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어린이 집에 대해 아내가 쓴 글


지난 8월에 아이의 어린이 집을 새로운 곳으로 옮겼다. 옮긴 이유는 예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아이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모두 그만두고 우리 아이 한명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 어린이집은 올해로 넘어오면서 원장이 바뀌고(작년 원장은 더 큰 어린이집 원장으로 가고, 주임이던 딸이 원장자리를 물려받음) 선생님들이 바뀐 이후에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대거 그만두게 되었고 결국 아이의 반에서 혼자 남게 되었다.

새로운 어린이 집을 찾아보면서 나는 먹거리 문제를 가장 예민하게 따져보았다. 마침 아내가 집 근처 생협에서 생협에서 찬거리를 주문하는 어린이집 명단을 구할 수 있었다. 몇몇 어린이집들은 너무 먼 곳에 있어서 아이를 보낼수 없었고, 한 곳이 그나마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 곳이 바로 지금 아이를 보내고 있는 어린이집이다. 아내는 집에서 아주 가까운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보았는데, 객관적인 조건은 아내가 알아본 곳이 더 좋아보였다. 그래도 나는 생협에서 가끔이라도 찬거리를 주문하는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싶어서 결국 그곳으로 결정했다.

새로운 어린이집은 그 전에 보냈던 곳과는 달리 규모가 큰 곳이었다. 아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선생님이 특별히 더 많아보이지는 않았다. 예전 어린이집이 규정된 원아 수에 비해 선생님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규모가 큰 만큼 아이에게 더 잘 대해주거나 더 체계적인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냥 보기에도 아이를 대하는 태도나 어린이집 운영이 이전에 보냈던 곳에 비해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어쩔수 없으니 큰 문제가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더이상 신경쓰지 않으려 했다.

아이도 우리도 새로운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위한 기간을 갖고 있었다. 특히 아이로서는 아직 어린 나이에 전혀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친구들, 동생들, 언니들 그리고 선생님들까지 만나서 나름 무척 힘든 시기를 보내는 듯 했다. 우리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이건 아이가 스스로 부닥쳐야 할 문제라 아이의 잦은 짜증을 받아주고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에 대한 이야기들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얘기해주는 등의 것들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침에 보내고 저녁에 데려오면 부모로서는 아이가 낮에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다행히 좀 친절하고 성의있는 담임선생님을 만난다면 아침, 저녁으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을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 어려워보였다. 대신 날적이(수첩)에 그날 그날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여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데, 이 날적이의 기록도 여기는 무척 성의없게 대충 적어서 보내왔다. 예전 어린이집에서는 낮잠잔 시간도 꼬박꼬박 기록하고 식사때 무얼 잘 먹었는지 무얼 잘 안먹으려 하는지 등도 자주 적어주고 대변을 보면 그 시간과 대변의 상태도 상세히 기록해줬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들을 하나도 해주지 않았다. 정말 건성으로 큰 틀에서 그날 무슨 일을 했다는 정도로만 적혀있었다.

계속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저런 섭섭한 부분이나 조금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처음에 마음먹었듯이 큰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번 주 월요일에 아이의 수첩이 돌아오지 않았다. 수첩이나 혹은 머리핀이나 모자 등의 물건들이 실수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다음날에는 줄거라 생각했다. 화요일에도 또 수첩이 없었다. 다음날 보낼 때는 꼭 수첩을 찾아달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화요일 저녁에 아이와 밥을 먹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의 뺨에 작은 상처가 있었다. 손톱 자국처럼 생긴 상처였다. 아이에게 물었더니 '혀누'라는 친구가 얼굴을 꼬집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더니 그냥 '혀누'가 가만히 있는데 꼬집었다는 말만 반복했다. 작은 상처라서 나중에 씻기고 약을 발라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혀누'라는 친구가 어떤지가 걱정되었다. 우리 아이가 그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는지 궁금했다. 수첩은 돌아오지 않아서 그런 상황을 알 수가 없었고, 저녁에 데리러 갔을 때 선생님도 그런 언급이 아예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알았다면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약을 발라주었을텐데, 약을 바른 흔적이 전혀 없는 걸 보니 분명히 상처가 났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것 같다. 나는 상처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이런 작은 상처는 얼마든지 날 수 있다! 이런 걸로 어린이집에 따지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상처가 났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일 아침에 데려갈 때 얘기하거나 메모지에 적어서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참 밥을 먹다가 아이가 '쉬'가 마렵다고 해서 화장실에 데려갔는데, 옷을 내리는 데, 팬티랑 바지가 조금씩 젖어있었다. 아이에게 지금 못 참고 쉬를 싼거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그럼 언제 옷에 쉬를 한거냐고 물었더니 어린이집에서 했다고 말한다. 만져보니 바지는 젖었다가 조금 마른 상태이고 팬티는 젖은 상태였는데, 옷에 싼 쉬의 양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왜 선생님이 옷을 안 갈아입혀줬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화장실에 따라오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이에게 그러면 옷이 젖었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옷을 갈아입혀 달라고 말해야 한다고 아이에게 알려줬다.

