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생각해
이은조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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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려고, 책 검색을 했는데, 책이 안 나온다. 이런 '나를 생각해'라고 읽고, 책 제목을 '너를 생각해'로 검색했다.  

일찍 퇴근을 한 날이면, 애들 밥 차려 주느라 동동거린다. 아이들을 봐 주고 계신 친정어머니가 하실 때도 있고, 그런데 오늘 저녁은 엄마가 외출을 하셔서 내가 저녁 준비로 부산했다. 아이들을 위한 영양식단은 아니고, 어쩌다 먹고는 하는 짜파게티- 짜장면 먹는 데이에 알라딘 특가로 주문한 것-. 중국 음식 시켜 먹는 분위기 내면서 맛있게 먹어주길. 이것은 ‘나를 생각해’ 차리는 식단이다. 얼른 니들 밥 먹이고, 나 볼일 있거든~ ‘나를 생각해’를 마저 읽고 싶거든!

작가의 첫 장편은 대개 자전적 이야기라고 하던데, 이 작가님도 약간의 자전적 요소를 가미했을 것이다. 그래서 연극하는 작가이자 기획자의 이야기를 엿듣게 된다. 무엇이 되었든 그 직업 세계에 대한 디테일함이라던지 통찰이 드러난 글이 좋다. 이 책에서도 있다! 협찬사를 만나는 자리에 대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로는 투자할 가치가 없을지언정 인간적 동정과 연민으로 투자할 수 있다 이런 계산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물론 소수이고 희박하다고 보는 게 맞지만 말입니다.”

‘팔을 흔들고 다리도 흔들고 머리도 흔들며 춤을 추었다. 몸을 흔들수록 알코올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더 세게 몸을 흔들었다. ’  -협찬사와의 노래방에서... 안 처절한 것 같으면서도 처절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또, 여자들의 연대 혹은 새로운 가족상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첫째 딸이자 주인공의 언니 재영의 모습이...

나는 이 작품의 면면에서 작가가 <걸>이나 <마돈나>의 오쿠타 히데오 만큼이나 재밌게 직업인 삶을 풍자하는 소설을 쓸만한 저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암스테르담의 이언 메퀴언과 같은 섬세한 감수성과 잘 읽히는 문장을 쓰는 능력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하고는 연애 안 한다는 우리 주인공의 말에 토달 생각 없지만, 유안이가 오 연출가에게 여지를 두기를,,, 했는데, 이 정도면 열린 결말로 봐도 될 것이다. 옛사랑이 지나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랑이 차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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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1-05-20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꾸준하게 읽으시고 글을 올리시는구만요.
전 여행기도 하나 못쓰고 있답니다.ㅠㅠ

icaru 2011-05-23 08:37   좋아요 0 | URL
잉과장님도 꾸준히 읽고 있으실 것 같은데, 저도 마찬가지로 읽는 일은 하지만,,, 리뷰 쓰기는 잘 안 되더라고요~ 정색하고 쓰자면 쓰겠는데, 그건 또 품이 많이 들고~
그래도 항상 지향하는 마음은 '아주 얇팍한 글이라도 리뷰로 남겨야지' 하는거죠

프레이야 2011-05-22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오랜만에요.
리뷰 반갑구요.^^
이 책 전 반쯤 읽었어요.

icaru 2011-05-23 08:3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 저는 님의 댓글이 무척, 그리고 항상 반갑네요~
반쯤이시면, 오! 곧 리뷰를 만나리라..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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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결도 갖추지 않았고, 시작은 있으되 끝은 알 수 없는 기존을 형식을 파괴한 소설을 잘 읽지 못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논외로 두고, 나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이렇게 써놓으면, 참으로 포스트모던하구나 라고 느끼는 줄 아는가 본데, 뒷심이 딸리는 것마저 이것은 자기가 걷는 길은 모두 프론티어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자신감에서 나온것일 거야.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 책은 그런 의구심이 듦에도 불구하고, 책장 덮고도, 다시 열어보게 한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방금 그 흔히 말하는 센세이셔널 한 글을 읽었구나 하면서 느낌 충만해한다.

내가 한국 작가들은 읽어놓은 게 원체 부박해서 가난에 대해 천착한 작가의 글로서는 두 번째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첫째는 단연 공선옥이고.

