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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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기 전, 장서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저자가 이 장서를 정리하는 데 어떤 방법을 썼고, 독자들 또한 자기집 책들을 어떻게 처분  관리할지 일말의 도움을 줄 거라는 기대 아닌 기대를 하면서 책을 읽었다. 본인의 이야기와 일본의 장서가들( 젊은이, 노인, 저명 인사, 지금은 세상에 없는 작가 등 그리고 그들은 모두 남자)의 경험담을 수집하여 기사 연재한 것을 단행본으로 엮은 책이다.  책의 저자가 장서를 다량 보유할 수밖에 없고, 책이 사는 집에 얹혀 사람이 사는 모양새를 면할 수 없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이 사람의 직업이 서평을 중심으로 다양한 저널 활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요즘 읽고 있는 빈서판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쓴 저자 스피븐 핑거는 책 한권을 쓰기 위해 수십 몇 트럭이나 되는 책이 필요했을 거야 필시...-  저자는 다 읽은 책도 다시 참고해야 해서, 책이 늘 곁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지만, 서평이라던지, 책과 책 사이의 맥락을 엮는 일을 업으로 삼지도 않은 나같은 사람에게 책이 쌓인다. 중뿔난 수집벽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나 역시 까치처럼 모으기 좋아하는 본성이 있다보다. 팔자소관대로 살 수 없는 팔자라서, 가족들에게 책 때문에 미움과 협박을 받는다. 주기적으로 책을 처분한답시고, 얼마간 우스운 꼴을 피할 수 없는 행위들을 치러야 하고, 이 또한 운명임을 일찍 깨달았다.

챕터 마지막 마다  글의 교훈을 도출한 것이 재미있는데, 여기에 옮겨본다.

 

1. 책은 생각보다 무겁다. 2층에 너무 많이 쌓아두면 바닥을 뚫고 나가는 수가 있으니 주의하시길. (일본은 목조주택이 흔해서 더더욱 그런 듯)

2. 그 순간 자신에게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일단 손에서 놓을 것.

3. 헌책방에 출장매입을 부탁할 때는 어떤 책이 얼마나 있는지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4. 책장은 서재를 타락시킨다. 필요한 책은 곧바로 손에 닿는 곳에 있는게 이상적.

5. 책은 상자 속에 넣어두면 죽는다.

6~8 책장은 지진에 약하다. 지진이 나면 책이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또한 장서는 불에 잘 탄다. 집을 지을 때 장서의 무게를 계산해 준다.

9. 트렁크 룸을 빌렸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조만간 꽉 차버린다는 것을 유념하자.

10. 진정한 독서가는 서너 번 다시 읽는 책을 한 권이라도 많이 가진 사람이다.

11. 생활력과 수집력을 동시에 갖추려면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한다. 그래야 가족도 이해해 준다.

12.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전자서적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서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어렵다.

13. 수수한 순문학 작품은 팔아버리더라도 도서관에 가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폐가 서고를 확인할 것.(대개 수수한 순문학 작가는 세상을 뜨면 사람들에게 잊혀 후세 독자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이용자 요구에 따라 새 도서를 구입해야 하는 이상 책장 확보가 어려우니 폐가 서고에 보관하는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용자도 적은데 잘도 이만큼이나 모았구나 싶다) - '수수한' 순문학은 어떤 것일까? 이미 문학에 '순'이라는 수식 접두어가 붙었기 때문에, 굳이 '수수한'을 붙여서 중언부언할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인지 궁금... 도서관에서는 '폐가 서고'라는 용어는 안 쓰던데, '보존 서고' 정도로 번역해야 매끄러웠을 듯하다.-

 14. 장서를 한꺼번에 처분하고 싶다면 '1인 자택 헌책시장'을 추천! 잘 팔기 위한 핵심은 책값 매기기에 있다. (책값 잘 매기라는 건 다름 아니고,, 책을 팔아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상스러운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라는 맥락으로 읽히더라는..ㅎ)  

 

236쪽

앞으로 전자 미디어 도구가 나날이 진보하고 발전한다 해도 인쇄된 종이 다발인 '책'이란 미디어는 변함없으리라. 일례로 50년 후에도 오늘날 최신형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혹은 전용 태블릿 단말기가 그대로 쓰이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 기능이며 형태가 크게 달라져 있으리라.