여름과 달라서 요즘은 아침 저녁으로 날이 제법 쌀쌀하다. 젖은 옷을 입고 다니다가 자칫 감기에 걸리면 큰일이다. 예전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를 내보낼 때 꼭 옷차림을 꼼꼼히 점검하고 보내는 모습을 매일 봤었다. 지금은 데리러 갔을 때 놀고있는 아이를 불러서 그냥 내보낸다. 아이가 놀던 옷차림을 한번 살펴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젖은 옷을 그냥 입고 나와도 몰랐던 것이다.

상처가 난 사실을 몰랐던 것과 젖은 옷을 입혀서 보내고도 몰랐던 것, 이 두가지 사실을 알게되니 좀 기분이 나빠졌다. 이건 그냥 넘어갈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서 전화를 걸기로 했다. 그 시간에는 어린이집에는 시간연장 아이들을 담당하는 선생님 한 분만 빼고는 다 퇴근하고 아무도 없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 연락처는 따로 알지 못한다. 그리고 상황상 원장에게 전화하는 게 좋다고 판단되어 전화를 걸었다. 원장은 어딘가 시끄러운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나는 일단 인사말을 전하고 조심스레 오늘 저녁에 알게된 사실들을 알려주면서 어린이집에서 이 두가지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하고 물었다. 그리고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꼭 알려달라고 했다. 원장은 조금 기분 나쁜 목소리로 사과 한마디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평소와 달리(평소 아침에는 거의 내가 아이를 데려다준다.) 아내가 아이를 데려다 주러 갔는데 원장과 만났단다. 원장이 아내를 붙잡고 아버님이 너무 자주 불평을 하시면 곤란하다는 식으로 말을 했단다. 그러면 아버님이 무서워서 선생들이 아이에게 아무것도 안시키고 그냥 어디 붙들어놓고 꼼짝도 못하게 하기를 원하냐는 식으로 말을 했단다. 아내는 너무 갑작스레 당한 일이라 원장이 상식이하의 언행을 했음에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못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빠져나오려고만 했단다. 원장은 한사코 아내를 붙잡고 잘 모르시나본데 아이의 교육상 그런 식이면 곤란하다느니, 어머님께서 아버님을 좀 말려달라느니 하는 말들을 더 했단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당연히 화가 났다. 아니 내가 언제 불평을 했다고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인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를 붙들어 꼼짝도 못하게 하기를 바라냐고 했다는 데, 이건 완전히 아이를 볼모로 붙잡고 협박하는 게 아닌가? 원장이 아내에게 여러차례 어머님이 아버님께 말씀드려 달라고 했지만 아내는 끝내 그 부탁을 거절하고 원장님이 교육문제의 전문가로서 아이아빠와 직접 얘기하는게 좋겠다고 말하고 빠져나왔다고 한다. 내가 어제 전화로 꼭 알려달라고 하기도 했으니 아마 그날 중으로 전화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오후 늦게 전화가 왔다. 원장은 실제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설명을 했다. 그런데 그 말투가 이런 하찮은 일들로 불평하지 말아달라는 말투였다. 사과는 커녕 오히려 그 쪽에서 화를 내는 듯한 모양새였다. 나는 일단 상황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고, 아이랑 다퉜다는 그 '혀누'(우리 아이보다 더 어린 아이라고 했다.)가 어떤지부터 물었다. 혹시 우리 아이가 그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는지 물었더니 원장은 거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고 그냥 괜찮다고만 얼버무렸다. 그러고는 '아버님 안야가 고집이 센 편이라는 건 아시죠?' 라고 묻는다. 우리 아이니까 당연히 잘 알고 있다고 말했더니 그래서 지기 싫어하는 편이라 어린 애기랑 다툼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 말의 뉘앙스도 상당히 거슬렸지만 일단 넘어갔다. 바지와 팬티가 젖었는데 안 갈아입힌 부분에 대해서도 선생님이 그 많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일일이 화장실에 따라갈 수 없고 옷이 젖었는지 어떤지 다 만져볼 수 없다고 변명만 늘어놓았다. 나는 그런 상황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말하고 부모가 데리러 오면 보내기 직전에 한번 옷차림을 살펴봐주면 된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지금도 조금 쌀쌀하지만 다행히 별 일은 없었는데, 만에하나 겨울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아이는 금방 감기에 걸렸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원장은 아무 대꾸도 없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담임선생님도 다른 선생님들도 안야