배수아 씨의 작품과 나의 인연은 그러니까, 대학 초년생 시절부터 거슬러올라가는데, 처음 읽은 작품은 “푸른 국도의 사과...” 어쭈구(제목을 검색해 보기조차 귀찮음은 뭔지) 하는 작품이다. 작가 사진에서 풍기는 어쩌면, 불온한 이미지도 이 작가의 글에 대한 호기심을 동하는 데 한몫했고. (작가 사진들은 하나같이 뭐랄까 정이현 만큼이나 예쁘다, 라는 소리는 쉽게 나오지 않는데, 길게 죽 이어진 눈꼬리 하며 딱 팜므파탈 같아 보여서 ^^;;;)

그 이후로 부주의한 사랑이라던가, 나는 네가 지겨워 같은 작품들을 읽었다. 꽤 가독성 있게!

나는 배수아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녀가 지나치게 노후를 걱정하는 것이 작품에 반영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특히 푸른 국도에서 사과를 파는 할머니를 자신(작중 화자)의 미래와 오버랩시키는 부분이라던지....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말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도 이 생각과 맥락을 같이 한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만났거나 혹은 직접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빈곤을 읽었다. 가난을 겪은 사람이나 심지어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 말고는 사람에게서 아무 것도 읽은 것이 없다고 말할 수조차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 중 하나인, 예술계 저널리즘에 몸담은 20대 초반의 결혼을 앞둔 글자 노동자 또한 어디서 만난 것 같은 전형성을 띤 인물이다. 다음은 이 인물이 남긴 일종의 자기 고백 같은 글이다.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나는 스스로를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 가장 큰 것은, 물론 내가 타고나지 않았다는 것도 있지만, 지금까지 일생 동안을, 그리고 중요한 성장기를 빈곤한 환경에서 보냈다는 점이다. 나는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예술 노동자로 살아갈 수는 있다. 작문이나 미술 성적이 좋아서 학교에서 상을 탄 적도 적지 않다. 나는 글을 쓰고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다듬고 어디선가 들은 듯한 구절이나 견해가 아니라 내 스스로의 언어로 말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문장이나 원고를 쓸 때, 그리고 그것이 발표되었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카테고리 내의 답안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했다. 나는 통용되는 기준에 적합한, 그러면서도 뛰어나 보이는 답안을 은연 중에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통용되는 것이 아닌, 즉 이리저리 배워서 알게 된 것이 아닌, 내 스스로의 기준을 만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감히 바라지도 않았다. 나는 현세의 중력을 넘어서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분명히 알 수 있는 문제이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예술가가 되고자 욕망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단지 분명히 알고 있는 것뿐이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나는 빈곤의 기억에서 이렇듯 자유롭지 못하며 내 예술적인 행위의 흉내는 모두 그 기억에 대한 직접, 간접 반응일 뿐이다. 결국 환경의 영향에 반응한 결과물은 아무리 근사한 문장으로 잘 포장되어 있어도, 댄디인 척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어도 수동태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사고라고 믿고 있는 것이 열등감이든, 피해의식이든 허세이든 간에 바로 내 인격적 가난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것이 내 한계였다. 내 집안에는 알려진 한도 내에서는 지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중략

내가 본격적인 충격을 받은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였고, 내 토양이 황폐하여 인위적인 훈련이나 의지로 극복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대학 졸업학기부터 일하기 시작한 직장에서 아르바이트로 글을 쓰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나 또한 그것을 사적인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것은 진주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였다. 진주와의 결혼을 그토록 오랬동안 망설인 것은 가정을 가지고 허울뿐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편입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지만 아이를 낳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그것은 역시 다른 내 인생의 모든 견해들과 결정들과 마찬가지로 가난 때문이었다. 나는 내 사촌들이 반복되는 가난을 대부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을 보았다. 그 중에는 가장 안정된 일자리를 구한 케이스로 공무원이 된 사촌과 중학교 교사로 취직한 사촌이 있지만 굳이 사무직의 직업을 가졌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뭐 그다지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들은 부모대부터 내려온 빚을 가지고 있었고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데다가 결혼해서 아이까지 딸린 상황이었다. 물론 그들이 지금 빈곤에 빠져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굳이 반복되어야 할 만큼 대단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다.




