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녀를 둔 어머니 독자가 아니었다면 이 책을 어떻게 읽어냈을까, 완전히 그 감상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자식은 부모가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이란 겉만 낳는 것이지, 속까지 낳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이 성장하고 성격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부모가 차지하는 역할이 그리 결정적이지 않음을 주디스 리치 해리스에서 재차 확인한 바 있듯이. 자식은 미래에 속해 있고, 부모는 그 미래가 어떤 세계인지를 알지 못한다. 또한 부모는 아이의 성격이 결정되는 데(유전적 영향을 제외하면) 별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아이들이 집 밖에서 또래들과 함께하는 환경 속에서 사회화되고 성격을 형성한다고 말하고 있다.
자식이라는 존재는 그렇다. 바르고 착하고 성실하다고 해도 사랑하기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이 가해자 엄마의 자식은 총기 난사로 몇 명의 목숨을 앗아갔나?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라는 것이 비유가 아니라 묘사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되는 어머니 ‘수’의 지옥은 긴급 상황을 알리는 남편의 전화로 시작되고, 그 지옥의 17년을 기록한 책이다. 1999년 4월 20일 오후 12시 5분 전화에서 시작된다. 1999년 4월, ‘수 클리볼드’의 17 살 아들 ‘딜런 클리볼드’는 친구 ‘에릭’과 함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을 난사해 13명을 살해하고 24명을 부상 입힌 후 자살했다.
“사실 컬럼바인 이전에 누가 우리 삶을 들여다보았더라도, 아무리 고배율 줌렌즈를 들이댔더라도 미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정과 다를 바 없는 아주 평범한 모습밖에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수 클리볼드의 아들 딜런은 대학에 가면 컴퓨터를 전공할 계획인 재원이었다. 조립한 컴퓨터로 친구들과 같이 게임을 하고 시각 효과나 음향 효과를 가지고 실험도 하는 수준이라고 이해했다. (위험한 사이트들을 접속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할 모의를 할 것이라고는 ...)
갑자기 죽어버린 아들의 시신을 확인하지도 못했는데, 남은 딜런의 가족들은 이미 이웃과 세상의 적이 되어 버렸다. 이들은 친적의 배려로 언론과 외부의 눈을 피해 몰래 친척 집에 숨어 들어가, 키우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가해자인 아이들은 죽어버렸다. 남은 가족은, 수 클리볼드는 이후 평생을 괴로워했다. 그리고 자기 삶의 추동력이 될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수 클리볼드로서는 '산 채로 살갗을 뜯어낸 것 같아 압도적인 감정을 막아줄 보호막이 없었다.' 대신 일기를 쓰는 사람이었던 그녀는 거기에 아들과 아들이 친구와 한 일에 대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무수한 감정들을 적어놨다. 입 밖으로 내면 안전하지 않을 수 있었던 상실감을 토해냈다. 본래 사건과 경험을 되살려 정리하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자신과 접촉하거나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 법정에서 증언을 해야 하는 곤욕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며 말해 주는 사람들도 주변에 있었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증오했고, 희생자인 아이들을 위해 수 클리볼드가 세운 십자가는 바로 쪼개져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수 클리블드는 지난 16년 동안 단 하루도 격한 죄책감에 휩싸이지 않고 지나간 날이 없었다. 딜런과 에릭이 죽인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 삶의 마지막 순간, 그들이 느꼈을 고통과 공포, 죽은 아이들의 부모님, 다친 사람들, 영구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 아들이 한 해동 때문에 세상을 더욱 두렵고 알 수 없는 것으로 느끼게 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16년 동안 반복적으로 자문하는 생각은 '딜런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지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같은 것. 자신이 막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죽은 사람들 대신 자신의 목숨을 대신 내 줄 수 있었다면... 그러나 아무리 끔찍한 일을 저질렀더라도 딜런은 언제까지나 자신의 아이였다. 자기 자신 자기 아들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 대상들이 괴물이 되었다가, 다시 아이가 되었다가. 우울증 등의 뇌의 병이 반드시 도덕적 방향타를 망가뜨리지는 않지만, 판단을 흐리게 하고 현실 감각을 왜곡하여 목숨마저 위험하게 할 수 있다.
수 클리볼드는 “딜런이 총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이 가장 취약한 순간에 이렇게 위험한 무기를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엄청난 위험이 된다.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법을 논의할 때에는 이런 위험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라고 하며 마지막으로 “압도적인 수치감과 공포와 슬픔만큼이나 강한 알고자 하는 원초적 욕구에 따른 순전히 개인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쥐고 있을지 모르는 조각들이 많은 사람들이 풀려고 절박하게 매달리는 퍼즐의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배운 것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기자, 내 이야기를 공개하는 일이 힘겹더라도 피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라고 하며 사람들의 삶이 위기에 처하기 전에 세상이 모든 이에게 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기를 염원하며 글을 마치고 있다.
" 그 일이 처음 닥쳤을 때에는 , 몇일이 지나도록 희생자들이나 희생자 가족과 친구들의 고통을 떠올리지 못했다. 극한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 신체가 충격을 경험하는 방식이 그러하듯이 심한 심리적 상처를 겪을 때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정신줄을 놓치 않기 위한 매커니즘이 가동되어 한번에 조금씩,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머릿속에 들어온다. 엄청난 힘을 발휘해 차단하거나 왜곡하는 방어 기제다. "
“내가 아는 건 딜런이 겉으로 우울의 징후를 보였다는 것이고, 톰과 내가 보고도 해석하지 못했다는 거다. 이 징후들이 무슨 의미인지 알 만큼 지식이 있었다면 콜럼바인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클리볼드는 아이의 우울과 자살 충동의 징후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과, 아이가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지 못한 것을 처절하게 자책한다. 우리에게 아이 얼굴 너머에 있는 것을 더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빛을 비추어주고, 도움을 주라고 말한다.
