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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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을 좋아해서 편식하듯 읽어온 날들에 비하면, 한동안 읽지 않고 지냈다고 해도 그 기간은 잠깐일지 모른다. 그래도 이 책을 앞에 두고 보니 참으로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한국 소설과 떨어져 지내온 나를 다시 흔들어 깨워줄 것인가.

표지 안쪽의 저자 소개글을 읽어본다. '안동에서 태어나 열두해를 살고 대구로 터전을 옮겨...'

안동이라. 글을 읽어보기도 전에 안동 출신이면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이름이 주루룩 떠오른다. 유안진, 권여선, 김서령... 나의 넘겨짚음일까. 이들의 글은 다르면서도 어딘지 공통점이 느껴졌었다. 뭐라고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는 그 분위기와 느낌. 김살로메의 이 책을 읽고나면 그 느낌이 혹시 더 선명해질까 아니면 그저 우연에 불과한 느낌이었다는 쪽으로 기울게 될까.

열개의 제목에서 처음 골라 읽은 것은 역시 책 제목과 같은 <라요하네의 우산>이었다. 나중에 다른 작품들을 읽고보니 이 작품 속 인물은 그래도 평범했다. 지미와 샌드리라는 이름도, 라요하네라는 특이한 여행지 이름도, 샌드리의 강박증도,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출소하는대로 다른 여자와 살기로 선포한 지미 남편도, 모모의 아르튀르라는 우산과 연결시켜 맺는 결말도. 극히 모범적이고 전형적인 단편을 읽었다는 느낌을 가지고 다음에 읽은 작품은 <알비노의 항아리>.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소설 중에는 다 읽고 나면 그래서 더 좋은 작품이 있고, 제목에 비해 식상한 수준의 내용에 실망스러운 작품이 있는데, 억지스럽지 않으면서 참신한 내용이기가 쉬운가. 수백년이 흘러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가부장적 사고방식, 여자의 희생과 양보가 강요되는 사회의 한 풍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도 그 사회의 일원임을. <암흑식당>의 배경과 인물들은 또 얼마나 기발한지. 암흑식당이라는 아이디어의 출처가 어디든 상관없이, 배경과 주제와 인물 묘사가 딱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개인의 내력은 곧 가족의 내력. 떨치려 몸부림치지 않는한 가족의 내력은 그대로 나의 몸과 정신에 자리잡고 내 인생 속에 되풀이된다. 좋아할 대상으로서 남자를 늘 옆에 두어야만 하는 주인공도, 도벽을 버리지 못하는 여동생도. 그래서 <귀휴>는 인정해야하는 쓸쓸함이었다. 적당히 추리 기법이 도입되어 궁금증에 끝까지 단번에 읽어야했던 <피의 일요일>. 작가는 뻔한 반전의 결말 대신 마지막 한줄에 해당하는 말은 비워둠으로써 이야기의 격이 살아있도록 했다. 이것은 <누가 빈지를 잠갔나>에서도 마찬가지. 누가 빈지를 잠갔을까? 빈지문이란 어떤 문을 말하는지 작품속에서 작가는 이렇게 저렇게 묘사하느라 애썼는데, 정확한 명칭은 몰랐어도 그게 어떤 문을 말하는지 나는 금방 떠오르더라. 지난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할때 과연 나의 기억은 얼마나 객관적일까. 무엇을 기억하고 있느냐보다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를 풀어나가다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이 술술 드러나게 될 것이다. 빈지문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렸듯이 <강 건너 데이지>에 나오는 듀란듀란의 리플렉스라는 노래를 일부러 검색해보지 않아도 알만한 세대인 나는 그 오래전의 그룹과 그들의 노래를 작품 속에 끌어다가 쓸 수 있는 작가의 솜씨가 부러웠다. <왼손엔 달강꽃>까지 읽으니 작가가 얼마나 자유자재로 작품 속 인물을 다양하게 설정하는지 탄복하게 되었다. 한지를 뜯어 인형을 만드는 일을 하는 여자. 그녀가 만들고 있는 인형은 단순히 장식품이 아니라 그 속에 이야기가 있고 그녀의 소망이 있고 상처가 있었다. 왼손에 달강꽃을 들려준다는, 인형 만들기의 마지막 단계를 남기고 이야기는 끝난다. 인형의 완성까지가 아니라 완성 이전 마지막 단계를 남기고 끝내는 것은 작가의 의도였을까? <아폴로를 씹었어>의 아폴로는 물론 우주선 아폴로가 아니라 나 어릴 적 구멍가게에서 팔던, 불량식품이라며 먹지 말라고 해서 쉽게 손이 안가던 추억의 주전부리 명칭이다. 글 쓰고 싶어하는 새터민 오희와 다른 새터민 사이의 갈등을 이렇게 의뭉스럽게 이야기 속에서 풀어내다니 작가가 다루지 못할 인물이란 없나보다 싶었다. <아빠는 시인이다>, 비교적 내용 예측 가능한 제목답게 장래 시인을 꿈꾸는 아들이 본 시인 아빠의 이야기이다. 요즘 같은 때 서사시를 주로 쓰는 아빠를 비록 삼류 시인이라고 단정할 수 밖에 없는 아들이지만, 그래서 시인이라는 자기의 꿈을 포기하는 대신 오히려 아빠를 위로하고 싶어하는, 자기의 꿈에 힘을 주고 싶어하는 따뜻한 아들이다.

