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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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지 4년밖에 안 된 동네 도서관인 터라, 주커먼 시리즈 같은 대작은 한 권도 없고, 필립 로스가 노년에 그러니까 그의 나이 60대 이후에 쓴 책으로 보이는 책들만 있었다. 에브리맨이나 울분 죽어가는 짐승 같은 책들. 200쪽이 안 되는 얇은 분량의 하드커버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하는 궁금증이 추진력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순식간에 읽기는 했지만. 늙은 자는 그저 지질한 물건일 뿐, 막대기에 걸린 누더기 코트일 뿐, 누더기가 될수록 그만큼 더 크게 노래하지 않는다면 허나 영혼 자신의 장엄한 기념비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노래하는 법을 배울 길이 없어 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움에 왔다. 라는 본문에 수록되어 있지도 않고, 시의 일부만 주인공이 언급하는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 가는 배에 올라, 라는 역자 수록 시만 남았다. 내 머릿속에.

 

어떻게 된 거지. 뭘 읽은 거지. 덮어두었다가 빌려온 그의 다른 책들(휴먼스테인 외)을 읽는 도락에 빠져 있다가 다시 죽어가는 짐승의 책장을 뒤적뒤적하면서 문득 생각한다.

 

소설이니까, 어떤 인생이든 그려낼 수 있긴 하겠지만, 20살 전후의 여제자들을 줄줄이 애인으로 삼는 스토리의 구조의 골자가 있다는 점에서는. 아무리 캐페시가 멋들어지게 피아노 곡조를 뽑아 연주를 해대고, 예술을 찰흙처럼 주무르는 솜씨가 천의무공이더라도.  독자들을, 몰입은 시켰으나 감동은 덜한 것??  

 

"그래서 캐페시 교수가 기저귀를 찬 걸로 나왔던가 아니던가?" 기저귀는 안 찬 걸로. 아 그 분은 주커먼이다.

 

유방암에 걸려 돌아온 콘수엘라를 받아 주는 장면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시간은 늘 지나간 것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제 콘수엘라에게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미래가 남았느냐 하는 것이고, 이 아이에게는 자신에게 남은 게 없다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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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테인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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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안소니 홉킨스가 콜먼, 포니아가 니콜 키드먼으로 분하여 영화화된 작품이라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마지막, 이야기의 서술자이자 극중 작가인 주커먼과 미국의 아르카디아 산정 호수온통 얼음 뿐인 그 장소에서 얼음 낚시를 하고 있던 포니아의 전 남편 레스가 우연과도 같은 운명적인 대면을 하고 이루어지는 대화 장면이 어떻게 연출되었는지 궁금하다.

 

모든 인간에게는 얼룩이 있다. 콜먼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콜먼 자신도 지니고 있다. 당시 정치적 스캔들로 등장하고 있는 클린턴과 르윈스키 사건을 거론하고 있는데, 대통령직을 문제없이 수행하던 클린턴 그 사건을 계기로 탄핵의 위기에 직면했던 일을 소설 속의 사건에 견주고 있는 듯하다. 느슨하고 방만하게 운영되던 학교 아테나 대학을 사학의 전당으로 활기 있게 정비해 놓은 콜먼 학장이었지만, 인종 차별주의자(작품의 끄트머리에서는 여성을 비하 혹은 학대하는 인물로 비난의 오점이 추가된다.)라는 낙인이 찍히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열성적으로 내조하던 그의 아내도 이 일에 대한 홧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콜먼은 이 거짓된 비난과 아내의 죽음과 그 억울함을 책으로 써서 소명하고자 울분에 차서 작가 주커먼을 찾아오게 된다. 지금껏 작중 서술자 주커먼은 혼자 집필 생활을 하면서 일종의 극단적인 은둔의 실험을 고독하지만 모자람 없고, 완전한 생활로 바꿔놓은생활을 하다가 콜먼의 방문을 계기로 삶의 변화를 느낀다. 예전의 삶에 대한 그 번잡한 삶에 대해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 ‘엄격한 생활 태도를 누그러뜨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자제하고 있던 욕망을 원상태로 되돌린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정확히 무엇에 대한 외로움인가? 간단하다. 내가 혐오감을 갖게 된 것에 대한 외로움이다. 내가 등을 돌렸던 것에 대한 외로움이다. 삶에 대한 외로움이다.’