를 다른 아이보다 더 신경써서 잘 보살피고 있는데, 아버님께서 예전에 티비를 보여주는 문제에 대해서 수첩에 적는 등 민감하게 하시면 선생님들이 힘들다고 말한다. 원장이 스스로 그 얘기를 꺼내니 나로서는 더 어이가 없었는데, 처음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고 갔던 날, 아이가 주로 생활하는 교실을 보았는데 한쪽 구석에 티비가 놓여있었다. 나는 티비를 보여주냐고 물었고 원장은 영어특강(돈내고 받는 수업인데 우리 아이는 받지 않는다.)을 할 때 가끔 사용하고 평소에는 절대 안 보여준다고 불시에 찾아와서 검사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에 데리러 갔는데, 밖에서 듣기에도 티비 소리가 들렸고, 아이가 나오면서 지금 티비 보고 있으니까 다 보고 가면 안되냐고 물었다. 옆에서 선생님이 티비는 집에가서 보고 지금 얼른 가자고 타일렀다. 그래서 이상하게 여긴 내가 수첩에 티비를 보여주냐고 물었고, 보여주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다시 수첩에 아이가 티비를 봤다는 말을 했고, 나도 그 앞에 서서 티비 소리를 들었다고 했더니, 저녁에 아이가 생활하는 1층 교실에는 티비가 없으며 가끔 컴퓨터로 동요를 보여준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그게 민감하게 불평하는 건가? 아니 처음부터 티비를 절대 안보여준다고 불시에 검사해도 좋다는 말을 한 게 누군데 이제와서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릴 하는건가?

그렇게 얘길 했더니 원장은 할말이 없었는지 또 한번 잠시 침묵하더니 어쨌든 자신과 선생님들이 안야를 잘 보고 있으니까 안심하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아직까지 자신에 잘못들에 대한 사과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오전에 아내에게 전해들은 말을 하면서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언행이었으니 설명을 해보라고 했다. 원장은 부모중에는 그런 부모들도 있다고, 아이가 놀이터에서 노는 걸 싫어하고 흙 만지는걸 싫어하는 부모도 있다고, 그렇게 과잉 보호를 하길 원하는 부모가 생각나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언제 한번이라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 지 물었다. 그랬더니 대답대신 '호호호'하고 웃음이 돌아왔다. 그래서 왜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갖고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느냐 물었더니 아버님의 태도가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그랬다고 답한다. 내가 다시한번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절대 없고 오히려 나는 우리 아이가 더 활발하게 활동하기를 바란다고 했더니 이번에도 '호호호' 웃으며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다.

통화가 무척 길어져서 나도 원장도 좀 짜증이 났다. 나는 끝내 원장이 사과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대신 내가 단 한번도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불평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원장은 이번에도 할말이 없는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더이상 통화를 해봐야 더 나올 것도 없고해서, 대충 전화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원장도 일단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은 다 한 모양인지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나는 정말 이 어처구니 없는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일단 원장에게 서로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으니 앞으로 좀 더 잘 해보자고 예의상 말했다.

처음에 전화받을 때부터 아이에게 소홀했던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고 또 아침에 있었던 부당한 언행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으면 더 이상 이 인간에게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을 옮긴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어린이집을 바꾼다는게 아이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인간이 되지 못한 원장 밑에 아이를 맡긴다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처음에 여기를 보내려고 했을 때 좀 더 자세히 잘 알아보고 보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가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나름 확실히 알아봤다고 생각했다. 원장이 저렇게 인간이 덜 된 X(차마 욕설을 쓰고 싶지 않아서....)일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지금 아내도 나도 한창 일 때문에 바쁘다. 한 서너달 전부터 우리는 서로 일주일에 이틀이나 삼일씩 교대로 저녁에 아이를 돌보고 나머지 한 명은 밤 늦게까지 일하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일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없는 시기에 어린이집 문제가 불거져 나오니 무척 화가 난다. 이제 다시 또 새로운 어린이집을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또 얼마나 시간을 뺏길지, 얼마나 힘들지, 아이가 또 적응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을지 등등 걱정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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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 어린이 집에 대해 아내가 쓴 글
    from 가보지 못한 길 2008-10-05 01:54 
    36개월 째에 접어드는 딸아이 엄마입니다. 요즘 고민이 생겨서 좀 길더라도 질문을 올리게 됐습니다. 귀찮으시더라도 선배 어머님들 충고 부탁드립니다!   얼마전 1년 넘어 다니던 가정어린이집의 같은 반 친구들이 다 이사가거나 해서 갑자기 혼자 남게 되자 원장님께서 다른 원을 알아봐야 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지금 다니던 원에 들어왔는데... 가끔 저희 부부가 똑같이 야근하는 날이 있어서 시간연장도 되고
 