 

작가는 열 편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인물 상을 그리고 있지만 그들이 딱히 우리 사회의 낮은 지대 인물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의 삶이고 나의 삶이기도 한, 겉으로 드러나는 직업이 무엇인가를 떠나서 우리가 과거에 걸어갔던 길일수도 있고 지금 걷는 길일수도 있는, 그런 인생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 일희일비 하지 말자고.

첫 소설집이라는데 이렇게 문장이 자연스럽고 원숙하고 넘침도 모자람도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오래 공들이고 가꾸어온 시간들이 작가에게 주는 보상일까. <아폴로를 씹었어>에서 화자가 새터민 오희에게 그러지 않던가. 쓸 사람은 누가 뭐래도 쓰고 만다고. 쓰지 않고는 못배기기 때문에 쓰는거라고.

 

근래 주로 번역된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말임에도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신경을 곤두세워 어색한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야했다면, 우리말로 우리말답게, 우리 정서에 맞게 잘 쓰여진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만족이었다. 저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문장 여기 저기서 느껴지는 한국적인 정서, 민중의 삶, 우리 전통의 음과 양. 피부를 찌르고 지나가는 짧고 통렬한 재미가 아니라, 낮고 깊게, 서서히 퍼져나가는 재미. 오랜만에 한국 소설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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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2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2-05 00:36   좋아요 0 | URL
아이쿠, 아닙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만 ^^
객관적으로 쓴다고 썼는데 모르겠네요. 저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세실 2017-01-2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의 삶이고, 나의 삶이기도 한.......우리 주변의 이야기일듯한.
벌써 읽으셨군요.
공들여 쓴 소설, 맛있게 익었죠. 참 멋진 팜므님^^

hnine 2017-01-22 19:33   좋아요 0 | URL
읽던 책이 있었는데 안그래도 진도가 안나가고 있던터라 결국 집어던지고 이 책 부터 읽었답니다. 가독성있더라고요. 다음 소설도 계속 내실게 틀림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2017-01-23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3 0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균제는 꼭 살균제라는 이름표를 따로 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비누, 주방세제, 화장품, 청소할때 쓰는 세정제 등에 소량씩 들어가있으니까.

 

2017년 1월 11일자 New Scientist에 살균제 관련 기사가 나와있어 읽어보았다.

 

 

What are antibacterial agents and should we avoid using them?

(살균제란 무엇인가. 사용하지 말아야하나?)

=New Scientist 11 Jan 2017=

기사 링크 ▶ https://www.newscientist.com/article/2116448-what-are-antibacterial-agents-and-should-we-avoid-using-them/

 

 

살균제란 무엇인가?

