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기 5분 전 마음이 자라는 나무 20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이 예뻐서 눈에 더 뜨이는 이 책을 펼치면 화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이야기가 시작된다. 1963년생 시게마츠 기요시의 작품.
아홉개의 소제목 아래 아홉명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아이들은 서로 가족, 학교 등으로 연관되어 있는 인물들이라서 각 소제목의 중심 인물만 다를 뿐이지 같은 아이들이 다른 이야기에서도 계속 등장한다.
일본의 청소년들이 안고 있는 고민들은 우리 나라 청소년들의 경우와 공통적인데가 있으면서도 어딘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성 교제, 청소년 성문제, 진학 문제, 가정 내 갈등, 이런 문제들이 우리 나라 청소년들이 안고 있는 고민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아이들의 문제는 대분 집단 따돌림, 선후배 위계 질서, 소통의 문제 등에 관한 것이다. 이지메가 일어나는 이유도 참 여러 가지라는 것을 알수 있었는데 정말 이 문제가 일본 청소년 문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인지. 집단 따돌림의 근본 원인은 그 사회의 '집단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그 집단의 공통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에서 조금이라도 튀면 이목이 집중되고, 급기야 그 사람은 그 집단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마는 사회. 이건 단순히 청소년들의 문제라기 보다뿌리 깊은 사회 의식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좀 다른 생각을 가졌거나 다른 행동 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어느 집단에서든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것을 따돌림으로 연결시키는데에는 그 사회의 특이한 의식이 작용하고 있는데 그 것 중의 하나가 과거 군국주의 통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던 시기를 겪은 사회이냐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칼로 자른 듯이 정확하게 맞아야 하고, 다름이 아니라 통일성과 획일성이 기본 규칙이어야 하는 통치 체제에서 형성된 집단 의식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제 군국주의도 아니고 개인의 생각과 가치관이 존중 받는 사회라고, 그래야 한다고 하면서도 사람의 의식이 바뀌기란, 사회의 의식 구조가 바뀌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왜 우리 나라와 일본에서 특히 이런 집단 따돌림 문제가 두드러지는지, 이 책을 읽으며 그 문제가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물론 이 소설은 그런 문제를 따져 보고자 의도된 것은 아니고, 여러 유형의 아이들이 각각 어떤 문제를 가지고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또 그 문제에 관련된 아이들 각각의 입장에서 소제목을 달리하여 서술함으로써 한 아이의 입장이 아니라 여러 아이의 시각에서 한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리가 불편하여 목발을 짚고 다니는 에미, 어릴 때부터 신장병을 앓고 있어 학교에 등교하는 날 보다 병원에 누워 있는 날이 더 많은 소녀 유카는 어느 비 오는 날 우산을 함께 쓰게 되면서 친구가 되지만 에미는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거나 상냥하게 대하지 않아서 유카의 마음을 자주 상하게 한다. 구름 사진 찍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있던 에미에게 유카는 복슬강아지 모양의 구름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그런 모양의 구름을 찾던 에미는 나중에,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그 복슬강아지 구름을 언제 볼 수 있는 것인지. 이 들 외에 에미의 남동생 후미를 비롯해서 남자 아이들 사이의 이야기는 주로 선후배 사이의 갈등, 서로 누가 더 잘하느냐 순위를 놓고 벌이는 경쟁, 여자 친구 문제 등이 소재가 되는데, 남자 아이들은 여자 친구가 있고 없음도 자신의 어떤 능력의 일부로서 위시할 만한 자격 조건의 하나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들이 책으로 쓰여지는 계기에 대한 이야기로 이 책은 마무리를 짓게 되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책으로 쓰고 싶다는 화자의 제안에 대해 에미는 부탁한다. 부디 그 책이 모두에게 버림받았거나 뒤처진 누군가를 위해서 쓰여지기를, 뭘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가 '괜찮아, 천천히 걸어가지 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로 써 주기를, 모든 아이들이 건강해질 수 있는 책을 써주기를.
아마도 이 책의 실제 저자가 글을 쓸 때도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쓰지 않을까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특히 마지막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해질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은 청소년을 위한 소설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청소년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것과 동시에 궁극적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데에,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데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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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2-17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읽고 프게 만드는 책이네요

hnine 2010-02-17 18:20   좋아요 0 | URL
저 책을 읽게 된데에는 제목도 한 몫 한것 같은데,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 그 기대에는 조금 못미쳤다 싶었어요.
 
