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랠프 엘리슨 <보이지 않는 인간>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거의 이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다. 나는 평생 동안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어딜가나 누군가는 내게 그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려 했었다. 나는 보통 그들의 해답을 받아들였다. 비록 그 해답들이 서로 상반되고 심지어 자체적인 모순을 안고 있는 경우도 많았지만 말이다. 나는 순진했다. 나는 나 자신을 찾고 있었던 것이며, 결국 나 자신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를 남들에게 묻고 다녔다. 나는 나 자신일 뿐 그 누구도 아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을 법한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나는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고, 그것에 대한 나의 기대는 아주 고통스러운 결과로 되돌아왔다.

 

 

오늘 읽기 시작한 랠프 엘리슨<보이지 않는 인간 1>의 1장, 첫 문단이다. 물론 앞에 프롤로그가 있기는 했지만, 많은 책 들이 시작은 대체로 주위 환경 묘사, 상황 묘사로 한참을  허비 (이런 단락 읽는 걸 지루해하는 내 개인적인 생각에서)하고 있는데 반해 이 책은 처음 부터 이런 자기 고백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것도 대번에 공감이 가는 문장으로.

어쩌면, 우리 역시 이 책의 화자처럼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 있고, 이렇게 책을 읽어대는 이유가 책 속의 주인공이 그러했듯이, 남에게 해답을 물으며 다니는 행위의 한 방식은 아닐까. 결국 나 자신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를, 남들은 뭐라고 했나 힌트를 얻으려는, 감춰진 의도가 있어서가 아닐까.

 

 

 

 

2.  이종인 <살면서 마주한 고전>

 

 

 

읽은 책은 아니고, 오늘 아침 서재 둘러보다가 책 제목이 맘에 들어 검색해본 책인데, 책 제목도 마음에 들었지만 책 속의 작은 소제목들을 보니 더 감탄하였다. 책 읽고 리뷰를 올릴 때 리뷰의 제목을 다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의 경우 책 리뷰를 올릴때 그 리뷰의 제목을 붙일때 리뷰 제목을 진지하게 생각하여 정할 때도 간혹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그때 기분과 느낌에 따라 대충 붙일때가 많은데 이 책에서 저자가 읽은 360권 책 리뷰의 제목을 붙인 것을 보니, 상투적인 제목은 단 한개도 없으면서 그 책의 내용을 잘 반영하고 있는데다가 문학적이면서 개인의 주관이 들어가있어서, 겨우 몇 단어로 이루어진 제목에서 저자의 안목과 성격이 확 들어왔다.

그래서, 이 책을 주문해버렸다!

살면서 읽은 고전들은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마주했다는 말의 의미가 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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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6-12-0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일단 담고봅니다. 좋은 책일것 같아요.

hnine 2016-12-06 22:33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 배송되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럼 아마 지금 읽고 있는 저 위의 책과 동시에 읽게 되겠지요 ^^
 

 

 

 

 

 

1. 기록적이었던 여름, 못잊을 그 여름

추위를 덜 타고 더위엔 취약한 나 같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기록적으로 더웠던 여름이었다. 아무리 땀을 줄줄 흘리고 있을지라도 선풍기도 잘 안 켜는, 곰 같은 내 버릇에도 이건 선풍기 가지고도 감당키 어려웠으니, 그래도 곰 같이 에어컨 안 사고 버틴건, 에어컨 바람이 가져다 주는 시원함 대신 치뤄야할지도 모르는 호흡기 계통 감염 같은 걸 걱정하는 건강 염려증, 기계 불신증 때문이었다.

 

 

 

 

 

2. 서양고전 100선

추석 끝나고 바로 시작하여 11월말까지, 일주일에 하루 2시간. 대학의 평생교육원에 개설된 서양고전 100선 강의를 신청하여 들었다. 어쩌다 보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사흘쯤 보내기가 다반사인 내 일상에, 일주일에 하루 서울 나들이 하는 것부터가 정신 건강에 많이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분명 문학 작품에 대한 강의인데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가 불쑥 불쑥 귀에 들어오는 한 구절이,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그 많은 물음들, 내 머리로는 혼돈만 길어질뿐 답을 못찾고 있던 그 물음들에 대해, 이게 답이라고 툭 던져지는 것 같음을 느꼈던 그 순간의 희열을 잊을 수 없다.