 

살균제란 균의 생장과 번식을 방해하는 화학물질을 말한다. 사실 비누 자체는 균이 물에 씻겨 나가도록 도와주는 화학물질일뿐이고 이것으로도 우리를 균으로부터 보호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손을 씻을때 두 손을 서로 비벼주는 것이 중요한데 균이 손에서 떨어져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항생제와 살균제는 같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항생제도 균을 죽이긴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을 치료하는 약물로서만 사용된다.

 

 

어떤 화학물질이 살균제 역할을 하는가?

 

균을 죽인다고 하는 상품이라면 어떤 것이든 모두 살균제를 포함하고 있다. 살균제는 두 그룹으로 나뉠 수 있는데 잔기를 남기지 않는 살균제 (non-residue)와 잔기를 남기는 살균제 (residue)이다. 비잔기 살균제는 알콜이나 염소, 과산화물 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소독제제들이 포함되는데 언제부터인가 트리클로산 (triclosan)이나 트리클로카반 (triclocarban) 같은 화합물이 살균제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것들은 알콜이나 염소와 달리 잔기를 남긴다. 이론적으로는 이 잔기가 살균제의 효과를 연장시켜 균으로부터 보호 효과가 더 오래 지속되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FDA에서 19종류의 살균제 사용 금지 결정 (2016년)

 

2016년 9월 미국 FDA에서는 19종류의 살균제 사용을 금지시키기로 결정했는데 여기에는 위에서 말한 triclosan이나 triclocarban 도 포함된다.

 

 

이유는?

 

이런 살균제를 오래 사용할수록 이런 화합물에 내성을 가지는 균이 출현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살균제가 계속 사용되어온 일부 지역에서 이미 내성균이 발견되었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이런 살균제 사용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의 출현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균제 사용을 피해도 균으로부터 안전할까?

 

살균제는 병원이라든가 면역기능이 약화된 가족이 있는 집 (화학요법 치료를 받고 있다든가 기관 이식을 받았다든가) 의 경우처럼 감염균 농도가 높은 장소에서 유용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집안 청소라든가, 손을 씼을 때는 평범한 비누 (normal soap, not an antibacterial kind) 와 물로 씻고 완전히 말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잘 모르고 무의식중에 살균제를 사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잔기를 남기는 살균제 (내성균의 출현을 부추키는) 사용을 피하고 싶다면 표백제와 과산화수소 사용으로 전환하는 방법이 있다. 이들은 효과는 있으면서 잔기를 남기지 않는다. 단, 사용할때는 사용방법을 잘 읽어보고 안전하게 사용해야한다.

 

※ 이상은 위에 링크된 기사 내용 중 발췌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치약속의 살균제 관련 보도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비누, 화장품, 치약 성분 어디에도 "살균제"란 이름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구입하는 소비자는 모른다.

Triclosan, Triclocarban. 이 두 성분이라도 기억해놓아야겠다. 하긴, 데x이라는 손세정제는 아예 이 성분 표시마저 숨기고 팔았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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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재벌 회장의 젊음의 비결은 뭐뭐 라더라, 하는 루머를 기억한다.

이 기사를 읽고나니 왜 그 루머가 떠오르는지.

제가 떠올린 그 루머가 뭔지 짐작하시겠나요?

 

"Antibody can protect brains from the ageing effects of old blood" (New Scientist, Jan 16, 2017)

기사링크 ▶ https://www.newscientist.com/article/2118105-antibody-can-protect-brains-from-the-ageing-effects-of-old-blood/

 

 

혹시 수혈받는 일이 있을때 이 혈액이 과연 몇살된 사람, 어떤 건강 상태를 가진 사람의 혈액일까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오래된 피는 기관들에 손상을 입힐 수 있고 노화에 기여하는 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근 오래된 피의 이러한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새로운 물질이 개발되었다.

