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술을 많이 마셨던 시기는 군대 다녀온 직후였다. 그 당시는 여러모로 군대가기 전 인간관계와 단절이 있던 시기였다. 나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 계파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고 어느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았다. 양쪽 인간들 모두를 피했던 시절이라 편하게 함께 술마실 상대가 없었다. 차라리 혼자가 편했다.

당시엔 가난한 학생이었으므로 포장마차에서도 맛있는 안주는 못 먹었다. 우동이나 선지국에 소주를 마셨다. 혼자 마시니 많이 못 마시고 금방 취했다. 반병 남은 소주에 이름을 적어 붙여놓고 다음날 찾아서 마저 마시곤 했다.

나중에 조금이나마 돈을 벌던 시절에 젤 좋아하는 안주는 닭똥집이었다. 저렴하면서도 맛있었다. 닭똥집 한 접시면 소주 한 병을 그냥 비웠다.

자취하던 시절엔, 집에서 혼자 마셨다. 라면 하나에 소주 반 병, 새우깡에 소주 반 병, 참치캔에 소주 한 병 반, 대략 이런 패턴으로 마셨다.

요샌 집에서 소주 보다는 맥주나 막걸리를 주로 마신다. 겨울에는 청주를 마신다. 소주의 그 맛과 냄새가 싫어졌다. 아니 안동소주는 괜찮더라. 그런데 비싸더라.

순대를 사는 날엔 주로 막걸리를 마신다. 비가 오고 파전을 부친 날에도 막걸리. 가볍게 소세지나 계란프라이, 과자 따위를 안주로 먹을 때에는 맥주, 겨울엔 오뎅탕에 청주다. 가끔 소주가 땡길때에는 라면 먹을때랑 골뱅이 무침 해먹을 때다.

오늘은 야근을 하다가, 늦은 시간 운동을 하러갔다. 지난 주에는 단 하루도 운동을 못 갔다. 일이 바빠 끼니도 거르고 잠도 제대로 못자는 상황에서 운동은 무슨 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그 와중에도 최대한 운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준비운동이나 마무리운동을 생략하면 본운동은 5분이면 충분하니 짧게라도 다녀오려고 했지만, 일이 몰리니 그 시간 빼기도 어렵더라. 일주일 중에 하루라도 가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하루도 못 갔다.

일주일만에 가니 몸이 많이 굳어 있었다. 왠일인지 평소 들던 무게의 반도 못 미쳐서 자세가 무너졌다. 대신 가벼운 무게로 자세를 다시 익히는데 집중했다.

운동하면서 다른 쉬운 운동보다 어려운 스내치에 집착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1. 단번에 바벨을 들어올리는 단순하고 명쾌한 동작이 좋다.
2. 바벨을 들어올릴때 나는 철컹하는 맑은 소리가 좋다.
3. 어려운 동작을 내 것으로 만들기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좋다.
4. 순간적으로 힘을 내고 나서 해냈다는 성취감이 좋다.

언젠가 스내치를 좀 더 잘 해내는 순간이 오면 지금 이 시간이 참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위해 노력한 오늘도 무척 재밌었다.

저녁을 안 먹고 일했기 때문에 운동을 마치고나니 무척 허기졌다. 집 근처 내가 좋아하는 꼬치집에서 닭똥집 꼬치에 맥주를 시켜 먹으면서 알리딘 서재 글을 읽다가, 이 글을 쓴다. 소주를 시킬까 잠시 고민했지만, 소주 특유의 화학주 맛이 싫었다. 비록 많이 마시면 배가 부르긴하지만, 맥주를 벌써 2천을 넘게 마셨지만 그래도 맛있는 닭똥집을 먹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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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5-09-15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주는 특유는 맛과 냄새가 싫어서 안 마십니다만, 소주를 제대로 먹던 시기는 가장 힘들었던 시절인 것으로 기억해요. 맛보다는 분위기로 마시는 술입니다.ㅎㅎ

감은빛 2015-09-17 09:56   좋아요 0 | URL
30대 중반까지만해도 맥주는 술이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저에게 술을 마신다는 건 당연히 소주를 마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게스트님 말씀처럼
소주 특유의 맛과 냄새가 싫어지더라구요.
그후론 맥주를 주로 마시고, 소주는 아주 가끔 마셔요.

안동소주는 화학주 맛과 냄새가 없어서 마실만 하던데, 비싸지요.
요새 마트에 가면 안동소주 도수를 낮춘 술을 판다는데,
마트를 가지 않기 때문에 구하기가 어렵더라구요.

수이 2015-09-15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청주가 있지요 ㅋ 저도 맥주를 즐겨 마시는데_ 물론 많이 못 마신다는 게 안타깝지만;; 근데 요즘 들어 술꾼들과 어울리다보니 은근 폭탄주를 많이 마시더라구요. 저는 폭탄주 힘들던데;;

감은빛 2015-09-17 09:58   좋아요 0 | URL
폭탄주 하면 양주와 맥주죠.
어느날부턴가 쏘맥이 완전 유행이더라구요.
예전에 출판 영업자들 모임을 가면
1차부터 무조건 쏘맥이었어요.
빨리 취하고, 일찍 가서 자야 다음날 또 일찍 일을 하니까요.

비로그인 2015-09-15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딩때는 소주 1병을 사서 집에서 혼자 안주도 없이 마셨지요
대학생일 때는 아침부터 가방에 소주 한 병을 챙겨 가 수업끝나면 잔디밭에 앉아 혼자 병째 마시곤 했는데...생각해보니 그 때가 좋았네요 지금은 술을 아예 못마셔서 ㅠㅠ
감은빛님 소주병에 이름 쓰시는 장면이 훈훈하게 떠올라요^^

감은빛 2015-09-17 10:00   좋아요 0 | URL
와! 안주도 없이!!
예전엔 학교 안에서 자주 술 마셨죠.
공강일 때는 낮술도 많이 했고,
저녁 무렵에는 한 두 사람이 판을 벌리면,
집에가던 선후배들이 모여들기 시작해서
점점 판이 커지기도 했구요.
이렇게 떠올리다보니 그 시절이 그립네요. ^^

무해한모리군 2015-09-15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집에서는 너무 많이 마시게 되서 잘 안먹는편이예요.
그래도 돈이 없어서 짜파게티에 맥주는 종종 마시곤 했는데 ㅎㅎㅎ
하긴 돈많았으면 술먹다 폐인됐을거예요
인생을 낭비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구나 아슬프다.

감은빛 2015-09-17 10:03   좋아요 0 | URL
짜파게티에 맥주가 잘 어울리나요?
짜장에는 왠지 이과두주 정도 먹어줘야 할 것 같은데요. ^^
가끔 반찬이 없고, 음식하기 귀찮은 날엔
짜장과 탕수육 있는 세트 시키고, 이과두주 한 병 추가해서,
혼자 마시곤 합니다.

예전 일터에서 후배 기자랑 종종
탕수육 하나에 이과두주 서너병 시켜서 마시곤 했는데,
혼자 이과두주 마시면서 그 시절 떠올리곤 해요.

루쉰P 2015-09-16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닭똥집 좋아요 ㅠ

감은빛 2015-09-17 10:04   좋아요 0 | URL
닭똥집은 언제나 맛있죠. ^^
 

바쁘다 바빠!


