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맑은 바람이 분다. 누구의 목소리가 바람이 된 것인가. 또, 누구의 눈빛이 그 바람을 물들인 것인가. 그리고 누구의 내음이 바람에 서린 것인가. 그 바람이 달에게 다가간다. 차고 기우는 달에게 닿는다. 바람은 달과 어울려 벗이 된다. 바람은 달의 숨결을 머금는다. 그리고 바람은 나에게 그 숨결을 불어넣는다. 바람이 나를 채운다. 찬 숨결을 품은 바람이 나를 채운다. 나는 바람에게 묻는다. 어떤 목소리이며, 어떤 눈빛이고, 어떤 내음인지 묻는다. 바람은 답한다. 모든 이의 아픔이라고. 모든 이의 통곡이며, 모든 이의 피눈물이고, 모든 이의 피비린내라고 답한다. 나는 또, 묻는다. 바람이 품은 달의 숨결은 어떤 색인지 묻는다. 바람은 또, 답한다. 핏빛이라고 답한다. 그 계속된 답에, 나는 두려워진다. 그래서 몸서리를 친다. 결국, 바람을 멀리한다. 하지만, 바람을 잊지 못하고 다시 바람을 만난다. 달과 어울린 바람과 만난다. 그리고 또다시 찬바람이 온몸에 찬다.

 

 얼마나 자주 위를 올려다봐야
 한 인간은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을까?
 그래, 그리고 얼마나 많은 귀가 있어야
 한 인간은 사람들 울음소릴 들을 수 있을까?
 그래, 그리고 얼마나 많은 죽음을 겪어야 한 인간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죽어버렸다는 걸 알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나의 친구여, 바람 속에 불어오고 있지
 대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네

 -'불어오는 바람 속에(Blowin' in the Wind)' 중에서. 

 

 밥 딜런은 노래한다. 바람을 노래한다. 그 노래는 풍경(風磬)이다. 바람이 소리가 되었다. 그 소리가 울린다. 깊이 울린다. 깊이 울리는 소리는 진실하다. 그래서 맑다. 반전(反戰)의 맑은 바람. 그것이 '불어오는 바람 속에'이다. 평화의 바람(望)이 맑은 바람(風)이 되었다. 모든 이의 아픔을 담은 그 바람이 높이 외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귀를 막고 있다. 무심히 바람을 스치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불어가는 곳을 알지 못하고, 바람의 노래를 알지 못하고, 그저 옷깃을 여민다. 그래서 노래의 시인은 바람의 노래를 더욱더 부른다. 모든 대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고. 바람에는 모든 이의 통곡과 모든 이의 피눈물, 그리고 모든 이의 피비린내를 품고 있다고. 그렇게 가객(歌客)은 노래한다. 그 맑은 바람은 높은 가락이 되었다.

 

 바람의 소리를 들었다. 울림이 된 바람. 전쟁의 깊은 아픔을 담았기에 소중하다. 진귀한 맛이다. 평화를 위해 요리한 맛. 오랫동안 음미한다.

 

 '바깥에는 불이 폭풍처럼 번지고 있었다. 드레스덴은 하나의 거대한 화염이었다. 이 하나의 화염이 유기적인 모든 것, 탈 수 있는 모든 것을 삼켰다.
 다음날 정오가 되어서야 걱정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미국인들과 경비병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연기로 시커멨다. 해는 약이 바짝 오른 작은 핀 대가리였다. 드레스덴은 이제 달 표면 같았다. 광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돌은 뜨거웠다. 그 동네의 다른 모든 사람이 죽었다.
 뭐 그런 거지.' -'제5도살장' 중에서.