새로운 미디어는 새로워서 뒤처진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뒤쯤에는 어떻게 뒤처질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어쩐지 기차가 지나가면 소젖이 안 나온다고 철도 설치를 강경하게 반대하는 메이지시대의 완고한 낙동업자가 된 듯하니, 전자책 이야기는 그만두자.

하지만 이 시대의 정중앙을 돌파해 나가는 이는 언제나 소수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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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하는 이유 - 일본 메이지대 괴짜 교수의 인생을 바꾸는 평생 공부법
사이토 다카시 지음, 오근영 옮김 / 걷는나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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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쪽

공부는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져 낯설게 보는 것이다.

 

194쪽

만약 당신이 낯선 사람과 우연히 짧은 대화를 나누든, 친구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든, 회사에서 주간회의를 하든,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의 대화 속에서도 무엇인가 배울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면 지적인 자극을 받아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낼 가능성이 많아질 것이다.

 

202쪽

내가 말하는 공부 일기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하루 일정을 적는 스케줄 수첩이든 평범한 노트든 하나를 정해 날짜를 적고 오늘 공부한것에 대해 3줄 정도로 아주 간단하게 적는다. ..... 이렇게 하면 좋은 점 2가지가 있다.

첫째, 내가 공부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작은 성과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록은 공부하기 싫을 때, 포기하고 싶을 때 힘이 되어 준다. 매일매일 꾸준히 적어 나간 공부 일기를 한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그 뿌듯함과 감동은 생각보다 크다.

둘째,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에 즐거움이 생겨난다. 내 삶이 특별한 일도 없이 반복되는 줄 알았는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날마다 다르게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218쪽

공부하는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었다면, 노력의 힘을 의심하지 말고 믿어 보라. 공부를 하면서 얻은 모든 것들이 우리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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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

 


미국 매체 워치모조는 지난 11일(현지시간) '과대평가된 영화 10선'이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게재했고, 이 동영상에서 영화 '아바타'가 과대평가된 영화 1위로 선정됐다.

2009년에 개봉한 '아바타'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제작한 영화로, 개봉 당시 3D 영상의 혁명이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국내에서도 1,300만이라는 관객이 동원되는 등 흥행을 이뤘다.

2위에는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선정됐다.

3위는 폴 해기스 감독의 '크래쉬',

4위는 존 매든 감독의 '익스피어 인 러브',

5위는 톰 후퍼 감독의 '레미제라블'이 뒤를 이었다.

6위에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꼽혔다.

7위는 리 다니엘스 감독의 '버틀러:대통령의 집사',

8위는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

9위는 롭 마샬 감독의 '시카고,

10위는 조 라이트 감독의 '어톤먼트'가 선정됐다.

 


1위 '아바타'는 일단 우리 아이들이 그닥 재밌게 보질 않더라,,

2위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전쟁 배경 영화다 보니, 큰 스크린으로 봐 줘야 하는 대작의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1997년 겨울쯤 종로의 한 극장에서 본 것 같은데, 당시 사는 게 너무 고단해서 영화가 다 무슨 호사냐 싶게 중간에 졸았던 거 같고, 나중에 영화소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다시 봤을 때, 아~~~! 하면서 역시 영화도 타이밍인가 했었다.

4위는  '익스피어 인 러브', 오타인듯 싶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겠쟈.

5위는 톰 후퍼 감독의 '레미제라블' 6위에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이래, 5, 6위는 세계적으로는 모르겠고, 우리 나라에서는 정말 영화 간판을 오래 달고 있었던 작품들인데, 한국인과 한국 꼬마들 정서를 자극하면, 평가 절하시키는 건가? 뭔가봉가??