이미 정년 퇴직하시고 도시를 벗어나 강원도로 사모님과 함께 들어가셔서, 책 읽고, 쓰고, 밭일 하고, 닭 키우며, 더 할 수 없이 만족한 생활을 하고 계시다는 전직 영문과 교수님. 머리 희끗한, 자그마한 체구의 교수님이시지만 강의 있는 날 늘 정장 차림에 머리 손질도 단정하게 하시고 강원도 인제에서 서울까지, 5분도 늦는 일 없이 강의실에 도착하셨다. 난 그저 평생 책이나 읽으며 산 사람이라고 본인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하시는데, 나는 나중에 뭐라고 내 삶을 한줄 요약하여 말할 수 있을까.

 

 

 

 

 

3. 열 여섯살 아들과 지내는 방법

공부보다 운동을 더 좋아하고, "너는 네 컴퓨터가 무슨 인공장기냐?" 하고 내가 놀릴만큼 컴퓨터를 몸에서 떼지 않는 아들. 화장실 갈 때는 물론이고 이 닦으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는 신통한 재주를 가진 아들을 견디느라고 많이 노력했다.

옆집 아들 처럼 대해야 한다고, 흔히 사춘기 아들을 둔 집 부모들이 그러더라만, 내가 겪어보니 옆집 아들 처럼 대해야하는게 아니라 정말 내 아이는 옆집 아들, 나는 옆집 아줌마여야 한다. "처럼"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되어야 하더라는 말이다.

그게 가능하냐고 물으신다면, 그게 가능하다면 뭐가 힘들겠냐고 대답하겠다. 잘못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몇번 싫은 소리를 하긴 했지만, 적어도 노래처럼 반복하진 않으려고 노력 많이 했다. 몰라서 안하는게 아니라면 잔소리 한다고 해서 고쳐지진 않는다. 남편에게든 자식에게든, 이 세상에 잔소리처럼 영혼을 갉아먹는게 또 있으랴. 차라리 내가 옆집 아줌마가 되고 말지.

그러면서 나는 생각만 더 많아졌다. 말수가 더 줄어들었다 (시무룩...).

잔소리를 하는 것은 알고 보면 자식을 위해서라기 보다 나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감정 풀이 효과. 내공과 덕이 부족한 나 같은 사람이, 입으로 터져 나오는 말을 참고 안하려니, 그것들이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고대로 마음 한켠에 집을 짓고 있나보다. 갈수록 뭔가 딱딱한 응어리가 느껴지고 있으니.

별일도 아닌 것 같은 이것을 2016년을 정리해보면서 세번째 항목으로 쓰고 있다. 내게는 별일이 아니지 않은 것이다.

 

 

 

 

 

 

 

 

4. 세가지 쓰고 더 생각 안 날 정도로 심심하고, 동시에 무탈했다

억지로 더 꼽아보자면 없지도 않겠으나, 억지로 꼽는다는건 그저 소소한 일이었다는 의미일테니까.

남편은 남편대로 출장 명분으로 몇 차례, 아들 아이도 봉사 활동으로 필리핀 여행을, 럭비 친선 경기차 상하이 여행을 다녀왔는데, 나는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 여행 한번 다녀오지 않았다. 누가 가지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요즘은 가끔 혼자 억울해하는 어리석은 마음짓을 하고 있다. 내 여권이 만기 되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갱신을 해야했는데, 그것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이 가는 여행 수속에 부모 여권이 필요해서였다. 깨끗하고 빳빳한 채, 쓸모 없이 처박혀 있다가 갱신되고 있는 내 여권을 보는 내 심정.

 

 

 

 

그래, 심심했어. 아무 할 일이 없어 심심했던게 아니라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느라고 말이다.

하지만 무탈했잖은가. 그렇게 생각을 뒤집느라 또 애쓴다. 갈수록 생각 뒤집기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다.

