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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평점 :
세상 떠들썩하게 역주행을 해도 나 하나쯤 안 읽고 넘어가도 되는 책이었다. 지난 해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자고 거론되었을 때도 그럼 이번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결국 다른 책이 선정되고. 아무튼 계기가 생기면 읽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패스하겠다고. 양귀자님 작품이라면 평균보다 많이 접했고, 실제 읽은 것보다 더 읽었다고 여기고 앉아있는 사람이다. (지난 교육과정 내내 중학 국어 교과서에 양귀자의 작품이 실려 있었으므로.) 그런데 결국 다른 계기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오랜 절친이 안부 인사 끝에 최근 양귀자님의 모순을 읽었다며, 마음이 이상하게 헛헛해지더란다.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세월은 흐른 것 같지만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걸 새삼 이 책이 느끼게 해 주었다며, 책에서 나오는 그 시기는 97~98년으로 그 당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이 나오는 걸로 시간을 추정했댄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 시절이 지금의 우리를 만든거 아닐까 라며. 한편으로는 너무 괴로웠다고 했다. 자신의 후진 역사까지 말끔히 알고 있는 내가 여전히 친구라서 이리도 좋다며, 고맙다며 오래오래 볼 수 있게 건강관리에 힘쓰라고 말해준다. 허참.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읽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모순이라는 제목. 친구는 다음에 만나면 자기가 읽었던 이 책을 나에게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기다릴 수가 없어서,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이수 알라딘서점에서 갔다. 중고책으로 사려고 했는데ㅎㅎㅎ(도서관의 모든책들은 대부분 대출중일거라고 친구가 말했으므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서 신간으로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읽었다.
정말 신기한 건 25살의 주인공 안진진의 목소리를 눈으로는 따라가고 있지만, (" 온갖 것이 다 사랑의 묘약일 수 있다.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이제 지긋한 나이가 된 나는 안진진의 엄마와 쌍둥이인 이모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이 책을 읽은 게 5월 2일이었는데, 얼추 5개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소설 모순을 떠올리면 주인공 진진의 엄마 가난, 행방불명 남편, 조폭을 꿈꾸는 아들 끊임없는 불행 속에서도 그것을 해결하느라 활기에 차오르는 그 엄마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그러고 보니, 양귀자는 헤르만 헤세가 롤모델이었나, 다소 이분법에 가까운 등장 인물들인 점.
진진이 결혼을 염두해 둔, 예측 가능한 안락함 나영규와 그 반대편 불확실하지만 가슴 뛰는 낭만의 김장우, 진진의 어머니와 극단의 삶을 사는 풍족하고 평탄한 환경 속의 다소 무기력한 온실 속 삶을 사는 이모. 아버지와 이모부.
출판사 리뷰를 보면,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독자들에게 " 자신의 인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가라고.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지 말고 적절한 순간이 오면 과감하게 삶의 방향키를 돌릴 준비를 하면서 살라고.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라고." 했다고 한다.
정답을 좇는 사람은 항상 후회 없는 단 하나의 최선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선택의 기로에서 끝없이 망설이거나, 선택한 뒤에도 끊임없이 가지 않은 길과 비교하며 괴로워한다. 모순을 이해한 사람은 완전무결한 선택이란 애초에 없다는 사실을 안다. 안진진이 김장우의 낭만 대신 나영규의 촘촘한 일상을 택했을 때, 그것이 나영규가 정답이어서가 아니라 어떤 삶을 택하든 결핍과 대가가 따름을 알고 그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기로 결심한 것과 같다. 모순을 아는 이의 선택은 정답 찾기가 아니라 내가 짊어질 결핍의 종류를 정하는 일에 가까운 걸 수도.
모순은 삶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그 비틀거림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실존적 용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