 

 '제5도살장'은 달이다. 붉은 달이다. 영휴(盈虧)하는 붉은 달이다. 달은 영속성을 가졌다. 차(盈)면 이지러지(虧)고, 이지러지(虧)면 또 찬(盈)다. 그렇게 영원히 순환한다. 전쟁과 평화도 그렇다. 전쟁이 오래면 평화가 오고, 평화가 오래면 전쟁이 온다. 그런데, 전쟁의 아픔이 크다. 이 이야기는 전쟁이 남긴 드레스덴의 아픔을 말한다. '달 표면 같았고', '다른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한다. 빼앗김과 죽음이 함께 날줄과 씨줄로 물든 피. 피의 하늘에, 피의 바다에, 피의 호수에, 피의 술잔에, 피의 눈동자에 붉은 달이 뜬다. 반전의 (反戰)의 붉은 달이 뜬다. 그 붉은 달은 이제 타고 남은 재가 되려 한다.

 밥 딜런의 맑은 바람이 커트 보니것의 붉은 달과 어울렸다. 맑은 바람이 하늘에서, 바다에서, 호수에서, 술잔에서, 눈동자에서 달과 어울렸다. 그래서 달의 숨결을 머금었다. 핏빛 숨결을 머금었다.

 

 붉은 달을 보았다. 그 선홍의 핏빛이 나를 감싼다. 나는 그 달을 바라보며, 달맞이를 한다. 바람과 벗한 달. 나도 그 달과 벗이 된다. 붉은 달이 들려주는 모든 이의 아픔을 함께 아파한다. 그리고 평화를 아낀다.

 

 '그는 이미 심각한 실수를 했다. 경솔하게 공포에 굴복했으며, 그가 있는 곳에 머물며 할 일을 하는 것이 유일한 의무인 상황에서 공포에 사로잡혀 아이들을 배반하고 자신을 배반했다. 마샤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뉴어크에서 구출하려고 하는 바람에 어리석게도 자신을 훼손했다.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그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여기는 전쟁 지대가 아니었다. 인디언 힐은 그가 필요하지 않은 곳이었다.' -'네메시스' 중에서.

 

 '네메시스'는 공포와 죄책감을 그린다. 전쟁에서 빼앗김과 죽음의 공포는 누구나 있다. 그리고 그 둘의 부재가 갖고 오는 죄책감도 누구나 있다. 그렇기에 누구나 광기에 물들기 쉬울 것이다. 거역할 수 없는 불운으로 비극으로 닿을 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 '네메시스'의 무서운 유행병. 전쟁과 치명적 유행병은 닮았다.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다. 공포에 미치게 할 수 있다. 죄책감에 미치게 할 수 있다. 미친 사람은 늪이다. 헤어나오기 어렵다. 그리고 음침하다.

 

 

 밥 딜런의 맑은 바람이 커트 보니것의 붉은 달과 어울렸다. 그 바람은 붉은 달의 핏빛 숨결을 머금고 왔다. 온몸에 차갑게 찼다. 그 냉기에 몸서리를 쳤다. 어쩌면 울고도 싶었는지 모른다. 다행히 울지는 않았다. 대신 날카로운 것에 베인 것처럼 많이 쓰라렸다. 차가운 쓰라림이었다.

 

 온몸에 차갑게 찬 공포와 죄책감. 맑은 바람이 달과 어울려 나에게 왔을 때, 그랬다. 전쟁의 아픔을 생생히 속삭였기 때문이었다. 온통 피였다. 그 피가 손에 묻었다.

 

 작년에, 죽음을 맞이하거나 혹은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게 될 이의 통곡을 들은 적이 있다. 한 여인이 서글프게 울었다. 아픈 이들이 많은 곳이었다. 우리 아버지도 아픈 분이셨다. 나도 곧 그렇게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병은 난치병이었기에 그랬다. 2년 안에 반 이상이 재발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부재. 생각지도 못했다. 삶이 소중했다. 피의 세계는 무서웠다. 그리고 아버지께 죄책감이 엄습했다. 효를 드리지 못한 죄인, 바로 나였다. 이제부터라도 드리려 한다. 벌써 2년째가 다가온다. 함께 있어 드리지만, 아버지의 짐을 덜어 드리지 못하고 있다. 부디 오랫동안 건강하시기 바란다. 아직 아버지와 함께 거닐며, 빛이 스며든 발자국을 여럿 남기고 싶다.