말 안듣는 아들을 보며, 그래도 자식때문에 부모가 속상한게 낫지, 부모때문에 자식이 맘 아픈것보다는

시험 전날도 저녁까지 운동만 하다가 늦게 들어오는 아들을 보면, 저 나이에 시험 스트레스 안 받고 운동으로 해소해는 것만 해도 어디야.

아침에 밥을 차려줘도 굳이 시리얼을 먹겠다고 우기는 아들을 보면, 한참 성장기에 시리얼이 밥보다 좋을게 없지만 그래도 시리얼 먹으면서 우유를 매일 먹을 수 있으니 오히려 키 크는데는 더 좋을지 알아?

옷 사는데 관심이 많아서 책 보다 옷 사는게 더 좋은 아이를 보며, 그 나이때 책이 더 좋다는 것도 문제일수 있어. 적어도 나 처럼 패션감각 없는 사람이 되지는 않겠네.

매일 업데이트 되고 있는 나의 이 생각 바꾸기 (억지로). 아들만 예로 들어도 할 얘기만 해도 수두룩 한데 남편을 대상으로 해서까지 보태면 더 길어진다.

 

 

 

 

내년엔 좀 더 신나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니, 내가 그런 일들을 만들어야겠지만, 올해처럼 심심해도 뭐, 욕심내지 않으리라. 무탈한 댓가일테니까.

 

 

 

 

 

 

 

 

 

 

 

 

 

 

 

 

 

 

 

 

 

 

 

 

 

 

 

 

 

 

 

 

 

 

 

 

 

 

 

 

오늘 아침. 깨워도 안 일어나는 아들을 보고 또 옆집 아줌마가 된 나는 카메라 들고 집을 나서 오랜만에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늦게 일어나는 대신 푹 자고 일어나면 기분은 좋겠지. 더 자고 싶은데 옆에서 흔들어 깨워 일어나는 것처럼 스트레스 받는 일이 어디있겠어.'

나의 생각바꾸기는 이렇게 매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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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12-05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한 해 정리 하시는 겁니까?ㅋ
아드님이 벌써 열 여섯이 됐군요.
얼마 전 초등학교 5, 6학년이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중2병 같은 건 없나요?ㅎㅎ

사는 게 좀 심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봐야할 책들과 영화들이 산적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 더 부지런하고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건강하지 못하면 이것들을 보고 싶어도 못 볼 것 같아서,
이런 소박한 사명 같은 거 하나있으면 세상도 살만하겠다 싶어요.^^

hnine 2016-12-05 12:38   좋아요 0 | URL
한 해 정리를 할려고 한게 아닌데, 아침에 동네를 어슬렁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런데 세개 쓰고 쓸게 없어질 줄이야 ㅠㅠ
중2병인지 뭔지, 아무튼 그런 걸 경험하고 크면, 부모야 힘들겠지만 적어도 본인은 가슴에 응어리진 것 없는 어른으로 자라지 않을까, 위안 삼아요. 저 같은 경우엔 정말 부모님 말씀 거역하는일 없이 자란 경우인데, 그러고 나니 정작 어른이 되고 나니 마음에 응어리 같은게 남더라고요.
심심한게 차라리 낫다는 걸 알게 되는 나이가 어느덧 되었어요 그쵸? 어릴땐 결코 모르던 사실이지요 ^^

몬스터 2016-12-04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집 아줌마로 , 매일 생각을 업뎃하며 일상을 지내고 계시네요. 그림이 그려져요. ㅎㅎ 스트레스 푸는데는 땀흘려 운동하는게 짱! ㅎㅎ 저도 내년엔 여행을 좀 더 다니자 싶어요. 책도 좀 많이 읽고...일 때매 움직일 때는 , 택시 , 공항 , 호텔, 방문 회사만 보고 오는 경우가 90% lol

내년에도 무탈하시고 , 평온하셨으면 합니다.

