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 모중석 스릴러 클럽 43
제프리 디버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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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폰 7 플러스'에 인물사진 모드가 있다고 해요. '피사체가 아닌 주변의 모든 사물과 배경을 아웃포커스(촬영대상 이외의 대상이 흐려 보이는 촬영기법) 시킬 수 있는 기능'이라고 해요. 이 기능을 부각시킨 광고! 상하이 한복판에서 연인이 서로 바라보고 있어요. 남자가 여자에게 '아이폰 7 플러스' 인물사진 모드를 실행하는 순간! 인파가 사라지지요. 아무도 없는 도심에서 둘만의 낭만적인 시간을 즐기지요. 마지막에 다시 현실의 인파 속으로 돌아오는데요. 그때, 뜨는 글! '주관적 연애 시점'이라는 글! 정말 설레는 광고예요. 그런데요. 그 주관적 시점이 연애가 아니라 과잉 접근 행위가 된다면, 끔찍하네요.


 '지금 침대에 누워서 네 노래를 듣고 있어. 말 그대로 나는 당신의 그림자가 된 것 같아…… 그리고 넌 내 것이고. (…) 

 다시 한 번 부탁할게. 머리카락을 좀 보내준다면 참 고맙겠어. 십 년 사 개월 동안 자르지 않은 걸로 아는데 (그래서 그렇게 아름다운 거지!!!) 혹시 빗에 붙은 머리카락이 있으면 보내줘. 베개에 붙은 거면 더 좋고. 영원히 간직할게.' -11쪽.


 애정에 집착, 그리고 더 나아가 광기가 들어가면 나타나는 형태가 여럿 있겠지요. 그 가운데 하나가 과잉 접근 행위겠고요. 그 과잉 접근 행위를 하는 자! 바로, 스토커예요. 그 스토커가 등장하는 소설. 'XO'를 만났어요. 누구에게나 있는 주관적 시점. 그런데, 그것에 과잉 접근 행위가 담겨 있다면요. 진정 두렵네요. 소설 'XO'에서는 에드윈 샤프라는 남자가 과잉 접근 행위자로 나와요.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음악가! 미국의 컨트리 음악가! 케일리 타운은 고향 프레즈노에서 대형 공연을 준비하는데요. 제작진 가운데 한 사람이 조명에 압사를 당하게 돼요. 이 사건이 시작이었어요. 케일리 타운의 새로운 곡 '유어 섀도'의 가사를 모방한 살인이 일어나요. 케일리 타운의 가까이에서요. 계속이요. 그래서 케일리 타운에게 과잉 접근 행위를 했던 에드윈 샤프가 강력한 용의자가 되지요. 케일리 타운의 친구이자 동작학 전문가 캐트린 댄스! 표정과 몸짓으로 상대를 읽는다고 해요. 그런 캐트린 댄스와 위선으로 둘러싸인 과잉 접근 행위자 에드윈 샤프의 대결!


 '댄스는 스스로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동작 분석이 무엇을 드러내는가? 에드윈 샤프는 사실대로 말하고 있는가?

 솔직히, 알 수 없었다. 댄스 자신이 며칠 전 브리핑에서 매디건과 다른 수사관들에게 말했듯이 스토커는 보통 정신병자이거나 경계성 장애, 또는 심한 신경증 환자이며 현실 감각에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그는 설령 완전히 틀린 것이라 해도 스스로 사실이라고 믿는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거짓말하고 있을 때도 사실을 말할 때와 행동에 차이가 없을 것이다.

 (…) 보디랭귀지 분석은 거짓말을 할 때 느끼는 스트레스가 행동을 변화시키는 때에만 효과가 있다.' -327쪽.


 '"이 사건은 내내 그런 식이에요. 그가 범인이었다가, 아니었다가, 범인이었다가, 아니었다가."' -369쪽.


 '위선은 벗겨지지 않는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해요. 위선으로 가득 찬 에드윈 샤프도 벗겨지지 않는 가면을 쓰고 있었어요. 벗겨지지 않는다면, 부숴야겠지요? 과연 그 가면을 캐트린 댄스는 어떻게 부술까요?