겨울 해바라기 - 제1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65
유영소 지음, 신민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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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을 먼저 알게 되고서 그의 작품이 궁금해져서 읽게 된 책이다. 유 영소 라는 이름
으로 검색되는 책들은 많았는데 주로 어린이 역사, 학습 도서물이 많았고 그들을 제외한 소설집 중 언젠가 제목을 들어본 적이 있는 이 책을 골라서 읽어보았다.
노르웨이에 입양되어 살고 있던 철현이가 낳아주신 부모를 찾아 한국에 오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잠시 묵게 된 곳이 이 책의 화자인 동준이네 집이다. 처음엔 모르는 애가 느닷없이 자기 집에 와서 지내게 된다니까 반감부터 가졌던 동준이는 차츰 철현이의 처지를 알아 가면서 누구보다도 철현이를 생각해주는 관계로 발전해간다. 그러는 와중에 소위 엄친아라고 할만하던 이모의 아들인 고등학생 지민이 형이 생각지도 않던 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가족들이 그 문제에 대처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동준이는 어른들의 이기심과 모순점에 실망을 느끼고 반항심을 갖게 된다. 입양아 철현이의 부모 찾기 과정과 지민이 형과 관련된 청소년의 성문제, 이 두가지문제를 중심 축으로 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고, 작가는 여기에 동준이와 철현이, 나중엔 고모까지 수두에 걸리는 사건을 삽입시키고 있는데, 수두라는 병에 걸리면 달리 치료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발진과 가려움이 사그러들 때까지 그저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 처럼, 우리가 살아나가는 동안에도 그런 시기가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수두, 언제 어떻게 걸릴지 모른다. 실제로 이야기 중에 초등학생인 동준이와 철현이 뿐 아니라 어른인 고모도 걸렸으니까. 그 기간을 못참아 긁고 덧내면 영원히 몸에 상처가 남을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하지만, 한번 앓고 나면 다시 걸릴 위험으로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특징을 가진 수두를 앓는 과정을 삽입시킨 것은 이 책의 주제를 한결 살려주는 효과가 있다.
노르웨이처럼 추운 나라에도 해바라기가 있느냐는 동준의 물음에 철현이는 남쪽 지방에 가면 키가 작긴 하지만 해바라기가 핀다고 대답해준다. 자기의 생각과 느낌보다는 동생들을 보살피는 것이 더 우선이고 양부모님의 뜻을 먼저 헤아려 행동하려는 쳘현이를 딱하게 생각한 동준이는 철현이의 그런 성격이 언제나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해가 가는 방향만을 쫒아가는 해바라기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혼잣말처럼 철현에게 말한다. 더 이상 해바라기 하지 말라고, 해바라기처럼 그렇게 늘 씩씩하지 않아도 된다고.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라하는 철현이. 
저자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히 전달되어졌다는 점, 어른의 입장이 아닌 아이의 시각과 심리를, 아이의 입을 통해 표현했다는 점이 좋았다면, 어떤 한가지 문제가 주요 소재가 되어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기 보다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비슷한 무게를 가지고 글 전편에 흐름으로써 다소 산만하고, 깊이가 떨어져보인다는 점에서는 아쉬웠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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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Children's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Grow Up (Paperback)
Eccleshare, Julia 지음 / Cassell Illustrated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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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제 서울에 갔다가 돌아오는 버스표를 사려고 하니 무려 2시간 30분 후의 표 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것을 실감하고 그 2시간 30분 동안을 아이와 나는 지하 대형 서점을 신나게 휘젓고 다니며 사줘요, 안돼, 사줘요, 안돼, 놀이를 하다가 그 놀이를 왜 했나 싶게 결국 고른 책이 바로 이 것.
다른 책 몇 권을 살 수 있는 가격이었음에도 묵직한 책을 품 안에 안고 오는 맛을 왜 하필 이 책을 사면서 느껴보고 싶었는지, 집에 와서 가격 검색을 해보니 인터넷 서점 가격보다 무려 6,600원을 더 주고 사왔다. 
그래도 좋은데 어쩌랴.  

1001 시리즈로 나와 있는 책들은 많이 있는데 그 중에 나를 가장 사로잡은 <당신이 어른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어린이 책 1001권> 이다. 2009년 영국에서 출판된 책이고 현지 가격은 20 pounds.



 

 

 

 

 

 

 

 

 

 

 

 책 옆에는 색깔로 연령 별 구분이 표시되어 있는데 chapter 1는 ages 0-3, chapter 2는 ages 3+, chapter 3는 ages 5+, chapter 4는 ages 8+, chapter 5는 ages 12+ 로 되어 있다.  

 
책 안은 이렇게 생겼다.



 

 

 

 

 

 

 

 

 

 

 

책 한권에 대한 소개를 한 페이지에 걸쳐, 제목, 출판사, 출판 연도, 표지 사진, 그리고 책의 대략적인 내용, 작가 소개, 그 책과 관련하여 추천하는 다른 책 리스트 등이 나와 있다. 책 소개글을 쓴 사람들 (contributors) 의 이름은 이 소개글 마지막에 두개의 알파벳 약자로 표기 되어 있는데 모두 70명이 좀 넘는 인원들이 참여한 것 같다.  

