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본능


SNS를 하다가 누군가 아빠 본능(영어 제목은 위대한 아빠 어쩌구 였는데)이라고 올려놓은 동영상을 봤다. 영상에는 여러 아빠들이 아이들이 넘어지거나, 떨어지거나, 부딪쳐서 다치기 직전에 잡아주거나 막아주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졌다. 아 진짜 감탄할만한 장면이 많았다. 영상에 나오는 아빠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의 위기 상황에 순간적으로 반응했다. 소파에서 떨어지는 어린 아이를 보지도 않고 받아내는 아빠, 아이에게 날아오는 스케이트 보드를 막아내는 아빠 등 어떻게 그렇게 순간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지 신기한 장면이 많았다.


영상을 보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대략 10년 전 일이다. 지금 초등학생인 큰 아이가 아기였을 때다. 아마 막 뒤집기를 시작했을 때였으니 6개월이 채 안되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육아휴직을 하고 하루종일 아기와 함께 보냈다. 육아휴직에 큰 이유는 없었다. 그저 활동가인 나보다 아내가 벌이가 더 좋았기 때문에 내가 아기를 보기로 했다. 하루하루 아기를 바라보며 보낸 시간이 신기하고 재밌기도 했지만, 한편 힘들고 지겹기도 했다.


암튼 하루는 아기 침대 위에서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시 뉘어 놓았을 때였다. 기저귀를 갈기 위해 침대 난간을 내려놓고 미처 올리지 않은 채였다. 정확하게 뭐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방 한쪽 끝에 놓인 아기 침대에서 반대편 끝에 가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책을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뭔가 끄적거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문득 눈을 들어 아기를 바라보는데, 딱 그때 마침 아기가 가만히 누워만 있기 지겨웠는지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던지고 곧바로 몸을 날렸다. 아기는 몸을 버둥거리다가 마침내 뒤집기에 성공했고, 난간이 내려진 면으로 몸이 휙 돌더니 허공에 잠시 머무르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아기가 허공에 잠시 머물렀을 리는 없고, 그 짧은 시간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뜻이다. 곧이어 아기는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몸이 빙글 반바퀴를 더 돌았고, 잠시 후 뒷머리가 방바닥에 부딪히며 짧은 비행을 마쳤다. 그리고 바로 그 직후 전력으로 몸을 던졌던 내 팔이 아기를 안아올렸다. 아기는 얼마나 놀랐던지 크게 울기 시작했고, 쉽게 그치지 못했다. 나는 아기를 꼭 끌어안고 뒷머리를 쓸어주었다. 저절로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고, 입은 계속 "아가야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라고 반복하고 있었다.


아기침대는 내 무릎보다 살짝 높았으니 60cm 높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태어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아기가 그 높이에서 떨어졌으니, 얼마나 놀라고 아팠을까? 한참을 아기를 껴안고 울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혹시 머리를 다쳤으면 어쩌지? 이 일 때문에 아기에게 뭔가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걱정이 되어 미칠 것 같았다.


이후 가끔 악몽을 꾸곤 했다. 아기는 계속해서 침대에서 떨어졌고, 나는 계속해서 아기를 받아내기위해 몸을 날렸지만, 번번히 내 손이 닿기 전에 아기는 떨어졌다. 어떤 날엔 갑자기 방이 길게 늘어나면서 아무리 빨리 달려도 점점 더 아기가 멀어지기도 했고, 어떤 날엔 갑자기 침대가 엄청나게 높아지면서 아기가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당시 살던 집은 작은 방과 거실은 무척 좁았지만, 유독 안방만은 넓고 길었다. 방문쪽 벽에 아기 침대가 있었고, 나는 반대쪽 창문 아래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의자를 박차고 달려 아기를 향해 몸을 날렸음에도 아기가 떨어진 직후에 손이 닿았다.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0.1초만 더 빨랐어도 뒷머리가 바닥에 닿기 전에 손바닥으로 받쳐줄 수 있었을텐데.


나중에 강풀의 웹툰 중에 시간능력자가 나오는 만화를 보는데, 10초였던가?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는 남자가 나오는 장면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당시 무수히 많은 악몽을 통해 계속 떨어지는 아기를 받기 위해 뛰었듯이, 짧은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는 그 남자는 아내와 아기가 떨어져 죽을 때 끝없이 시간을 되돌려 아기와 아내를 받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뒤로 돌려봐도 늘 손이 닿지 않았고, 시간을 되돌릴 때마다 지쳐가면서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수십번 아니 수백번 시간을 돌려가며 뛰고 또 뛰었던 그는 지칠지대 지쳐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 장면을 읽으며 아마 울었던 것 같다. 침대에서 떨어지는 아기를 받지 못했던 장면이 끝없이 머리속에서 반복재생되면서 만약 나에게 또 한번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땐 받아낼 수 있을까? 상상하게 되고, 만약 받지 못한다면 나도 따라 죽어버려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두번째 기억은 한 4년이나 5년 전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고, 하필 작은 아이 어린이집에 기저귀가 떨어졌다고 해서 갖다줘야 하는 날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이 이야기는 당시에도 이 서재에 적었던 기억이 난다. 암튼 한 팔에 아기를 안고, 다른 어깨에는 어린이집 가방과 기저귀꾸러미 등 짐을 잔뜩 메고 있었다. 그리고 우산을 들었다. 먼저 큰 아이를 가까운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작은 아이를 조금 더 멀리 있는 다른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했다. 당시 큰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은 영아 반이 없고, 4세부터 입학할 수 있었다. 아직 어렸던 작은 아이는 영아반이 있는 다른 어린이집을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암튼 큰 아이를 들여보내고 돌아서서 작은 아이 어린이집을 향해 내리막길을 걷다가 문득 발이 미끄러지면서 넘어질 뻔했다. 자칫하면 넘어지면서 아기가 바닥에 떨어질지도 몰랐다. 순간적으로 아기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면서, 미끄러지는 발에도 힘을 꽉 주고 버텼다. 발목이 기이하게 꺾이이면서 무릎을 찍었지만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바지가 다 젖긴 했지만 그래도 아기가 다치지 않았다. 아마 아기를 안고 있지 않은 상태로 혼자 가다 미끄러졌다면 분명 그대로 넘어졌을 것이다.


다시 아기를 고쳐 안고, 가방들을 제대로 메고 나서 보니, 멘홀 뚜껑을 밟아 미끄러졌던 거였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날 맨홀 뚜껑은 정말 미끄럽다. 왜 하필 그자리에 있었나! 잠시 원망을 한 후 놀란 아기의 뺨에 뽀뽀를 하고, 아기를 데려다주고 출근했다.


하와이피스톨? 김상옥!















독립운동가 중에 사격 솜씨가 가장 뛰어난 분을 꼽으라면 이 분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서울 시내에서 쌍권총으로 일본 경찰 수십명을 죽이고 도망다닌 전설적인 인물이다. 최근 영화 [암살]의 흥행과 더불어 작중 하와이 피스톨의 모델이 되는 실존 인물은 아마 김상옥 의사가 아닐까 짐작하는 글을 읽었다. 그러고보니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부와 권력을 고스란히 거머쥔 채 여전히 잘 살고 있지만,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이다. 이 나라는 참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지만, 친일파를 생각하면 진짜 열받는다. 김상옥 의사가 저승에서 이 꼴을 본다면 아마 피를 토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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