지난 이삼주는 정말 바쁜 시간들이었다. 늘 바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이때만큼은 진짜, 정말, 억수로 바쁜 때였다. 주중에는 아이들 보는 날 외에는 야근을 했고, 아이들 보는 날에도 애들 밥 먹이고, 씻으러 보낸 후에 컴퓨터 켜고 일을 했다. 주말에도 뭔가 일정이 생겨 바쁘게 보냈다. 주중에 새벽까지 일하는 날이 많아, 주말에는 늦잠도 자고, 좀 쉬어야 컨디션을 회복하는데, 쉬지 못하고 오히려 텃밭에 가서 삽질을 하거나, 어느 행사에 가서 짐 나르는 육체노동을 해야 했다. 


지난 주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가 피크였다. 예전에도 가끔 몸을 혹사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체력이 딸려 그렇게 무리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오랜만에 또 그랬다. 수요일 밤에는 새벽 서너시까지 일을 하다가 책상에서 졸았다. 정신 차리고 자리에 누운게 5시가 넘어서였다. 목요일 아침에는 탈핵 캠페인을 나가야 했다. 알람이 울렸지만, 도무지 일어날 수 없어 끄고 다시 누웠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것이 아침 8시. 고민을 했다. 지금이라도 후다닥 준비하고 뛰어나갈지, 아니면 좀 더 쉬다가 출근할 지, 겨우 일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머리가 멍했다. 몸도 무거웠다. 무리라고 판단하고, 동료에게 못 나가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고 누웠다. 한 시간쯤 더 자고 출근했다. 확실히 컨디션이 좋아졌다.


바쁜 목요일을 보냈다. 토론회가 두 건이나 있었다. 오후에 하나, 저녁에 하나. 토론회를 모두 마친 후 뒤풀이를 따라갔다. 피곤했고, 다음날 워크숍 준비도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가고 싶었다. 술도 마시고, 사람들과 떠들어야 스트레스가 좀 풀릴 것 같았다. 뒤풀이를 마치고 나온 시간은 대략 1시쯤이었다. 동네사람들 여럿이 함께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데, 난 집이 아니라 사무실로 왔다. 그들은 이 시간에 사무실에 가냐며 걱정하고, 차라리 집에가서 자고 일찍 일어나사 하라고 말렸지만, 난 씩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술도 그리 많이 마시지 않았고,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집에 가서 잠들면 누적된 피로 때문에 늦게 일어날 것 같았다. 게다가 워크숍 전에 마쳐야 할 일의 양이 밤을 새도 모자랄만큼 많았다. 마지막 만찬의 기분으로 뒤풀이를 즐겼으니, 이제 일을 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밤 새 일했다. 생각보다 집중이 잘 되었다. 아침 해가 밝을 때쯤 졸리기 시작했다. 책상에 엎드려 잠시 졸았다. 얼마 지나지않아 옆 사무실에 사람들이 출근하는 소리를 듣고 깨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워크숍을 갔다. 고민할 꺼리들이 많이 던져진 시간이었다. 드디어 워크숍 공식 일정을 마친 후 뒤풀이. 참석한 사람들에게 할말이 많았다. 다만 그 이야기들을 어떻게 잘 말해야 할지 몰라 조금 망설였다. 


조금은 후련했고, 조금은 후회했다.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 의사를 잘 전달하지 못하는구나.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이걸로 만족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밤새 마음껏 술을 마셨다. 아침이 밝아올 무렵 준비해 온 맥주가 동났다. 소주가 남아있었지만, 이 시간에 소주를 마시고 싶진 않았다. 남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 3명. 아침 산책을 나섰다. 이른 아침 쌀쌀한 바람에 술이 확 깼다.


산책에서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사실 별로 식욕은 없었지만, 남은 음식을 처리하기 위해 조금 먹었다. 잠에서 깬 이들이 밤새 술마시다니! 대단하다! 감탄하길래, 한마디 해줬다. 이틀째라고!


목요일 밤, 금요일 밤 이틀 연속 밤을 샜다. 하루는 일하느라, 하루는 술 마시느라.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9시쯤이었다. 씻고 아이들이 깰 무렵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대략 49시간만에 잠이 들었다.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오랜만에, 실로 몇 주만에 겨우 휴식을 맞은 주말, 읽다 말았던 책을 다 읽고, 웹툰 하나를 다 봤다. 웹툰은 청각장애인 아이를 가르쳤던 선생이 나중에 아이를 다시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는 이야기다. 아주 우연히 이 만화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앞 부분만 조금 본 후, 계속 바빠서 못 보다가 이번에 완결까지 봤다. 처음 알았던 때는 완결 전이었는데, 그새 완결되었다.


만화를 보면서 한 아이가 떠올랐다. 군대 다녀와서 등록금과 용돈을 벌어보려고 학원 강사 생활을 했다. 학원 생활은 재밌었다. 난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시간이 좋았고, 뭔가를 가르치는 일도 재미있었다. 학원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가진 모순 때문에 짜증나는 일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 나중에 '사교육 시장에 복무하면서 사회 정의를 외치는 모순'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지 못해 더이상 학원 강사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 전까지, 5곳의 학원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다녔던 학원마다 조금씩 기간과 양상은 달랐지만, 나에게 관심을 가졌던 여학생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그저 자신의 삶에 들어온 익숙치 않은 존재에 대한 관심이라고 여겼다. 적당히 잘 해주면서, 적당한 선에서 잘랐다. 몇몇은 가물가물 얼굴이 떠오르는데, 이름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단 한 아이만 예외다. 이 녀석은 얼굴도 선명하게 떠오르고, 이름도 생각난다. 첫 학원에서 만났던 귀엽고, 반듯한 모범생이었다. 당시 중학생이었으니, 지금은 벌써 서른을 좀 넘겼겠다.  


당시 그 학원에는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보다는 그저 시간을 때우러 혹은 친구들과 놀기 위해 오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아니 그런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그 학원 아이들의 특징은 그 학원이 위치한 동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부산에서도 소문난 우범지대였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행적적인 업무들까지 다 끝내고 퇴근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오면, 할머니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다가와서 "총각, 꽃밭에 물 좀 주고 가소~"라고 말을 걸었던, 그런 동네였다. 그리고 쉽게 볼 수 있었다. 아이들 중에 어지간히 선을 넘은 아이들이 제법 많았다는 것을. 그것은 나 역시 학창시절 선을 많이 넘었던 아이였기 때문에 더욱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 수업은 둘 중 하나였다. 딴짓 하거나, 소곤거리는 아이들을 무시하고 진도를 나가거나, 하나 하나 다 지적하고 바로잡다가 진도를 하나도 못 나가거나. 처음에는 아무리 화가나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이들의 태도를 보고 바로 자세를 바꿨다. 아이들은 웃고 있던 나를 쉽게 생각했고, 그저 무시해도 되는 선생으로 보았다. 그 후 평소에는 웃되, 잘못된 태도에는 엄하게 대했다. 쉽지 않았다. 한 동안은 교실에 들어서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마치 시합에 나가는 권투선수처럼 각오를 다지고 문을 열었다.