 제프리 디버! 역시 '반전의 마법사'예요. 그 마법으로 황홀했어요. 또, 그 '끝없는 반전, 끝없는 놀라움!(인디펜던트(영국))'의 평처럼 저도 끝없이 놀랐어요. 아마 반전이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건 높은 현실감1, 그리고 이야기의 매끄러운 흐름, 멈출 수 없는 몰입감 때문이었을 거예요. 정말 모든 것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캐트린 댄스' 이야기들의 세 번째 이야기. 'XO' 이야기. 저는 '잠자는 인형'과 '도로변 십자가'를 아직 안 만났는데요. 그 이야기들도 만나고 싶어지네요. 'XO'의 뜻처럼 그 이야기들에도 입맞춤과 포옹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더 나아가 '제프리 디버'의 다른 이야기들인 '링컨 라임' 이야기들에도 입맞춤과 포옹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그에게 주관적 애정 시점을 오랫동안 갖게 될 것 같아요.


  


 

  1. 높은 현실감의 하나로 가상 음반인 '유어 섀도'를 실제로 녹음했다고 하네요. www.jefferydeaver.com 에서 들을 수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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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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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중에서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는 민주화 운동을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그래도 운동권인 친구들은 있었지요. 야학 교사를 한다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그 친구들 덕분에 집회에 한 번 참가한 적은 있었지만요. 저는 대체로 운동권과는 먼 학생이었지요. 그렇지만, 독재 시대에 민주화 운동을 했던 전설적인 선배들의 이야기는 간혹 들었어요. 민주화 투사(鬪士)! 그들은 사람들이 적게 간 그 길을 택했고요.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지요.

 

 

최순실 씨가 2017년 1월 25일 오후 체포영장이 집행돼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에 출두하며 소리치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최순실 씨는 특검에 출두하는 그때, "억울하다. 자백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강제 소환에 항의하면서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라고 했다고 해요.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최순실 씨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서명숙 씨는 천영초 씨를 생각했다고 해요. 천영초 씨의 후배로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서명숙 씨. 천영초 씨가 외치던 민주주의는 분명 최순실 씨가 외치던 민주주의와는 달랐을 거예요.


'뿌리 뽑힌 채 이식된 것 같은 낯설고 삭막한 서울에서의 삶, 철저하게 '기브 앤드 테이크'로 일관하는 듯한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 붙일 곳 없어 서성대던 나였다. 그런 내게 언니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오랜만에 햇볕을 쪼인 화초처럼 쑥쑥 자랐다.' -53쪽.


 '영초언니'는 서명숙 씨의 눈으로 본 천영초 씨를 그려요. 서명숙 씨의 삶에 들어왔던 천영초 씨를 토막토막 보여 주는 거지요. 천영초 씨! 학보사 기자였던 서명숙 씨에게 그 선배는 '고대신문사 역사상 가장 뛰어난 미모에 훌륭한 문장가였다(46쪽)'는 전설적인 선배였지요. 그리고 큰 언론사에 가지 않고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한 사람이었고요.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72학번인 천영초 씨. 서명숙 씨는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76학번이었지요. 그 둘은 첫 만남에 선후배로서 호감을 가졌고, 함께 자취를 하게 돼요. 그 둘이 사는 곳에 여학생들이 모이게 되고요. 그 여학생들의 모임. 그 이름이 가라열이었어요. 열 명이었거든요. 민주화를 외치던 천영초 씨는 결국, 서명숙 씨, 박종원 씨와 함께 일명 '산천초목' 사건으로 고문을 받고 실형을 살게 돼요. 한 명은 남학생인데, 지명 수배를 받았고요.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나눠준 대가였지요.  


 '언니는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했지만 후배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자상한 선배였다. 역사의식과 대의명분망으로 후배의 선택을 강제하고 희생을 요구하는 선배가 아니었다. 그녀가 내게 가졌을 부채의식이 여실히 느껴졌다.' -182쪽. 


 '다시는 절대로 영초언니와 엮이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중략)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그날까지 더 가열하게 싸우겠노라'고 구치소 앞에서 선언했듯이 가파른 투쟁의 길로 걸어들어가는 영초언니와는 점점 멀어졌다.' -257쪽.


 독재와 폭력의 시대. 민주주의를 외치는 투사인 천영초 씨와 서명숙 씨. 둘 다 결혼을 하게 되지요. 천영초 씨는 정문화 씨와 서명숙 씨는 엄주웅 씨와 했어요. 남편들도 민주주의 투사예요. 결혼과 함께 서명숙 씨는 더 이상 투사로 살지는 않지만요. 다른 이들은 투사로의 삶을 이어가지요. '5.18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 항쟁' 등을 겪어요. 그리고 천영초 씨 부부는 생활고도 겪고요.


