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1960년대 초 영국.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는데, 그들은 둘 다 첫날밤인 지금까지 순결을 지키고 있었다. 그 시절은 성문화를 화제로 입에 담는 것조차 불가능한 때였다.

  그런 그들이 결국 신혼 첫날, 헤어지게 된다. 그녀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이 너무 예의 바르고, 너무 경직되고, 너무 소심하고,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사교적인 배려로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려서 눈을 멀게 했다고. 두 사람의 미래가 어긋나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는 사십 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생각한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남자든 여자든 그녀의 진정성에 필적할 만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녀 곁에 머물렀더라면, 자신의 삶에 좀더 집중하여 의욕적으로 살았을지도 모르고, 당시 꿈꿨던 역사서 시리즈도 집필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그리고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음을 깨달았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을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삶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고,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는 생각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3-11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8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