하지만 모든 반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당시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로 다양했다. 하지만 초등부와 고등부 수업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중등부 수업이었다. 중3 수업이 가장 힘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권투선수처럼 각오를 다지고 들어가야 했던 수업은 중3 중에서도 2개 반 정도였다. 중2와 중1 수업은 그래도 할 만했다. 이 아이들은 아직은 순진한 면이 있었다. 같은 학년이라도 반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반은 도무지 진도를 못 나가게 엉망이었다면, 어떤 반은 아이들이 열심히 들어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진도를 빼기도 했다.


그 아이는 그런 반에 있었다. 비교적 수업 분위기가 좋았던 반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내가 엄하게 꾸짓거나 화를 내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으리라. 그 반에서는 자주 웃었고,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에 진도를 빨리 빼고 나면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해줬다. 늘 앞쪽에 앉아 집중해서 수업을 들었고, 질문에 대답도 잘 했고, 가끔 농담이나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면 웃는 얼굴로 열심히 들어주던 아이였다.


중간고사 기간이었던가? 아니면 소풍이나 현장학습 같은 것이 겹쳤던 날이었나? 다른 학교는 모두 행사가 있어서 아이들이 못 오고, 그 아이의 학교 학생들만 학원에 온 날이 있었다. 반마다 달랐지만 한 반에는 대략 너댓개의 학교 학생들이 함께 다녔다. 암튼 그 반에 그 학교 아이들은 네 명이었고, 정원 20여명 중에 겨우 4명 밖에 없었기 때문에 진도를 나가야할지 말지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눈치빠른 아이들은 내가 들어서자마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빠졌기 때문에 진도를 나가면 다음 시간이 어려워 질 거라고, 한번 쉬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러고 싶지만, 원장 선생님 눈치가 보여서 그냥 놀 수는 없다고, 조금 진도를 나간 후에 상황을 봐서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아이들은 조금 뾰로퉁한 태도로 교재를 펼쳤다. 약속대로 진도는 아주 조금만 나갔다. 원장 선생님이 순찰돌 시간이 지났다 싶을때쯤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제부터 자유시간을 줄건데, 밖에서 보기에 그래도 공부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책은 펼쳐놓고, 작게 이야기하거나, 다른 할 일을 하는 건 괜찮다"고 했다. 아이들은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교탁에 기대, 다음 수업을 준비했다.


잠시 후 아이들이 질문이 있다고 했다. 말해보라고 하자 첫번째 질문이 곧바로 "애인있어요?" 였다. 없다고 답하자 아이들이 박수까지 쳐가며 호들갑스럽게 좋아했다. 왜 그러냐고 묻자, 한 아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옆에 있던 아이가 "얘가 선생님 좋아한대요!" 라고 크게 말했다. 당황한 아이는 안그래도 붉어진 얼굴이 더 빨개지며, 말을 한 아이의 어깨를 툭 쳤다. 내가 웃으며 좋아해줘서 고맙다고 했던가? 그 비슷한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연애 경험을 이야기 해달라고, 키스 경험을 이야기 해달라고 졸랐다. 넘어갈 듯 말듯, 이야기 해줄 듯 말듯, 아이들과 장난을 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재밌었다.


그 수업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군대가기 전 사귀던 여자친구와 늦은 저녁 공원에서 키스했던 이야기의 서두를 조금 꺼내다가, 당시의 분위기와 주변 묘사만 열심히 늘어놓고는,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겠다고 김새는 발언을 했고, 아이들은 잔뜩 기대를 하고 있다가 실망해서 원성을 높였다.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그때 얼굴이 붉어진 그 아이가 "선생님" 하고 불렀다. 표정이 묘했다. 수줍어하면서도 내 눈길을 피하지 않고,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았다. 그 다음에 나온 말은 고백이었다. 좋아한다고. 난 좀 당황스러웠다. 교실에서 그것도 친구들 앞에서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아무리 대부분이 결석이고, 친한 친구들만 있었다고 해도. 그리고 평소 그 아이를 눈여겨봐왔기에 그 말이 나를 놀리는 장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못했다. 다른 아이였다면 아마 그런 의심이 먼저 들었을 지 모르지만.


그 후로 그 아이는 자주 교무실에 놀러와서 인사를 했다. 조그만 쵸콜릿이나 사탕, 음료수를 건네기도 했다. 아이는 늘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고, 내가 반가워하면 뭔가를 슬쩍 건네고 사라졌다. 그 반 담임이었던 여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얘기를 들었던 건지, 아니면 눈치로 알았던 건지 나에게 넌지시 아는 척을 했다. 아이가 선생님을 무척 좋아한다고 잘해주라고 했다.


당시 여학생들에게 무척 인기가 많았던 과학 선생이 있었다. 나보다 2살 아래였던가? 같은 학교 후배였기 때문에 종종 함께 술을 마시곤 했던 그 녀석은 키도 크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얼굴도 잘 생겼다. 학원에서 최고 인기 강사였다. 허우대는 멀쩡했지만, 의외로 수업은 잘 못했다. 목소리도 힘이 없고, 딴 짓하는 아이들을 잘 다루지 못해 어쩔줄을 몰랐다.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나를 과학 선생과 비교하며 수업도 재미있고, 흥미있는 역사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는 등등의 이유로 나를 더 좋다고 했다는 묻지도 않았던 이야길 들려주었다. 암튼 나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잘 몰라서 그저 웃기만 했는데, 그 아이는 속으로는 어땠는지 몰라도 겉으로는 나보다 훨씬 차분하게 날 대했다. 수업 시간에도 늘 경청하고, 질문에 빠르게 대답하고, 잘 웃었다.


그 학원에서 마지막 날이 기억난다. 내가 담임을 맡았던 우리반 아이들에게 한 명, 한 명, 진심으로 충고를 했다. 아이들은 대체로 무덤덤했지만, 집에가면 맨날 게임만 했던 남자 아이 하나가 진짜 그만두는거냐고 왜 그만두는거냐고 몇 번 질문을 하기도 했다. 다른 반 아이들에게는 그만 둔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건 원장 선생님이 원한 거였다. 전임 선생님이 말 없이 그만두는게, 새로온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적응하기 더 좋다는 판단에서였다. 


우리반 아이들에게만 말하고 그만두려 했는데, 어떻게 알았던 건지 그 아이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평소와 달리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 아인 내 눈을 피해 바닥을 쳐다봤고, 옆에 있던 친구가 대신 물었다. "선생님 그만두세요? 왜요? 왜 갑자기 그만두세요?" 난 잠시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가 그저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겨서 그렇다고 형식적인 대답을 했다. 그때 마지막에 그 아이가 "다른 학원에 가셔서도 건강하세요!"라고 했다. 나는 고개 숙인 그 아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나중에 생각났는데, 그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알려줬던 것 같다. 다른 학원으로 옮겨가게 되었다고 말했나보다. 한참 후에 다른 학원을 다니다 그만두었을 때는 친했던 여학생들이 핸드폰 문자로 종종 연락을 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아마 핸드폰이 그렇게 널리 퍼지기 전이었던 것 같다. 분명 내 친구들 중엔 핸드폰 가진 녀석들이 종종 있었지만, 당시에 나는 핸드폰이 없었다. 아마 그 아이도 마찬가지였겠지.


