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앞일은  정말 알 수가 없나보다.


이렇게 거창한 문장으로 시작할 만큼 큰 일은 아니지만서두...

지난 28일 일요일 오후 세시 회사에 출근하던 길에 연희미용고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뀐 걸 확인하고 걸음을 떼려다, 그만 신호를 위반하고 가려는 차를 피하려던 오토바이와 충돌하다. 

오토바이와 부딪힌 쪽은 오른쪽 다리이고, 그 충격에 넘어졌다가 툭툭 털고 일어났다. 검정 정장바지가 흑먼지로 쫄쫄해졌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나이가 아주 지긋해보이셨는데,  인도에서 쓰러져 다리를 부여잡고, 뒹굴고 있었다. 그후 꼭 우리 필자 중에 까칠한 아줌마 김모선생 하고 똑같이 생긴 중년의 여인이 차에서 내려 쓰러진 아저씨에게 가서 뭐라뭐라....한다.

'빨리 회사 가봐야 하는데, 뭐가 이리 꼬인담!'하면서 ' 늦었는데 그냥 갈까, '하다가 막상 크게 다친 데가 없어 보이더라도 그 자리에서 운전자의 명함이라도 받아서 가라던 옛사람들의 조언'이 생각나던 참이었다. 게다가 지나가던 구경꾼 아줌마들이 내게 와서 '아까보니, 크게 넘어지는 것 같던데, 그거 굉장히 오래가요. 우리  신랑도 다쳤었잖아! ' 뭐 이런 훈수들을 두시고. 

그래서 '나도 다쳤거든요!' 하는 얼굴로 운전자 아줌마에게 '나는 오토바이에 치였다. 명함을 달라....!' 하니, 아줌마가 그런 거 없고, 같이 병원 가잔다. 조금 있으니, 구급차가 달려와서 쓰러진 아저씨를 실어 가고, 오토바이 운전자 아저씨의 고용주인 듯한 남자가 와서, 아줌마와 실갱이하고, 경찰이 오고, 아줌마는 병원이 아니라 경찰서부터 가야 하는데, 차에 타라고 하니.... 나는 그럼 아주머니 이름하고 핸드폰 번호를 알려 달라하여 받고 후덜덜 떨려오는 사지를 지탱하며, 회사에 출근했다.

아니, 그 몸으로 출근하냐고 혹시 의아해하고 있을 당신에게...

지난 학기 작업 막바지 화면 오케이 앞두고, 벌어진 집단 식중독 토사곽란 사태와 그 심각성이 유사하다.고 한마디로 설명하면 될까?

회사에 가서 일요일 저녁에라도 보자 싶은 교정지... 집으로 싸들고 오겠다는 생각에....

회사에 가서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오른손에 들고 있던 가방으로 오토바이를 막아서 그랬던지, 보라색 가죽 가방 앞판이 쓸리고, 검정바지 무릎 부근에 보라색 물이 들었더라. 종아리와 무릎은 멍이 들어 있었다. 가방 안에 있던 내용물 중에 그 와중에 뭐가 쏟아졌을 거라는 사실은 생각도 못앴었는데, 늘 갖고 다니는 파우더팩트 하나가 보이질 않는다. 무엇보다 왼쪽 겨드랑이부터 시작되어 좌측전체에 전해지는 경련....

놀라고 멍해서 그런 거라 생각하며, 그날은 저녁먹고 후딱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월요일 확실히 좌측어깨를 위시하여 목과 왼쪽 팔 손가락 끝까지 땅기고 저릿저릿한데다가 두통까지.....

하지만, 짬이 안 나서 병원을 가보지 못하다가....

화요일 더 명명백백해지는 증상들 때문에 어느덧 단골(지난 김장 때 깍두기 썰다가 손가락 잘린 사건을 계기로)이 되어버린 동네 김철신 정형외과를 찾았다.

김철신 정형외과의 김철신 선생님은 우리 식구들 사이에서는 우리 가족 주치의로 통한다. 김철신 선생이야 그 사실을 알턱이 없으실테고 ^^;;; 울엄마는 혈압약 처방전 때문에 정기적으로 가시지, 나나 남편도 감기 같은 내과 진료마저도 김철신 정형외과를 찾으니까. 이분은 아픈 데를 진지하게 살펴주며, 과잉 진료를 하지 않는다. 말씨마저도 소박하기 이를데 없는...

그런 의사가 내린 진단인 즉, 목뼈 7개가 보통은 구부정한데, 나는 꼿꼿하게 서 있단다. 좀 오래 갈 것이고, 시시종종 아플 것이고, 후유증도 올 수 있다 라는....    

화요일을 기점으로 난생 처음 물리치료라는 받고 있는 중이다. 수요일쯤 되니, 보험회사에서 전화가 온다. 내 상태를 묻고, 치료 잘 받으시라~ 한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크게 다쳤단다.