“나는 내 가족은 자살 위험이 전혀 없다고 마음속 깊이 믿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 사이가 친밀하기 때문에, 혹은 내가 빈틈없고 다정한 사람이라 안전하게 지킬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믿었다. 자살은 다른 집에서나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틀렸다. “
“우리는 확실을 가지고 아이를 키웠다. 나는 타고나기를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늘 아이들 목에 뭐가 거릴지 않을까 염려하고, 좋은 버릇을 잘 가르치려고 법석을 떠는 편이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첫째와 달리는 둘째 딜런은 차분히 앉아서 하는 논리적인 놀이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딜런은 스스로에게나 남들에게 자신 혼자 힘으로 잘해나간다는 확신을 주려 했었는데, 그런 면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딜런이 삶의 막바지에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랐으니 말이다. ”
"나도 내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비난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낯선 사람이 모인 곳에 가서 딜런과 에릭이 한 짓에 대해 말한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고립감은 끔찍했다. 불안 정도도 매우 높았고 홀로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남편이었는데, 그 비극 이후에 우리 사이에 생겨난 틈이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그럴 법한 일이었다. 아이가 죽은 뒤에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통계 수치가 과장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결혼생활이 무척 힘겨워지는 것은 지당한 일이었다. 가장 흔한 까닭으로 드는 게 여자와 남자가 애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남자들은 아이가 자라서 어떤 존재가 되지 못한 것을 슬퍼하는 경향이 있고, 여자들은 자기가 기억하는 아이를 잃은 것을 슬퍼하곤 한다. "
"우리에게도 이런 차이가 확연했다. 나는 딜런이 아기일 때, 아장아장 걸을 때, 어린 아이일 때 십대일 때의 기억을 끝없이 되새겼지만 톰은 딜런이 죽었기 때문에 할 수 없게 된 일들에 매달렸다. 우리는 지독한 폭풍 속에 한 데 묶여 있지만, 가끔은 누군가와 함께인 것이 혼자인 것보다 더 괴로울 때도 있었다. 증오와 비판에 노출되는 것이 힘겹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는 세상으로 다시 나가면서 친절과 관대함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한다는 것은 계속 나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불쾌한 말을 들으며 마음이 다치고 좌절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바깥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 궁극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 "
내 정체성이 벗겨지고 나자 내가 평생 얼마나 나 자신에 몰두하고 지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를 바랐고 공동체에서 쓸모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기쁨을 느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택했다. 내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훨씬 중요했다. 내 가정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좋은 엄마라고 자부했다. 콜럼바인 이후에는 모든 게 허위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냥 나쁜 엄마가 아니라, 세상 최악의 엄마이고 지역 신문 1면에 증오의 대상으로 실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영원히 딜런의 일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소에 찍힌 낙인처럼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과 내 아들이 한 일이 내 존재에서 지울 수 없는 일부가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새로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내가 아는 건 딜런이 겉으로 우울의 징후를 보였다는 것이고, 톰과 내가 보고도 해석하지 못했다는 거다. 이 징후들이 무슨 의미인지 알 만큼 지식이 있었다면 콜럼바인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임상심리학자이며 콜럼바인 수사 때 조사반 자문이던 퓨질리어 박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에릭이 사람을 죽이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자기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반면, 딜런은 죽으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다른 사람도 같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나는 포도덩굴 너머에서 동료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우연히 엿들었다. “아이가 그런 일을 겪는데 엄마가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돼요.” 그 동료와 내가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나는 상처를 받았다. 동료가 내가 딜런의 계획을 알았다고 생각한다는 것, 딜런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끊을 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수수방관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자 딜런이 죽은 직후처럼 돌 연마기 속으로 다시 들어간 것 같았다.
그 말을 곱씹지 않을 수가 없었고, 나보다 이 길에 들어선지 오래인 유족 한 명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내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당신도 이런 일을 당해보면 그렇게 말하지 않겠지. 당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잔인한 말을 했는지 깨달음의 기회가 오기를 바라.’”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런 소원을 빌지는 않을 거예요. 그 사람도 사실은 이런 일이 자기에게는 일어날 수 없다고 안심하고 싶은 것일 뿐이니까요.” 우리는 그때 주차장에 있었는데, 그녀가 내 차 뒷자석에 있는 자살 예방 소책자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싸우려고 하는게 그런 무지잖아요?”그러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누가 그걸 알겠어요. 나도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리라는 건 몰랐어요.”
"슬프고도 무서운 진실은 언제 우리가(혹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심각한 뇌건강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가정에서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십대의 경우에는 더더군다나 그렇다. ‘양육’이란 한 사람이 접하는 모든 환경적 요소를 가리킨다.”
"아무도 다친 무릎을 의지와 용기로 낫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낙인을 피하려고 스스로 벗어날 방법을 찾으려고만 한다.”
“오툴 박사는 아이의 말을 믿으면 위험하다며 부모들에게 행동을 관찰하라고 조언한다......아이에 대한 맹목적 사랑 때문에 걱정스러운 행동을 보지 못하거나 나름대로 납득하려고 노력한다. 문제의 아이가 '착한 아이'이고 부모와 사이가 좋다면 더욱 그렇다. 이런 행동들을 뚜렷이 직시하고, 무언가를 감지했을 때 행동으로 옮기기는 무척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청난 후회가 닥칠 것이다.”
“상태가 좀 회복되고 나면 방금 전까지의 내 생각이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왜곡되어 있었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어떻게 딜런이 터무니없는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옳은 길을 간다고 생각할 수 있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