가끔 그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생글생글 웃음기 머금은 입매가 떠오르곤 했다. 언젠가 나를 참 좋고 봐주고,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셨던 농민회 형님이 술자리에서 이제 갓 성인이 된 자기 큰 딸이랑 결혼하면 어떻겠냐고? 사위삼고 싶다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그 아이 생각이 났다. 아마 나이가 비슷했을 것 같다.


웹툰 하나 보고 너무 옛 추억에 빠져들었나보다. 만화에서 호가 "성생니"하고 부르는 장면을 보면서 그 아이가 "선생님"하고 불렀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몇 주 전에 읽기 시작했다가, 한동안 바빠서 손도 못대고 있다가, 이번 주말에 다 읽었다. 소설에 대한 평은 왠지 쓰기 어렵다. 단번에 다 읽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을텐데, 중간에 너무 오래 쉬다 읽어서 맥락이 많이 끊겼다. 다 읽고 나서 조금 이해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너무 쉽게 복수를 이어가는 주인공과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는 여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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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5-09-15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너무 싱숭생숭하네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추억에 기대게 될 때가 있는데요, 그냥 팍 와서 꽂히네요.ㅎㅎ

감은빛 2015-09-17 10:05   좋아요 0 | URL
네, 이런 저런 추억들 덕분에 일상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이 순간들도 또 언젠가는 추억이 되겠지요.
 


2주 연속 삽질


어느날 제보가 들어왔다. 감자를 수확한 이후 한동안 바빠서 방치해 둔 텃밭이 거의 밀림 수준으로 풀이 자라고 있는 사진이었다. '녹색당'이라고 명패를 꽂아둔 텃밭이 방치된 모습을 사진으로 보니 무척 부끄러웠다. 명패가 없으면 몰라도, 생명의 정당 녹색당에서 텃밭을 방치한다는 소문이 돌면 곤란하다. 마침 무와 배추를 심어 가을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자는 당원들의 뜻이 모였다. 일요일에 밭을 갈아엎고 가을농사 준비를 하기로 했다.


다만 다른 당원들은 비교적 선선한 오전에 밭일을 하길 원했으나, 나는 토요일에 녹색당 전국운영위원회에 참가했다가 밤 늦게 서울로 올라올 예정이라, 일요일 아침에는 도저히 일어날 자신이 없었다. 사실 평일에는 늘 잠이 모자라기 때문에 주말에는 늦잠을 좀 자야하는데, 토요일 전국운영위 회의에 일요일 텃밭이라니! 어쨌거나 의무감에 참가를 약속했다.


일요일 낮, 아이들과 함께 텃밭에 갔다. 아이들은 알아서 뛰어 놀기 시작했고, 나는 또 한 명의 남성 당원과 함께 밀림으로 변한 텃밭의 풀들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한참 정신없이 풀과 사투를 벌이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 동네 뒷산에는 도둑가시풀이 많았다.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길을 가다 옷에 도둑가시가 붙으면, 튼튼한 나뭇가지를 구해 전투를 시작했다. 마치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을 물리치는 것처럼 도둑가시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곤 했다. 당시에는 티비에서 외화시리즈 V를 보여주던 때였다. 넓은 들판을 가득 덮은 도둑가시는 외계인이었고, 나는 '칼'이나 '도노반'이었다. 간혹 친구가 전투에 동참할 때는 서로 '도노반'을 맡겠다고 내분이 일어나기도 했다. 아마 초가을 무렵이 아니었을까 싶다. 학교를 마치면 매일 전투에 몰입하곤 했다. 넓은 들판의 도둑가시를 다 없앨 때까지 싸움을 이어갈 생각이었을 것이다.


오전반이었던 아이가 오후반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갈 때까지도 들판에서 나무가지를 휘두르고 있었고, 어느날은 해가 저문 후에도 한 마리의 외계인이라도 더 죽이고 가려고 지친 팔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며칠동안 전투를 벌였건만, 외계인의 세력은 전혀 줄지 않아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싸움에 지쳐 결국은 포기해버렸으리라.


한참 딴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밀림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이제 눈에 보이는 줄기를 뽑아 냈으니, 땅을 갈아 엎을 차례다. 삽질을 시작했다. 햇빛은 뜨거웠고, 날은 더웠다. 몇 번의 삽질만으로 옷은 땀으로 완전히 젖어버렸다. 머리칼을 타고 흐른 땀이 안경 위로 뚝 떨어진다. 같이 삽질하던 친구는 비료 포대를 가지러 갔고, 잠시 후 여성 당원이 왔다. 내 몰골을 보고 도와주겠다며 삽을 들었지만, 잡풀들의 뿌리로 얽힌 땅에 삽이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그는 삽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거들기로 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농사라곤 농활 몇 번 가본 게 다였다. 잠시 농사짓는 마을에서 살았어도, 직업은 활동가였던 터라 시내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했기 때문에 농사의 농자도 몰랐다. 몇 해 동안 텃밭 일구는 일을 거들기는 했지만, 늘 누군가 시키는대로 힘쓰는 역할만 했다. 일의 요령이 없었기 때문에 몸은 더 힘들기 마련이다. 마침내 한 차례 밭을 갈아엎고, 비료를 뿌리고 다시 흙을 골고루 섞어주면서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을 했다.


다음날 어깨와 등에 근육통이 느껴졌다. 평소 운동할 때 쓰는 근육에서 느껴지는 기분좋은 뻐근함이 아니라 제법 날카로운 통증이었다. 덕분에 운동을 이틀 쉬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방과후 협동조합 아이들이 분양받은 텃밭을 갈아 엎어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지난 주말 녹색당 텃밭 갈아엎고 근육통이 왔었다고 하소연 했지만, 일할 사람이 없었다. 이번 주를 지나면 무, 배추를 심기에 너무 늦어진다. 하지만 시간을 낼 수 있는 부모가 없었다. 하긴 아이들 텃밭은 몇 평 되지도 않는다. 잠시 힘쓰고 맛있는 장작구이집에 가기로 약속했다.


다행히 이번 토요일에 함께 삽질한 분은 텃밭 경험이 많았다. 텃밭에 가면 재미없다고 따라가지 않겠다는 아이들을 억지로 꼬셔서 가느라 약속시간보다 좀 늦었는데, 이미 그 분이 절반이상 해놓은 상태였다. 미안한 마음에 열심히 삽질을 했다. 확실히 지난 주에 한 번 삽질을 했기 때문에 요령이 생겼다. 밭도 훨씬 작았고, 유능한 경험자와 함께였기 때문에 수월하게 작업을 마쳤다. 즐겁게 땀흘린 후에 시원한 맥주 한 잔! 기분 좋은 토요일이었다.


바로 다음날, 일요일에는 지난 주 갈아엎은 녹색당 텃밭에 무와 배추를 심으러 갔다. 아이들은 이번에야 말로 절대 따라가지 않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아내는 다른 일로 외출을 해야 하고, 나도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건만,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집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냥 내버려두고 가려다가도 밥 때문에 계속 맘이 쓰였다. 지들끼리 뭐 제대로 챙겨먹을 수 있나 싶은 걱정이 드는 것이다. 아무리 달래고 유혹해도 안 통하길래 결국 두고 나왔다. 하긴 나는 훨씬 더 어렸을 때부터 맞벌이 하는 부모님 대신 나와 동생 밥을 챙겼다. 그 나이에 아직 라면 하나 못 끓이는 큰 아이를 보면서 미리 하나씩 가르쳤어야 했나 싶기도 했다.