 

 전쟁과 병은 쌍둥이다. 죽음을 불러오고, 소유를 빼았는다. 그래서 아프다. 그 아픔을 이야기한 세 작품을 만났다. 그리고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는 나옹 선사의 시구처럼 '맑은 바람 달과 어울려 온몸에 차다'로 간단히 말할 수 있다. 밥 딜런의 맑은 '바람', 커트 보니것의 '달', 필립 로스의 '온몸에 차다'였다. 밥 딜런의 '바람(望)'이 '바람(風)'이 되어 커트 보니것의 '붉은 달'과 어울려 필립 로스의 '공포와 죄책감'이 '온몸에 차갑게(冷) 찼(盈)'다. 아버지의 병으로 '공포의 죄책감'이 가까이에 있는 내게 피를 이야기하는 세 작품은 각별했다. 무겁게 침잠했다. 글자 하나하나에 음각과 체온이 느껴졌다. 평화의 외침이 강렬했다. 세상의 평화와 몸의 평화. 싸우지 않고 이겨 얻고 싶은 평화다. 소중했다. 아, 바람이 또 분다. 맑은 바람이 또 분다. 붉은 달과 또 어울린다. 그리고 공포와 죄책감이 또 찬다. 그리고 또 평화를 아우성친다. 높고, 깊게 아우성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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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견주 1 - 사모예드 솜이와 함께하는 극한 인생!
마일로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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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과 함께 견공(犬公)을 키운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처음으로 키운 견공은 '토토'였고요. 그 다음부터는 '재롱이'였지요. 견공들의 견종은 대부분 푸들이었어요. 제 무릎에 앉기를 좋아하던 견공들이었지요. 함께 애환의 삶을 그렸었어요. 그 견공들이 그리워지네요.

 

 

 

 

 

'극한 견주 1'의 6화 '목욕' 중에서. (사진 출처: 북폴리오 페이스북)


 견공 사모예드를 키우는 견주(犬主)가 있네요. 견공의 이름은 솜이예요. 북극곰과 솜사탕을 닮았어요. 큰 견공이에요. 견주는 견공과 함께 하며, 희노애락을 경험하게 되지요. 큰 사건들은요. 털, 목욕, 용변, 산책, 소리 등일 거예요. 특히, 털갈이를 할 때의 털을요. 작가는 주렁주렁 달리는 열매 같다고 해서요. 털매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그리고 목욕! 씻기는 것도 씻기는 거지만요. 말리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제가 가족들과 키우던 견공들도 그랬어요. 물기를 여기저기 털고 다녔지요. 특히 헤어드라이어를 무서워했고요. 게다가 씻고 나서 금방 더러워졌을 때는 울고 싶어지지요. 작가는 실제로 울었나 봐요. 공감돼요.


 얼마 전, 큰 견공을 봤었어요. 반갑다고 안기더라고요. 그곳에 몇 개월 만에 갔었거든요. 쓰다듬어 주었더니, 좋아하더라고요. 웹툰 작가 마일로는 사모예드인 큰 견공을 키우며, 여러 일화(逸話)를 보여 주네요. 저도 그 솜이의 이야기를 보며, 쓰다듬어 주고 싶어지더라고요. 큰 견공은 안 키워 봐서요.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는 것도 있고요. 특히, 산책이요. 큰 견공은 힘이 세니, 산책이 고행(苦行)이 될 수 있겠더라고요. 그나저나 이 책을 보니, 넓은 마당에서 큰 견공을 키우고 싶어지네요.


