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짓
꼭 해야할 일이 코 앞에 닥쳤을 때, 오히려 딴 짓이 하고 싶어진다. 이미 마감을 하루 넘긴 원고를 쓰다 말고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늘 그래왔다. 시험을 앞두고 오히려 더 가열차게 놀러다닌 기억은 중학교때부터 늘 당연한 것처럼 굳어졌다. 시험기간에 놀아야지. 평소엔 놀 시간이 없다는 말은 중학교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입버릇이었다. 그러고도 장학금을 받았고, 데모 때문에 출석이 부족했던 때를 제외하면 성적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지난 여름 휴가 때 고향 집에 갔을 때, 책을 찾다가 우연히 대학시절 성적표를 발견했는데, 생각보다 학점이 나쁘지 않아서 깜짝 놀랐다. 나에겐 쌍권총을 받아았던 기억만 남아있었는데, 그 다음 학기부터는 성적이 많이 올랐더라. 신기하다.
암튼 이 나쁜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여유있게 할일을 마무리 짓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가끔 일을 하다보면 머리 속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아직 며칠이 더 남았는데, 왜 그걸 지금 고민해? 조금 더 지나면 훨씬 더 명확한 생각이 떠오를 거야. 지금 1시간 써야할 거라면, 그땐 30분도 안 걸릴걸" 뭐 이런 목소리가 머리 속에서 들린다.
문제는 이게 맞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는 것이다. 뭔가가 막혔을 때, 평소 계속 고민하다가 마감 시한에 쫓겨 쓰다보면 번쩍 어떤 실마리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무리 고민을 거듭해도 딱히 좋은 내용을 떠올리지 못할 때도 있다.
탈의실이 불안해
작년 가을 이후로 약 10개월 이상 그만뒀던 운동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했다. 일터 근처 핏니스센터를 끊었다. 겨울과 봄에는 거의 운동을 안했지만, 여름부터는 집에서 케틀벨 스윙 및 데드리프트를 중심으로 자주 운동을 했다. 맨몸 운동도 타바타 인터벌 스퀏이라던가, 타바타 인터벌 버피를 종종 했다. 그래서 생각보다 몸매가 많이 무너지지 않았고, 힘도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했다.
여기 핏니스센터는 여러가지 조건을 놓고 고민하다가 일터에서 가깝다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만으로 선택했다. 밖에서 보면 썩 그렇게 나빠보이지 않았기에 일단 결제를 했는데, 이용하면서 보니 생각보다 부족한 점이 많다.
1. 프리웨이트를 위한 공간 및 바벨 부족
예전에도 여러번 언급했는데, 운동은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근육의 집중도와 협응력인다. 하지만 헬스클럽 머신 운동으로 집중력과 협응력을 키우긴 어렵다. 대부분 고립운동이라 협응력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고, 저중량 고반복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집중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 고중량 저반복으로 운동한다면? 그땐 적어도 집중력은 챙길 수 있을텐데, 머신 운동은 인체의 동작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거운 무게를 들면 근육과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스미스 머신이다. 스퀏 운동을 할 수 있는 머신인데, 안전을 위해 바벨을 고정시켜 놓았다. 바벨은 앞뒤나, 좌우로 움직이지 못하고, 오로지 위아래로만 움직인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스퀏을 하면서 바벨을 올리고 내릴때, 바벨이 완전이 수직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우리 몸의 동작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몸의 동작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벨이 움직여야 하는데, 스미스 머신의 경우 바벨의 수직 움직임에 우리 몸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고중량을 들었을 경우, 무릎과 척추기립근에 무리가 갈 수 있다.
그런 이유는 나는 운동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수없이 핏니스 센터를 다니지만, 머신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거울과 바벨과 케틀벨만 있으면 되는데, 대부분의 핏니스클럽엔 머신들만 꽉 채워져 있을 뿐 거울과 빈 공간이 많지 않다. 거울이 있어도 그 앞은 대개 벤치들이 차지하고 있다.
여기는 거울 앞에 케이블 크로스오버 머신이 놓여 있고, 그 앞에 빈 공간이 조금 있으며, 그 뒤로 벤치가 서너개 놓여있다. 스미스 머신과 케이블 크로스오버 머신 사이에 빈 바가 하나 있어서 그걸로 프리웨이트 운동을 하는데, 가끔 케이블 크로스오버 머신을 쓰는 사람이 있거나, 벤치에서 운동하는 사람이 있으면 공간 이용이 쉽지 않다. 난 다른 머신 운동을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좁은 공간 밖에 운동할 곳이 없는데, 거기를 누가 쓰고 있으면 곤란하다.
게다가 여분의 바벨이 하나 밖에 없는 것도 문제다. 물론 스미스 머신과 벤치에는 바가 하나씩 걸려 있어서, 나처럼 아예 프리웨이트를 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 거의 쓸 일이 없지만, 혹 누군가 그 바를 써버리면 난감하다.
