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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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을 준 책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
나는 세 번의 부상의 위기와 만났었다.
2호선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는 에스컬레이터에서였다. 아침엔 늘 그렇듯, 내 정신 상태라는 건 조금은 비몽사몽을 걸쳐 있는 중이었다.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 계단에 두 발로 몸을 간신히 의지하고서, 그런데 계단 중간도 못 왔을 때 등허리로 쇠막대기 같은 것이 힘을 실어 가격해왔다. 아팠다.
내려오는 중이라 넘어질 뻔했던 걸, 간신히 난간에 의지하고는 몸을 틀어 나를 공격한 괴물체가 무엇인지를 돌아보았다.
끌고 다니는 여행 가방 손잡이였다. 가방이, 그 큰 가방이 나를 덥치려 하고 있었다. 스물 쯤으로 되어보이는 가방 주인이 뒤늦게 가방을 일으켜 세우지 않았더라면...
그런데... 가방 간수도 못한 그 젊은이는 내게 미안하다는 한마디도 (못하는건지 안하는건지) 없이... “어어어어 왜 이러지” 이러고 만다. ‘왜이러긴...빙신!!’ 나도 속으로 이러구만다. 크게 다치진 않았으니, 미안하단 말 한마디 안했다고 시비삼기는 거시기하니까...
갈아타는 구간이란 원체가 늘 붐비지만, 오늘은 출근 시간을 충분히 여유를 둔 터라 서두르지 않고 걸었다. 그런데... 사선 방향에서 오던 아저씨, 난 보지 못했다. 이 아저씨도 물론 (본의아니었겠지만,) 내 어깨를 패대기치고 종종걸음을 쳐 뛰어간다. (어깨가 지금도 저릿저릿하다.) 드디어 6호선을 탔고, 한 정거장 지난 목적지 역에서 내려, 또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앞에 대여섯살짜리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에스켈레이터가 끝나고 지상과 만나는 땅을 디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콩콩콩 뛰고 있다. 뒤에 있던 나는 충돌할까봐 조마조마해하다가... 왼쪽 편으로 빠졌다. 아이고 세 번의 위기까지 넘겼다.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난 총 런닝 타임은 5~6분 정도 된다.
마치... 겉으로는 악의를 띄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어떨지 모를 무언가가 나를 목표로 공격을 해오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몸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몸 좀 사려라....”라고....
몸이 들려 주는 소리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면, 생각도 못했던 많은 것들에 생각이 미친다.

 

 

괴로움과 외로움을 떨쳐버리려 할 때, 소박한 선물처럼 자유가 주어진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덜 괴롭고 덜 외로운 것일까.....
물 속에 넣은 드라이아이스처럼 하얀 기포를 일으키며,
소리소문없이 물 속에 녹아드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고,
적나라 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원초적인 부분을 속삭인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 중에서 가장 깊은 곳까지, 몸이 감응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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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9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개 2005-05-09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리뷰를 이리 쓰시다니......! 감탄입니다..^^

설박사 2005-05-09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소설책이군요... 제목은 무슨 과학 상식책 같은 분위기인데...
잘 읽었습니다. ^^

superfrog 2005-05-0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복순이 언니님(새 닉넴은 아직 낯설어요;;) 이 책 읽으셨군요.. 좋지요?

마냐 2005-05-09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 누구신가 했어요. 암튼, 제목은 무슨 건강서적 같아요...ㅋㅋㅋ

2005-05-09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5-05-09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제 책상에 있는데...호홋...저도 읽을께요!
퇴근길엔 조심하세요!

어룸 2005-05-09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해요, 이책!! 바나나씨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별 기대안했었는데, 생각이 바꼈어요^^ 님의 멋진 표현을 빌리자면, 저도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 중에서 가장 깊은 곳까지, 몸이 감응을 하였다.'입니다!

2005-05-09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5-1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38에 속닥 님 ^^
요가 덕택으로 요즘 님 실버몽사마시군요~ ^^ 저도 N.P는 아직인데...


날개 님... 얼마나 감사한지요...ㅠ.ㅠ 저게 리뷰여 뭐여... 싶었는데...

설박사 님도... 물은 알고 있다.... 이걸 떠올리신 거죠?

물장구치는 금붕어 님...리뷰를 또 다시 읽었습니다.... 님의 리뷰를 읽고, 또 감탄...그러나 리뷰를 써야하니...라는...생각들고.. 전의를 상실했더랍니다.. 푸흐...
그치만... 이 책 너무 좋았는데... 어떤 식으로든 기록이 필요했어요!!