 애견인 여러분! 견공과 함께 극한 인생을 사는 견주의 웹툰! '맞아. 그렇지'라고 말하며, 읽게 될 웹툰이에요. 보고, 또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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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2-21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몸집이 큰 개는 (큰 마당이 딸린)활동 구역이 넓은 집에 살면 좋다고 생각해요. 개는 자유롭게 뛰어놀고 싶고,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존재에요. 활발하게 움직이는 데 제약이 주는 환경에서 살면 개는 스트레스를 받을 거예요. 고딩 때 같이 살았던 반려견이 산책을 자주 못해서 스트레스에 시달렸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석을 잘 대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사과나비🍎 2017-12-22 01:17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큰 견공은 넓은 마당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cyrus님의 예전 반려견이 그랬었군요. 아, 저도 견공을 키울 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그나저나 댓글 감사하고요. 좋은 밤되시기 바랄게요~^^*

서니데이 2017-12-22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과나비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사과나비🍎 2017-12-23 22:45   좋아요 0 | URL
아, 서니데이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년에도 축하해 주셨지요? 올해도 이렇게 축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서니데이님도 당연히~ 2017 서재의 달인이 되셨지요?
축하드려요~^^*

2017-12-23 0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3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묘한 사람들 - 미스 페레그린이 이상한 아이들을 만나기 전
랜섬 릭스 지음, 조동섭 옮김 / 윌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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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미스 페레그린을 좋아해요. 아마 영화를 봐서 그럴 거예요. 조카는 게임을 할 때도 미스 페레그린과 비슷한 캐릭터를 고르더라고요. 이제 미스 페레그린의 이야기를 더 들려줄 수 있겠네요. 아마 굉장히 좋아하겠지요. 크리스마스에 이야기 선물을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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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녹색 바람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
구라치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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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The Secret Society' 중에서.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게임 'The Secret Society' 중에서.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저는 숨은그림찾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몇 년 전, 한동안 G5의 모바일 게임 'The Secret Society'를 했었어요. 아이패드로요. 제가 하고 있으면, 그때 유치원생이던 조카가 와서 보더라고요. 숨은그림찾기는 어린 조카도 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함께 했었지요. 제가 조카에게 이 숨은그림찾기 게임의 선배였어요. 그런데, 추리 소설에도 선배물이 있다고 하네요. 후배의 부끄러운 얼굴까지 알고 있는 선배. 저에게 조카는 후배이기도 했어요. 조카의 그 부끄러운 얼굴을 하나하나 다 알고 있거든요. , 추리 소설에는 일상 미스터리가 있다고 해요. 보통의 일상에서 뜻밖의 참된 얼굴을 찾는 미스터리라고 해요. 숨은그림찾기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보통의 그림 안에 숨은 뜻밖의 얼굴들을 찾는 놀이가 숨은그림찾기잖아요. 지금, 여기, 선배물이면서 일상 미스터리인 소설이 있어요. 제가 조카와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느낌을 다시 찾아오게 하네요.

     

 '신이시여, 신이시여, 부탁드립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켜주세요. (......) 

 그리고, 그리고 그 사람을 지켜주세요.' -120.

      

 집안의 웃어른인 호조 효마. 부자인 그는 심령술에 깊이 들어갔어요. 죽은 아내, 하쓰에에 대한 죄책감으로 사과하고 싶어 하거든요. 영혼에게요. 그런데, 큰딸인 다키에는요. 그 영능력자에게 홀린 아버지를 말리려고, 초심리학 연구자를 불렀어요. 그래서 영매와 연구원이 맞서게 되지요. 그 소식을 들은 큰딸의 아들인 세이치가 본가에 오게 되고요. 세이치는 10년 전, 할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간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세이치의 할아버지. 효마가 죽음을 맞이해요. 밀실에서요. 사건은 풀리지 않은 채, 효마가 죽기 전에 원했던 강령회를 열기로 해요. 그런데, 사건은 이어져요. 세이치의 사촌 여동생인 사에코에게 날카로운 발톱이 다가오는 거예요. 어릴 적, 사고로 부모를 잃고 몸이 불편한 사에코에게요. 그래서 세이치는 대학교 선배인 네코마루1를 부르지요. 이름 그대로 새끼 고양이를 쏙 빼닮은 동그란 눈을 가진 그를요. 도움을 받기 위해서요. 그렇게 평범한 일상이 비범한 일상이 되었지요. 그 안에서 새로운 희생자가 생기고요.