 '비록 내게 고통도, 실망도 안겨주었지만 찬란한 청춘의 봄날을 함께했던 내 인생의 첫 멘토 영초언니, 풀각시처럼 영롱했던 그녀가 서서히 부서지고 망가져가는 걸 눈뜨고 지켜보기가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터. 그녀가 떠나는 날 공항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부디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출발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263쪽.


 2002년 영초언니, 천영초 씨는 이민을 가요. 캐나다로요. 정문화 씨와 이혼을 하고요. 아들의 따돌림 문제로 가는 거였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큰 사고를 당해 시력과 뇌의 많은 부분이 손상을 당해 단순한 말과 행동만을 한다고 해요. 지금은 경기도 양평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고요. 천영초 씨의 불운에 마음이 아프네요.


 '이 책은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한 여성에게 바치는 사랑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듣고 그녀가 조각난 기억의 파편을 온전히 맞추어내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10쪽).


  '그간 많은 것이 변했다. 촛불을 드는 평화적인 행위만으로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부패한 최고권력자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박정희 정권을 향한 향수에 뿌리를 둔 박근혜 정권도 막을 내리고, 박근혜 본인도 구속되었다.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던 모든 것들이 달라지고 무너지고 무뎌진다. 정치적 입장도, 남녀 간의 사랑도.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것이 변하고 바스러진다. 그러나 천영초, 그녀는 내 마음속에 늘 애틋한 풀각시처럼 남아 있다.' -'에필로그' 중에서 (283~284쪽).


 '영초언니'를 읽으며, 제게도 천영초 씨가 제 마음속에 들어오네요. 서명숙 씨가 천영초 씨에게 바치는 사랑 노래가 깊이, 길게 울리고요. 우리 나라의 민주화가 이런 민주화의 투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요. 그렇지만 그들이 가는 길은 가시밭길이었을 거예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던 그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지요. 그 아픔을, 그 슬픔을 기억해야겠어요. 그리고 이런 아픔과 슬픔으로 다시는 사람들을 눈물짓게 하지 않아야겠고요.


 '망치의 두드림이 아닌 물결의 출렁임이 조약돌을 완전하게 만든다.' 

 

Not hammer strokes, but dance of the water,

sings the pebbles into perfection.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 '길 잃은 새(STRAY BIRDS) 중에서  


 독재 시절, 망치의 두드림인 폭력이 있었지요. 백성들에게요. 그렇지만 백성들을 완전하게 만드는 건 민주주의라는 물결의 출렁임이지요. 독재 시절, 민주주의라는 물결의 한 출렁임이었던 영초언니, 천영초 씨. 우리는 그 물결의 출렁임을 이어받아야 해요. 아직 곳곳에 적폐가 숨어 있는 우리나라. 옳은 뜻을 지닌 여러 사람에게 이어지는 물결의 출렁임이 결국에는 백성들을 올바르게 인도할 거예요. 


 서명숙 씨가 그린 '영초언니'는요. 서명숙 씨의 눈에 비친 천영초 씨예요. 또, 서명숙 씨의 삶에 사이사이에 스며드는 천영초 씨고요. 그렇기에 그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그 독재 시대에 민주화를 외치는 여성 투사를 그려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그 의미 하나로도 천영초 씨와 서명숙 씨에게 감사하게 되네요. 이 이야기를 만난 우리에게 영롱하게 빛나는 '영초언니'. 그 민주화를 담은 힘찬 날개가 햇빛을 받아 눈부시네요. 그 날개가 오랫동안 펼쳐져 있기를 소망해요. 그리고 그 날개를 잇는 다른 날개들도 날아오르기를 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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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28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 모씨 얼굴은 모자이크로 가리고 싶군요. ^^

사과나비🍎 2017-08-28 12:10   좋아요 0 | URL
아...^^; 최순실 씨의 얼굴은...^^; 아무튼~ cyrus님~ 좋은 월요일되시고요~ 점심 식사 맛있게 하시기 바랄게요~^^*
 
괴담의 테이프 스토리콜렉터 57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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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래 전, 한여름 밤에 저와 몇 사람이 한곳에 모이게 됐어요. 그리고 열대야를 잊기 위해 무서운 이야기를 하기로 했지요. 누군가 가위에 눌린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가위에 눌린 이야기를 각자 하게 됐지요.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어요. 저는 가위에 눌린 적이 없기에 이야기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요. 듣기만 해도 무섭더라고요. 그러던 가운데, 한 사람이 가위에 눌리며 귀신과 눈을 마주쳤다는 이야기까지 했지요. 그렇게 이야기가 거듭될 수록 이야기는 점점 절정에 이르게 됐어요. 그때, 몇 사람이 '끼아악' 소리를 지르며 뿔뿔이 흩어졌어요. 소름이 돋으니, 장난을 섞어 이야기를 끊었던 거였어요. 이야기가 끝나고 한동안 있다가, 하나하나 다시 모였어요. 서로 무서웠다고 몇 마디를 나눈 후, 잠자리에 들었지요.

