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달빛의 ‘가장 사소한 이야기’를 들었다. 듣는 순간 그 노래에 빠져들었다. 흔히 말하듯 완전 꽂혔다. 시간 날 때마다 계속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어제는 지하철에서 듣던 중, 노래에서 던지는 질문 ‘행복이란 뭘까?’를 두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과연 행복이란 뭘까? 나는 지금 행복한가? ‘행복해’라고 느꼈던 때는 언제였을까? 나는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만 질문이 이어졌다.
물음 하나. 지금 행복해요?
아직 결혼하지 않은(안한 건지, 못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친구가 적당히 취해서 내가 부럽다고 말했다.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 데리고 잘 살고 있으니 얼마나 좋냐? 뭐 이런 의미의 말들을 늘어놓았다. 거기에 나는 글쎄, 니가 결혼해서 자식새끼 낳고 한번 살아보라고 답했다.(여우 세마리와 함께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 상상도 못할거라는 말은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 녀석은 결혼생활의 좋은 점들만 상상하는 것 같았다. 살다보면 늘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줘도 녀석은 이해하지 못했다. 직접 겪어봐야 이해할 것이다.
오래된 버릇 중에 하나인데, 취하면 ‘사는 게 별로 재미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즉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뜻인 것 같다. 물론 술에 취했을 당시에 그런 생각에 빠져서, 내뱉은 말이다. 늘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왜 그런 거 있잖은가? 늘 그렇듯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보면,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는데,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다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뭐 재밌는 일은 좀 없나? 난 왜 이렇게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누군가 진지하게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과연 ‘그럼, 행복하지!’라고 답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물어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대답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고, 질문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오래전에 헤어진 여성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며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행복한가에 대한 답을 쉽게 내리기는 어렵지만, 질문을 반대로 했을 경우에는 금방 답할 수 있다. 누군가 ‘지금 불행하냐?’고 묻는다면, 곧바로 ‘불행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물음 둘. 행복이란 뭘까?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을까? 그 물음에 답을 해보려고 한참을 생각해보는데, 생각의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다시 원래의 물음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과연 행복이란 뭘까? 행복했던 때는 어떤 때를 말하는 건가? 기분 좋았던 때? 즐거울 때? 먹고 살기 편했을 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을 때? 경제적 기준(물질적인 기준)으로 행복했을 때를 정의한다면 나는 평생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은 없다. 늘 가난하고 부족한 삶을 살아왔으니까. 그냥 머리로 생각한다면 어떤 목표를 달성하거나, 뭔가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을 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준으로 따진다면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대학 합격 표지판에 내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라던가, 결혼식장을 무사히 나와서 신혼여행을 떠나는 순간이라던가, 원하는 일터에 면접을 보고 나서 합격했다는 안내전화를 받은 순간 등이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일들이 물론 아주 기쁜 일이었고, 당시 아주 즐겁고, 만족스러웠겠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학 합격 발표가 있던 날은 혼자 먼 길을 가서, 운동장 한쪽 끝에 세워진 표지판을 눈 아프게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겨우 내 이름을 확인했다. 주위에선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온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거나, 박수를 치거나, 축하한다고 악수를 하고, 어깨를 두드리는 모습을 보았지만, 나는 혼자 속으로 ‘붙었구나. 그럴 줄 알고 있었지만……. 내 이름 한번 보려고 괜히 먼 길을 왔다 갔다 하네.’ 라는 생각만 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 기억만 남아있다.
그럼 나에게 행복이란 어떤 느낌과 감정일까? 뭔지 모를 묘한 설렘, 기대감, 관심을 갖고 있는 일 혹은 사람에 대한 기대와 좋은 감정을 갖게 되는 순간, 나는 ‘행복해’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내가 떠올리는 기억은 대부분 그런 때였다.
물음 셋.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가장’ 이란 수식어가 붙어서 대답하기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다시 물음을 바꿔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은 언제였나?’라고 묻는다면 한결 대답하기 편할 것 같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났던 날이다. 첫인상도 좋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점점 호감을 갖게 되었다. 점점 이 사람이 좋아지는 느낌. 앞으로 이 사람과 함께 대화하고, 무언가 같은 일을 하면서,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감정. 그런 일을 상상하며 갖게 되는 묘한 설렘이 참 좋았다. 그리고 이 사람도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좀 더 구체적인 일들을 상상하고 계획하면서 갖게 되는 기대감이 좋았다.
그 다음은 역시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상상하고, 기대하면서 갖게 되는 설렘의 순간일 것이다. 첫째 아이를 기다리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상상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는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순간순간들이 참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최근 일이어서 더 많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첫째를 키워왔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둘째는 과연 어떻게 할까 상상하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가령 첫째는 계란을 ‘기랑’이라고 발음했는데, 이때 랑의 'ㄹ' 발음이 독일어 'r' 발음처럼 들렸다. ‘ㄱ’ 과 ‘ㄹ’ 과 ‘ㅎ’ 의 중간 발음 같은 느낌. 역시 엄마를 닮아서 아기 때부터 독일어를 잘한다며 우리끼리 좋아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 녀석은 과연 어떻게 발음할지 무척 기대했던 순간들이 즐겁고 행복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떠올리다보면 역시 ‘행복’이란 단어는 ‘가족’이란 단어와 연결이 되는 구나 생각이 든다. 좀 더 어렸을 때로 되돌아가면 부모님과 동생과의 기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앞서 아직 총각이었던 친구 녀석의 부럽다는 말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측면이 있다. 글쎄 어쨌거나 이건 남편이자 아버지의 입장에서 나온 기억이다. 다른 상황에서도 행복한 기억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가족이란 테두리에 얽매인 개인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삶이란 매우 복잡해서 하나의 측면으로만 정의내릴 수 없을 것이다. 행복이란 결국 경제나 권력 관계를 떠나서 자신이 만족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더 묻고 싶다. 당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