오래된 미래
















텃밭에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가 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호지 여사와 함께 산책을 하고, 정자 앞에 모여 여사의 말씀을 들었다. 나는 먼 발치에서 그 모습을 보다가 배추 모종 심기에 집중했다. 


나중에 행사를 마무리 지으면서 다같이 손잡고 '지구와 우리를 위로하는 몸짓'인 생명의 춤을 추었다. 그때 여기저기 밭에서 일을 마무리하던 녹색당 당원들도 춤을 추러 갔는데, 나는 남은 배추 모종을 마저 심느라 남았다. 사람들은 호지 여사와 함께 춤을 추고 나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나중에 왜 기념사진 찍으러 안 왔냐고 묻길래, 별로 같이 사진 찍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사실 호지 여사에 대해 조금 석연찮은 점이 있다. 녹색평론에서 [오래된 미래]가 나와 널리 알려지고, 필독서가 되었건만, 어쩐 일인지 호지여사는 판권을 중앙북스로 넘겨버린다. 녹색평론에서 10년간 좋은 책을 알리고 판매했건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규모 상업 출판사에 판권을 넘겨버리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저작권료를 둘러싼 호지 여사와 김종철 선생과의 상황에 대해서는 몇 개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은 서로 소통하던 사이였고, 충분히 대화를 통해 풀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라 생각되는데, 일방적으로 판권을 넘긴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그 후 중앙에서 나온 책의 꼴을 보면서 더 기분이 나빴다. 정말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책이었다.


예전에 샀던 녹색평론사 판 [오래된 미래]가 어느 날 보니 없어졌더라. 누군가에게 빌려줬던 걸까? 다시 사려고 하다가 중앙북스 판은 아무래도 사기 싫더라. 이 책의 정신에 위배되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중앙이란 말이다. 중앙!)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시공사에 나온 책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중앙도 마찬가지다. 이 글에 절판된 녹색평론사 판 표지를 첨부한 것도 중앙북스의 책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텃밭 일을 끝내고, 다시 긴 회의를 하고, 저녁 늦게 간단하게 밥과 맥주를 먹으면서 그 이야기를 했다. 이 책은 한동안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책이다. 다시 녹색평론사로 돌아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중앙이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기 전에는 없는 책이나 마찬가지다. 안타깝다.


※ 함께 배추 모종을 심던 당원이 "저 연세에도 저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은 존경스럽다." 고 말했다. 먼 발치에서 호지 여사를 보면서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과연 나는 저 나이에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글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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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5-09-07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도 기회가 되면 텃밭구경 꼭 가고 싶네요 ^^ 해가 그래도 엄청 뜨겁던데 고생하셨겠어요.

오래된미래 출판권이 넘어간 과정 정말 생각하면 속상하지요.. 저희집에 있나 좀 뒤져봐야겠네요.

감은빛 2015-09-07 18:16   좋아요 0 | URL
무, 배추가 잘 자라야 부끄럽지 않을텐데,
바쁘기도하고, 게으르기도하고, 과연 잘 자랄지 모르겠네요. 작년엔 경험 많으신 선배 당원님께서 배추를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당원들이 같이 김장도 했어요. ^^

북극곰 2015-09-0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미래의 판권이 중앙에 팔렸군요....

감은빛 2015-09-08 14:14   좋아요 0 | URL
어제 퇴근길에 스마트폰으로 답을 달았었는데,
오늘보니 없어졌네요. ㅠㅠ

아마 2007년인가 2008년인가 그랬을 겁니다.
이 책은 호지 여사가 카피레프트 차원에서 다른 나라에서
출판할 때 판권 계약을 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녹색평론에서 90년대 중반에 책을 낼 때 당시에
김종철 선생님과 합의가 있었고,
다른 나라의 경우처럼 판권 계약 없이, 저자의 허락을 받고
책을 출판했고, 녹색평론 덕분에 책이 널리 알려지고,
필독서가 되었고, 책도 많이 팔렸습니다.

그런데 10년 뒤에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중앙북스에 판권을 넘긴 겁니다.
김종철 선생은 비록 판권 계약은 하지 않았지만,
비정기적으로 호지여사에게 후원금을 보냈다고 합니다.
돈이 필요하다면 출판사를 바꾸기 전에 먼저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렇게 뒤통수를 치듯이 판권을 팔아버리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지요.

비로그인 2015-09-07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고생하셨네요 ㅠ 저도 얼마전에 무와 배추를 심었어요~밭은 조금만 잊어버리고 있어도 풀이 무성해져서 끊임없이 부지런해지라고 넋놓고 있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요
오래된 미래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ㅠㅠ

감은빛 2015-09-08 14:16   좋아요 0 | URL
네 밭은 돌아서면 풀이 무성하게 자라더군요.
아른님의 무와 배추가 튼실하게 잘 자라길 바랍니다! ^^

많이들 아시는 줄 알고, 일부러 글에 자세히 쓰지 않았는데,
잘 모르시는 분이 많군요.
요 위에 북극곰님께 댓글로 달았습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개 2015-09-0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오래된 미래 판권이 팔렸어요?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호지 여사님의 속사정이야 알수는 없지만
좀 속상하긴 하네요. 그것도 중앙이라니..

감은빛 2015-09-08 14:21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도 모르셨군요.
제 주변에는 상황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 위에 북극곰님께 답글을 달았습니다.
당시 상황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추측입니다만, 아마 호지 여사가 우리나라에 방문했을 때,
누군가 녹색평론을 비난하고,
중앙북스를 추천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납득도 용납도 하기 어렵습니다.
저에게 저 책은 이제 없는 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transient-guest 2015-09-09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을 아무리 해도 일에서 생기는 근육과는 다른 듯, 한번 일을 하고 나면 아주 힘들게 마련입니다.ㅎㅎ 농사는 너무 어렵잖아요. 저는 시공사에서 나오는 책을 다른 출판사에서 내주었으면 합니다. 사고 싶지 않은데, 실천할 수가 없어서 늘 전두환 아들내미한테 돈을 갖다 주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_-: 푹 쉬고 다시 운동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북극곰 2015-09-09 09: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시공이 돈이 많아 그런지 특히 아이들 책은 탐나는 것들이 많거든요. 시공사 건 가끔 중고로만 사주긴하지만 그래도 중고책에서 잘팔리는 것도 결국엔 새책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서 찜찜합니다.

감은빛 2015-09-14 15:5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일(노동)을 해서 생기는 근육은 운동으로 만든 근육과 다르겠군요.
일을 할때는 운동할때처럼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훨씬 복합적인 동작을 해야 하니까요.

저도 게스트님과 북극곰님처럼
시공사에서 좋은 책이 나올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어린이 책 중에는 정말 좋은 책이 많이 나오는데,
아이들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책이 있어도
그냥 외면할 수 밖에 없습니다. ㅠㅠ

yamoo 2015-09-1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오래된 미래 판권이 팔렸군요!

