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며 

                                     
                       렴형미



처녀시절 나 홀로 공상에 잠길 때며는

무지개 웃는 저 하늘가에서

날개 돋쳐 훨훨 나에게 날아오던 아이

그 애는 얼마나 곱고 튼튼한 사내였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나에게 생긴 아이

눈이 크고 갸날픈 총각애

총 센 머리칼 탓인듯 머리는 무거워 보여도

물푸레아지인 양 매출한 두 다리는

어방없이 날쌘 장난꾸러기입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고삐 없는 새끼염소 마냥

산으로 강으로 내닫는 그 애를 두고

시어머니도 남편도 나를 탓합니다

다른 집 애들처럼 붙들어놓고

무슨 재간이든 배워줘야 하지 않는가고





그런 때면 나는 그저 못 들은 척

까맣게 탄 그 애 몸에 비누거품 일구어댑니다

뭐랍니까 그 애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데

정다운 이 땅에 축구공마냥 그 애 맘껏 딩구는데





눈 올 때면 눈사람도 되어 보고

비 올 때면 꽃잎마냥 비도 흠뻑 맞거라

고추잠자리 메뚜기도 따라 잡고

따끔따끔 쏠쐐기에 질려도 보려무나





푸르른 이 땅 아름다운 모든 것을

백지같이 깨끗한 네 마음속에

또렷이 소중히 새겨 넣어라

이 엄마 너의 심장은 낳아주었지만

그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어야 할 피는

다름 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네가 바라보는 하늘

네가 마음껏 딩구는 땅이

네가 한생토록 안고 살 사랑이기에

아들아, 엄마는 그 어떤 재간보다도

사랑하는 법부터 너에게 배워주련다

그런 심장이 가진 재능은

지구 우에 조국을 들어올리기에 .......

 

 

 

 

등단을 1987년에 했고, 이 시는 2002년 <조선문학>지에 출전됐다길래, 뭐지? 했었다. 북한 시인이었다. 북한에서도 아이를 키울 때, 자연의 섭리에 거스르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아는 아이로 키우는데 우선할지, 실용적인 재주를 가르치는데 먼저 신경쓸지 고민하는 것은 매일반인 모양이다.

 

고추잠자리도 잡고, 송충이에 찔려도 보고, 눈 올 때 눈맞고, 비올 때 비맞고,,,

사랑할 줄 아는 심장을 가진 아이로 자라기를 소망하는 것은 남한에 사는 이 엄마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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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7-11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할 줄 아는 심장을 가진 아이로, 저도 그렇게 길러보고 싶은데
그러질 못 한 건 아닌가 좀 아쉬워요. 자연과 벗해주지도 못했고
모유로 키우지도 못했고 좀더 자애로운 엄마가 되어주지도 못했고요.
렴씨라서 누굴까 했더니 북한시인이었어요.^^
꾸밈없이 좋은 시네요.
이카루님 고마워요.^^

icaru 2012-07-12 11:57   좋아요 0 | URL
어떻게 키우든, 지나고 나면 아쉬움이 남을 것 같긴 해요~

'심장은 낳아주었지만 그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어야 할 피는 다름 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라고 하는데서 더 큰 위로를 받는 엄마입니당 ^^

그리고 모유 수유요! 저도 모유 수유를 몇 달 하긴 했지만,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모르겠고, 영양적인 측면에서는 굳이 악조건을 딛고 고집해야 할 필요는 없겠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

책읽는나무 2012-07-1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그런가봐요~끄덕끄덕
오늘 비가 완전 퍼붓는데 혼자 우산쓰고 막 돌아다녀 봤거든요.
좀 재밌더라구요.ㅋㅋ
애들도 참 재미나겠다 싶었는데 저쪽에서 우산을 들고 있긴 한데 한 녀석이 물에 빠진 생쥐꼴마냥 아래,위 옷이 홈빡 젖어 혼자 신나서 물장난하고 있더라구요.
누군가 봤더니 울아파트에 사는 나랑 동갑인 엄마의 1학년 아들이더라구요.
고녀석 좀 한 개구쟁이하는데..비가 많이 와서 완전 필 받았나보더라구요.
한 시간째 비맞고 놀았다더군요.
나는 큰맘 먹고 오늘 좀 그아이처럼 신발 다 젖도록 그렇게 놀긴 했지만요.
사실 내애는 소심해서 그리 못놀리거든요.헌데 동갑인 그엄마는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를 마냥 아이가 놀고 싶은대로 그냥 그렇게 놀게 내버려 두면서 곁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스타일인데요.매번 볼적마다 좀 많이 배워요.ㅠ

시인의 엄마 얼굴에 오늘 본 그엄마의 얼굴이 오버랩되는군요.