의사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전하면서, 병원 치료는 계산하지 않지만, 약값은 일일 내가 계산하고, 나중에 보험회사 측에 영수증 모아 청구해야 한다니, 복잡해진다 싶은 거다. 뭐 그런 뉘앙스로 말을 하니, 보험사 측에서는 그럼, 합의를 하잔다. 이런 통화를 앞으로 계속 하지 않는 길은 합의 뿐이다. 라는 생각에 그쪽에서 제시는 방향으로 순순히 오케이 해버렸다. 3년 내에 후유증이 생기면, 연락 달라 하더라.

너무 쉽게 합의를 해버렸다는 후회가 막급해지는 것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증상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주치의 선생님(?)마저도 "계속 아프시면, 정밀한 검사도 받으셔야 하고 할텐데, 왜 벌써 합의를 해 버리셨어요?" 하며 나무라시니까 민망해서 식은땀이 다 나려 하더라.   

삼재, 라는 게 있다던데,,, 내가 지금 그건가보다.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액땜?

혹시 지금 작업하고 있는 책이 대박나려나?

우아~ 이 와중에도 사고를 일과 연관을 짓는 나는 정말 훌륭한 직업 마인드를 겸비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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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4-03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유증까지 있을 수 있다니 정말 작은일은 아닌 거에요.
교통사고는 그래서 무섭군요. 작은 거다 싶어도 그게 아닌가 봐요.
부디 잘 치료받으시고 아무 일 없이 잘 나으시길 빕니다.

icaru 2010-04-06 01:37   좋아요 0 | URL
아~ 옛날의 혜경 님이시죠? ㅎㅎ 우선 인사부터 드려요~
너무 오랜만이라는...
네.. 정말 사고 당일은 몰랐어요. 이렇게 하루하루 지날수록 아픈 데가 생기는 줄은...

잉크냄새 2010-04-03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교통사고는 휴유증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빨리 쾌유하시길 바랍니다.

icaru 2010-04-06 01:38   좋아요 0 | URL
아유~ 잉크냄새 님 오랜만입니다...!!!!
좋은 소식 들었어요~ ㅎㅎ
넵, 잘 쉬어야 할텐데.. 그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 에긍

느티나무 2010-04-04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큰일날 뻔 하셨네요. 그래도 일단 그만하길 다행입니다. 친구들 사고 난 거 보니까 꽤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데...(땡겨서~) 얼른 나으시길 빕니다. 다시는 사고 같은 거 당하시지 마시구요.ㅋ

icaru 2010-04-06 01:39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저도 참 오래 살았구나... 이런 일도 겪고, 했지 뭡니까~ ㅎㅎ 이만하기 천만 다행이죠. 그렇게 돌려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사고는 기왕이면 안 겪는게 좋았을 것을...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58~159쪽   
 

우리가 아름다운 것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우리 인생이 여러 가지 문제로 가장 심각할 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낙담한 순간들은 건축과 예술로 통하는 입구를 활짝 열어준다. 그러한 때에 그 이상적인 특질에 대한 굶주림이 최고조에 이르기 때문이다. 정신이 잘 정돈되어 너저분한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콘크리트와 나무로 이루어진 하고 텅 빈 공간에 햇빛이 환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 아름다운 것을 구매하려는 것은 사실 그것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갈망을 처리하는 가장 무미건조한 방식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과 자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감정에 대한 가장 무딘 반응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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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8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0-03-30 15:56   좋아요 0 | URL
기다리셨다는 말씀 부분에서 그만, 울컥해졌어요. 주책 ^^*
말씀처럼, 편하게~ 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뭐 그리 신경 쓰여 하고 있는 건지 참나,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남는 건 책 밖에 없다, 는 어떤 님의 서재 제목. 동감한다. 아주 정확히 말하자면, 남는 건 리뷰 밖에 없는 것 같다. 재밌겠다 싶어 대여한 영화가 틀어보니, 예전에 대여해 보았던 영화일 때 느끼는 어이없음과 맞먹을 정도로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 남을 뿐 내용은 머릿속에 하나도 남지 않은 경우가 늘어만 간다. 그나마 리뷰를 보면, 읽었을 때 당시 느꼈던 소회랄지 내용 일부랄지가 되살아나니까.

단순히 그런 이유뿐만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하는 거 하나 없이 난 뭘 한 걸까 밑도 끝도 없이 위축될 때 이 서재에 들어와 수삼사년 썼던 리뷰들을 읽으며, 그래 나란 사람 사실은 그래도 조금은 재기발랄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지 하며 약간의 에너지를 얻게 된다. 

물론, 눈뜨고 봐줄수 없을 정도로 손발 오그라들게 하는 ‘리뷰를 위한 리뷰’도 있고, 쓸 때 당시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싶게 ‘평정을 잃은 리뷰’도 있다. 뭐 그렇긴 하지만 고런 건 스킵하고, 재밌다고 생각되는 거만 골라 읽는다. 