마냐 님... 제 변신 어케 괜찮습니까?

17:20에 속닥님... 님은 어쩌면 심상치 않은 숫자들을 그리 잘 캡쳐하신답니까...
아..... 님... 어찌합니까... 몸... 저도 요즘 몸이 ...어제밤에 뒤척이며... 여러 생각들을 했답니다. 아픈 게 젤 억울한 노릇이구나 하면서.... 나의 건강을 너무 과신했나...
바람처럼 날아가는 건 무리여요 ^^ ~ 두고온 인연들이 눈에 밟혀 워디....! 게다가.. 제 몸이 그리 가볍지 아니하여서..고건 좀...ㅋㅋ 님이 읽으신 책들 다 읽을려면 전 퇴사해야 합니다 ^^


kleinsusun 님... 님의 책상엔 참 많은 책들이!!!
그런데요, 바나나의 책들 중에서 제일 잘 쓴 작품인 거 같더랍니다....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서...

toofool 님 제 말이요... 제 말이요... 사실 저도 바나나씨의 책을 몇 권 읽긴 했지만.... 그 작가를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었거든요.... 이 작품은 저의 그런 기호를 와장창 깨뜨려 줬어요... 입맛에 맛더랍지요...

22:25에 속닥님... 실화랍니다!! 퇴근길에는 내게 달겨드는 부상의 순간이 없었어요... 몸을 사렸더니만... ^^
02:12 속닥님도 ‘물은 알고 있다’를 읽으셨군요... 바나나의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 동생 왈.. “옛날에 읽고 또 읽어?” 합니다. ‘물은....“이랑 착각을...
그런데 님...예전에 스트레스 때문에 어떤 징후들이 나타났던 것인가요?
저도 직장 생활 초창기... 왕스트레스 땜에 탈모 증세와... 눈꺼풀이 붓는 증세가 한동안 있었는데... 6~7년전 얘기네요~



2005-05-10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5-10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5-11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냐님 말씀대로 보신서적같은 건 줄 알았어요! 근데 복순 아짐, 몸 조심하셔야겠어요. 저는 젤 황당했을 때가 어렸을 적인데요. 아, 둥글고 단단한데다 커다랗기까지 한 자개밥상 있쟎습니까? 거, 한가운데에 공작무늬 들어가 있는 옛날물건요. 한 쪽 벽에 세워놓았는데 그거 자다가 발로 건드려서 얼굴 정면을 가격했을 때, 진짜 황당합니다. 그 날 오후엔 버튼 빠진 텔레비전 채널 구멍에 쇠젓가락 넣고 쑤시다 감전되어서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될 뻔 했다니깐요. 솔직히 몸 지까짓게 알긴 뭘 압니까? 쓰레기 태우다 빈 스프레이통 넣는 바람에 얼굴 껍딲이 홀라당 벳겨진 제 친구도 있다구요! 근데 쓰고 보니 내 몸이 좀 둔한가..괜히 쓴 거 같네..암튼, 책보다 리뷰가 더 잼나게 느껴져요!

icaru 2005-05-11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다가, 자개 밥상에 맞은 분... 님말고 또 있을까요오~ 희한하네...
쓰레기 태우다 얼굴에 일 나신 친구분... 괜찮으시대요?

... 좌충우돌 ㅋㅋ ...
자개밥상으로 맞은 건 정말 양반이네요~

솔직히 몸 지까짓게 알긴 뭘 압니까... 음메나...ㅋㅋ
암튼 몸 조심허고 다닙시답!!

비로그인 2005-05-1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에고..괜히 오밤중에 허튼 소리 했나 봐요. 지금 읽어보니 몸이 둔한 게 아니고 머리가 띨한 거구나..친구는 흔적없이 말끔하게 나았어요! 꽁알꽁알..@,.@

icaru 2005-05-1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요왜요...넘넘 재밌는데...
가급적 오밤중에 댓글 달아주세요~ 그래야 이렇게 나른한 오후에 잠 확 깨는 재미난 이야기들을 많이 읽을 수 있지 않겠남요.....


로드무비 2005-05-11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과 이카루님 두 분.
너무 다정하시잖아요. 흥=3
샘나네요.;;

내가없는 이 안 2005-05-14 0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리뷰의 방식을 달리하시니 읽는 사람으로선 참 즐겁네요. 이런 리뷰 어디 가서 또 볼 수 있을까 싶군요. ^^ 저도 책상에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이 하나 있는데 그거 맨위로 올려놨어요. 나직나직 이야기하는 그녀의 문체가 보고 싶어져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