아무데나 펴서 봐도 되고, 보다가 내가 읽었던 책이 나오면 반가와서 자세히 읽어보기도 하고, 또 넘기다가 앞으로 읽어보고 싶은 책을 발견하기도 하는 재미, 한번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들춰볼 수 있는 책, 책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키워지는 책. 

아이들 책에는 그림이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함을 또한번 느낄 수 있었고 책 마다 표지 그림이 어쩌면 그렇게 다를 수 있는지, 책에 대한 책이면서 무슨 화집을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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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9-12-2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메리 크리스마스 & 미리 해피뉴이어에요~~
그림책(어린이책)은 어린이가 보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볼 수 있는 책이래요. ^^
저는 꽂을 자리가 없어서 당분간 책 욕심 내면 안되는데, hnine님 리뷰 보니까 이 책도 사고 싶어졌어요. ^^;

hnine 2009-12-25 16:05   좋아요 0 | URL
어린이부터 볼수 있는 책, ㅋㅋ 맞아요 맞아요.
저 책 정말 마음에 쏙 들어요.
점심 먹으려고 나갔다가 지금 들어왔네요. 인구가 별로 많지 않은 도시인데도 오늘은 차가 꽤 막히던데 서울은 더 하겠지요.
책세상님도 편안한 크리스마스 되시고, 새해 맞으시고요, 내년에도 변함없는 책친구 되어 주시고요 ^^

섬사이 2009-12-2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데요~ 어떤 사람들이 참여해서 만든 책일지 궁금해요.
제가 다니는 도서관에서 엄마들이 아이들과 읽은 책들 중에서 좋았던 책들을 골라서 목록을 만들었었는데, 좋은 책을 선정하고 목록을 만드는 일이 보통이 아니게 힘들더라구요.
우리 나라에서도 저런 책이 나온다면 참 좋을텐데요..
참 보고 싶은 책이군요. ^^

hnine 2009-12-25 17:53   좋아요 0 | URL
섬사이님, 이 책의 기고자들은 학교 선생님, 대학 교수, 출판업자, 작가, 사서, 박사 과정 학생 등 다양해요. 이들이 함께 모여서 만든 것은 아니고 출판사 측에서 의뢰한 것 같아요.
안그래도 이 책 보면서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혹시 나와 있는데 제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섬사이님도 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같은하늘 2009-12-25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책인데요~~~
두툼한 책 속에 어떤 책들이 들어 있을지 너무 궁금해요.
펼쳐놓으신 부분에는 스노우맨밖에 모르겠는데요.^^

hnine 2009-12-25 21:33   좋아요 0 | URL
저도 '스노우맨'을 무척 좋아해서 비디오로 가지고 있기도 해요. 나레이션과 음악이 참 좋거든요.
윗 사진 속의 다른 책들도 아마 가까이 보시면 눈에 익은 책들일지도 몰라요. 스노우맨 옆의 책은 '모네의 정원에서'라는 제목으로, 아래의 두책은 '리버보이', '별을 헤아리며'라는 번역본으로도 나와 있거든요.

세실 2009-12-25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서도 들어가있군요. ㅎㅎ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네요.
님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보림양이랑 옆지기랑 쇼핑하구 지금 들어왔습니다.

hnine 2009-12-25 21:34   좋아요 0 | URL
청주도 오늘 길이 많이 막히지 않나요? 저는 낮에 시내 나갔었는데 많이 막히더라고요. 지금은 눈발이 아주 조금씩 날리고 있네요.
세실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순오기 2009-12-25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사람 아저씨와 모네의 정원이네요.
1001권이나 소개되었으니 굉장히 두껍네요.
꼭 읽어야 할 우리 책도 이렇게 만들면 좋겠네요.^^

hnine 2009-12-25 21:36   좋아요 0 | URL
우리 책도 꼭 이렇게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정말.
이 책에 수록된 책들이 말로는 국제적으로 선별되었다고 하는데 동양권 나라의 동화는 거의 없거든요. 우리 동화도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고요.
 