 
 
폭풍우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5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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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출판사에서 셰익스피어 전집이 나왔다! 현제 일차분으로 5권이 나왔고, 앞으로 오차에 걸쳐서 총 40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일차분은 《햄릿》《오셀로》《리어 왕》《맥베스》 셰익스피어의 대표 비극 네 편과 만년작 《폭풍우》이렇게 다섯권이다. 내가 존경하는 김정환 시인이 번역했기에 꼭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단 번역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그 전에 읽었던 셰익스피어는 온통 잘못된 번역 투성이였다. 그렇게 읽으면 도무지 맛이 나지 않아 안 읽은게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책은 흔히 말하는 양장으로 표지는 두껍고 빳빳한 재질로 되어있고, 그 위에 빨간색 천을 씌웠다. 검은색으로 박혀있는 글씨는 멋있지만 중간에 스티커로 붙여놓은 듯한 그림과 제목 부분은 조금 불만족스럽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괜찮지만 만져보면 좀 조잡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책 값이 무려 일만원이다! 아무리 요즘 종이값도 많이 올랐고 김정환 선생님의 값진 노력에 의한 귀중한 결과물이라지만, 그래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한 두권 나오는 것도 아니고 40권이 나올텐데, 이 가격이라면 도저히 다 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좀 더 저렴한 가격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태풍과 폭풍우의 비교

사실 우리 집에는 이 템페스트(The Tempest)가 한 권 있다. 전예원 출판사에서 나온 신정옥씨가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 17권이 그것이다. 이번에 읽은 아침이슬 판은 셰익스피어 전집 5권이다. 같은 작품이지만 일단 제목부터가 다르다. 전예원 판은 제목이 <태풍>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은 <폭풍우>이다. 제목의 비교에서부터 김정환 시인의 아침이슬 판이 앞서나간다. 어감으로 보나 작품의 분위기로 보나 제목은 <폭풍우>가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일단 책을 한번 다 읽고 난 다음 일부러 전예원 판과 함께 놓고 비교를 해보았다. 읽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잘 읽혀서 번역이 정말 잘 되었다고 느꼈는데, 실제로 두 책을 놓고 주요 장면들을 비교해 보니 <태풍>은 정말 말도 안되는 번역이 많았다! 그냥 어색한 번역정도가 아니라 아예 틀린 내용으로 번역해 놓은 부분도 제법 있었다. 전체적으로 문체도 매끄럽지 못하고 전혀 희곡을 읽고 있단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고 어색한 문장들이었다.

반면 <폭풍우>는 마치 시를 읽듯이 매끄럽게 읽히는 맛이 느껴질 정도로 잘 다듬어져 있었다. 역시 김정환 시인이 번역이라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은 책 맨 앞에 일러두기를 통해 '운문과 산문 구분을 명확히 했고, 행갈이를 원문과 똑같이 맞추었다. 각 작품을 잘 쓰인 시집 한 권 대하듯 읽으면 적당할 것이다.'라고 밝혀두었다. 딱 그 말 그대로다. 그냥 시집 한 권 읽는다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읽으면 된다.

<태풍>의 번역이 얼마나 엉망이고, <폭풍우>의 번역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첫 장면에서 부터 잘 나타나고 있는데, 잠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태풍>

알론조   이봐 갑판장, 조심하게. 선장은 어디 있는가? 잘들 해주게, 부탁일세.

<폭풍우>

알론조   갑판장, 조심하게. 선장은 어딨나?

          (선원들에게) 사내답게 굴라!

굵은 글씨로 된 부분이 크게 차이나는 부분이다. 일단 <태풍>에서는 실제로 읽어보면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장을 찾다가 갑자기 왜 뭘 부탁한다는 말일까? 아, 물론 전반적인 상황을 보면 알론조가 갑판장에게 배가 좌초되지 않도록 잘 부탁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에 반해서 <폭풍우>에서는 앞의 선장을 찾는 말 부터가 무척 자연스럽고 간결하다. 게다가 김정환 선생이 직적 밝혔듯이 원문처럼 행갈이를 했고 괄호안에 지문을 넣어서 상황파악을 도왔으며 딱 상황에 무척 잘 어울리는 명령조의 대사가 뒤따라온다. 여기에서 <태풍>이 말도 안되는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데, 사실 아주 간단한 것이다. 세상의 어느 왕이 갑판장이나 선원들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할것인가?

이렇게 비교해보다보면 이런 부분들을 수없이 찾아낼 수 있다! 정말 옛 번역을 바로 옆에 놓고 보니 지금 번역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으로 다시 안 읽었다면 실제로 <폭풍우>의 참 맛을 모른채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희곡은 소리내어 읽어야 하는 법!