혈액이 노화에 미치는 영향이 처음 발견된 것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통해서였다. 젊은 쥐와 나이든 쥐를 함께 접합시켜놓고 혈액의 순환을 공유하게 해놓았더니 나이든 쥐는 기관이 더 건강해졌고 노화 관련 질병으로부터 더 보호받는 결과를 보인 것이다. 이 실험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오래된 피에는 확실히 어떤 해로운 물질이 있어서 일부 손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결과를 얻은 데서 그치지 않는다. 당연히 이 물질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따라오는 순서.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대학의 Hanadie Yousef 는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람 혈액내 VCAM1 이라는 단백질의 양이 증가함을 밝혀냈다. 65세 이상의 사람들에게서 이 단백질의 양이 25세 이하인 사람들에서보다 30%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사람의 다음 실험. 젊은 쥐에다가 나이든 쥐의 혈장을 주사한 결과 젊은 쥐에서 노화의 징후가 나타났다.

나이든 사람의 혈장도 쥐에서와 같은 효과를 보였다. 60대 후반 노인들의 혈장을 석달된 쥐 (사람의 20살에 해당)에 주사하자 쥐의 뇌에서 노화의 징후가 나타났는데 이때 VCAM1 억제물질과 함께 주사했더니 이러한 노화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을 실용화하여 사람에게 투여한다고 할때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 뇌에 있는 특별한 장벽 (Brain Blood Barrier) 때문인데 이 장벽은 아무거나 뇌 안으로 투입되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VCAM1 억제물질이 타겟으로 하는 물질 자체가 이 장벽의 성분으로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뇌 속으로 통과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에게서 채취한 혈장성분을 쥐에게 실험해본 것까지 발표되었지만 이것을 사람에게 실험해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도 안되는 일이고.

이 VCAM1 억제물질이 약이나 주사제로 만들어 시판이 된다면, 굳이 모 재벌회장과 관련된 루머 속의 그런 일은 필요없어질 것이고 훨씬 간편하게 노화를 늦춰보자는 욕망을 달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 실험에서 노화의 징후로 삼은 표지자는 주로 뇌와 관련된 것들이다. 노화란 아시다시피 어느 한 기관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총체적, 복합적, 종합적인 현상인데 과연 저 억제물질만 주사한다고 해서 전체적인 노화가 늦추어질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리 인체는, 생명 현상이라는 것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자연스레 늙고 자연스레 세상을 떠나는 일. 거기에 더 가치를 두고 싶지만, 너무 자신있게 말하진 않겠다.

 

 

 

* 이 기사의 출처인 New Scientist라는 잡지는 미국의 Scientific American과 더불어 영국의 대표적인 과학 대중 잡지이다. Nature와 Science가 그러하듯이 영국의 New Scientist가 미국의 Scientific American보다 역사가 좀더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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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아버지께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고 몇주 되었을때 담당의사로부터 아버지에게서 항생제내성균이 검출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단순폐렴인줄알고 병원에 가셨는데 입원까지 하셨고, 입원하신 바로 다음날부터 정신이 왔다갔다하는 증상 (섬망)을 보이시더니 곧 의식을 잃으신 상태로, 그래도 이제나 저제나 차도가 있으시길 바라며 하루 두번만 허용되는 면회시간을 지켜 먼거리 불사하고 면회를 다니던 때였다.

"항생제내성균이라면 흔히 말하는 수퍼박테리아 같은거 말씀하시는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아, 어떻하나. 그때만해도 어쩌다가 항생제내성균까지 들어왔다는 말인가 절망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오래 지나면 수퍼박테리아 감염은 각오해야한다는 말을 역시 오랜 병원 생활끝에 어머니를 여의신 친지로부터 들었다.

 

말로만 듣던 수퍼박테리아가 이제 코 앞에 있다. 의약계에서 좀 더 강한 항생제를 개발해서 내놓기가 무섭게 그것에 내성을 가진 수퍼박테리아가 출현하고 (박테리아는 워낙 분열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그만큼 돌연변이가 나타나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고, 그래서 인간에게선 수천 수만년 걸려도 나올까 말까한 돌연변이가 박테리아에게선 일년도 안되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을 치료할 항생제를 또 개발해내고, 그럼 그것에 대한 내성균이 또 나타나고, 계속 이런 줄다리기를, 그것도 사람의 목숨이 달린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과연 이 줄다리기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자그마치 26가지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가진 수퍼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난 70대 여성 얘기가 2017년 1월 13일호 사이언티픽 어메리컨에 나왔다. ("Woman Killed by a Superbug Resistant to Every Available Antibiotic" by Helen Branswell on Jan 13, 2017 Scientific American,  링크 ▶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woman-killed-by-a-superbug-resistant-to-every-available-antibiotic/)

 

미국 네바다 주 르노에 사는 70대 여성이 치료불가능한 감염 (incurable infection)으로 지난 9월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온 몸에 퍼져있는 항생제내성균은 자그마치 26가지 다른 종류의 항생제에도 듣지 않았다. 미국에 나와있는 모든 항생제를 다 써봤는데 효과가 없었다는, 미국 질병관리본부 소속 의사 Dr. Alexander Kallen의 말이다.

