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양억관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리뷰가 지지부진하게 길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경청할 구절이 많은 책들은 그 감상이 촌철살인으로 압축적이고 강렬하게 정리될 것 같지만 되려 쓰다보면, 이렇게 철철철 넘치게 된다.


......"인간이란 나이를 먹을수록 많이 보고 느껴야 한다. 젊은이의 감수성이란, 정신적인 나태에 빠진 어른들의 일시적인 항복 상태의 징표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예민하고 깊은 감수성은 진실로 어른들에게만 허락되는 신의 선물이 아닐까.”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했지. 떡 얻어먹을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연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명쾌한 통찰력 때문에 귀담아 듣게 된다.


시오노 나나미가 자신처럼 생각하기를 강제한 것도 아닌데, 이 작가의 확신에 찬 발언,이 문장의 끝에는 일말의 주저함을 보여 주지 않는 문체에 넙쭉 “소데스까~” 하고 응수해줘버릴 것 같은 압도하는 뭔가가 있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걸 시종일관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퍽 쉽고 즐겁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고나 할까.


그녀는 영화를 소재로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사랑에 대해, 스타의 실상과 허상에 대해, 남녀간의 우정, 불륜, 학교 교육, 남창, 차별, 전쟁, 파워와 품격, 작가에 대해, 주거(의식주의 주)에 대해, 실업, 여가에 대해.


시오노 나나미의 글은 이 책이 처음인데, 이 에세이만 읽고도 어쩐지 그녀를 많이 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는 확실히 피력하고, 이건 이래서 좋은 반면 나쁘기도 하다. 저건 저렇기 때문에 이해해 줘야 한다 식의 옹호를 한다거나 두루뭉실하게 포용하지 않고, 어떤 이야기를 꺼내든지간에 주저하거나 머뭇거림이 없다. 아주 자신 만만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작가로서의 스티븐 킹은 별로였지만, 영화 속에서 그가 그리는 작가상은 재밌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부분(왜냐 하면 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은 늘 작가인데다가 제3자가 묘사하는 작가가 아니라 작가가 그리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라르 드파르디외 주연의 프랑스 영화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과거 남자 이야기를 곁들인다. 이탈리아 와서 이제 막 눈을 반짝이며 유럽을 즐기기 시작하던 시절에 미남에다가 케임브리지 출신다운 예절을 갖춘 그, 그는 동쪽 베이루트에서 서쪽 런던까지 화려한 유럽 사회를 맛보게 해 주었다고,. 그러나 그녀에게 역사 이야기를 쓸 마음이 없느냐는 제안이 들어오고부터 그녀의 생활은 바뀌었다고 한다. 오전에는 도서관이나 고문서고에서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미술관에 다니면서 그녀는 사색했으며 사색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싶어졌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그 남자는 대단히 좋은 사람이긴 하였으나 대화 상대로서는 만족스럽지가 않았다고.... 그때 한 의대생을(그녀가 결혼한 이탈리아인 전 남편인 듯...) 만나고, 그는 가난한 학생이었지만 대화 상대로 더없이 좋았다고 .... 그리고 그녀는 이 의대생과 결혼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 책에서도 너무 제1급의 인물들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녀가 그냥 유명인이라면 무조건 좋아하기 때문에, 위인이나 영웅이 아니면 존경할 수 없다는 속물주의에 빠졌기 때문도 아닌, 그들에게서 피가 통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인간성에 대한 진정한 태도를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진실로 상냥한 인물에게 더 많은 사람이 따르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한다고.


괴테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수수께끼 같은 로마 영웅의 이야기를 오늘날의 역사가들은 모두 만들어낸 것이라고 규정해버린다. 아마도 사실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재미없는 걸 지적해서 뭘 하겠단 말인가. 그보다는 그런 멋진 이야기를 그냥 그대로 믿어주고 우리도 멋진 존재가 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천재가 아니라도 '멋진' 사람 정도는 되어 보자. 고 하면서 시오노 나나미는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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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6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7-26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여사가 소개하는 영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영화 바톤 잇기의 여운을 아직도 가라앉히지 못하며..)

2005-07-27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7-27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시 여사 마음에 안 들어요.
이유도 설명 안함.^^
(전 마음에 한번 안 든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쁜 성질이...^^;;)

icaru 2005-07-27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 언니... 엄청 많죠... 저는 이름도 처음 듣는 옛날 영화에서부터~ 죽은 시인의 사회...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샤이닝하고 미저리...도 있고요...