 

8위는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 개인적으로 책도 영화도 너무 좋았던,  스티븐 킹의 작품들을 영화로 만든 것들에 이어, 애정해마지 않는 영화였었는데 말이다. -이 페이퍼도 8위에 이 영화가 있었기 때문에 말하고자 하는 바 있어 작성된 것임-

그래서 티비에서 해 주는 것도 보고또보고...이건 딴 이야기인데, 이안 감독의 그런 영화는 특히나 좋다. 브로크백 마운틴(눈부신 만년설로 뒤덮인 봉우리와 맑고 깊은 계곡, 한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 위에 노니는 수천 마리의 양떼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와호장룡(거대한 대나무숲 위에서 벌어지는) 라이프오브파이(태평양 한가운데 펼쳐지는 호랑이와의..)가 모두 그렇듯이 자연이라는 대서사시 속에서 개별적인 개인의 감정을 들여다 보다 보면, 장엄하면서도 평온하달까,,, 숨막히게 하면서도 숨쉴 수 있게 하는 황홀경이다.

 

 

 

 

 

 

 

 

9위'시카고'는 영화 시카고가 기존의 뮤지컬 시카고의 아성을 넘지는 못한다는 뜻인가 봉가..

10위는 조 라이트 감독의 '어톤먼트'는 원작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그려내는 데 미흡했다고 비평가들은 보는가보다. 영국드라마 셜록 홈즈 속 홈즈가 비호감 조연 '마샬'역으로 출연했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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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5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어 계급사회 - 누가 대한민국을 영어 광풍에 몰아 넣는가 ㅣ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4
남태현 지음 / 오월의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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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플을 주관하는 ETS(47년에 미국에서 설립된 각종 시험을 개발하는 비영리 단체)는 한국에서 매년 25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지만, 세금 한푼 내지 않는다고.

개인이 영어에 쏟아부은 그 많은 비용(금전적 손실, 정신적 고통, 육체의 피곤, 가정의 불화 등)이 실제적으로 구체적인 가치가 되어 돌아와야 하는데 과연 그런가?



세계화는 미국화가 아니며, 미국이 당장 쇠락하지는 않겠지만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진정 세계화를 준비하고 있다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는 만큼, 프랑스어 중국어 스와힐리어 등도 열심히 해야 하고 사회는 이를 응원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이 또한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물론 한 사회 천제가 영어라는 한 언어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저자가 생각하기 때문에 한 말이지만, 세계화를 위해 영어를 해야 한다는 말은 너무 빤한 핑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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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어린 시절 -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불평등의 대물림
아네트 라루 지음, 박상은 옮김 / 에코리브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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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여기서 '우리'는 정확히 말하면 미국 사회이다. 우리 한국 사회 또한 어느 부분에서는 마찬가지지만, 딱히 미국 사회와 들어맞는다고도 할 수 없다- 사회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는 계층과 그렇지 못하는 계층이 있음을 알 수 있고, 또한 이 두 계층이 각각 서로 다른 자녀 양육 방식―집중 양식과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을 채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저자의 문제 제기는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여러 미국의 사회적 조건들을 신중하게 검토한 후 피부 색깔에 관계없이 선정한 9세와 10세 아이를 둔 열두 가정을 중산층(상위 중산층 포함)?노동자 계층?빈곤층으로 나누어(구체적인 방법론은 이 책 2장을 참조하라) 심층 탐구하고 인터뷰한 결과, 문화적 구조에 불평등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가정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 모여 자녀 교육에 대한 문화적인 논리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각 가정의 차이는 의미 있는 유형으로 범주화(앞에서 이미 언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산층 부모들을 자녀 교육과 관련해 아이의 집중 양육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 부모들은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중산층 부모와 달리 이들은 아이의 집중적인 발전, 특히 조직적인 여가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교육이 훌륭한 양육에 필수적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한다. 이런 부모들은 대체로 지시를 내리는 편이다. 합리적으로 설득하기보다 그냥 아이들에게 해야 할 일을 말해준다. 부모가 계획한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꾸준히 성장하는 중산층 아이들과 달리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아이들은 여가 활동에 많은 선택권을 갖는다. 이들은 보통 이웃에 사는 친구 및 친척들과 밖에서 마음껏 뛰어논다.

