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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약의 연결고리 - 약으로 이해하는 바이오 시대, 생명과학 이야기 ㅣ 지식전람회 27
김성훈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현재 우리 나라 생명과학 연구분야에서 매우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저자의 이름이 먼저 눈에 띄었고, 책의 내용을 훑어 보니 읽어볼만 했다.
이 책의 목적
약과 관련된 일반적 상식을 설명하고, 일반인도 약의 구성, 개발, 적용, 부작용 및 중독 등에 대한 이해를 얻음으로써 약으로 빚어지는 문제를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13쪽).
약에 관한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하지만 약이 작용하는 기작, 약의 종류 등 자칫 일반인들에게 어려울 수 있는 내용들은 별로 들어가있지 않다. 즉, 약 자체에 대한 지식을 주기보다는 일반인들로 하여금 약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몇가지 바로잡아 줄 수 있고 약과 기업, 약과 사회라는 시점에서 약의 의미와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사람의 몸은 단순계가 아닌 복잡계 (complex system)이다
각종 세포, 조직, 기관들이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고도로 복잡한 것이 사람의 몸이다. 외부 환경에 대해 여러 구성요소들이 연락을 주고 받고 서로 도와 다양하게 반응하고 적응할 수 있는 복잡한 시스템이 우리 사람의 몸이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복잡계', '네트워크'란 낱말은 모두 이런 사람의 몸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이 모든 시스템들은 병렬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경로가 막히면 다른 경로를 사용하여 시스템 전체가 갑작스럽게 작동을 멈추는 위험도를 낮출 수 있다.
동시에, 시스템 내부의 작은 변화가 무시할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하고 시스템을 이루는 각 하위 구조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성이 시스템 전체에서 새로게 나타나기도 한다. 복잡계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고위험, 고수익의 신약 개발 산업
우리 나라는 선진국에서 제조하는 대부분의 상품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신약 개발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다. 세계 시장을 점령한 독창적 신약을 개발해본 경험이 아직까지 한번도 없다. 대부분의 오랜 투자와 연구,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일단 성공하기만 하면 장기간 독점적 지위와 높은 이익이 보장되지만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워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독창적인 신약 개발은 대부분 미국을 포함하는 극소수의 선진국에서만 '독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특수 산업'이다.
하드웨어 연구 시대에서 소프트 웨어 연구 시대로
지난 50년 동안 생명과학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단백질, 핵산 등의 하드웨어를 발견하고 그 기능을 이해하는 데 집중되었다면 현재의 생명과학은 이렇게 발견된 구성 성분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이해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즉 생명 현상의 하드웨어 연구시대가 가고 소프트 웨어 연구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조합의약의 필요성
네트워크의 특성은 그 구성 부분들이 결코 고립된 섬과 같지 않다는 데 있다. 한 부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곧 그와 관련된 다른 부분에도 지속적인 부담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혈합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약물은 심장박동 완화, 혈관 확장, 이뇨작용을 통해 혈액의 압력을 다양한 경로로 낮춰준다. 피부질환으로 약을 먹어야 하는 경우에는 그 약이 위나 장에 지나친 자극을 주어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피부질환을 낫게 하는 약과 함께 위나 장을 보호해줄 수 있는 약도 함께 먹는다. 우리가 하나의 이름을 가진 질병에 대해 여러 가지 약을 먹는 이유다.
최근 인간의 유전자 지도와 단백질 및 대사 네트워크에 대한 정보가 빠르게 축적되어, 합리적 조합의약의 개발이 현실화 되고 있으며 이러한 조합의약들을 '의도적으로 개발'하려는 바이오테크 회사와 제약회사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양약과 한약
과학적인 사고와 관련해 세상을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진다. 관심의 대상을 잘게 부수어 부분들의 정체성과 그 관계를 이해함으로서 부분의 합을 통해 전체를 이해하는 '환원주의적 접근 방법', 그리고 부분의 디테일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대상의 현상 그 자체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전일주의적 관점'이다.
현대 생명과학은 생명 현상을 더욱 잘게 나누어 분석하여 그 지식을 확장시켜 왔다. 하지만 그렇게 나뉜 부분들을 다시 합치게 되었을 때 생명 현상의 실제적 상호아과는 크게 어긋나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환원주의를 방법론적 이념으로 삼는 분자생물학의 연구 기조는 개별 연구자들에게 점점 더 전문적 영역에만 집중하도록 했으며 결과적으로 생명과학자들 간의 대화의 벽을 가로막았다. 그 결과 생명에 대한 지식이 더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생명 자체에 대한 이해는 더욱 적어지는 아이러니를 낳고 말았다.
양약과 한약은 약물의 개발과 임상 적용에 있어서 기본적인 개념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최근 서양의 약물들은 개인의 유전학적, 병리적, 환경적 차이를 고려한 소위 '맞춤의약'이라는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한방에서 환자의 체질에 따라 같은 질환에도 다른 처방을 적용하는 것을 연상케 한다. 또 오랫동안 사용되어 오던 한방의 재료들로부터는 새로운 많은 약물이 분리 정제되어 서양 의약에서도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하나의 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론적 배경에서 진화해온 양방과 한방, 혹은 환원주의와 전일주의라는 두 패러다임이 그 반대의 치료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현대 의학은 발전하고 있다.