 저에게 그때의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무서웠어요. 아마도 그들 자신의 경험담이었고, 또 들으며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한참을 그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머물러서 쉽게 잠이 오지 않았었지요. 그래서 저는 무서운 이야기는 가까이 하지 않게 됐어요. 그래도 무서운 이야기가 저에게 올 때가 있어요. 이번에는 책으로 된 무서운 이야기를 또 만나게 됐네요. 추리와 어울린 무서움이에요.


 제가 만난 이야기는 여섯이에요. 책의 뒷면에서 그 여섯 이야기를 소개하네요.


 '「죽은 자의 테이프 녹취록」
 자살을 결심한 자들이 죽기 직전 녹음한 세 개의 테이프 녹취록. 거기엔 몹시 기이한 공통점이 있는데…….


 「빈집을 지키던 밤」
 고액의 빈집 지키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마이코. 3층에서 내려다본 검은 형체는 과연 누구일까?


 「우연히 모인 네 사람」
 네가히산 산행에 가쿠 마사노부의 초대를 받은 네 사람. 초대한 자는 정작 나타나지 않고 낯선 네 사람만이 기묘한 산행을 시작하는데…….


 「시체와 잠들지 마라」
 요양병원에 들어온 노인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불가해한 이야기들. 그 비밀을 추리해가다 마주친 노인의 불가사의한 정체는?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
 비도 오지 않는 날 노란색 우산과 우비를 입고 말없이 바라보는 여자. 그녀와 눈을 마주친 후 불길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는데…….


 「스쳐 지나가는 것」
 매일 일정한 사람들과 마주치는 유나의 출근길. 어느 날부터 뭔가 오싹한 검은 사람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각 이야기를 간단히 잘 소개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특히 무서움을 느낀 이야기는요.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였어요.


 '새하얀 분을 바른 얼굴에, 눈 두 개만 동그랗게 벌어져 있었어. 그렇게까지 화장이 진하면 립스틱을 바른 입술 같은 것도 눈에 띌 텐데, 어찌 된 영문인지 눈만 돌출되어 있는 거야. 그 두 눈도 검은자위가 아주 커서, 거의 흰자위가 안 보이는……. 정말 섬뜩한 눈이었어. 빤히 보고 있으면 마치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나서, 오싹했어. 그 눈이 말이지, 계속 아침부터 머릿속에서 떨쳐지지 않아. 강의에 집중하려고 해도 눈앞에 그 검은 눈이 떠오르고, 눈을 감아도 마찬가지야."
"마치 요괴 같네."
나는 농담처럼 가볍게 대꾸했어요. 그리고 그 여자에게 '기우메'라는 이름을 붙였던 거예요. 정체불명의 존재가 무서운 건, 그 것에 이름이 없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요괴 같은 호칭을 붙여서 최대한 사토루의 기분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했어요.'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 중에서 (235~236쪽).


 마주친 검은 눈이 계속 아침부터 머릿속에서 떨쳐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보고요.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가위 눌리며, 귀신과 눈이 마주쳤다는 이야기였지요. 정말 등골이 오싹했지요.


 미쓰다 신조는 추리와 공포가 어울린 이야기를 잘 써요. 현실적이면서도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로요. 이 이야기에서도 마치 진짜 편집 과정인 있는 것처럼해요. 서장, 막간(1), 막간(2), 종장에서요. 그러다 보니, 현실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글을 읽는다는 건, 상상하게 하지요. 자세한 이야기로 추리와 공포의 상상이 그려져요. 다시 말해, 그의 글은 추리와 공포의 어울림이 현실성과 상상의 어울림으로 이루어져요. 그런데, 이 여섯 이야기는요. 추리의 무게보다 공포의 무게가 더 무겁네요.

