 했다. 


어제 토론회 장소에 아주 오랜만에 아마 한 오륙년 이상 못 만났던 선배 한 분이 계셨다. 약간은 거리가 있었는데, 나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멀리서 고개만 숙여서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 분은 나를 분명 보았을 것 같은데 그냥 고개를 돌리셨다. 나중에 인사해야지 생각하고 일단은 자리 잡고 준비를 했다. 나중에 그 분이 내 자리로 오시더니 아주 반가운 얼굴과 목소리로 그러나 한 편으로는 놀랍다는 표정을 보였다. 아, 이 분은 교통사고 이후로 나를 만난 적이 없었구나. 그래서 이 흰 장발과 흰 수염을 처음 보는 거였구나. 그 분은 몰라봤다고. 어떻게 이렇게 외모가 달라질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게. 나로서도 내가 이 정도로 달라질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긴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말씀드리기가 어려우니, 그냥 어쩌다 이렇게 되었네요 라고 말씀드리고 말았다.


어제 토론회에는 발제자 1명과 나를 포함한 토론자 2명으로 비교적 간단한 구성이었다. 그럼에도 쟁점 사항들이 있어서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나중에 토론회를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고 난 후에, 주최측에서 중간 중간에 찍은 스냅샷과 단체 사진을 포함한 몇몇 사진들을 보내줬다. 그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나를 제외한 모든 남성들은 단정하게 짧은 머리에 말끔하게 면도를 한 얼굴인데, 나 혼자 긴 장발에 수염을 기른 모습이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뭐 별 수 있나. 외모를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


편지


내 생일이라고 아이들이 선물을 준비했다. 작은 아이는 뭘 준비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만나러 나올 때 갑자기 준비한 선물을 찾지 못했다고 한참 늦게 나오더니, 입을 삐죽거리며 투정을 부렸다. 큰 아이는 시집 하나에 작은 편지 봉투 하나를 붙여서 건넸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생일 선물로 혹은 그냥 선물로 시집을 준 경우는 많았지만, 내가 선물로 시집을 받았던 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어쩌면 한 두번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생일선물로 시집을 받은 것은 처음이 확실하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서 시집을 살펴보니 중간 중간에 작은 메모지들이 끼어 있었다. 보니까 아이가 읽은 느낌이나 나하고 공유하고 싶은 것들을 메모지에 적어두었다. 


그리고 편지 봉투를 열어보니 예쁜 책갈피 하나, 그리고 아이와의 데이트 쿠폰 하나. 그리고 편지지가 두 장 있었다. 편지지 첫 장은 생일을 맞아 나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담았고, 두 번째 장은 아이가 이 시집을 선택한 이유와 함께 읽고 싶은 시들의 제목과 쪽수를 적어놓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간단히 적어놓았다.


아이들이 좀 더 어렸을 때에는 생일 때마다 이렇게 손편지를 받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란 후로는 편지도 선물도 없어졌다. 뭐 나도 아이들에게 생일 때마다 편지를 썼던 것은 아니라 당연히 뭘 기대할 입장도 아니고 굳이 그걸 서운해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안 준다고 서운하지는 않지만, 받으면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한 것이 선물이다.


특히 이번에 큰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성인으로서 아빠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런 표현이 있었다. 아빠도 나도 글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니까, 시를 공유하는 것이 좋았다는 표현, 그리고 아이가 아빠의 꿈을 이어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표현도 있었다. 할머니(이미 시인으로 등단한 우리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가 함께 책을 내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두번째 편지지 뒷 장에는 자신이 간단히 디자인한 책 표지에 우리 엄마 이름과 내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저자로 적어놓고, 출판사는 자신이 만들거라고 맡겨달라는 글씨가 적혀있기도 했다.


그래. 언젠가 글을 쓰는 가족끼리 공동저자로 책을 낼 수도 있겠지. 기획을 잘 해본다면 아이템은 분명히 나올 것이다. 엄마와 아이는 시를 쓰니까 공동 시집으로 작업할 수 있을테고, 나는 그 시와 관련한 산문을 쓰거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기획이 가능할 것이다. 아이와 함께 책을 낼 수 있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좀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 앞으로는 좀 더 시간을 쪼개어서 글을 좀 더 많이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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