약물의 새로운 타깃 찾기
인간이 발현하는 3만여개의 기능성 단백질들은 모두 이론적으로는 어떤 종류이든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약물의 작용 대상, 즉 타깃이 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 임상적으로 상용되고 있는 수천 종의 약물들은 우리 몸의 겨우 500여 타깃에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단백질만을 고려한다면 더 적은 수다. 이것은 전체 인간 단백질의 1% 정도밖에 약물 개발에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많은 약물들이 병원이나 약국에서 환자에게 사용되고 있지만 약물 대부분은 극소수의 타깃을 겨냥하고 있으며 이 타깃들은 심각하게 남용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기전의 약물을 계속 개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질병 관련 타깃을 계속 발굴해야 한다. 이것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기적의 항암제라고 불리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다. 백혈병이 유발되는 경우 염색체 22번에 존재하는 bcr유전자가 염색체 9번에 존재하는 abl 타이로신 카이네이즈 유전자에 옮겨 붙어 변형된 bcr/abl 효소가 만들어진다. 이 변형된 효소는 늘 활성화되어 있어 세포가 조절을 벗어나 계속적으로 증식하게 된다. 글리벡은 이 효소 활성을 억제하여 암을 억제한다. 비슷한 방법으로 개발된 폐암 치료제 이레사는 실패했음도 주목해보자.
'오믹스 (Omics)' 시대의 등장
20세기생명과학은 DNA의 분자 구조를 규명한 웟슨과 크릭 이후 새명 현상을 물리, 화학과 같은환원주의적 방법으로 접근하여 발전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세분화는 총체적 이해를 어렵게 하고 생명과학자들을 자기 전문 영역에 갇혀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는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되어 가고 있다. 세포를 연구하면 개체를 알지 못하고 단백질을 연구하면 세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안과 의사는 환자의 눈만 보게 되고 산부인과 의사는 뇌 영역의 문제가 점점 생소해진다. 이런 생명과학의 비현실적인 분할 현상은 21세기에 와서 인간 유전자 지도를 완성함으로써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유전자나 단백질의 움직임을 전체적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소위 '오믹스'시대라고 하는데 생명 현상을 분할하여 연구하던 환원적 방법론으로부터 시스템적 수준에서 바라보는 전일적 관점의 연구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시스템 생물학: 시스템 관점에서 구성 인자들간에 발생하는 복잡한 상호 작용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생물학의 연구 방법.)
우리는 약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아무리 생명공학 기술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약이 드러내는 여러 한계성, 즉 내성, 부작용, 중독성 등등의 특성을 나타내지 않는 기적의 약물은 개발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명체의 기본적인 특성'에 의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명에 대해 그리고 인체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완전한 약을 개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때도 있다. 우리가 생명의 모든 비밀을 다 알아서 생명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창조한다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상황일까? 우리 몸이 이렇게 복잡한 네트워크로 되어 있는 이유가 우리 몸을 너무 쉽게 이해해 그 교만함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오류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약의 진화
흔히 우리는 '약'이라고 하면 캡슐이나 정제 형태 내지 마시는 약 등을 연상한다. 경구 투여용 약은 가장 편리한 형대다. 약의 성분이 주로 화합물이거나 혹은 천연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공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약물의 소재는 유전자, 단백질, 또 최근에는 세포호까지 확대되고 있다.
화합물에 의존하던 다국적 제약사들도 이제는 생물학적 제제를 주로 연구 개발하는 바이오테크와 손을 잡기 시작했으며 이 두 가지 연구 체제는 상호 경쟁과 협력을 통해 게속해서 인간 질병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의 치료는 3P의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개인 맞춤형 (personalized), 예방형 (preventive), 예측 가능한 방법을 찾는다 (predictive)는 의미다.
약은 육체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기력을 상실한 경우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우리는 그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를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 내부에 있는 방범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절제된 생활과 적절한 운동, 과식이나 과도한 피로를 피하는 것 등 상식 수준에서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사항들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약의 필요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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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라도 내용을 정리해본다는 것이 길어졌다. 별로 두껍지도 않은 책인데.
이 책에 담지 못한 더 많은 내용들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겉핥기 식이라는 느낌도 살짝 들었으나 그렇게 내용을 추려 담기 위해 저자는 아마도 길게 쓰는 이상의 노력을 기울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도 이 책을 쓰면서 아마 많은 것들을 되돌아볼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연구 방식이 지나치게 환원주의적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일찍 보아버렸다. 알량한 자기의 전문 분야 지식 한가지로 복잡의 극치인 생명 현상을 모두 설명하려 드는 사람들을 보고 회의가 일었다. 지금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차라리 한 분야에 그렇게 몰두하여 한 쪽의 결과를 쌓는 것이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알량한 정도나마 나의 확실한 분야를 만들었다면 그 이후 진로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