이 환자의 경우 오랫동안 인도에서 지낸 경험이 있었고 미국 이전에 인도에서도 통원및 입원 치료 받은 경력이 있다고 한다. 인도는 미국보다 더 항생제내성균이 보편화되어 있는 나라. 미국으로 돌아온 후 지역 내 병원에서 치료중 14개 항생제 모두 효과가 없었고 이런 예가 처음이자 병원에서는 아틀란타에 있는 질병관리본부로 시료를 보내어 더 검사를 요청한 것. 그 결과 미국에 나와있는 어떤 약으로도 생장을 막을 수 없는 균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번에 이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박테리아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싶으시다면, 바로 Klebsiella pneumoniae. 이것은 요로감염증을 일으키는 흔한 세균으로서 어떤 희귀한 신종의 세균이 새로이 나타난게 아니다.

이 환자의 병명은 Carbapenem-resistant enterobacteriaceae (CRE). 여기서 enterobacteriaceae라고 하면 보통 흔한 장내 세균을 말하며 carbapenem은 임상에서 많이 쓰는 항생제 이름인데 다른 어떤 항생제를 써도 효과가 없을때 최후로 써보는 항생제중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CRE를 악몽의 박테리아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박테리아는 자기 살길을 찾아 끊임없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형태를 출현시키고, 인간은 인간의 살길을 찾아 끊임없이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느 쪽이 이길 것인가. 물론 속도가 빠른 쪽이 될 것이다.

 

 

* 위의 링크를 따라 들어가보면 이 박테리아 Klebsiella pneumoniae 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캡슐처럼 생긴 작은 것이 박테리아이고 야구공 처럼 생긴 큰 세포는 환자의 백혈구일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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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7-01-16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섭네요. ㅠㅠ;

hnine 2017-01-16 14:45   좋아요 1 | URL
아무리 지난 일 빨리 잊는다고 해도 작년 메르스 공포는 아직도 생생해요. 치료할 약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니, 상상만 해도 저도 무섭네요. 우리가 항생제 하나 더 개발하는 것이 내성균 한 종류를 더 보태는 결과를 낳고 마니 사실 승패가 따로 없는 줄다리기인 셈이지요.

stella.K 2017-01-16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무섭군요. 저도 오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런 얘기 들었던 것 같아요. 원래 병원이 세균이 더 많다고. 웬만한 응급상황 아니면 병원은 다니지 말라는데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병원이라는 곳은...ㅠ

hnine 2017-01-16 15:15   좋아요 1 | URL
저는 제 아버지만 운이 나빠 수퍼박테리아에 감염되신 줄 알았는데 그건 중환자실처럼 항생제를 많이 쓰는 병실에 있으면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에 너무 놀랐어요. 수퍼박테리아에 감염되는 건 주로 병원 내에서니까 입원을 권유받으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는 생각만 해야하는데, 더 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해야하는 게 참, 딜레마이지요.