한 때는 맹렬하게 서재 블로그를 꾸리던 시기가 있었다. 리뷰도 열심! 페이퍼도 열심! 리뷰는 당시 서점측에서 20편을 쓰면 5000원의 적립금을 지급해 주는 제도가 있었던 게 동기 부여가 되었었다. 따지면 편당 250원인데, 한낱 감상문 하나가 자그마하나마 수익을 가져다 준다는 것에 감동. 매부 좋고, 누이 좋은 일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 제도가 한시적으로 시행되다가 중단됐지만, 이후로도 리뷰 쓰기에 열 올리기는 식지 않았다. 페이퍼는 알라딘에 서재라는 게 생기고 나서 서재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이퍼의 경우는 사람 사는 게 그러하듯 재미와 열정도 식고, 또한 지명도 높은 작가가 팬들 의식하는 것도 아니면서, 우습게도 페이퍼를 편하게 작성하지 못하고 쓰면서 자기 검열을 심하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쓰고자 한다면 더 편하게 쓸 수 있는 데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이런저런 것들이 계기가 되어... 급기야는 카테고리 하나만 남겨두고 다 닫게 되었다. 

하지만 리뷰 만큼은 계속 쓸 수 있었을텐데..... 
 

요즘도 책을 읽기는 한다. 하지만 리뷰는 못 쓰겠더라. 밑줄 긋기도 잘 안 되더라. 위와 같은 이유로 좀더 써보도록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페이퍼도 그렇다. 그냥 편하게 써 보자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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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10-03-1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공감...

icaru 2010-03-19 08:47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면, 항간에 평범한 인터넷 서점에 지나지 않은데, 제게는 특별해졌네요. 둥지를 틀고 애착을 갖고 한 세월이 10년이더라고요... 참 .,.

2010-03-18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9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10-03-18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고르면서 무심히 읽게 되는 리뷰에서 님의 이름을 여러번 발견했더랬죠.ㅋㅋ 와 취향도 비슷한 점이 있고, 내용도 좋았습니다. 저는 열심히 쓰지는 않았지만 여러 사람의 글을 읽으며 감탄했고, 행복하기도 했었는데... 여러 사람이 비슷한 상황인가 봅니다. 저도 책을 읽고는 있는데, 가끔 쓰는 리뷰를 아예 손 놓은지 오래네요. 저도 리뷰는 쓰고 싶은데~!! 암튼 페이퍼 읽고 공감 백 개 날려용

icaru 2010-03-19 08:57   좋아요 0 | URL
진복이랑 우리 큰애랑 동갑이라서^^;; 제가 진복이 커가는 모습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많이 컸죠? 저희 아이도 바람잘날없긴 하지만 열심히 커가고 있어요. 어여쁘신 심상이 최고야 님 서재도 들랑달랑 했었는데, ㅎㅎㅎ
리뷰 써 주시면, 열심히 가서 읽겠습니다~
 
몰입 Flow -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최인수 옮김 / 한울림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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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재미를 맛보게 해주는 정신적 체제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호기심, 세심한 관찰, 사건의 정연한 기록 방식그리고 자신이 배운 내용에서 기본이 되는 법칙을 도출해 내는 방법을 파악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사실로 입증되지 않은 믿음들을 거부할 수 있을 만큼의 의심과 개방성을 갖추어야 하며, 기꺼이 과거의 연구자들이 연구해 놓은 결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겸손함도 더불어 요구된다. "

 

 

"뛰어난 재능이 없는 한, 글을 써서 부나 명성을 얻고자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내적인 이유로 글을 쓰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우선 글쓰기 는 정리된 표현 수단을 우리 정신에 제공해 준다. 글을 쓰면서 사건과 경험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쉽게 회상하고 되살려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글을 쓴다는 것은 경험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한 방법으로서 경험을 정리해 주는 자가 소통의 한 매체가 된다.

시인들과 극작가들이 집단적으로 심각한 우울증 및 다른 정서 장애의 증세를 보인다는 사실에 대해 최근 많은 사람들이 논평을 했다. 아마도 그들이 전업 작가가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의 의식의 엔트로피에 과하게 둘러싸여  글을 쓴다는 것이 감정의 혼란 속에서 어느 정도 질서를 잡아주는 치료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언어의 세계를 창조해 내어 골치 아픈 현실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것만이 작가들이 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플로우 활동과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중독이 되면 위험하다.. 작가가 제한된 범위의 경험만을 하게 되고, 다른 경험들을 접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경험을 통제하기 위해 글을 쓰되 글쓰기 자체가 내 의식을 통제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한 글쓰기는 편안하고 오묘함을 느끼게 해주고 풍부한 보상을 받게 해 주는 도구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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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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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초 영국.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는데, 그들은 둘 다 첫날밤인 지금까지 순결을 지키고 있었다. 그 시절은 성문화를 화제로 입에 담는 것조차 불가능한 때였다.

  그런 그들이 결국 신혼 첫날, 헤어지게 된다. 그녀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이 너무 예의 바르고, 너무 경직되고, 너무 소심하고,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사교적인 배려로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려서 눈을 멀게 했다고. 두 사람의 미래가 어긋나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는 사십 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생각한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남자든 여자든 그녀의 진정성에 필적할 만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녀 곁에 머물렀더라면, 자신의 삶에 좀더 집중하여 의욕적으로 살았을지도 모르고, 당시 꿈꿨던 역사서 시리즈도 집필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그리고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음을 깨달았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을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삶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고,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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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1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8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