 

이 이야기의 유유한 흐름의 중심이자, 근원이자, 한 사람 인생의 모순, 아이러니이자 그 자신이 스스로 만든 덫, 오점이라고 할 수 있는 치명적인 진실 혹은 비밀은 독자가 1권 중반쯤 접어들면 갑작스레 마주하게 되는데, 얼마나 갑작스러운지 그 사실을 접하는 순간, 내가 지금껏 이 책의 어느 부분을 생략하고, 작가가 던져 주는 행간의 숨겨 놓은 사실은 발견도 못하고, 맥락을 건너뛰고, 퐁당퐁당 읽어내고 있었는가 보다 생각하고 되짚어보기까지 하였다.

 

학장 자리에서 불명예로 물러나기 전까지 콜먼은 자신의 역할과 지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엄정하고 훌륭히 완수해 내온 인물이었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고, 재직하고 있는 대학은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풍토가 되도록 사력을 다했다. 아내에게도 충직한 남편인 것으로책임과 임무 완수로 점철된 그런 인생이라 되려 발목 잡혔는지도...그러나 그 일을 겪고, 아내를 잃고, 콜먼의 행보는....

    

이 책이 위대했거나 재미있었다면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 개별적인 하나하나의 실체 혹은 그 근원의 진실을 묻고 있는 점이다. 등장 인물들. 콜먼을 포함하여 화재로 두 아이를 잃은 30대 여인 포니아. 베트남 참전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포니아의 남편 레스, 자신이 고용한 델핀 루, 허버트 케블 사람들에게 이르기까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하는 점이 독자를 잡아끌어 당긴다. 작중 서술자 주커먼의 다음 말처럼 이것은 추측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명상에 잠긴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설을 쓸 때 사고하는 방식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식 모두를 유치원에 보낸 것, 자식 모두에게 읽을거리가 부족하지 않게 늘 마련해 준 것, 여러 질을 사들인 백과사전. 시험 전에 늘 시켰던 준비, 식사 시간에 나누는 대화. 아이리스가, 자신이, 인생의 본질이 지니는 다양한 형태에 대해 끊임없이 시켜왔던 교육. 정확하고 바른 언어 습관을 들이도록 하기 위한 감독. 이런 모든 일이 우리가 함께 했던 것들인데, 이제 이런 심성이 되어 내게 말대꾸나 하며 대들 수 있는 건가? 모든 학교 교육을 시켰고, 모든 책을 다 사줬고, 모든 대화를 나눴고 모든 뛰어난 sat 점수를 받을 수 있게 해 놨는데, 정말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그 애들을 그토록 진지하게 대해왔는데.”

 

 

"사람들은 도시에 살아요. 사람들은 늘 틀에 박힌 일을 하러 오가느라 법석이죠. 미친 듯이 출근을 해야 하죠."

 

 

우리 둘은 미소를 짓는 것이 도움이 될 단계를 지나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떨어지고 차단되어 있으며, 온통 얼음뿐인 장소에서 나는 갑자기 엄청나게 중요한 대화에 끼어든 것처럼 여겨졌다. ”

지난 오년 동안 나를 그토록 엄격하게 지배해왔던 것인 신중해야 한다는 법칙이 내 분야를 벗어난 곳에서 갑자기 일시적으로 정지되어버리고 말았다. 얼음판을 건너는 동안 돌아가버릴 수가 없었고, 지금도 돌아서서 도망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용기와는 전혀 무관한 것 이성이이나 논리와도 전혀 무관한 것. 이 거대하고 밝고 드넓은 공간. 정상에 바위처럼 얼어붙은 꽤 큰 타원형의 담호수를 품은 이 산꼭대기에서 보는 푸른 하늘. 모두 소리도 없고 나이도 없으며 절대 굴복하지도 않으며 열심히 제 할 일을 해치우는 힘들 그. 마치 우리는 두 개의 감춰진 대뇌가 서로를 의심하듯 똑딱거리는 기계장치처럼 움직이고. 그곳이 어디가 됐든 서로에 대한 증오와 편집증이 유일한 자기 반성인 이 세상의 꼭대기에서 서로 조우한 것 같았다.”