꿈꾸는섬 2017-01-16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섭네요.
오랜 병원생활에 감염을 각오해야한다니..
걱정이 많으시겠어요.ㅠㅠ

hnine 2017-01-16 16:16   좋아요 1 | URL
평소에 면역력을 길러놓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게 없는 것 같아요. 항생제 남용이 불러 일으킨 결과라고 하고 맞는 말이지만 앞으로의 대책이 있어야할텐데 말입니다.
(제 아버지는 그때 퇴원못하시고 병원에서 돌아가셨어요)

꿈꾸는섬 2017-01-16 16:18   좋아요 1 | URL
ㅜㅜ

qualia 2017-01-16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돌연변이) 박테리아에 듣는 만능 항생제 개발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원리상 불가능한 건가요? (미)생물학과 의학이 엄청나게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지구 행성 인간의 과학기술은 정말 형편없는 수준인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검색해보니까 인체 세포 수는 30조 정도, 인체내 박테리아 수는 39조 정도라네요. (종전에는 그 수를 각각 10조 정도와 100조 정도로 추산했다고 합니다. 참고: http://scienceon.hani.co.kr/354921) 인간 뇌세포는 약 1000억 개 정도로 추산하고 있죠. 즉 이렇게 많은 세포와 세균들이 인간(의 마음과 몸)을 구성한다는 것인데요. 뇌에 대해서는 겨우 5%밖에 파악하지 못했고, 박테리아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이 지금 한창 발전 단계에 불과한 인공지능의 위험성, 로봇의 반란 가능성에 대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과잉 경고하고 부정적 예측을 남발하는 게 정말 우습게 느껴집니다. 왜냐면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인간한테 반란을 일으키려면 독자적으로 생각 · 판단 · 결정할 수 있는 의식을 지녀야 하는데요. 프로그램이나 생명 없는 무기체에 지나지 않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그런 의식을 지니려면 가까운 미래에는 전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런 의식의 소유보다 더 중요하고 기본적인 게 인간 이상의 기동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다소 역설스러운 얘기지만). 현단계의 과학기술 발전 속도로 판단컨대 인공지능/로봇이 인간 이상의 기동성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레이 커즈와일이 특이점에 도달하리라고 예측한 시점인 2045년보다 훨씬 더더 뒤의 일이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위 hnine 님의 ‘수퍼박테리아’ 얘기를 읽고, 우리 인간 혹은 인류라는 우주적 생물종이 지금까지 확보한 과학기술이라는 게 참으로 위대한 수준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정말 ‘보잘것없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거듭거듭 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0.5μm~0.5mm 크기의 박테리아 하나 이기지 못하는 게 인류라는 생물이란 얘깁니다. 그럼에도 그 생물의 뇌는 1천억 개의 신경세포와 그 세포들 각각이 서로 연결된 100조~500조 개의 시냅스로 구성돼 있다고 하죠.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Neuron) 이렇게 어마어마한 인간 뇌를 겨우 5%밖에 파악하지 못한 인간 자신이 앞으로 고작 10년 혹은 20~30년 안으로 인류한테 반란을 일으킬 정도의 인공지능/로봇을 개발한다는 게 전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파악한 5% 정도의 뇌의 비밀도 대부분 그 해상도가 아주 낮은 수준이죠. 1나노미터 아래의 양자 수준에서 벌어지는 뇌의 비밀은 거의 연구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요. 즉 우리 인류는 아직 인간 뇌를 미세한 양자 수준에서 들여다볼 도구와 장비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위에서 든 것만으로도 요즘 언론과 방송, 대중교양과학서에서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인공지능/로봇의 인간 위협설은 그 근거가 매우 빈약하고 과장된 헛소리에 불과하는 게 증명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흔히들 뭉뚱그려서 생각하는 인공지능/로봇의 일자리 위협 문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봅니다. ⑴ 인공지능/로봇의 일자리 위협 문제와 ⑵ 인공지능/로봇의 반란 문제, 인간 멸종 시도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구별하지 않고 한데 뭉뚱그려서 논의하는 것은 일종의 개념 혼동 혹은 개념 착종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hnine 님의 수퍼박테리아(슈퍼박테리아) 글을 읽고 흥미를 느껴 간단한 질문이나 하나 하려고 했는데요. 쓰다 보니까 좀 멀리까지 나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hnine 님 윗글과도 꽤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hnine 2017-01-16 16:59   좋아요 2 | URL
워낙 방대한 지식과 자료를 요하는 문제라 저는 감히 뭐라고 말씀드릴 수준은 아닙니다만, 인간이 제어하기 쉽냐 어렵냐에 대상의 크기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박테리아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무기는 바로 분열속도이지요. 30분마다 그 수가 두배가 되니까 그런 속도로 분열하다보면 별별 돌연변이가 다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그중에 내성을 가진 놈이 몇개만 있어도 또 그 엄청난 분열속도로 개체수를 늘려서 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니까요. 사실 박테리아보다 더 무서운건 바이러스일지도 모르겠어요. 얘네들은 아예 주위 상황이 내가 계속 분열하고 살아나가기에 영 아니다 싶으면 완전히 다른 사이클을 가동시켜 <죽은듯이 살아있기> 모드로 들어가니까요.
인간의 뇌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은 것도 사실이고 뉴런 자체보다 뉴런끼리 어떻게 연결되느냐가 더 관건이기 때문에 연결의 경우의 수는 뉴런의 수보다 엄청나고 그 기능과 역할을 다 파악하기란 쉬운일이 아닌 것 같아요. 인간을 위협할 정도의 인공지능/로봇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수퍼박테리아는 이미 현실이기 때문에 저는 이게 더 무섭습니다 ㅠㅠ 어떻게서든 살아남으려고 하는 생존 본능은 30조 세포로 이루어진 인간이나 겨우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박테리아나 모두 치열하긴 마찬가지니까요.
 

