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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평점 :
이 대작가는 여태껏 한번도 대중 앞에서 강연 원고를 소리내어 말할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임상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 선생의 타계 후 그에 관한 장은 실제로 교토 대학교 강당에서 천명의 사람을 마주하고 이루어진 것만 빼고) -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라, 기회가 있더라도 이렇게저렇게 회피했을 듯-
이 책은 그간 5년여 동안 써왔던 글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소설가로서 소설을 써 나가는 상황에 대해 테마별로 써 두었던 것을 가지고, 강연을 한다고 생각하고 전체문장을 다듬어 쓴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강연은 하지 않고, 그의 강연 비슷한 것을 듣고자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 는 것은 아니고. ^^;;; 의뢰받은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기획으로 쓴 것이라 한다. 달리 말하면, 이 책은 하루키가 말하는 '소설가 하루키'이다.
그런데 왜 하루키는 강연을 하지 않을까? 그가 밝힌 이유 첫째, 자신이 소설을 쓴다는 작업에 대해 이런 식으로 정면에서 당당하게 말해버리는 것이 좀 멋쩍었기 때문. -"나는 내가 쓰는 소설에 대해 별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비교적 강하다. 자작에 대해 말하다 보면 아무래도 변명하거나 자랑하거나 자기 변호를 하게 되기 쉽다. 그럴 생각이 없었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여버리는' 면이 있다."
이 책은 또한 지금껏 그가 써온 에세이의 재탕인 면도 있다. 사실 독자 입장에서는 재탕일수밖에,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삼십년 전의 하루키나 현재의 하루키나 기본적인 자세나 사고 방식은 같을 것이고, 계통적으로 한 자리에 보겠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분위기나 톤이 살짝 달라지는 풍경을 감상하는 데 가치가 크므로.
라이프 스타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날마다 붐비는 지하철로 이리저리 치이면서 출퇴근을 하며, 개인 컨디션과는 하등 상관없이 하루하루 그날그날의 의사소통을 치루어내가며 하는 일상을 사는 개인이 바라볼 때, 자신만의 에너지와 엔진을 가지고 속력의 완급을 달리해 가며 하는 하루키 집필 생활은 부러운 무엇일 수밖에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을 얻는 원천은 일상생활에 있다. 가족, 동료, 이웃, 친구 등과의 관계맺기가 관건이기에 이에 대한 두려움도 많다. 그렇지만 이 작가는 이런 것들에 적어도 초연해보인다. 그것도 사실 부럽다. ㅠ 이 말은 어쩐지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처럼 들리니, 수정해야겠다. 나중에 ㅎㅎ
"나는 소설가라서 사람을 관찰하는 게 일입니다. 세밀히 관찰해서 대략적인 프로세스는 거치지만 판단은 하지 않습니다. 판단은 정말로 그것이 필요할 때까지 보류해 둡니다. "
"참고로 내 경우의 '푸닥거리'는 달리기입니다. 그럭저럭 벌써 삽십여 년을 계속 달렸지만, 소설을 쓰면서 내게 엉겨 붙어 따라오는 '음(陰)의 기척'을 나는 날마다 밖에 나가 달리는 것으로 떨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