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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쫘악쫘악 가독성 정점을 찍는 소설 한편을 읽었다. 나 상당히 업된 것 같다. 이제는 소설을 더 못 읽게 되는가 보다 하고, 스스로에게 선고를 내리려던 참이었으니까, 더 극적인가 보다.
자신의 학창 시절에 대해서 그다지 추억하고 싶지 않아서 그 때가 그립다거나 할 일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모든 일의 시작이 학교였을 적이 많다. 그래서 그때를 부득이 회상하게 될 경우가 있는데, 자신 기억이 장담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그저 자기 본위적인 인상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이 비굴하고 그래서 승자도 패자도 아닌 상태가 되어 끝까지 살아남아 마지막 진실을 목도한다.
여기 주인공은 다소 허세가 있는 청춘이다. 자신 부모 세대들은 문학의 소재가 된 적 없이 기껏해야 진짜의, 진실된, 중요한 것들의 사회적 배경막의 일부로서 등장하는 구경꾼이나 방관자 정도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하며, 문학 같은 결말이 실제 우리 인생에서 없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친구들의 무리에 에이드리언 이라는 딱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데미안과 겹치는 캐릭터 전학생이 등장한다. 조금은 기구한 가정 환경을 가졌지만, 꽤나 똑똑하며 겸양의 미덕까지 갖추었다. 문학적이고,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것을 열망하나, 식견이 태부족한, 약하고 허세에 쩔은, 화자와 친구들은 자기들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바로 이 친구 에이드리언)에게 설명을 구할 수 있었고, 그의 관심을 받고, 인증을 받고, 환심을 사려 든다.
대학을 갔다. 화자는 다섯달 생일이 빠르지만, 마치 다섯 살 연상인 것만 같은 파란색 안경테 너머 청회색 눈동자와 빠르지만 자제력 있는 미소를 지닌 꽤 괜찮은 여자 친구(베로니카)가 생긴다. 그러나 그 여자 친구와의 성적 콤플렉스랄까 극복하지 못한 접점을 갖게 되고, 그 일이 바로 있기 전에, 친구 무리에게 여자 친구를 소개시켜줬던 자리에서 여자 친구는 에이드리언에게 마음이 향하고, 화자가 여자 친구가 헤어진 후 에이드리언으로부터 너의 전 여자 친구와 사귀어도 되냐는 편지를 받는다. 이해하고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행동을 재고해 보겠다고 한다. 질투심에 열폭했지만, 안 그런 척하는 우리의 화자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요지의 답장을 썼다고 한다.(?이 화자의 당시의 기억이 인상에 그렇게 남았다는 것이지, 사실 유무와 관련없다. )
“본인은 모든 것을 유쾌하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명시하고자 상찬과 기원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네, 벗이여!” ㅎ
이 즈음에서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하는 고등학교 시절, 에이드리언이 역사가 무엇이냐는 역사 선생님의 질문에 답한 다음과 같은 말이 효력을 발휘한다.
당시에 일어난 일을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한 것을 기억에 떠올리는, 기만적인 일...
이것이 바로 한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
그후 화자는 여자 친구였던 베로니카와 사귄 것을 패배라 보았고, 기록과 기억에서 삭제해버린다. 공부에 정진하고, 뜨네기처럼 여자 몇명도 사귀다가 미스테리한 데가 없고, 모든 게 확실한 그런 미덕을 갖춘 여자를 만나 결혼한다. 잘 살다가 아내의 바람으로 이혼을 하고, 이혼을 했지만, 아내와 친구처럼 지낸다. 그의 인생 60 즈음이 되었을 때, 한통의 편지를 받으면서 인생의 아이러니가 인간의 찌질함의 운명이 드러나면서, 제목처럼 결말의 느낌, 혹은 적어도 조금도 감지하지 못했던 그 “예감”을 맞닥드리게 된다.
아주 모처럼 재밌는 소설을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