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수학 공부는 익히 우리에게 두뇌 회전을 가르친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문학은 더 좁혀들어가서 소설은 우리에게 익히 경험하지 못한 삶을 살게 해 준다는 멋과 맛이 있다. 전엔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으며 생각한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수학(수식) 또한 우리에게 삶을 받아들이고 느끼며 설계하는 방식을 가르쳐 주기도 한단다. 라고. (아마, 수식을 재인식하게 만든 소설가의 역량 또한 높이 사야 할 것이다.)


20대 후반의 파출부와 그의 열 살 난 아들과, 어느 한 시기에 기억을 멈춰 80분밖에 기억을 지탱하지 못하는 수학 박사, 세 사람의 모습.


간만이다. 이런 느낌.

책을 읽고 있는데, 사방이 조용하다. 일요일 밤 집에서는 메디컬법정드라마에서 양측 공방이 진행 중이었었고,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 안에는 사람들로 붐비었다. 그런데 분명 바깥의 소리가 끼어들지 못하는 마음 속의 빈터가 생긴 듯하다.


“아아 조용하군.”


수학 잡지의 현상 문제를 풀어 리포트 용지에 깨끗하게 옮겨 쓰고서 다시 한번 훑어볼 때면 박사는 자신이 도출해낸 해답에 만족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정답을 얻었을 때 박사가 느끼는 것은 환희나 해방이 아니라 조용함이었던 것이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장소에 정확하게 자리하여, 덜고 더한 여지없이 오랜 옛날부터 거기에 한결같이 그렇게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있으리란 확신에 찬 상태.


이 소설은 그러니까, 음 일상 언어가 수학에 등장하는 순간 낭만적인 울림을 띠게 하는 작품이다. 어째서일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까지 있다. ‘우애수’, ‘쌍둥이 소수’도 그렇고, 물론 시의 한 구절에서 빠져나온 듯한 수줍음이 느껴진다. 수식이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예전엔 미처.



"한 가지 의아한 것은 그가 '모른다. 알 수 없다'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모른다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새로운 진리를 향한 도표이다."


"그래, 하염없이 걸어도 소수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지. 사방이 온통 모래의 바다야. 태양은 쨍쨍 내리쬐고. 목은 바싹 마르고, 눈은 가물거리고, 정신은 몽롱하고. 앗 소수다! 하고 뛰어가 보면, 그냥 신기루일 뿐.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는 것은 뜨거운 모래바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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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7-02-13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잠 좋았어요~. ^^

달팽이 2007-02-1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로 봤는데...참 좋았어요.
수학이 일상 속으로 이렇게 밀접하게 들어올 수 있다니요..
뿐만 아닙니다. 수학을 통한 삶의 승화...좋은 영화였더랬어요..

잉크냄새 2007-02-13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까지도 공업수학에 시달린 전 아직 머뭇거려진다오~~~~

내가없는 이 안 2007-02-14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마음 속의 빈터, 빈방... 그런데 수식이 아름답기는 할 거란 생각을 해요. 그게 마음으로 아름답게 들어와서 빈방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그렇죠. 수학의 아름다움을 생각할 수 있는 수학시간이 있었나, 하는. ^^

icaru 2007-02-14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 엄마 님, 찌찌봉요~ 전 이 책 전엔 만화인 줄 알았었는데...소설이더라구요..
달팽이 님.. 옴마나..영화로도 나왔었군요. 몰랐네... 챙겨 볼 영화 하나 생겼네요~
잉크냄새 님.. 앗! 예에~~ 이 책에서요. 위기의 절정인 부분에서 박사가 수식 하나를 딱 보여주고.. 갈등이 사라락 해소 되거든요. 그 수식을 잘 이해할 수 없어서... 여기 써 가지고 물어보려 했는데... 수식 기호를 어떻게 입력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난관에 봉착... 에라 관둬라... 했어요. 잉크냄새 님께 여쭐까 생각햇었는데..케케..

이안 님.. 시간적 여유! 맞아요. 그게 없어요.
그런데 읽고 있는 동안은 어쩐지 차분해지는 느낌이 차올랐거든요. 본래 성격이랑 느무 안 맞게스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