결혼은 애초부터 실패하게 되어 있었단 말입니다. 너무 큰 노여움과 분노를 담아가지고 온 거예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어느 누구와도 알고 지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난 돌아왔을 때, 그것이 문명화된 삶인 한, 이 주변에서 돌아가고 이는 어떤 일에도 나 자신을 연관시킬 수가 없었던 겁니다. 내가 그곳에 너무 오래 가 있었던 것처럼 그런 것들은 완전히 미친 짓이었던 거예요. 깨끗한 옷을 입는 것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 사람들을 만나면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파티에 가는 것. 난 그런 것들에 더 이상 나 자신을 연관시킬 수가 없었어요. 난 사람들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던 겁니다. 선생님이 이걸 겪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잠재의식 속에서 온갖 것이 되살아나 다시 베트남에 가 있기도 하고 다시 군대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난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난 그런 병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요. 잠재의식. 이건 통재할 수가 없는 겁니다. 마치 정부 같죠. 그건 하고 싶지 않을 일을 하도록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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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8-22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caru님, 요즘에 필립 로스 작품 이어서 읽으시나봐요. ㅎㅎㅎㅎㅎㅎㅎㅎ
icaru님의 필립 로스 리뷰 읽는 일이 너무 즐겁네요.
제가 읽으면서 놓쳤던 부분도 발견하면서 이 책도 다시 한 번 더 읽어야겠다 생각도 들구요.
저는 필립 로스님 타계하시고 작품 하나씩 다시 읽고 있는데 마음이 예전같지 않더라구요.
뭐랄까.... 더 깊이 울림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잘 읽고 갑니다^^

icaru 2018-08-22 08:4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 님이 메신저셔요~ 저를 필립 로스의 작품 세계로 안내하신~~*^^*
제가 읽어온 책들중에도 아주 드물게도 나중에 다시 읽고 싶다는 강렬한~ 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대단한 작품들이라는 생각 들었어요! 그런데, 진짜로 다시 읽으면 또 예전과 다른 또다른 울림을 주는 거였군요 ㅋㅋㅋ
이것은 또 뜬금없는 딴소리인데, 단발머리 님은 결정 장애 같은 거 없으시죠~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결정 장애를 잘 안 겪는다고, 파하~ 필립 로스 작품에 관한 단발머리 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거지만, 남다른 감성의 소유자셔요!

단발머리 2018-08-30 20:48   좋아요 1 | URL
아하..... 제가 여러분들에게 필립 로스를 전도한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자부심을 느낍니다.
사실 책을 추천하는 일은 정말 저는 피하고 싶거든요. 저 자신도 ‘읽어야만‘ 하는 책은 재미가 없더라구요. 근데, 제가 하도 ‘좋아요~~~~‘하니까 저의 외침에 솔깃해져서 읽게 되신 icaru님께도 필립 로스의 작품이 강렬하게 느껴지신다니 기쁩니다, 진심으로요.
저는 남다른 감성은 아니구요. 그냥....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부끄러운데 감사하네요. icaru님은 칭찬은 항상 저를 춤추게 하지요!!!!
근데, 저는 결정 장애는 잘 안 겪기는 합니다.
옷 살 때도 그냥 딱 보고 그냥 딱 삽니다. 그럼 맞는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면 그냥 쉽게 지름일까요?

icaru 2018-09-01 13:07   좋아요 1 | URL
ㅎㅎㅎ;; 결정 장애는 제가 최근까지 읽었던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에서두 본 것인데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감정,이라는 게 매우 중요하더라고요~ 또한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다거나 ㅎㅎ.. 결정 장애 치료법으로 의사들이 권하지야 않겠지만 고스톱 치기 있대요. 짧은 시간에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는 연습을 계속하는거... 근데... 자신이 고스톱을 권하더라고 소문내지 말라 했는데... ㅋㅋ 이런! 저는 ˝결정장애 치료 = 고스톱˝만 머리에 남아가지고...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 한 호흡 한 호흡 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상 회복 에세이
이아림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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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겹다. 지겹다는 생각조차도 지겹다고 여겨지는 날. 워라벨이고, 번아웃이고, 균형 감각이고 나발이고...