2012-07-12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2-07-1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뭉클한 시네요. 오늘 아이들 이끌고 태권도 학원에 데려가 주고
해든이를 피아노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피아노 학원도 들렸다 왔어요.
그런데 피아노 선생님이 한글부터 가르쳐서 보내라고 하는거에요.ㅠㅠ
저는 아직 가르칠 준비가 안 되었고 아이도 배울 준비가 안 된것 같기에,,,
아무튼 아이들이 축구공처럼 맘껏 딩굴기엔 여건이 힘든것 같아요.ㅠㅠ
한글을 지금 가르쳐야 할까요? 만 4세인데???
이카루님께 상담하고 있는,,,ㅋㅋㅋ

icaru 2012-07-12 11:44   좋아요 0 | URL
저에게 이런 상담(?)을 하신 분은 뤼야 님이 처음이세요!!! ㅋㅋ 첫인물되겠습니다~
만 4세면, 6세인거죠? 한글은 6세 가을겨울쯤에 시작하시면 되잖을까 해요..~~ㅋ
우리 큰애가 그랬었기에, 피아노도 처음엔 이론공부도 뭐다 해서, 한글을 좀 알아야 하나 보네요~ 그렇게 안 하는 학원도 있겠죠~~
7살 아들의 친구(여아)가 피아노를 배우려고 학원에 갔는데, 선생님이 자꾸 아이가 늦다 못 따라온다 ~ 하더래요. 그래서 알아봤더니,, 학원 수강생 대부분이 초등생들이고 유치원 다니는 아이는 이 아이 하나라서,,, 선생님이 성장 발달에 따른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웠는 모양인지..
ㅋㅋ
아무튼,,, 환경이 그렇지 않은 건 참 애석한 일야요~ 시멘트바닥에서 뒹굴 순 없으니 ㅠㅠ)

마녀고양이 2012-07-12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다...... 시가요.
읽으면서 기분이 환해집니다. 아휴휴.

북한 시인이군요. 그렇군요... (어쩐지 끄덕거려지는..)

icaru 2012-07-12 11:47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죠~ 어휘하며, 총각애라고 해서,,, 수염 거뭇거뭇한 청년을 막 떠올렸고, 조국을 들어올린다고 해서,,, ㅋㅋㅋ
일하다가 읽게 된 시인데요~ 너무 재밌는 건 이 시의 카테고리가 세계문학으로 되어 있더라고요. --;;;;

기억의집 2012-07-12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
아이가 커 가면서 내버려 두긴 하는데, 어느 선까지 제가 간섭해야하는지 판단이 잘 안서요.
이번에도 기말이 개판이어서, 제가 한소리 좀 했어요. 널 자유롭게 나두는 것은 너의 자유만 만끽하는 게 아니고 책임까지 준 것데 이거 뭐냐고요. 아, 정말 뭘 어떻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 시 읽으니 심상은 자유로운데,,,, 한편으로 천방지축인 아들이 떠 오른다는.

icaru 2012-07-13 08:53   좋아요 0 | URL
이런 시 읽으면 한편으론 자책하게 되죠~ 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엄마란 생각에. ㅎ
저는 어제 아이를 울렸네요. 숙제하면서요~ 유치원 선생님께 자극적인 이야기(주말동안 숙제를 가지고, 테스트를 했는데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해내는 걸, 우리애는 못했다고..)를 듣고는 아이 상태를 체크하지 않고, 무조건 밀어붙인 거죠.
참,,, 부끄러운 이야기예요. 자꾸 일곱살 아이하고 이럼 안 되는거잖아요 그죠? 기억님 ^^)
최근에 도서관에서 아이와의 기싸움이라는 책을 빌렸는데, 책 면전에 두고 한숨부터 푹푹 쉬고 앉았기는 또 오랜만예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