 

사랑, 분노, 두려움, 호기심, 걱정, 흥분 등등.

살아있는 동안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감정.

감정은 과연 우리가 목표를 향해가는데 조력자인가 방해꾼인가.

 

사이언티픽 어메리컨 (Scientific American) 이라는 과학대중잡지 2016년 11월 4일자에 감정에 대한 재미있는 동영상이 올라와있기에 간단하게 내용을 요약하여 옮겨보았습니다 (다분히 의역 위주입니다) 

 

Are you a puppet to your emotions? (당신은 감정의 꼭둑각시일까요?)

- by Stephen Asma, Rami Gabriel, Glenn Curran on November 4, 2016

 

 

동영상 링크 ▶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video/are-you-a-puppet-to-your-emotions1/

 

 

 

고대 철학자들은 사람이 감정에 휘둘리게 되는 것을 염려했다.

플라톤이 사랑에 빠지면 사람은 마치 미친 노예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고까지 말한 것을 보면 이때까지만 해도 감정은 사람을 이성적으로 행동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17세기 스피노자에 이르러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상황에 맞는 적절한 감정을 갖는 것은 우리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즉, 감정은, 해보고 싶은 욕구 (motivation)와 실제 행동 (behaviour)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중간역할을 하여, 행동에 대한 확신을 하게 해준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처음 뱀이라는 동물을 만났다고 해보자.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부딪히면 사람은 일단 호기심이 발동한다. 하지만 호기심에 따라 가까이 다가간다든지, 만져본다든지 하는 행동으로 바로 옮기게 되면 우리를 위험한 결과로 이끌 수 있다. 이때 "으악~~" 하는 놀라는 반응 (startled reaction)을 유발함으로써 우리가 바로 위험한 상황에 다가가는 것을 한발작 늦춰주게 된다.

진화적으로 이것이 인간의 생존에도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근거로서 찰스 다윈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주머니에 뱀을 넣어가지고 침팬지가 잘 다니는 숲속에 풀어놓았다. 뱀을 발견한 침팬지는 처음엔 놀라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멀리 도망갔지만 잠시 후 진정이 되자 다시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두려움은 곧 생존 본능이고 이것이 인간으로 진화하는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두려움외에도 사랑의 감정, 마음써줌, 도와주는 마음 등 다른 감정들도 사람이 서로 협력하여 연대를 이룸으로써 위험한 상황에서 생존에 유리하도록 작용해왔다.

그렇다고 인간은 감정의 꼭둑각시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유인원을 비롯한 다른 동물에 비해 훨씬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고 특히 대뇌 피질 (cortex)이 발달하여 우리의 경험이 반영되고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면, 나중에 우리가 원하는 보상과 댓가가 올 것을 예상하면 당장의 감정이나 충동은 잠시 누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감정을 극복하는 대신,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게 두었을때, 우리는 꼭둑각시가 된 것 같을 것이다.

 

 

 

음...마지막 맺는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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