 

심지어는 이렇게 작가가 직접 그려넣었다는  단백하고 예쁜 그림도 들어있는 이 에세이도, 버거워지려던 찰나. 이러니저러니 해두 이럴 때는 이게 또 다른 거 보다는 낫다.

 

"아빠의 직업은 목수다. 최종 학력은 초종. 초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상경해 목수 일을 배웠다. 우리 형제는 4남매다. 매일 죽어라 울어대는 아이들을  어느 집주인이고 달가워할 리 없었다. 결국 아빠는 우리가 살 집을 직접 짓기로 했고 내 방엔 형광별이 반짝이는 벽지를 발라주었다. 그곳에서 23년을 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농사지어 보낸 순창 쌀로 살을 찌웠다. (...) 타고난 건강은 엄마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노동으로 채워졌다. 이것은 두고두고 흔들리지 않는 내 자긍심의 뿌리이다.

아빠의 몸은 어마어마하게 단단하다. 어깨는 까맣게 그을렸고 다리는 상처투성이다. 그 모습은 내게 슬픔을 주지만 동시에 서늘한 경각심도 준다. 아빠는 맨몸으로 헤쳐오신 것이다.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치 않은 정직성이다. 아빠는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패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 오늘도 맨몸으로 요가를 한다. 마주한 세상의 부조리와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라는 체념과 싸우며 숨을 고르고 자신과 대면한다. "정말 이대로 좋은 거야? (...) 정말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변명만 늘어놓는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대수롭지 않은 여행을 하니 떠나는 일도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기념할 것도 해결한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여행. 그런 가벼움이 좋아서 떠나는 게 아닐까."

 

"타이르듯 말하는 선생님의 요지는 이랬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일종의 화보로, 찍히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것이 많다. 실제 수련과는 거리가 있다. 사람의 체형은 모두 다르니 잣니에게 맞춰 하면 된다. 올바른 방법으로 동작을 취하고 자극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요가와 글쓰기. 둘의 공통점은?

 

1. 더디다.

2. 고독하다.

3. 평등하다.(누구나 가능하다.)

4.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5. 용기가 필요하다.

6. 자기수련이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7.아프다.

8.자학과 자족 어디쯤에 있다.

9. 구원이다.

10. 힘을 빼야 한다.(힘을 뺄수록 좋다.)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읽었다. '읽을 수 없는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쓰여 있었다. 읽어도 모르겠고 난해하고 지루하고 바보가 된 것 같고 어쩐지 싫은 느낌.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묘미라 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는 건 무섭고 위함한 일이기에 그렇게 자기방어를 하는 것이다. 혁명으로의 읽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러므로 오로지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읽고 읽고 또 읽고 고독하게 더듬으며 읽어가야 한다. 완전히 새로워지기 위해. 읽기 전으론 돌아가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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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8-11-12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왠지 이 페이퍼가 좋아요. <잘라라, > 읽고 싶어졌어요.
특히, 첫 문장은 참, ... 제가 그런 기분입니다요 요즘. =.=;;

icaru 2018-11-15 15:14   좋아요 0 | URL
으아! 북극곰 님이 공감해 주시니까~ 어쩐지 으쓱으쓱해집니당! ㅋ--
저 또한 요즘 첫 문장 같은 기분의 연장에서 헤어나기 어렵네요~
의욕에 차올라~ 불타오르네 하는 순간도 간혹 있어야지 이거 ㅠㅠ;;; ㅋ
 
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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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작품마다 시대의 핫이슈와 맥을 같이 하는 경향이 있는데, 울분은 그 중 6.25 한국 전쟁이다. 작가 노년에 10대와 20대를 회상하며 50년대 초, 유대인이라는 사회적 시대적 배경 카테고리에서의 캠퍼스 생활, 젊은이 특유의 학업에 대한 열정, 종교에 대한 부조리함, 성애에 눈뜸, 혹은 전통적인 가족관(가급적 일찍 결혼해 가족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과의 사이에서 오는 죄의식(?)을 그리고 있다. 도식적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젊은 주인공은 울분에 관하여 발을 살짝 잘못 디뎠을 뿐인데, 한국 전쟁에서 전사하는 최후를 맞이한다.  