미국은 기회의 땅일지 모르지만 또한 불평등의 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이는 아이들에게 한층 나은 언어적 민첩함과 풍부한 어휘력뿐 아니라 권위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감을 부여하고 추상적 개념에 더 익숙하게끔 만든다.

면접에 대한 연구에서, 조사원들은 고용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좋은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눈을 마주치고 힘차게 악수하며 면접하는 동안 면접관 들에게 편안한 감정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해럴드 맥앨리스터처럼 빈곤층 가정의 구성원들은 대화할 때 보통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오랫동안 쳐다보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이웃들과 함께 살아간다.

 

  

 

빈곤층 가정의 우선순위에서 아이들의 여가 활동이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상대적으로 아이들의 놀이에 덜 관여하거나 아이들이 음악 미술 연극 또는 운동 등에 갖는 흥미를 무시하고 관련 활동에 등록해주지 않는 것은 그들이 느끼는 생활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산층 부모 사이에서 당연시하는 자녀 교육에 대한 ‘의무감’도 빈곤층 및 노동자 계층 부모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윌리엄스 부부(흑인 중산층 가정)는 알렉산더가 참여하는 여러 가지 활동이 아들의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이득은 다양하다. 알렉산더의 피아노 레슨에 대해 이야기하며 윌리엄스 씨는 스즈키 교습법 덕분에 알렉산더가 벌써 악보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했다. 자녀의 시아를 넓혀주는 걸 자신의 의무로 여겼다. 윌리엄스 부인은 아동기의 경험이 삶의 중요한 기술을 학습하기 위한 토대라고 생각했다