책을 읽기 위해 나는 동료들이 모두 퇴근 한 뒤, 밤에 홀로 사무실에 남았다. 무릇 희곡은 감정을 살려 소리내어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냥 눈으로 읽으면 정말 재미없다! 그건 죽은 희곡이다. 그냥 활자일 뿐이다. 소리내어 읽다보면 다시 한번 매끄러운 번역에 놀라게 된다. <태풍>의 경우는 소리내어 읽을 경우 문장이 매끄럽지 못해 자꾸 맥이 끊기게 된다.

이번에는 훌륭한 번역 덕분에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그대로 전해받으며 단숨에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생각보다 진도가 빨리 나갔다. 소리내어 읽어보면 김정환 선생께서 단어 하나하나의 선택에 얼마나 노력을 쏟았는지도 알 수 있다. 실제 생활속의 말처럼 살아있는 생생한 대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시 읽은 <폭풍우>는 정말 대만족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처음에 비싼 책값 때문에 조금 출판사를 원망했던 마음이 이내 다 사라지고 없었다. 책이 비싸다는 생각이 별로 안들었다. 이정도로 훌륭한 책이라면 이 정도 받아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래도 가격이 좀 더 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테니 더 좋을 것 같다!

아직 일차분의 다른 네 작품도 안 읽었지만 벌써 이차로 나올 다른 책들이 기다려진다! 훌륭한 책을 만들어준 김정환 시인과 아침이슬 출판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덕분에 한 동안 다시 셰익스피어를 읽으면서 제대로 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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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 갤리온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처음 집어들면 가장 먼저 앞 표지를 보고 그다음에 뒷 표지를 본다. 제목과 앞표지는 그저 그랬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라는 제목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제목이긴 하지만 책 전체 내용을 아주 집약적으로 나타내주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무난한 제목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표지는 전반적으로 깔끔한 느낌이라 좋았지만 뒷 표지는 몰라도 앞 표지에 작은 글씨들이 깨알같이 너무 많이 박혀있어서 좀 산만한 느낌이다.

책 뒷 표지를 읽어보면 으례 과장된 평가들이 독자들을 잡아끌곤 하는데(소위 말하는 낚시), 이 책에 대한 평가들은 놀랍게도 대부분 사실이었다. 과장이 아예 없진 않았지만 애교로 봐줄만한 수준이었다. 다만 뒷 표지 맨 위에 나온 문구는 좀 거슬렸다.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사람들 명단에 왜 CEO가 맨 앞에 나와있는 것일까? 이것 역시 소위 말하는 낚시 행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책은 전체적으로 괜찮은 짜임새를 갖추고 있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도 명확하게 잘 드러나있고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하나하나의 사례들은 모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서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었다. 특히 이 저자가 아주 타고난 작가라는 생각이 든건 가장 먼저 소개하는 사례가 아주 재미있는 것이어서 책을 펼치자마자 눈을 떼지 못하도록 만들고있다는 점 때문이다. 장사 하루이틀 해본 사람이 아닌 것이다.

처음 소개하는 사례는 뉴욕에서 있었던 휴대폰 분실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이 얼마나 흥미롭고 대단한 사건인지는 조금만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사이드킥'이란 고가의 휴대폰 분실을 다룬 이 사건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마이클무어의 '식코'를 보고나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대책을 세우기 시작하는 사례까지 자세하게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움직임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도구의 발달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양한 예를 들어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있다. 구텐베르크의 활자인쇄술과 웹 2.0 시대 블로그를 통한 자유로운 출판을 비교하면서 도구의 발달로 인한 사회적 변화가 과거와 현재를 통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미래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조직에 대한 탁월한 분석들을 보여주고 있다. 도구의 발달로 인한 사회적 변화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분야는 바로 새로운 조직의 탄생이다. 과거 전통적인 조직이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할 수 없는 분야가 있었다면 지금 이 새로운 조직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움직이면서 전통적인 조직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예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좋은 점이 있다면 나쁜 점도 있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재미있는 사례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어도 설명하는 듯한 분위기로 되어있는 이 책이 지루해질 수 밖에 없다. 지루함은 책에 대한 몰입도를 상당히 떨어 뜨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처음 몇개의 예들이 재미있었다면, 뒤이어 나오는 예들은 비슷한 패턴이거나 대충 짐작할 만한 이야기들이어서 다소 지루할해질 수 도 있겠다.