 이 여섯 이야기를 읽으며, 그 옛날에 들은 가위 눌린 이야기가 많이 생각났어요. 그때도 그들의 경험담이라고 하니, 현실성이 느껴졌었고요. 일일이 듣게 되니, 무한히 상상하게 됐지요. 또,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많이 생각났고요. 공포와 성(性)이 어울린 드라쿨라 이야기. 일기, 편지, 신문 기사 등으로 되어 있어 그 현실성이 가득했지요. 그리고 자세히 그려낸 이야기로 상상의 날개가 펼쳐지고요. 그 모든 이야기의 끝에는 등골의 오싹함이 있었지요.


 '나머지는 이 책이 무사히 간행되고, 독자 여러분이 물에 관한 오싹한 나쁜 현상을 겪지 않기를, 이라고 멀리서나마 기도할 뿐입니다.' -'종장' 중에서 (315쪽).


  '저는 늦은 밤에 미쓰다 신조의 책은 번역하지 않기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역자 후기에서 말하는 역자. 사실, 저도 늦은 밤에 읽으니 오싹하네요. 다행히 나쁜 현상을 겪지는 않았지만요. 그동안 되도록이면, 무서운 이야기는 가까이 하지 않았으면서 너무 방심했지요. 저도 늦은 밤에 미쓰다 신조의 책은 읽지 않기로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이 물에 관한 오싹한 나쁜 현상을 겪지 않기를, 이라고 저도 멀리서나마 기도해야겠어요.


 이 책, '괴담의 테이프'는요. 역시 미쓰다 신조의 책임을 증명하네요. 추리와 공포가 아주 잘 어울려 있어요. 물론 이 책은 추리가 공포를 거들고 있지만요. 잘 곁들여 있어요. 그건, 현실성과 상상의 힘이겠지요. 매우 현실감 있고, 또 세세한 글로 상상의 세계로 인도하네요. 아쉽게도 제가 공포 이야기의 면역이 안 되어 있기에, 살짝 힘들었지만요. 공포 이야기에 저항이 없는 분들은 매우 만족하실 이야기예요.    







스토리콜렉터스 2017로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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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26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친구들 여러 명 모이면 한번은 꼭 무서운 이야기가 수다 거리로 나왔었죠. 요즘 뉴스에서 무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그런지 무서운 이야기로 수다 떠는 일이 드물어요. ^^

사과나비🍎 2017-08-26 16:37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랬었죠~^^; 예~ 요즘에는 저도 그렇네요~^^; 세상에 무서운 일이 많이 없어져야 할 텐데요~^^; 아무튼! 댓글 감사합니다~^^* cyrus님~ 좋은 주말 보내시기 바랄게요~^^*
 
[eBook] 월간 샘터 2017년 08월호 월간 샘터
샘터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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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샘터의 2017년 8월호의 얼굴이 선풍기네요. 옛날 선풍기예요. 오랫동안 더위를 잊게 해주던 벗. 추억의 바람도 함께 다가올 것 같아요. 그리고 샘터는 8월을 타오름달이라고 하네요. 예. 타오르는 듯한 햇빛이 우리를 감싸는 달이지요. 그 달에 샘터는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옛 선풍기처럼 시원하면서도 추억이 담긴 깊은 이야기일 거예요.  

 

 

 작고, 얇지만 깊은 잡지인 '월간 샘터'에서 2017년 타오름달에 만난 깊은 글은요. '먹물 닦기의 어려움'이라는 글이에요. 한양대 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친다는 박수밀의 글이에요. '옛사람의 마음'이라는 자리에서 글을 연재하고 있나 봐요.


 먹이 연판(鉛板)에 배어들어 여러 해가 지나면 씻기가 어렵다. 먹은 똑같은 색이라서 오래되고 가까운 구별이 없어 보이지만 오래 지나면 더욱 없어지지 않는다. 이로 보아 습관과 풍속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알겠다. 하지만 한 번 씻고 또 두 번 씻어 먹이 다 없어지도록 해야 한다. 씻기 어렵다고 내버려두는 것은 잘못을 알면서 고치지 않는 것과 같다.

《성호사설》, <묵구난세(墨久難洗)>


 '먹이 벼루의 판에 오랫동안 배면 완전하게 씻어내기 어렵다. 습관도 마찬가지다. 습관은 너무 익숙해져 별 생각 없이 자동적으로 진행된다. 습관이 굳어지면 타성에 젖는다. 타성에 젖으면 불편한 것도 편안해진다. 한편에만 익숙해진 생각은 편견을 만든다. 자신은 옳다고 굳게 믿겠지만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된 생각이다.' -박수밀, '먹물 닦기의 어려움', 월간 샘터 2017.08 중에서. (41쪽)


 연판(鉛板)을 벼루의 판으로 생각하네요. 그런데, 벼루 연(硯)이 아니라 납 연(鉛)이더라고요. 그래서 찾아보니, 연판(鉛板)은 연판(鉛版)1과 같은 뜻인 것 같아요. 먹과 벼루는 함께 있는 물건이니, 착각했나 봐요. 아무튼, 글쓴이는 잘못된 습관은 결국 편견을 만든다고 하네요. 동의해요.