게다가 케틀벨이 없다. 본 운동은 바벨로 하더라도, 정리운동은 케틀벨 스윙이 가장 좋은데, 케틀벨이 아예 없다. 요즘은 따로 정리운동을 안 하고 나올 때가 많다.
2. 운동복과 수건 문제
예전에 다녔던 핏니스 센터는 모두 통풍이 잘되는 얇은 운동복을 나눠줬다. 사이즈도 서너단계로 구분해서 체격에 맞게 잘 골라 입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운동복이 무척 두텁다. 분명 반팔과 반바지인데, 무척 두터워서 입기만 해도 땀이 난다. 혹시 땀을 많이 흘리라고 이런 옷을 주는 건가? 게다가 사이즈가 딱 두 종류 밖에 없다. 이틀동안 작은 사이즈와 큰 사이즈를 입어봤는데, 내 몸에 딱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황당했다.
한편 예전 운동복 바지는 얇아도 이중으로 되어 있어서 안감이 있어서 움직이기 편했는데, 여기 바지는 두텁지만 안감이 따로 없다. 나는 운동할 때 속옷을 입지 않는데, 땀에 다 젖기 때문이다. 아침에 나올 때마다 매일 속옷을 따로 챙기는 것은 번거롭기도 하고, 매일 두 개씩 속옷을 입어도 될만큼 많지도 않다. 그리고 샤워하고 나서 땀에 완전히 젖은 속옷을 다시 입는 건 찝찝하다. 그래서 속옷을 벗고 바지를 입는데, 예전에 다니던 곳 바지는 아까 말했듯이 그물처럼 되어 있는 안감이 성기를 받쳐줘서 편했지만, 지금은 그런게 전혀 없어서 좀 불편하다.
수건은 예전에 다녔던 곳들처럼 2장씩 준다. 한 장은 운동할 때 땀을 닦고, 한 장은 샤워한 후 몸을 닦는다. 문제는 수건이 너무 낡았다는 점이다. 너덜너덜한 것은 뭐 그렇다 쳐도, 너무 얇아서 물기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두 장을 모두 샤워 후 써야 간신히 몸을 다 닦는다. 땀은 그냥 운동복으로 닦을 수밖에.
3. 탈의실
아, 이건 솔직히 진짜 황당하다. 아직도 잘 적응이 안된다. 탈의실과 샤워실은 지하에 있다. 운동공간을 보면 그리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지하로 내려가는 순간 이 건물과 시설이 낡았다는 느낌이 확 든다. 습기찬 지하의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계단을 내려가면 먼저 남자 탈의실이 있고, 더 들어가면 여자 탈의실이 있다.
대개 탈의실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입구가 나오고 거기에 문이 하나 더 있다거나, 아니면 벽이 나오고 한번 꺽어서 들어가야 탈의 공간이 나오도록 되어 있다. 문을 열었는데, 바로 사람들이 옷을 벗는 공간이 나오면 복도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는 탈의실 문을 열면 바로 탈의 공간이 나온다. 넓지도 않아서 딱 한눈에 다 들어온다. 아, 문 위에 봉을 달아서 있으나 마나 한 천 조각을 걸어두긴 했으나, 늘 한 쪽으로 치워져 있다.
첫날 옷을 벗고 있는데, 한 사람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남성이었지만, 꽤나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닦은 후 옷을 입으려고 락커 문을 열고 있는데, 한 사람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아직 문을 닫기 전에 한 여성이 지나가는 모습이 열린 문 틈으로 보였다. 방금 들어온 남성 바로 뒤이어 계단을 내려온 여성일 것이다. 만약 그 여성이 살짝 고개를 돌려 왼쪽을 쳐다봤다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좀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며칠동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봤다. 그냥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가끔 샤워장을 들어갈 때 수건과 함께 속옷도 챙겨가서, 샤워장 바로 앞, 저 안쪽 공간에서 속옷을 입고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탈의 공간이 워낙 작고 좁기 때문에 그 앞에 서있어도 뭔가 허전하고 불안한 느낌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누군가 문을 열고 하필 바로 그때 앞을 지나가는 여성이 무심코 시선을 돌려도 다 보일것이다.
물론 여자 탈의실도 마찬가지 구조일테니, 그 앞을 오가는 여성들도 그 사실을 잘 알것이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열린 문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애쓰겠지. 아마도 그럴거라고 믿어도 뭔가 허전하고 불안한 느낌은 마찬가지다. 이건 참 쉽게 적응되지 않는 문제다.
아무리 일터에서 가까워도 오래 다닐 곳은 못된다. 딱 3달만, 아니 이제 3주 지났으니 두 달만 참자. 다음에는 좀 더 꼼꼼히 따져보고 운동할 곳을 골라야겠다.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요즘 가끔 뒤져본다. 괜히 운동하다가 다치면 억울하니까 되도록 초기부터 운동 습관을 잘 들여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