작가의 말

이것을 쓰게 된 가장 직접적인 동기는 빈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장 분명한 빈곤인 개인적으로 겪는 가난, 궁핍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하게 보이는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자기애의 치명적인 상처 등이다. 어떤 시각으로 본다면 현재 빈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말이다. 그것은 더 이상 보편적으로 중요한 화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내 경우를 말한다면 좀 다르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만났거나 혹은 직접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빈곤을 읽었다. 가난을 겪은 사람이나 심지어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 말고는 사람에게서 아무 것도 읽은 것이 없다고 말할 수조차 있다.

모든 사람이 '일반적인 것'만을 써야 한다면 아마도 내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 한 전문가로부터는 '만일 네가 그랬다면, 정말로 빈곤한 것은 이 지상에서 너 하나뿐'이라는 조언을 들은 적도 있지만 뭐 나에게는 그렇다 해도 상관 없는 일이다. 빈곤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그 경계는 모호해지고 개념은 다양해져서 사회가 진보하고 복잡해질수록 빈곤 또한 따라서 팽창하는 듯하다. 게다가 심지어는 점차 추상적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빈곤의 모습들은 이것을 쓰는 내내 나를 자극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터무니없는 욕심을 갖고 있기도 했는데, 빈곤과 마찬가지로 이 원고를 영원히 끝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두번째 유감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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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치는 엄마 대화하는 엄마 - 아이에게 짜증 내지 않고 말하는 81가지 방법
가나모리 우라코 지음, 박혜정 옮김 / 삼진기획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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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학년 자녀를 둔 엄마 분께서 빌려 주신 책이다. 아이가 둘, 그것도 사내아이들. 우야튼 내 갈길을 미리 앞서 가시는 분의 말씀이라면,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들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지금은 품절....

60분 부모를 봤는데, 그 날 제목은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화가 나요!" 였다. 시작 전에 제목만 보고 만감이 교차하다 못해 피식 웃음이 났다.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조금 쓸쓸해지는 어른 여기 또 하나 추가다. 그날 저 프로의 주인공 하고는 조금 다른 사연이지만...어린 시절 나의 황금기는 딱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이었다. 1학년 겨울 무렵부터 서서히 내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을 거다.

엄마와 아빠가 그 무렵부터 자주 다투셨다. 엄마는 자주 어디 아픈 데가 있는 사람처럼 누워 계셨고, 아빠와 다투시면서 울기도 하셨고, 아빠가 무섭게 화를 내시던 어느 날엔가는 상을 엎으셔서 나와 동생이 울면서 벽에 튄 반찬과 빨간 김칫국물을 걸레로 닦기도 했었다. 

아이를 벼랑 끝으로 무섭게 내모는 것은 공부도 가난도 아니다. 어른들 특히 부모의 싸움이다. 당시 엄마 아빠가 그러했듯이 어린 우리도 주눅들고,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내가 조금 컸을 때는 그랬던 엄마와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님이니까 사랑하는 마음은 없지 않았겠지만, 존경할 수는 없었다. 아주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나서야 그때 우리 엄마는 부모로써 부부로서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하는 온전한 이해와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말았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화가 또 났다. 그 굴레를 대를 이어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이를 악물곤 한다. 내가 행복해져야겠다고 그래야 우리 두 아이들도 행복해진다고.

물론 행복져야 해 라고 이를 앙다문다고 해서 그리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 보면, 이런 부분이 있다.





아이를 낳으면 모성 본능으로 누구나 아이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남성 사회의 편견이다. 라고 주장하는 심리학자도 있다.

나는 모성은 학습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모성은 엄마 자신이 어릴 때 얼마만큼 부모에게 사랑을 받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아이가 싫고, 예쁘지 않다”라고 말하는 엄마는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말에 의거한다면, 나는 부모님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았던 것이 맞다. 이 나이먹도록 부모님 탓이라니 부끄러워해야 할 노릇일지도.....



네가 태어나서 엄마는, 최고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단다.  