이 책은 올해 6월 말경에 나왔는데, 만약 훨씬 일찍 나오거나 훨씬 늦게 나왔다면 지금처럼 관심을 갖기 어려웠을거다. 그러나 우린 벌써 올해 5월부터 많은 움직임을 보였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참석했다. 그래서 이 책이 무얼 말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더 쉽게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교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는 듯 하다. 역시 미국이란 나라는 확실히 다르다! 우리나라의 친미주의자들의 미국의 합리적인 부분들을 좀 더 배워와서 헛짓거리를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해야할 것 같다. 다 읽어본 결과 아주 잘한 번역은 아니었다. 그리고 곳곳에 거슬리는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사자생(寫字生)'이란 단어의 경우 다른 표현 방법이 전해 없었을까 싶다. 국어 사전에 '글씨를 베끼어 써 주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이란 뜻이 나오긴 하지만 이 단어는 낯설고 어감도 썩 좋지 않다.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로 '필사생'이란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번역투가 거슬리는 부분이 있고 단어선택이 조금 의아한 부분들도 있다. 그리고 한 두군데 정도 앞 뒤 문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번역이 끼어있기도 했다. 문단에서 전체적으로 뜻이 통하지 않는데 그렇게 마무리를 지어놓은 걸 보면 초벌 번역을 한 후에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았다는 뜻인 듯 하다. 번역자가 이런 부분들에 좀 더 신경썼더라면 훨씬 더 좋은 책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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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0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가까이 하지 못하는 부류의 책이군요. 그래서 님의 리뷰로 맛보기!^^
문맥이 어울리지 않는 번역은 번역이 아니라 단순히 해석해 놓았다는 느낌이죠.ㅎㅎ

감은빛 2008-09-09 11:57   좋아요 0 | URL
헉, 제가 새벽에 쓰다가 졸려서 대충하고 내일 다시 써야지 생각했는데, 이걸 공개로 저장하고 잠들었군요. 그걸 순오기님께서 벌써 읽으시고...... 에휴 민망해라~~!
오타도 많고 내용도 횡설수설이었는데요. 다시 수정하면서 좀 다듬긴 했는데, 급하게 쓴 리뷰는 역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이 책은 옛날 사회과학 서적들에 비해서는 번역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는데요. 그래도 몇 군데 거슬리는 부분들이 있고, 문맥에 맞지 않는 부분도 눈에 띄더라구요. 요즘도 이렇게 번역하면 안될것 같단 생각에 일부러 마지막에 집어넣었습니다!

딸기 2008-11-02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 볼까말까 하다가 잊고 있었는데, 읽어봐야겠군요. :)

감은빛 2008-11-03 11:39   좋아요 0 | URL
솔직히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좀 달랐지만 제법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프락사스님(보통 아프님이라고 부르더군요. 그래서 저도 다음부턴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서재에 예전부터 즐겨찾기 해놓고 가끔 들어가 글을 읽고 오곤 했는데, 워낙 알라딘 서재에 자주 들어와보질 않아서 인사를 남긴다거나 댓글을 남긴다거나 하질 않았다.

 오늘 우연히 들어가 봤는데, 내일까지 대체 불온 서적 추천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나도 추천하고 싶은 책은 참 많은데 싶은 생각에 한번 해보고 싶어서 처음으로 페이퍼를 작성해 본다! (이게 다 아프님 덕분이다!)

추천 도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서해문집>에서 발간한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사]

  :  역사학연구소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역사 교재이죠.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역사를 통치자나 위인 중심으로만 배우는 교과서에서는 알 수 없는 당시 민중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미 학교에서 다 배운 내용인데 왜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를까라고 생각하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잘못된 교육으로 왜곡된 역사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나 이미 배운 역사가 왜곡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우쳐 가고 있는 대학생들이 반드시 한번쯤은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20대 초중반에 가장 왜곡된 역사의식을 주입시키는 집단에 가 계신 분들께라면 강력 추천입니다!

 

<서해문집>에서 발간한 [바로 보는 우리 역사]

 : 그 유명한 [바보사]입니다. 9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 중의 하나였죠. [바보사]가 2000년대 들어서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역사학연구소에서 민중의 관점에서 다시 역사를 공부할 수 있도록 내준 고마운 책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학시절 이 [바보사] 덕분에 비로소 사회를 보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제가 90년대판 [바보사]의 도움을 받았던 만큼 2000년대를 사는 중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들은 이 새로운 [바보사]가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됩니다.

 

<현장에서 미래를>에서 발간한 [역사속의 미래 사회주의]

 : 이번에도 역사학연구소가 낸 책입니다. 현재 우리의 기억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역사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고의로 우리의 뇌로 접속해 들어가서 Del 키를 눌러버렸습니다. 그게 뭐냐구요? 바로 사회주의의 역사입니다. 일제시대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의 대부분은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왜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나서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친일파가 그대로 사회를 지배하고 오히려 더 강한 힘을 갖게 되었을까요? 왜 독립운동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을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꼭 읽어보셔야 할 책입니다!