속삭이신 님...우짠데요... 추천 돌려 드려야 할 것 같음 ^^

로드무비 님.. .흐흐흐...그러시군요~ 시 여사님...마음에 안 들어 하는 사람들 더러 많이 봤어요.. 그녀에게서 엘리트주의에...제국주의 성향까지... 읽어내더라고요..
근데..우짜하튼 시여사는 작가고...글을 일단 쉽고 재밌게 읽히도록 쓰니까...
저 책은 별 다섯야요~

hanicare 2005-07-27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귀족적이고 엘리트적인 나나미 여사의 성향때문이 아닐까요. 좋아하는 건 아니더라도 귀를 기울이게 하는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에요.나는 로여사와는 달리 적이나 싫은 사람에게서도 좋은 점을 잘 찾아내는 편이에요.(으음..써놓고 보니 로여사 깍아내리고 나 추켜올리는 것 같군요..하핫)
옛날에 '남자들에게'를 읽고는 끄덕끄덕했던 기억이 있어요.그러나 로마인이야기를 읽고는 대륙을 짓밟으려던 일본제국의 군화가 생각나 책장을 덮었던 기억.
그러나 저 작은 책 제법 알차거든요.저도 작년 여름에 읽었었죠...

icaru 2005-07-27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하고 싶은 말 하니케어 님이 다 해 주셨네요~
시여사 님.. 의 "남자들에게"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합니다~
근데 로여사는 자기는 수재가 아니라고...그러면서 수재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에 대해 토로하는 부분이 많은데... 로여사 정도도...뭐, 엄청 잘난 축에 속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2005-07-27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7-2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케하니 여사와 복순 여사의 대화가 아조 재밌슴다.
웃고 가요.^^

2005-07-27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27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므흐흐..15:29 님 안그래도 이쁘신데..

플레져 2005-07-27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이쁜 플레져 왔슴다 ^^ (위에 님과 다름 ^^;;;;)
잘난 여자가 늠 많아 저같은 피래미는 매일 죽만 쒀요.
대화 상대로 결혼 상대자를 찾는 것 부터 무지 다르네요. 우린 기냥 끌려서 결혼하지 않나요? 이 남정네다... 란 말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할꼬~ !!
역쉬 괴선생이 한 수 위여요.

icaru 2005-07-27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마침 안그래도 이쁜 플레져 님이 오셨네요~**
우리 시 여사님께 피래미의 압박을 보여 줄까요~
귀족 학교를 나오고 블라블라 출신인 시 여사님의 말씀 중에...친구들은 남편감으로 회사의 오너나 사회에서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을 물망에 두었지만... 자기는 그런 기준을 두지 않았다구 하대요...품위 있는 행동이라든지, 유머 감각이라든지, 절묘한 균형 감각을 가지고 모든 일에 대처하는 능력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하지만...
후자가 아무나 될 수 없는 훨훨훨 까다로운 조건이 아니던가요...^^

2005-07-27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5-07-27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로마인 이야기를 워낙에 재미있게 읽어서 시 여사의 이 책이 나오자마자 샀어요. 로마인 이야기와 관련해서 시 여사님의 성향이 제국적이니 뭐니 말들이 많았지만 제가 5권에서 그만 둔 것은 순전히 카이사르의 죽음 이후 더 이상 로마사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가 없어서 였지요. 읽은지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기억이 별로 나지 않네요. 책속에 있던 케리 쿠퍼의 하이눈 과 더스티 호프만의 졸업 포스터가 있던 기억만 가물거리네요.
근데 시 여사님...신달자 여사와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나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icaru 2005-07-27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24 에 속삭 님.. 앗...역시나..어제밤 졸면서 입력한 걸...복사했드만... 수면 부족 정말 고질적이지요오?

오늘 오후는 알라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일요~ 야근할 거걸랑요... 일은 좀 나중에 생각하고픈...오후네요! 오후가 뭐람... 야근밥 먹을 시간인디...
카이사르의 죽음 이후 잉크냄새 님이 상심하셨는갑네요~
아...그러고 보니 신달자 여사랑 닮았어요...결정적으로 머리스타일 하며...눈매 하며 입매하며... 갑자기 드신 생각~ 음.. 예리하십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5-07-28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키아벨리만 궁금해서 저자의 책은 그것만 하나 달랑 읽었는데요, 시오노 나나미에 대해선 암 생각도 없어요~ ^^ 이 책 리뷰 보니깐 궁금해지네요.

icaru 2005-07-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나나미에 대해선 암 생각도 없으시군요~ 히히^^
일본의 달자 언니... 시여사...

2005-08-06 0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