노동자 계층 자녀는 질문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해본 적도 없었다. 헤럴드는 제약에 길들여져 있었다. 친구들과의 사교성이나 새로운 놀이를 생각해내는 능력,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능력, 어른에 대한 공경, 가족과의 친밀한 유대관계 등 헤럴드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특성은 장차 그 아이가 살아가게 될 현실 사회에서 그다지 큰 효용성이 없는 것들이었다. 교사나 의사, 고용주 같은 사회에서 그다지 큰 효용성이 없는 것들이었다. 교사나 의사 고용주 같은 사회적 인물들은 논리적인 대화 능력이나 협상 기술, 풍부한 어휘력, 유창한 대화 능력, 낯선 사람과의 조화 능력, 시간 관리 기술 등을 좀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장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것은 중산층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역량이다. 헤럴드의 삶 일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사회 기관들이 택하는 아동기 개발 방식에 대한선호의 차이가 향후 조직 사회에서 서로 다른 환경 아래 성장한 아이들 사이에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정 환경의 아이들이 개발하지 못한 역량이 향후 그 아이들에게 결점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훗날 구직을 위해 면접을 볼 경우, 면접관 들은 끈끈한 가족유대보다는 가정 안에서 눈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법을 배운 아이들을 높게 평가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자녀를 예의 바르고 어른을 잘 따르며 투정부리거나 떼를 쓰지 않는 아이로 기르는 것이야말로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양육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척과 깊고 지속적인 유대를 나누는 것 역시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사회 생활에서 중산층 아이들이 어느 정도 상대적인 이점을 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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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가정은 자녀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줄 방볍을 모색한다. 학교뿐 아니라 각종 공공 및 사설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활동에 세부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부모는 아이에게 좀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자원이 제공하는 가치는 아이들을 ‘최고’의 학급에 등록시키고 ‘최고’의 체조 프로그램을 찾아주는 등 단기적 효용에 그치지 않는다.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훗날 성인으로 성장했을 때 귀중한 자산이 될 기술을 습득한다. 이는 계층에 기초한 가치이다. 노동자 계층이나 빈곤층 가정의 부모와 자녀들이 외부 기관과 형성하는 관계는 중산층 가정의 태도와 큰 차이를 보였다. 중산층 가정의 부모들에게 인종이라는 요인은 자녀의 외부 생활에 대한 개입 여부나 방법을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매순간 눈을 떼어서는 안 되는 잠재적 문제로 여겼다. 흑인 중산층 부모는 자신들이 겪는 인종 차별적 문제뿐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을 백인이 과반수가 넘는 환경에서 보내는 자녀에게도 인종 차별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를 반드시 인종 문제로만 결부시켜 생각하지 않도록 교육했다. 이런 역할은 같은 백인 부모에 비해 흑인 부모를 한층 더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많은 미국인이 자신의 삶 속에서 사회 계층이라는 요인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미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열려’ 있다고 믿는다. 사회를 개인들의 집합으로 여기며, 어떤 개인이건 열심히 일하고 충분히 노력한다면 그리고 재능이 있다면 사회에서 더 높은 위치로 올라설 수 있다고 믿는다. 간단히 말하면 ‘아메리칸드림’을 믿는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들은 모두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는 존재로 인식된다. 그리고 인생에서 주어지는 기회의 차이는 개인의 열정ㅇ과 재능 그리고 노력의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사회적 위치가 자녀들의 삶의 경험과 결과물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미국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개인의 삶과 관련한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사회의 이러한 일반적 시각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상당 부분 견해를 달리한다. 그들은 우선 부모의 교육 수준이나 직업, 소득 그리고 자녀 양육 방식 등의 구조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불평등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를 단순히 ‘정도’의 문제로만 바라본다. 그들은 아이들의 삶을 형성하는 기반을 엄마의 교육 수준이나 거주 지역의 소득 수준 등 개별적인 요소들에서 찾는다. 그러나 이런 서로 다른 요인은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형태로 얽혀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했듯이 사회 생활의 복합적인 성격은 여러 가지 미묘한 기술을 통해 사회 계층적 특권이 전파됨에 따라 생겨나는 결과물이다. 따라서 문화적 자원을 활용하려는 부모의 노력도 효용성 측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자녀의 생활에 얼마나 긴밀하게 개입하는지, 기관의 권위 있는 인물에게 응답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의 불평 및 압력을 행사하는지 그리고 아이의 성격이나 자질 등 여러 요소가 각기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중산층 흑인은 종종 자신의 계층적 위치나 사회적 기술을 드러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에 분노를 느낀다. 인종이 계층을 넘어서는 상황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를테면 어느 중산층가정 흑인 가장이 쇼핑센터에서 현금 인출기를 향해 기본 좋게 걷고 있는 자신을 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지갑을 가슴팍에 숨기고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종종걸음을 치며 달아나던 한 백인 여성이 이야기를 들려 준다. 농구 캠프의 수백명 학생 중 유일한 흑인이었던 펀 마셜은 친구들과 즐겁게 농구를 하다가도 점심 시간에는 함께 어울릴 친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중산층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백인 세계에 편입시키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특정 집단에서 유일한 흑인이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형제 자매와 옥식각신 부모와 말다툼을 하는 것 역시 중산층 가정의 자녀들에게만 나타나는 특징

이었다. 노동자 계층이나 빈곤층 가정에서는 이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 역시 인종에 관계없이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다.

집중 양육 방식을 적용하는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에게는 자존감 개발이라는 가치를 제공했다. 요컨대 이 아이들에게는 체조나 축구, 여름 캠프 등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 아이들은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그들의 부모 세대보다 더 좋은 교육을 받는다.