감은빛 님 고생하시네요. 꼭 건강챙기시길!

감은빛 2015-09-14 15:54   좋아요 0 | URL
야무님도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딴 짓


꼭 해야할 일이 코 앞에 닥쳤을 때, 오히려 딴 짓이 하고 싶어진다. 이미 마감을 하루 넘긴 원고를 쓰다 말고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늘 그래왔다. 시험을 앞두고 오히려 더 가열차게 놀러다닌 기억은 중학교때부터 늘 당연한 것처럼 굳어졌다. 시험기간에 놀아야지. 평소엔 놀 시간이 없다는 말은 중학교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입버릇이었다. 그러고도 장학금을 받았고, 데모 때문에 출석이 부족했던 때를 제외하면 성적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지난 여름 휴가 때 고향 집에 갔을 때, 책을 찾다가 우연히 대학시절 성적표를 발견했는데, 생각보다 학점이 나쁘지 않아서 깜짝 놀랐다. 나에겐 쌍권총을 받아았던 기억만 남아있었는데, 그 다음 학기부터는 성적이 많이 올랐더라. 신기하다.


암튼 이 나쁜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여유있게 할일을 마무리 짓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가끔 일을 하다보면 머리 속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아직 며칠이 더 남았는데, 왜 그걸 지금 고민해? 조금 더 지나면 훨씬 더 명확한 생각이 떠오를 거야. 지금 1시간 써야할 거라면, 그땐 30분도 안 걸릴걸" 뭐 이런 목소리가 머리 속에서 들린다.


문제는 이게 맞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는 것이다. 뭔가가 막혔을 때, 평소 계속 고민하다가 마감 시한에 쫓겨 쓰다보면 번쩍 어떤 실마리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무리 고민을 거듭해도 딱히 좋은 내용을 떠올리지 못할 때도 있다.



탈의실이 불안해

 

작년 가을 이후로 약 10개월 이상 그만뒀던 운동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했다. 일터 근처 핏니스센터를 끊었다. 겨울과 봄에는 거의 운동을 안했지만, 여름부터는 집에서 케틀벨 스윙 및 데드리프트를 중심으로 자주 운동을 했다. 맨몸 운동도 타바타 인터벌 스퀏이라던가, 타바타 인터벌 버피를 종종 했다. 그래서 생각보다 몸매가 많이 무너지지 않았고, 힘도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했다.


여기 핏니스센터는 여러가지 조건을 놓고 고민하다가 일터에서 가깝다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만으로 선택했다. 밖에서 보면 썩 그렇게 나빠보이지 않았기에 일단 결제를 했는데, 이용하면서 보니 생각보다 부족한 점이 많다.


1. 프리웨이트를 위한 공간 및 바벨 부족


예전에도 여러번 언급했는데, 운동은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근육의 집중도와 협응력인다. 하지만 헬스클럽 머신 운동으로 집중력과 협응력을 키우긴 어렵다. 대부분 고립운동이라 협응력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고, 저중량 고반복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집중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 고중량 저반복으로 운동한다면? 그땐 적어도 집중력은 챙길 수 있을텐데, 머신 운동은 인체의 동작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거운 무게를 들면 근육과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스미스 머신이다. 스퀏 운동을 할 수 있는 머신인데, 안전을 위해 바벨을 고정시켜 놓았다. 바벨은 앞뒤나, 좌우로 움직이지 못하고, 오로지 위아래로만 움직인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스퀏을 하면서 바벨을 올리고 내릴때, 바벨이 완전이 수직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우리 몸의 동작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몸의 동작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벨이 움직여야 하는데, 스미스 머신의 경우 바벨의 수직 움직임에 우리 몸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고중량을 들었을 경우, 무릎과 척추기립근에 무리가 갈 수 있다.


그런 이유는 나는 운동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수없이 핏니스 센터를 다니지만, 머신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거울과 바벨과 케틀벨만 있으면 되는데, 대부분의 핏니스클럽엔 머신들만 꽉 채워져 있을 뿐 거울과 빈 공간이 많지 않다. 거울이 있어도 그 앞은 대개 벤치들이 차지하고 있다.


여기는 거울 앞에 케이블 크로스오버 머신이 놓여 있고, 그 앞에 빈 공간이 조금 있으며, 그 뒤로 벤치가 서너개 놓여있다. 스미스 머신과 케이블 크로스오버 머신 사이에 빈 바가 하나 있어서 그걸로 프리웨이트 운동을 하는데, 가끔 케이블 크로스오버 머신을 쓰는 사람이 있거나, 벤치에서 운동하는 사람이 있으면 공간 이용이 쉽지 않다. 난 다른 머신 운동을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좁은 공간 밖에 운동할 곳이 없는데, 거기를 누가 쓰고 있으면 곤란하다.


게다가 여분의 바벨이 하나 밖에 없는 것도 문제다. 물론 스미스 머신과 벤치에는 바가 하나씩 걸려 있어서, 나처럼 아예 프리웨이트를 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 거의 쓸 일이 없지만, 혹 누군가 그 바를 써버리면 난감하다.


게다가 케틀벨이 없다. 본 운동은 바벨로 하더라도, 정리운동은 케틀벨 스윙이 가장 좋은데, 케틀벨이 아예 없다. 요즘은 따로 정리운동을 안 하고 나올 때가 많다.


2. 운동복과 수건 문제


예전에 다녔던 핏니스 센터는 모두 통풍이 잘되는 얇은 운동복을 나눠줬다. 사이즈도 서너단계로 구분해서 체격에 맞게 잘 골라 입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운동복이 무척 두텁다. 분명 반팔과 반바지인데, 무척 두터워서 입기만 해도 땀이 난다. 혹시 땀을 많이 흘리라고 이런 옷을 주는 건가? 게다가 사이즈가 딱 두 종류 밖에 없다. 이틀동안 작은 사이즈와 큰 사이즈를 입어봤는데, 내 몸에 딱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황당했다.


한편 예전 운동복 바지는 얇아도 이중으로 되어 있어서 안감이 있어서 움직이기 편했는데, 여기 바지는 두텁지만 안감이 따로 없다. 나는 운동할 때 속옷을 입지 않는데, 땀에 다 젖기 때문이다. 아침에 나올 때마다 매일 속옷을 따로 챙기는 것은 번거롭기도 하고, 매일 두 개씩 속옷을 입어도 될만큼 많지도 않다. 그리고 샤워하고 나서 땀에 완전히 젖은 속옷을 다시 입는 건 찝찝하다. 그래서 속옷을 벗고 바지를 입는데, 예전에 다니던 곳 바지는 아까 말했듯이 그물처럼 되어 있는 안감이 성기를 받쳐줘서 편했지만, 지금은 그런게 전혀 없어서 좀 불편하다.


수건은 예전에 다녔던 곳들처럼 2장씩 준다. 한 장은 운동할 때 땀을 닦고, 한 장은 샤워한 후 몸을 닦는다. 문제는 수건이 너무 낡았다는 점이다. 너덜너덜한 것은 뭐 그렇다 쳐도, 너무 얇아서 물기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두 장을 모두 샤워 후 써야 간신히 몸을 다 닦는다. 땀은 그냥 운동복으로 닦을 수밖에.