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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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장이가 책 심부름을 가는 홍 교리 댁 사랑채에 걸린 현판 '서유당 (書遊堂)'을 우리말로 풀어놓은 것이 이 책의 제목인 '책과 노니는 집'이다. 올해 초에 나오고 나서 좋은 평을 많이 받아 오는 책이어서 마음 속에 담아 두었었는데 드디어 읽게 되었다.
읽고 나니 책의 재미도 재미이지만 얼개가 탄탄하고 작가가 공부를 많이 하여, 즉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하여 썼겠구나 싶어 나 역시 좋은 맘으로 남에게 권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든다.
우선 구한말 천주교를 비롯한 서양 문물이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때를 배경으로 한 동화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양반, 평민, 천민의 계급이 엄연하던 시대에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고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가르치는 천주교의 사상은 양반, 평민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의식의 전환을 불러오기에 충분했고, 동시에 여전히 서양 문물에 대해 완전한 개방을 못하고 있던 우리 나라에서는 탄압의 이유로 충분했다. 이런 시대에 책을 베껴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던 장이의 아버지는 천주학 책을 베껴썼다는 이유로 관가에 끌려가 모진 매질을 당한 후 세상을 떠나고 어린 장이는 아버지가 일하던 책방에서 책심부름을 하며 아버지와 비슷한 꿈을 가지며 지낸다.
이런 시대적 배경때문에 본문 중에는 그 당시의 서울시 동네 지명을 비롯해서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단어들이 간간히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을 페이지 아래 주석과 함께 읽어나가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언젠가 읽었던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에 수록된 그림과도 비교가 되었던 표지를 비롯한 책 속의 삽화는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 김 동성 화가의 작품이었는데 글의 분위기와 어쩌면 그렇게 잘 어울리던지. 나중에 장이가 홍교리로부터 선물로 받는 현판 모습 그대로 꾸민 책 표지의 제목도 좋았고, 아마도 이러한 전체적인 조화가 이 책을 한결 돋보이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붙잡히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예전에 자기에게 베풀어진 관심과 배려를 기억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지키려는 어린 장이의 의리, 그리고 장이 아버지의 부탁과 당부를 잊지 않고 장이를 끝까지 보살펴 주는 책방 주인의 의리, 미움 받을 짓만 하고 다니는 동네의 불한당 허궁제비를 내치지만 않고 헤아려주는 미적 아씨의 마음, 부모에게 버림당한 어린 낙심이에게 하필 심청전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장이를 꾸짖는 최 서쾌,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상황과 안부를 생각하며 가려서 책을 권하는 책방 주인의 배려. 이 책 한 권을 채우고 있는 것은 어떤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한 사건보다는  등장 인물들의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들의 마음이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노닌다'는 말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즐긴다는 말과 통할 것 같은 이 말은, 오랜 시간 마음을 두고 할 수 있는 일에 쓸 수 있는 참으로 적절한 말 같아 기억해 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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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9-12-27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노닌다'는 말도 참 인상적이지요.

hnine 2009-12-27 08:26   좋아요 0 | URL
저 지금, 책세상님 서재 다녀오는 길인데 중고샵 물건에 대해 댓글달고 왔어요.
 

 나의 2009년은,  

 



 

 

 

 

 

 

 

 

 

 

 

 이런 화려함과 풍성함을 기대하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피흘리는 색채로 대부분의 시간들이 채워지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그렇게 채워나간 시간들.
그동안 아이는 더 자랐다고 하면서 왜 나 자신은 그저 더 나이 들었다고 쓰려하는가. 나도 분명 자랐을텐데. 그저그런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겨난다는 것, 나이들어 가능하지 않았던지.   

 



 

 

 

 

 

 

 

 

 

 

 

 
이 그림을 보고서 기분이 참 좋았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면 바로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고,
내 맘 속의 내년 이미지를 그리라고 한다면 딱 요런 색상과 채도로 그릴 것 같다.
이렇게 밑바탕 다 드러낼 수 있으려면, 다른게 아니라 바로 자기 삶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누구의 삶도 완벽하지 않고, 댓가를 치르며 살게 마련이라는 이치를 겨우 알았다는 것과 자신감있는 삶과의 거리는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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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2-24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져요.~~ 저도 늘 나이들어간다고만 생각했지 자란다고는 생각 못했어요. 저도 자라고 있는 중일텐데 말이에요.^^

hnine 2009-12-24 06:02   좋아요 0 | URL
저는 이 무렵쯤 되면 웬지 자신에게 좀 관대하고 싶어져요. 후회와 반성만으로 한해를 마감하기에는 좀 억울하기도 하고요, 내가 나를 다독이지 않으면 누가 다독여주랴 하는 생각도 들고요.

비로그인 2009-12-2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말 하기엔 꽤나 젊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누가 물렁이라 욕해도 푸근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것들이 좋게 다가오네요..

글과 그림, 만드신 작품들 보러 종종 들르겠습니다. ^^

hnine 2009-12-25 05:32   좋아요 0 | URL
'꽤나 젊지만'이라고 생각하시는 한, 젊음을 유지하고 계신 것 맞다고 생각해요.
종종 들러주시겠다니 영광입니다 ^^

세실 2009-12-25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으로 표현하는 1년이라 멋진데요.

hnine 2009-12-25 21:38   좋아요 0 | URL
제목만 그렇게 달아놓고 더 구체적으로 제 생각을 풀어내어 표현하기가 어렵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