가정에서의 논리적 대활르 통한 자녀 양육과 교육 기관에 대한 개입 역시 일종의 합리화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최근 연구 대상으로 떠오른 ‘과학적 양육’의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집중 양육 방식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는 현상을 분석면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위상 변화와 그에 동반해 발생한 고소득 제조업 종사자의 감소 및 기피 서비스 관련 직종의 증가라는 요인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는 지금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시기와 맞물려 절정에 달할 것이며, 그들이 누리게 될 삶의 표준은 현재 부모 세대에 비해 열악해질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직업’은 줄어들고 ‘안 좋은 직업’이 늘어나며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원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 아이들에게 학업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중산층 부모의 염려 역시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대학 입학 사정관이나 기업 면접관 같은 이른바 ‘기관의 문지기’들은 학교 밖 활동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그 때문에 부모는 아이드르이 활동에서 단순한 흥미나 즐거움 이상을 이끌어내 자녀들이 더 좋은 기관에 ‘선택될’ 가능성을 높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요인은 중산층이 새로운 자녀 양육 방식을 도입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원으로 개발된 아동의 창의력이나 재능, 인지 능력 그리고 학업 성취도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 반대로 기존의 아동 양육 논리인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 방식은 상대적으로 소수만이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이 옳다면 그리고 아동 양육의 문화적 레퍼토리에 변화가 일어나고 또 그것이 정립되어가고 있다면, 계층에 따른 아동 양육 전략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모든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같은 방식으로 기르지 않는 것일까?


계층에 따라 아동 양육 방식에 차이가 나는 요인으로는 첫째, 부모의 경제력 차이를 들 수 있다. 아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데에는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


개인의 삶이 각기 다른 특성을 보여 준다고 해서 그리고 아이들마다 각기 다른 즐거움을 가족에게 선사한다고 해서, 이 아이들이 속하는 사회 계층에 따라 불평등이 초래된다는 사실마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정 사회 계층에 속한다는 것은 그에 수반하는 기회를 얻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다. 탄생의 순간에는 모두 다 똑같이 축복을 받지만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거나,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서나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안정된 직장을 갖는 일 등 모든 사람이 바라마지 않는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아이들마다 제각각이다. 슬프만 이런 중요한 목표 중 상당수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아이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결정되곤 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특정한 문화적 관습을 다른 것보다 선호하는 교육 기관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계층간 유동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일부 이민자 집단이 그렇다. 사회적 계층만이 불평등의 절대적인 원인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 그 때문에 불평등을 초래하는 경우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인정하려 하지 않는 이 ‘사회적 계층’은 곧 존재한다. 또한 성별의 차이가 다소 존재하기는 하지만, 같은 사회 계층에 속하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역시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계급으로 철저히 나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대부분의 미국인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기는 이유다. 사회 분화에 대해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곧바로 인종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만, 정작 ‘사회 계층’이라는 단어는 대다수 미국인의 사전에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옛날과 달리 요즘은 빈곤을 퇴치해야 하다는 생각이나 사회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이러한 사회 구조 및 계층이라는시각이야말로 빈곤에 대해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도덕적 태도보다 더 나으며 “복지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없는 빈곤층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막을 수 있다. 한 개인의 출신 가족이 처해 있는 사회적 위치는 그 개인이 인생에서 겪게 될 일이나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 구조가 만들어내는 불평등은 보이지도 않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어쩌면 사회 계층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이를 재조명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 전체에 득이 되는 방향일지도 모른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불평등을 체계적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 내 교육 전쟁의 문제를 최초로 깊이 들여다본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다. 저자는 집중 양육은 바쁜 부모에게 극심한 노동을 요구하고, 아이들을 지치게 만들며, 가족 집단이라는 발상이 성장할 기회마저 희생시키면서 개인주의가 자라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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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11-07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산층 아이들은 3루에서 시작해 놓고, 자기가 잘해서 이긴 줄 알고 있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