3. 탈의실


아, 이건 솔직히 진짜 황당하다. 아직도 잘 적응이 안된다. 탈의실과 샤워실은 지하에 있다. 운동공간을 보면 그리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지하로 내려가는 순간 이 건물과 시설이 낡았다는 느낌이 확 든다. 습기찬 지하의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계단을 내려가면 먼저 남자 탈의실이 있고, 더 들어가면 여자 탈의실이 있다.


대개 탈의실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입구가 나오고 거기에 문이 하나 더 있다거나, 아니면 벽이 나오고 한번 꺽어서 들어가야 탈의 공간이 나오도록 되어 있다. 문을 열었는데, 바로 사람들이 옷을 벗는 공간이 나오면 복도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는 탈의실 문을 열면 바로 탈의 공간이 나온다. 넓지도 않아서 딱 한눈에 다 들어온다. 아, 문 위에 봉을 달아서 있으나 마나 한 천 조각을 걸어두긴 했으나, 늘 한 쪽으로 치워져 있다.


첫날 옷을 벗고 있는데, 한 사람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남성이었지만, 꽤나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닦은 후 옷을 입으려고 락커 문을 열고 있는데, 한 사람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아직 문을 닫기 전에 한 여성이 지나가는 모습이 열린 문 틈으로 보였다. 방금 들어온 남성 바로 뒤이어 계단을 내려온 여성일 것이다. 만약 그 여성이 살짝 고개를 돌려 왼쪽을 쳐다봤다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좀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며칠동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봤다. 그냥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가끔 샤워장을 들어갈 때 수건과 함께 속옷도 챙겨가서, 샤워장 바로 앞, 저 안쪽 공간에서 속옷을 입고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탈의 공간이 워낙 작고 좁기 때문에 그 앞에 서있어도 뭔가 허전하고 불안한 느낌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누군가 문을 열고 하필 바로 그때 앞을 지나가는 여성이 무심코 시선을 돌려도 다 보일것이다.


물론 여자 탈의실도 마찬가지 구조일테니, 그 앞을 오가는 여성들도 그 사실을 잘 알것이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열린 문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애쓰겠지. 아마도 그럴거라고 믿어도 뭔가 허전하고 불안한 느낌은 마찬가지다. 이건 참 쉽게 적응되지 않는 문제다.


아무리 일터에서 가까워도 오래 다닐 곳은 못된다. 딱 3달만, 아니 이제 3주 지났으니 두 달만 참자. 다음에는 좀 더 꼼꼼히 따져보고 운동할 곳을 골라야겠다.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요즘 가끔 뒤져본다. 괜히 운동하다가 다치면 억울하니까 되도록 초기부터 운동 습관을 잘 들여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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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8-31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운동 정지 상태였다가 어제 오랜만에 케틀벨 했는데 자세가 엉망이었는지 어제 하고나서부터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허리가 너무 아프더라고요 ㅜㅜ
지금은 다행히 나아졌지만 아 ㅜㅜ 너무 무서웠어요 ㅠㅠㅠ
제가 오래전에 다녔던 탈의실도 말씀하신 구조라, 누가 문을 열 때마다 당황하곤 했어요. 저는 이 헬스장은 가격이 저렴하니 이걸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닌 것 같아요 ㅜㅜ
여튼 운동 다시 해야지 마음은 먹지만 오늘도 저는 소주를 ㅜㅜ

감은빛 2015-09-07 14:20   좋아요 0 | URL
한참 바빠서 답글이 늦었네요.

다락방님 다녔던 곳도 같은 구조였다니!
여성분들은 훨씬 더 민감한 사안일텐데요.
그나마 여기 여성들이 다니는 이유는
여성 탈의실이 더 안쪽이라
남성이 거기까지 들어갈 이유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덕분에 남성인 저는 반투명 유리 너머로 여성이 지나갈 때마다
흠칫 놀라게 되지만요.

저는 탈의실 구조도 문제지만,
너무 낡고 곰팡이 냄새가 심해서
처음 등록한 3달 후엔 옮길 생각입니다.

저는 요새 거의 매일 술을 마셔요.
회의나 토론회 등의 일정이 있는 날엔 대개 짧게라도 뒤풀이를 하구요.
그런 일정이 없이 야근을 한 날에는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혼자 한 잔.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에는 책 읽으면서 맥주 한 두 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저녁에는 반찬 만들다가 입맛 없어져서,
만들어놓은 메인 반찬을 안주 삼아 반주를 또 한 잔 해요.

데이트폭력으로 유명해진 한윤형씨가 [다이어트 진화론]을 쓴 코치 D에게
요구한 것이 `매일 술과 안주를 먹어도 몸매 유지가 가능한 운동`이었다고 해요.
저도 매일 술과 안주를 먹지만,
몸이 바빠서 그런지 몸매 유지가 가능하네요.

transient-guest 2015-09-09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free weight이 많은 곳이 좋은 곳이라는 글을 많이 봤는데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예전에 이곳에서 가장 큰 브랜드인 24 hour fitness다녔었는데, 잘 되어있지만, 2013년부터 다닌 gold`s gym브랜드가 훨씬 제대로 되어 있습니다. 수영장이 없는건 좀 아쉽지만, 다른건 다 있어요.ㅎㅎ
2. 운동복/수건을 이곳에서는 각자 자기가 준비합니다. 아주 비싼 일부 회원제 gym의 경우 수건을 준비해주는 걸로 아는데요, 솔직히 옷도 수건도 남이 쓰던걸 쓰기는 싫어서요.ㅎㅎ
3. 탈의실은 별로 문제 없구요.

저도 술만 끊으면 몸짱이 될텐데 말이죠.ㅎㅎ 요즘 cardio를 늘리긴 했는데, 운동이 아무래도 관성이 생긴 듯, 초기의 임팩트가 많이 아쉽네요.ㅎ

감은빛 2015-09-14 16:06   좋아요 0 | URL
1.
여기(한국 그리고 서울) 핏니스 센터는 거의 머신으로 도배되어 있어서요.
빈 공간을 찾기가 너무 어려워요.
집과 일터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곳들을
대략 10군데 이상 살펴봤는데,
그중 아예 빈 운동공간이 없는 곳이 절반에 가까웠습니다.
그나마 아주 좁은 공간이 있는 나머지 절반이구요.

2.
크로스핏 체육관에서는 운동복과 수건을 제공하지 않더군요.
보통 핏니스센터 3배 이상 비싼데도 운동복과 수건을 안 주다니!
(조금 저렴한 곳을 기준으로 하면 5배 이상!)

물론 제공해주는 운동복과 수건에서는 냄새가 나기도 하고,
여러모로 찝찝한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매일 운동복과 수건을 챙겨 다니고,
운동 후에는 젖은 옷과 수건을 갖고 다녀야 하는 건 또 귀찮더라구요.

3.
탈의실은 여기가 워낙 충격적이라,
당연히 문제가 없어야 하는 곳인데 말이죠.
 