 '게으름은 자신을 해치고 편견은 남을 해치니 잘못된 습관은 반복적으로 씻고 또 씻어야 한다.' -박수밀, '먹물 닦기의 어려움', 월간 샘터 2017.08 중에서. (41쪽)


 어릴 때, 서예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먹물이라는 글을 보니, 옛 추억이 솟아나더라고요. 오래된 먹은 씻기 어려우니, 씻고 또 씻어야 하지요. 그리고 잘못된 습관도 바꾸기 어려우니, 씻고 또 씻어야 하고요. 씻고 또 씻어 편견이 없어진 저는 시원할 거예요.


 작고, 얇지만 깊은 잡지의 2017년 8월. 그 안에서 저에게 깊이 다가온 글은요. '먹물 닦기의 어려움'이었어요. 여름에는 더 자주 씻어야 하잖아요. 잘못된 습관이 편견을 여럿 만들 때, 더 자주 씻어야 할 거예요. 옛사람의 지혜의 말씀! 추억과 시원함으로 생각을 깊이 담그게 되네요.   






물방울 9기로서 읽고 씁니다. 



 

  1. <출판> 활자를 짠 원판(原版)에 대고 지형(紙型)을 뜬 다음에 납, 주석, 알루미늄의 합금을 녹여 부어서 뜬 인쇄판. 활자가 닳는 것을 막고 인쇄 능률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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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월간 샘터 2017년 07월호 월간 샘터
샘터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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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고, 얇지만 깊은 잡지가 있어요. 많은 분들이 한 번쯤은 보셨을 잡지예요. 저도 몇 달째 받고 있는데요. 틈틈이 몇 장씩 읽어보고는 하지요. 그 잡지는 '월간 샘터'예요. 짐작하셨지요?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월간 샘터 2017년 7월호'를 손에 들고 책장을 넘겼어요.

 

 

 그렇게 책장을 넘기다가 어느 글을 만났지요. '양념보다 한 차원 높은 커피'라고 잘못 읽을 뻔한 '통념보다 한 차원 높은 카피'라는 제목의 글이었어요. 브랜드라이터, ex-카피라이터라고 소개되어 있는 김하나라는 사람의 글이었지요. 저는 곧 읽기 시작했어요. 정말 통념보다 한 차원 높은 카피들이 소개되어 있더라고요.

 

 

 

 

 알라딘 중고서점의 품절 · 절판 도서 코너에서 마주친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미 사라진 책을 읽는다는 것'이라는 카피. 유니클로와 디즈니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태어난 'Magic For All'이라는 카피. 침구 브랜드인 템퍼의 '하루의 무게마저 사라지는 순간'이라는 카피. 2012년 민주통합당 경선 후보 손학규 측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카피.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폰7 플러스' 인물사진 모드의 놀라움을 나타내는 '주관적 애정 시점'이라는 카피.  


 '동일한 의미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은 180도 달라진다.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눈에 보이는 것, 혹은 제일 처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미에 그치지 않고 한 번 더 고민해 표현한 카피들이다.' -김하나, '통념보다 한 차원 높은 카피', 월간 샘터 2017.07 중에서. (51쪽)


 한 차원 높은 카피는 사람의 마음을 건드려야 해요. 그런 카피들은 한 번 더 고민해 표현한 카피들이라고 말하네요. 짧지만 높은 카피! 그런 카피들은 깊은 생각이 담겼기 때문일 거예요. 저 또한 깊은 생각을 배경으로 한 말과 글을 하도록 해야겠어요.


 작고, 얇은 잡지이기에 긴 글은 없어요. 그래도 깊은 글이 있지요. 그 깊은 글들이 모여, 깊은 잡지가 되네요. 제가 이번 2017년 7월호에서 만난 특히 깊은 글은 '통념보다 한 차원 높은 카피'였어요.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카피들! 제 마음도 깊이 건드렸어요. 여러분들도 작고, 얇은 잡지에서 깊은 글을 만나시기 바랄게요.





물방울 9기로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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