 

<역사비평사>에서 발간한 [한국현대사와 사회주의]

 : 이 책은 학술서적이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위에 소개한 역사학연구소의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사]와 [역사속의 미래 사회주의]를 읽은 분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시간대별로 우리 사회에서 활약했던 사회주의자들을 추적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부 세력들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부는 등 7,80년대에나 통용되던 반공사상을 다시 들고 나오고 있는데, 이 책을 읽어본다면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하고 새로운 나라의 틀을 세운는 데에 사회주의자들이 얼마나 큰 역할 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서해문집>에서 발간한 [근대를 보는 창 20]

 : 최규진 선생님이 쓴 책입니다. 우리나라 근대의 역사는 비교적 가까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습니다. 최규진 선생님은 근대를 스무개의 영역으로 묶어서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재밌게 읽을 만한 책입니다.

 

 

<삶이 보이는 창>에서 발간한 [말해요 찬드라]

 : 오랫동안 부천지역에서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을 해오신 이란주님의 책입니다. 이 책은 이주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 최초의 단행본이며, 영화 [여섯개의 시선]에서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의 원작이죠. 이 영화로 유명해진 찬드라의 일화는 실화이며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저자는 찬드라 뿐 아니라 여러 이주노동자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맨몸으로 부딪쳐온 온갖 차별과 멸시와 인격모독 등의 사례들이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만 내용이 내용인지라 상식적인 수준의 감성을 가진 분들이라면 분노와 울분과 눈물과 감동을 각오하고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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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08-08-16 15:28   좋아요 0 | URL
가서 읽어보니 직접 지정한 분들에게 드린다고 되어있더군요.
그리고 저는 상품 안받아도 괜찮습니다!
처음부터 상품이랑 상관없이 이벤트 자체가 흥미로워서 참여했으니까요.
결국 아무도 제 글을 열어보지 못해서 실패로 돌아가버렸지만요.
아휴~! 아쉽네요!

순오기 2008-08-18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 불온서적 이벤트에 참여하신 분들 글을 다 읽고 추천했는데, 님의 서재는 세번이나 시도해도 안돼서...이제야 열리느군요.ㅎㅎ 제가 읽은 책, 아는 책 하나도 없지만...덕분에 좋은 책 알게 돼서 감사합니다.
우선 별찜하고 읽을 수 있게 노력하렵니다.^^

감은빛 2008-08-18 13:22   좋아요 0 | URL
에휴~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부주의해서 미처 확인하지 못했답니다. 한번도 여기에 페이퍼라는 걸 써본 적이 없어서요.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도움이 되었다면 영광입니다! 자주 놀러가겠습니다!
 
문제아 창비아동문고 175
박기범 지음, 박경진 그림 / 창비 / 199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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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범이 글을 쓰고 박경진이 그림을 그린, 박기범의 첫 동화집이다.

아내가 이오덕 선생의 <어린이 책 이야기>에 소개된 글을 읽고나서 일부러 찾아 읽었는데, 나는 이오덕 선생의 책을 읽기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한마디씩 평을 던졌는데, 아내가 이오덕 선생도 그런 평을 했다고 말하면서 어쩜 그리 비슷한 성향을 가졌냐고 말하며 머리를 휘휘 가로저었다. 책은 무척 재미있었다. 글 한편 한편이 모두 다 살아있는 글이어서 좋았다. 이런 대단한 작가를 여태 모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박기범이란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박기범씨는 2000년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꾸준히 반전 평화 활동을 해왔으며, 아프가니스탄 어린이 돕기 운동과 이라크 반전평화 지킴이 활동도 해왔다. 이라크 전에서는 인간방패를 자처하며 이라크에 가서 활동했으며 이후 박기범의 이라크통신(바끼통)을 통해서 반전평화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과연 이 책에 실린 10편의 동화들이 그냥 쓰여진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이 좋은 평가를 많이 받으면서 자연히 판매량도 많았다고 하는데, 박기범씨는 이후 오히려 반전 평화 활동가로서 더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운동판에 있으면서 (관심은 많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반전 평화 운동쪽에는 활발하게 참여하지 못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운동을 제외하면 그리 열심히 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분야가 달랐던 탓도 있고, 여러모로 개인적인 상황들 때문에 이쪽으로 신경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기범 작가의 활동들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무척 부끄러웠다.