아빠 본능


SNS를 하다가 누군가 아빠 본능(영어 제목은 위대한 아빠 어쩌구 였는데)이라고 올려놓은 동영상을 봤다. 영상에는 여러 아빠들이 아이들이 넘어지거나, 떨어지거나, 부딪쳐서 다치기 직전에 잡아주거나 막아주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졌다. 아 진짜 감탄할만한 장면이 많았다. 영상에 나오는 아빠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의 위기 상황에 순간적으로 반응했다. 소파에서 떨어지는 어린 아이를 보지도 않고 받아내는 아빠, 아이에게 날아오는 스케이트 보드를 막아내는 아빠 등 어떻게 그렇게 순간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지 신기한 장면이 많았다.


영상을 보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대략 10년 전 일이다. 지금 초등학생인 큰 아이가 아기였을 때다. 아마 막 뒤집기를 시작했을 때였으니 6개월이 채 안되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육아휴직을 하고 하루종일 아기와 함께 보냈다. 육아휴직에 큰 이유는 없었다. 그저 활동가인 나보다 아내가 벌이가 더 좋았기 때문에 내가 아기를 보기로 했다. 하루하루 아기를 바라보며 보낸 시간이 신기하고 재밌기도 했지만, 한편 힘들고 지겹기도 했다.


암튼 하루는 아기 침대 위에서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시 뉘어 놓았을 때였다. 기저귀를 갈기 위해 침대 난간을 내려놓고 미처 올리지 않은 채였다. 정확하게 뭐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방 한쪽 끝에 놓인 아기 침대에서 반대편 끝에 가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책을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뭔가 끄적거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문득 눈을 들어 아기를 바라보는데, 딱 그때 마침 아기가 가만히 누워만 있기 지겨웠는지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던지고 곧바로 몸을 날렸다. 아기는 몸을 버둥거리다가 마침내 뒤집기에 성공했고, 난간이 내려진 면으로 몸이 휙 돌더니 허공에 잠시 머무르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아기가 허공에 잠시 머물렀을 리는 없고, 그 짧은 시간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뜻이다. 곧이어 아기는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몸이 빙글 반바퀴를 더 돌았고, 잠시 후 뒷머리가 방바닥에 부딪히며 짧은 비행을 마쳤다. 그리고 바로 그 직후 전력으로 몸을 던졌던 내 팔이 아기를 안아올렸다. 아기는 얼마나 놀랐던지 크게 울기 시작했고, 쉽게 그치지 못했다. 나는 아기를 꼭 끌어안고 뒷머리를 쓸어주었다. 저절로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고, 입은 계속 "아가야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라고 반복하고 있었다.


아기침대는 내 무릎보다 살짝 높았으니 60cm 높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태어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아기가 그 높이에서 떨어졌으니, 얼마나 놀라고 아팠을까? 한참을 아기를 껴안고 울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혹시 머리를 다쳤으면 어쩌지? 이 일 때문에 아기에게 뭔가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걱정이 되어 미칠 것 같았다.


이후 가끔 악몽을 꾸곤 했다. 아기는 계속해서 침대에서 떨어졌고, 나는 계속해서 아기를 받아내기위해 몸을 날렸지만, 번번히 내 손이 닿기 전에 아기는 떨어졌다. 어떤 날엔 갑자기 방이 길게 늘어나면서 아무리 빨리 달려도 점점 더 아기가 멀어지기도 했고, 어떤 날엔 갑자기 침대가 엄청나게 높아지면서 아기가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당시 살던 집은 작은 방과 거실은 무척 좁았지만, 유독 안방만은 넓고 길었다. 방문쪽 벽에 아기 침대가 있었고, 나는 반대쪽 창문 아래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의자를 박차고 달려 아기를 향해 몸을 날렸음에도 아기가 떨어진 직후에 손이 닿았다.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0.1초만 더 빨랐어도 뒷머리가 바닥에 닿기 전에 손바닥으로 받쳐줄 수 있었을텐데.


나중에 강풀의 웹툰 중에 시간능력자가 나오는 만화를 보는데, 10초였던가?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는 남자가 나오는 장면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당시 무수히 많은 악몽을 통해 계속 떨어지는 아기를 받기 위해 뛰었듯이, 짧은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는 그 남자는 아내와 아기가 떨어져 죽을 때 끝없이 시간을 되돌려 아기와 아내를 받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뒤로 돌려봐도 늘 손이 닿지 않았고, 시간을 되돌릴 때마다 지쳐가면서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수십번 아니 수백번 시간을 돌려가며 뛰고 또 뛰었던 그는 지칠지대 지쳐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 장면을 읽으며 아마 울었던 것 같다. 침대에서 떨어지는 아기를 받지 못했던 장면이 끝없이 머리속에서 반복재생되면서 만약 나에게 또 한번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땐 받아낼 수 있을까? 상상하게 되고, 만약 받지 못한다면 나도 따라 죽어버려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두번째 기억은 한 4년이나 5년 전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고, 하필 작은 아이 어린이집에 기저귀가 떨어졌다고 해서 갖다줘야 하는 날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이 이야기는 당시에도 이 서재에 적었던 기억이 난다. 암튼 한 팔에 아기를 안고, 다른 어깨에는 어린이집 가방과 기저귀꾸러미 등 짐을 잔뜩 메고 있었다. 그리고 우산을 들었다. 먼저 큰 아이를 가까운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작은 아이를 조금 더 멀리 있는 다른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했다. 당시 큰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은 영아 반이 없고, 4세부터 입학할 수 있었다. 아직 어렸던 작은 아이는 영아반이 있는 다른 어린이집을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암튼 큰 아이를 들여보내고 돌아서서 작은 아이 어린이집을 향해 내리막길을 걷다가 문득 발이 미끄러지면서 넘어질 뻔했다. 자칫하면 넘어지면서 아기가 바닥에 떨어질지도 몰랐다. 순간적으로 아기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면서, 미끄러지는 발에도 힘을 꽉 주고 버텼다. 발목이 기이하게 꺾이이면서 무릎을 찍었지만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바지가 다 젖긴 했지만 그래도 아기가 다치지 않았다. 아마 아기를 안고 있지 않은 상태로 혼자 가다 미끄러졌다면 분명 그대로 넘어졌을 것이다.


다시 아기를 고쳐 안고, 가방들을 제대로 메고 나서 보니, 멘홀 뚜껑을 밟아 미끄러졌던 거였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날 맨홀 뚜껑은 정말 미끄럽다. 왜 하필 그자리에 있었나! 잠시 원망을 한 후 놀란 아기의 뺨에 뽀뽀를 하고, 아기를 데려다주고 출근했다.


하와이피스톨? 김상옥!















독립운동가 중에 사격 솜씨가 가장 뛰어난 분을 꼽으라면 이 분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서울 시내에서 쌍권총으로 일본 경찰 수십명을 죽이고 도망다닌 전설적인 인물이다. 최근 영화 [암살]의 흥행과 더불어 작중 하와이 피스톨의 모델이 되는 실존 인물은 아마 김상옥 의사가 아닐까 짐작하는 글을 읽었다. 그러고보니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부와 권력을 고스란히 거머쥔 채 여전히 잘 살고 있지만,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이다. 이 나라는 참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지만, 친일파를 생각하면 진짜 열받는다. 김상옥 의사가 저승에서 이 꼴을 본다면 아마 피를 토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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