  

 '방약무인하고 신출귀몰하며 속 편한 남자. 한심하게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영원한 뜨내기. 깐깐한 시어머니처럼 성가시게 굴지만 동글동글한 그 얼굴을 보면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다. 그게 바로 네코마루 선배다.' -다쓰미 마사아키(巽昌章. 미스터리 비평가, 변호사)의 작품 해설 중에서2.

  

 세이치와 그의 사촌 여동생인 사에코의 눈길로 '지나가는 녹색 바람'의 이야기가 그려져요. 수수께끼 풀이는 세이치의 선배인 네코마루가 했어요. '선배를 탐정으로 삼는 본질적인 요소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선배만은 알고 있는 민망한 기억이다. 네코마루 선배야말로 그런 난감한 존재의 대명사다(다쓰미 마사아키'의 작품 해설 중에서)라고 해요. 세이치의 부끄러운 얼굴을 아는 선배 네코마루. 보통의 일상에서 뜻밖의 참된 얼굴을 찾아내요. 일상 미스터리는 '얼핏 보기에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 풍경에서 의표를 찌르는 진상을 밝혀내는 것이 특징이다(다쓰미 마사아키의 작품 해설 중에서)'라고 하네요. , '일상이라는 것의 불안정함과 불확실함을 되풀이해 이야기하고 있다(다쓰미 마사아키의 작품 해설 중에서)고 하고요. 이 이야기는 그에 완전히 부합해요. 불교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3'이라고 하듯이 일상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지요. 그렇기에 불안정하고, 불확실해요. 그래서 일상의 묶음인 인생은 보통의 그림 안에 숨은 뜻밖의 얼굴들을 찾는 놀이인 숨은그림찾기 같아요. 부끄러운 얼굴을 아는 선배 같은 이들과 함께 하는 숨은그림찾기지요. 그렇게 살며, 온몸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도 하고요.

   

 '"인내와 너그러운 용서예요." 

 (......) 

 바람이 불고. 

 그리고 바람은 물든다. 

 지나가는 녹색 바람은 나와 그 사람의 새로운 색으로 물들어간다 

 잠시 이렇게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자. 그게 어떤 색깔인지는 모르지만.' -509.

     

 선배 같은 이들과 함께 숨은그림찾기 같은 인생을 살면서요. 거기에 지나가는 바람을 새로운 색으로 물들게 하는 사랑도 하겠지요. 연인과요. 사랑의 여행에서 인내와 너그러운 용서도 하면서요. 인생은 그런 거예요.

     

 

 덧붙이는 말.

 

 작가인 구라치 준은 등장한 지 20여 년이 훌쩍 넘은 중견작가이지만 작품 수는 열 편 남짓, 과작인 편이라고 해요.

 '지나가는 녹색 바람'은 일본에서 1995년에 나온 작품이라고 하네요. '네코마루 선배 이야기'의 첫 장편소설이고요.