이오덕 선생은 '내가 보기로 이 작가가 50년대 이후로 우리 남녘에서 활동한 이원수, 권정생 다음으로 우리 겨레 어린이문학을 꽃피울 수 있는 몇 안되는 동화작가로 그 앞날이 크게 기대된다.' 라고 평했다. 그리고 이 책을 소개한 꼭지의 제목을 '흐린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문학정신'이라고 붙였으며 <어린이 책 이야기>에서 첫번재로 소개했다. 선생이 얼마나 박기범 작가를 높이 평가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책에는 <손가락 무덤>, <아빠와 큰아빠>, <독후감 숙제>, <전학>, <문제아>, <김미선 선생님>, <끝방 아저씨>, <송아지의 꿈>, <겨울꽃 삼촌>, <어진이> 이렇게 10개의 글이 실려있다. 이 중에서 노동자에 대한 글이 두 편, 교육에 대한 글이 네 편, 철거민에 대한 글이 한 편, 농민 문제에 대한 글이 한 편, 민주 열사에 대한 글이 한 편, 애완 동물에 대한 내용이 한 편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작가가 얼마나 고심하여 작품의 주제들을 정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독후감 숙제>였는데, 나도 어린 시절 비슷한 경험이 있어 특히 더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 이 이야기에는 '작은책'이라는 제목의 책에 실린 만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런 연출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만화가 실제로 존재하는 작품인지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작은책'이라는 월간지가 실제로 있고, 거기에 이런 성격의 만화가 주로 실리기 때문이다. 한번 찾아봐야지 생각했었는데,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문제아> 역시 무척 공감이 가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김형창의 시에 백창우가 곡을 붙인 '문제아'라는 동요가 무한반복을 눌러놓은 것처럼 머리곳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문제아가 되는 건 쉽지만 보통 아이가 되는 건 어려워'라는 노래 가사 한마디가 이 이야기를 모두 설명해 주고 있었다. <겨울꽃 삼촌>은 박래전 열사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박래전 열사는 알지 못하지만 운동판에서 간혹 얼굴을 마주쳤던 박래군씨의 동생이라서 흥미롭게 읽었다. 작가가 박래전 열사가 분신한 숭실대학교에서 공부했기에 이 작품을 쓴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박래군씨의 딸인 '성하'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는데 실제 박래군씨의 딸인 '성아'와 이름을 바꿔놓았다. 또 실제 '성아'의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이 작품에서는 열살로 되어있다. 아마 그래서 일부러 이름을 바꿔놓은 것 같다. 이 이야기에서는 '민주화 운동'이라는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열살 밖에 안된 아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놓았다.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이 10편의 이야기들이 전반적으로 다 훌륭하지만 간혹 좀 어색하거나 현실성이 조금 떨어지거나 하는 부분들도 있다. <김미선 선생님>이 그 예다. 돈봉투를 받은 선생님에 대한 내용인데 뒷부분이 좀 어색해서 의외였다. 이오덕 선생도 이 이야기를 지적하면서 무척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아마 당신께서 학교 선생님이셨기에 더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그리고 <송아지의 꿈>에선 왜 일부러 송아지의 시선을 빌어 표현한 건인지 좀 의아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더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어진이> 역시 조금 불편했다. 여기에 실린 다른 글들과 달리 애완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과연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좀 모호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오덕 선생의 평을 읽고 나니, 내가 어색하다고 느끼거나 불편한 기분이 든 부분들은 선생도 역시 짚고 있었다. 박기범 작가가 이오덕 선생의 이 평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모르지만(아마 읽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읽었다면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했다.

여기 실린 열 개의 이야기들은 아이들이 주로 보는 만화나 드라마에 잘 나오지 않는 그리고 어른들이 잘 보여주거나 들려주지 않는, 우리 사회를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아이들의 눈으로 들려주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진짜 어린이들에게 꼭 필요한 동화이다. 현실에 있지도 않은 이야기로 괜히 이것저것 가르치려 드는 동화들에 비하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에 대한 반응이 좋다는 얘기들을 들었다. 다행이라 생각된다. 이런 책은 어린이들도 많이 읽어야 하지만 그 전에 어른들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열 살이 넘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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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18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창비의 '좋은 어린이 책'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지요.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일기는 '엄마와 나'라는 제목으로 보리에서 나왔죠. 뒤늦게 한글을 배우는 어머니와 작가가 같이 일기를 썼는데 그 양이 엄청납니다. 박기범 작가의 가족사와 인생사가 담겨 눈물과 감동이 출렁이지요.

감은빛 2008-08-18 13:24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이 무슨 상인가를 받았다는 건 어디선가 본 듯한데, 창비에서 받았군요. 그리고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일기가 보리에서 나왔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네요.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꼭 사서 봐야겠네요. 값진 정보 감사드립니다!

순오기 2008-08-18 14:08   좋아요 0 | URL
한글을 소리나는 대로 틀려가며 쓴 어머니의 일기와 같이 수록됐는데, 나도 우리 엄마 고생하신 생각 나서 여러번 뭉클했어요. 초등어머니독서회 토론도서였는데 고생을 안해본 젊은 엄마들은 별로 공감하지 않더군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