 

주인공은 부모님을 떠나 대학에 가서 법률가가 되려고 한다. 정육점을 하는 부모님의 피가 잔뜩 묻어 악취가 풍기는 앞치마와 같은 성실히 일하는 삶과 멀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가르치는 정육점 일을 순순히 배웠지만, 아버지는 그가 피를 좋아하도록 가르치지는 못했다. 미리 걱정하고 염려하며 주인공의 삶에 제한을 두는 광신자 같은 아버지는 공부에 전념하는 아들의 태도를 자랑스러워하며 그의 대학 학비를 대기 위해 보조하던 직원을 내보내면서 열심히 일하셨고, 일을 쉬던 어머니도 정육점 일을 시작하셔야 했다.

 

내가 여기 있고 이 일이 필요하면 내가 하는 거야.”

필요가 없다니까요. 오늘 아침에도 제일 먼저 거기부터 청소하더라고요.”

욕실이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머니가 그럴 필요가 있었다. . 어떤 사람들은 일을 갈망한다. 어떤 일이든. 가혹하든 고약하든 상관없다. 자기 삶의 가혹함을 쏟아내고, 마음에서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생각들을 몰아내기 위해. 어머니는 욕실에서 나왔을 때 다시 나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네 아버지와 이혼하지 않을 거다. 마커스. 결심했어. 그냥 견딜 거야. 네 아버지를 돕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할 거야. 도움이 될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네가 나한테 바라는 거라면, 그게 나 자신이 바라는 것이기도 해. 너는 이혼한 부모를 원치 않고, 나는 네가 이혼한 부모를 갖는 걸 원치 않아. (...) 계속 네 아버지와 살게, 무슨 고생을 하더라도.”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역시 깊고 독특한 기쁨이다. 도덕적, 정치적 정당화를 요구하지 않는 흥미롭고 신비로운 인간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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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쪽

 

"경제학자 브란코 밀라노비치가 예상한 바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개인 간에 나타나는 소득 격차의 온갖 문제는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국가와 그 국가 내부의 소득 분배 이 두 요인만으로 거의 절반을 설명할 수 있다. 언젠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말한 것처럼, "기회가 없다면 능력이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질적 성공이 재능과 노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남들이 높게 평가하는 재능이 있는 사람, 그리고 고도로 집중하면서 끈기 있게 일에 매달릴 수 있는 능력과 성향을 갖춘 사람이 훨씬 더 쉽게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우리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 특성들은 또 어디에서 오는 걸까? 사실 유전자와 환경이 버무려진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어서(게다가 이 과정에도 임의의 영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 최근 생물학계의 주장이어서)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 책은 개인의 타고난 특성별 차이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행운의 역할을 설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니고, 외부의 우연한 사건과 환경적 요인이 개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성과를 미치는( 사람들의 장점이나 단점과는 별개로 발생하는) 영향에 대해서 최근에 학자들이 알아낸 사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테면 노동시장에서 맞닥뜨린 우연한 사건들로 인해서 그런 사건이 직업적 이력을 어떻게 바꿔나가는가에 대해 연구를 개진해 몇몇 개인의 사례를 바탕으로 가장 거대한 성공 스토리조차 얼마나 다른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는지 소개하고 있다.

 

노력과 재능의 발로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믿음이 설사 잘못 되었더라도 이런 믿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 것은 현실에서 경쟁의 승자가 되는 가능성이 아주 낮다하더라도, 이에 노력하기를 단념하거나 힘이 빠지는 그래서 가만히 행운이 따라주기를 기다릴 공산이 더 크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과장된 인식을 품는 것이 성공을 위해 필요한 힘을 발휘하는 데는 더 쉽기 때문.

 

오늘 누군가의 나무 그늘 아래서 쉴 수 있다면, 다른 누군가가 오래전에 그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개인 성공 스토리에서 재능과 노력만 강조한다면, 성공한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물질적으로 성공하도록 돕는 사회 환경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투자를 꺼리도록 만들 수 있다는 점. 기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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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8-07-20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책을 벗삼아 사시는구려...

icaru 2018-07-20 16:33   좋아요 0 | URL
(눈 비비적 후비적) 제가 헛 거를 본 건 아니쥬,, 잘 지내시죠? ㅎㅎㅎㅎㅎㅎ
글게 저, 아직도 여기서 이러구 지냅니다 허허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