 

 


 

  1. 일본어로 네코는 고양이, 마루는 동그라미라는 뜻이라고 해요.
  2. http://blog.naver.com/sigongbook/221146634888
  3. <불교> 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아니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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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카네기 메달 수상작
사라 크로산 지음, 정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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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초등학교 친구였어요. 한 다리가 불편한 친구였지요. 여자 아이였어요.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 학교에 오셔서요. 선생님과 우리에게 부탁을 하시더라고요. 우리들과 잘 어울리기를 바라셨기에 그러셨지요. 다행히 그분이 바라는 대로 됐어요. 움직이기 불편한 그 친구를 위해 우리들은 배려해 주었고요. 그 친구는 우리게에 감사를 보내 주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대견스러운 일이었어요. 졸업 후, 꽤 시간이 흘렀고 우리들은 자랐어요. 그러다가 한 친구의 군대 휴가로 그때 친구들이 모였었어요. 서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었는데요. 그 친구가 보였어요. 반가워하더라고요. 그 웃는 얼굴이 가끔 생각나네요. 여럿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지요. 그 친구와 가진 마지막 기억이에요. 잘 지내고 있겠지요. 사뭇, 그리워져요.  


 '사람들은 우리를 기괴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멀리 떨어져서

 우리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면 더욱 그렇다.

 확연히 둘이었던 몸이

 허리에서

 갑자기

 하나로 합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에서부터 어깨까지만 나오도록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우리가 쌍둥이이며

 내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내려오고

 티피 머리카락은 더 짧다는 것,

 우리 둘 다 코가 뾰족하고 

 눈썹이 완벽하게 치켜 올라가는 선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 말고는

 특별히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못생겼다고?


 에이.


 이젠 좀 지겹다.' -51~52쪽.


 그리운 그 친구와 실이 이어진 결합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가 있어요. 그레이스와 티피의 이야기예요. 집에서 교육을 받다가 후원금이 바닥을 보여서, 고등학교에 다니기로 한 자매. 이 자매에게 친구가 생겨요. 야스민과 존이에요. 그렇게 네 친구는 소중한 학창 시절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지요. 희망의 노래를 그려요. 그런데, 그레이스와 티피 가족에게 지갑이 계속 채워지지 않아요. 그래서 자매는 방송 출연 결심을 하지요. 다큐멘터리예요. 책임자인 캐롤라인은 희망찬 자매를 보며, 그 안에 담겨진 진심을 느끼지요. 그런 자매에게 불행이 다가오는데요. 심장이 약해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분리 수술을 해야 하지요. 위험한 수술이에요. 수술을 앞 자매. 나무 타기를 하지요.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모두의 예상을 넘어

 우리가 이렇게 먼 곳까지 왔으니까."

 (......)

 "난 행복한 것 같은데,

 넌 어때?"' -429~430쪽.


 티피의 말이에요. 그리고 그레이스가 말하지요.


 '"나도 행복해. 하지만 너무 무서워.

 깨어났는데 네가 없으면 어쩌지?

 너 없이는 깨어나고 싶지 않아."' -430쪽.

 

영화 '삼총사(The Three Musketeers, 1993)' 중에서.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All for one, one for all. (Tous pour un, un pour tous.))'라는 말이 있지요.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말이에요. 총사대에서 칼을 하나로 모으고 외치는 구호지요. 제가 소설 '원'을 만나며, 떠오른 말이에요. 하나인 결합 쌍둥이. 그 하나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위해, 친구들과 가족들은 그 하나를 위해 따뜻해지지요. 제 초등학교 친구에게도 그랬고요. 서로의 진심이 이어졌기에 그랬을 거예요. 그런 결합 쌍둥이에게 위험이 다가오지요.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수술. 그때, 삶의 의미를 깊이 들이게 되지요.


 결합 쌍둥이인 그레이스의 목소리로 자유시 형식으로 쓰여진 소설 '원'이에요. 글자 하나하나에 체온이 들어 있어요. 하나와 모두의 체온이에요. 그 체온이 제 손에 이어져 저도 오랫동안 따뜻했어요. 그 따뜻함으로 더 깊이 나아갈 수 있었네요.



 덧붙이는 말.


 소설 '원'으로 2016 카네기 메달, 2016 영어덜트 도서상, 2016 아일랜드 올해의 청소년 도서상을 수상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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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