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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의 기술
사람들이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죠?˝ 하고 말하면
아니라고 말하라
사람들이 파티에 초대하면
대답하기 전에
무슨 파티인지 잊지 말라
누군가는 너에게
자신이 한때 시를 썼다고 큰 소리로 말할 것이다
종이 접시에 기름투성이 소시지볼을 들고
그것을 기억한 다음에 대답하라
사람들이 ˝우리 만나야 한다˝고 말하면
˝왜?˝라고 말하라
그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소중한
어떤 것을 기억하려는 것일 뿐이다
나무들, 황혼녘 사원의 종소리
그들에게 말하라, 새로운 계획이 있다고
그 일은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군가 식료품 가게에서 너를 알아보면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 양배추가 되라
십 년 동안 소식 없던 누군가가
문 앞에 모습을 나타내면
그에게 너의 새 노래를 모두 불러주지 말라
결코 시간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한 장의 나뭇잎처럼 걸어다니라.
언제든 떨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라.
자신의 시간을 갖고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라.
-나오미 쉬하브 나이
이 시를 처음 읽을 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류시화의 해석을 읽고 다시 읽어보니 인문학적 성찰이 느껴지는 시이다.
류시화는 ‘당신은 전에는 이곳에 없었고,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 사이가 당신이 여기 머무는 시간이다. 생명으로 넘치고 빛이 가득한 이 행성에.
이 시가 나에게 가슴 깊이 다가온 것은 많은 모임들과 만남 요청에 끌려다니다가 어느 가을 아침 서늘한 공기와 함께 나비가 더 이상 날아오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될 필요가 없다고.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꽃에 물을 주지 않는다면 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 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사는 것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을 탕진하는 부분이 ‘나‘를 위해 살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나를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는 일따위는 없을 것이다. 오늘도 나를 위해 떠 있는 태양, 나를 위해 존재하는 나무와 풀들, 은빛으로 빛나며 깨어나는 실개천들은 모두 나를 위한 것이다. 그것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안다면, 복잡하고 무의미한 일상의 시간들을 모임이나 파티같은 것으로 흘려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를 자꾸 읽어보게 된다. 우린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될 필요가 없다. 이만큼 커다란 위로를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한 장의 나뭇잎처럼 걸어다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