나는 엄마들이 이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이 시기에 엄마와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가 아이의 미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아기에 엄마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아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능히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충분히 보낸 엄마는 아이가 자라나 품을 떠난 뒤에도 허무감을 느낄 리 없으며, 오히려 자신감을 가지고 접어두었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는 아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시기는 엄마를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예전처럼 안아달라고 조르는 일도 없다. 이러한 엄마와 아이의 밀월 시간은 고작 몇 년에 불과하다. 유아기 때야말로 일생에서 가장 추억이 많은 시기이다. 아이가 훌쩍 자라고 난 뒤에,

“그때 아이와 좀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후회해도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를테면 재생은 가능해도 재현은 불가능하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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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대다수의 책을 사고, 지역 도서관도 이용하는 독자이다.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한동안 인기대출 도서로 올라온 책이 이것이었다.

가려운 데 긁어주고 있는 듯한 제목의 책! 그래 나도 이런 책을 찾고 있었잖아! 싶었다.

물론 제목만 보고, 조금은 뻔한 예비답(집안을 책으로 도배한다거나....화장실에도 책장을 두어야 한다거나 게다가 인테리어 공사를 은근 종용하는 책이라면 좀 곤란하겠다 싶기도 했지고)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실상이 어떠한지는 책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이다. 

대출을 할까하고, 검색했는데, 연일 대출중이고 예약자까지 줄을 잇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서 보는 게 낫겠다 싶어, 알라딘에 들어왔다. 장바구니에 넣기 전에 땡스투하려고 리뷰를 펼쳐본다. 와우 25개나 달렸다~ 많은 사람들이 봤네. 신간임에도... 그리고 리뷰 내용 또한 이 책이 무척 유익했다 일변도였다.

그런데, 빠밤... 이건 구매자표시 버튼의 득과 독일지도 모르겠다. 25편중 24편이 비구매자 리뷰이고, 구매자 리뷰는 달랑 하나였는데 별점 점수도 달랑 별 하나에다가 리뷰 제목도 “우리 마누라는 다 알고 있었다네” 이다. 

나머지는 이벤트나 신간 평가단의 홍보성 글이 다수였나 하는 추측이 드는 것이다.  

사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했다가, 작업에 놀아날 수야 없지 가뜩이나 얇은 내 지갑인데 라는 오기가 스멀스멀

아후~ 이걸 사,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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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1-04-27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랐던 책인데 님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네요,,
사시면 알려주세요,,ㅎㅎ

icaru 2011-04-28 08:57   좋아요 0 | URL
울보님! 제가 사면, 꼭 보고드릴께요~ ^^
 
메리와 생쥐 베틀북 그림책 94
비벌리 도노프리오 글, 바바라 매클린톡 그림, 김정희 옮김 / 베틀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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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과 사이먼》의 작가 ‘바바라 매클린톡’이 그린 그림이라면, 무조건 무조건이다. 섬세함 풍부함, 우아함 고풍스러움으로 대변되는 작가의 그림.

아이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물론이고, 사실 이 작가의 그림에 이런 스토리는 엄마가 더 열광하는 것이다. 보통 아이들은 이런 상상을 하면서 자라지 않을까? 여자 아이라면 특히, 뭐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집 구석 마루 밑 어디선가 나도 모르는 소인국의 정경이 펼쳐져 있다는 공상.

창고 선반에 차린 생쥐네 거실 인테리어 때문에 더더욱. 사람들이 쓰는 시계 펜던트 목걸이가 벽시계로 둔갑하고, 달걀판은 소파가, 티백은 쿠션이, 실패는 의자가, 양말은 양탄자가, 빨래집게는 침대 기둥이 되어 아기자기함을 갖춘 집안 정경이 되었다.

“생쥐를 보면 무조건 피해. 병균을 옮기거든. 깨물기도 하고.”

“사람을 보면 무조건 피해. 약삭빠르고 못됐거든. 덫을 놓기도 하고.”

우리 아이는 생쥐를 보면 피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납득을 하겠는데, 생쥐들 가족 끼리 사람 보면, 피하자 라고 말하는 것은 쉽게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엄마, 왜 생쥐 엄마가 생쥐에게 사람을 보면 피하라고 하는거야?”

“......” 


아이가 클수록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점점 적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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