hnine 2016-12-05 12:42   좋아요 0 | URL
좋은 엄마 되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 --> 옆집 아줌마 같이 아이를 대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 --> 진짜 옆집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는 중 이랍니다.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스트레스 푸는데 운동이 제일이라는데 저도 120% 동의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알면서도 운동하러 나가기 조차 싫어지는, 스트레스의 복병이 있더라는 말이지요 ㅠㅠ
일부러 여행 목적으로 다니는 것도 좋고, 일 때문에 가신다면 가신김에 일정을 쪼금 여유있게 잡아서 짬짬이 구경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무탈, 평온! 간단하니 좋네요 새해 기원으로. ^^

푸른희망 2016-12-05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으면 안되는데 글을 읽으니 자꾸자꾸 웃음이 나요
점점 무탈함이 감사하던데 아이들은 무탈함을 끔찍하게 여기더라구요
우리 내년도 다함께 무탈하길

hnine 2016-12-05 12:47   좋아요 0 | URL
자꾸자꾸 웃음이 나셨다니, 제대로 공감하셨군요!! ㅋㅋ
˝나는 일부러 교회나 절에 안다녀도 될 것 같아. 우리 집이 수행의 장소요, 도 닦는 곳이거든˝ 제가 친구에게 한 말이랍니다.
무탈함을 감사하게 여기는 아이란, 상상만 해도 좀 이상한걸요. 매일 재미를 찾아 일부러 일거리를 만드는 아이들이니까요. 며칠 전 기온이 떨어진 날씨에도 새벽에 학교 가는데 반바지를 입고 나가는 아들을 보며 ˝안 춥니?˝ 딱 한마디 하고 끝냈어요. 옆집 아줌마니까...^^

nama 2016-12-0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빳빳한 여권이 불쌍하네요. 여행도 한때이거늘...관절염이 시작된 저는 앞으로 몸 성하게 여행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도 열심히 놀 궁리만 하고 있는데요.
그리고 아이는...때가 되어서 스스로 할 마음이 들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공부를 시작하는 것 같아요. 잔소리 따위, 다 소용없는 짓이지요. 차라리 아이와 함께 여행가는 게 백배 나아요. 자식이 따라와 준다면 고맙다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hnine 2016-12-06 22:31   좋아요 0 | URL
관절염이 회복되셔야할텐데요. 여행에 대한 욕구와 의지가 있다면 설사 몸이 더 열악한 상황이 되어도 여행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듣지만 그래도 건강한 몸이면 더 좋을테니까요.
아이에 대한 생각은 저도 nama님과 동감인데 가끔 헛가릴때가 있어요. 제가 그저 방관만 하는데 대한 합리화가 아닐까 하고요. 잔소리 해서 뭐가 달라진다면 불사하고 할텐데, 잔소리한다고 달라지는게 없고 관계만 더 악화되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솔직히 공부가 저희 학생때만큼 그렇게 운명을 좌우할만큼 큰 비중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제가 말입니다 ^^).
 
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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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에 나셔서 올해 아흔 일곱이 되셨으니 백년을 살아오셨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를 지내셨고, 여러 권의 수필집을 내셨는데 그중 <영원과 사랑의 대화>라는 책 때문에 나는 이분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까마득하기만 한 중학교 1학년때 일이다. 방학이 되어 아버지께서 읽으라고 사다주신 열몇권의 책 중 한권이었는데, 김형석이라는 이름도 낯설고, 약간 촌티나는 표지에, 제목은 꼭 삼류 소설 제목 같았다. 그런데 읽어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조곤조곤, 하지만 강단있게 소신있는 삶을 살기 위한 철학자의 생각이 빈틈없이 담겨있었다. 아마 수필집을 읽어본 건 그 책이 처음 아니었나 싶다.

이후로 다른 수필집도 몇권 읽었으나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분이 벌써 백년을 살아보니 라는 책을 내실 정도로 연로하셨구나, 신간 소식을 듣고 감회가 깊었다. 무슨 내용이 담겨있을까 궁금하면서 또 궁금하지 않기도 했다. 그동안 출간된 책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것이고, 백세가 거의 다되신 철학자라면 뭔가 다른 내용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때문에 궁금하기도 한것이다.

 

부모는 욕심보다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보다 귀한 것은 자녀들의 일생을 위한 사랑이다. (107)

 

이 문장 뿐 아니라 이 책 전체에서 키워드를 뽑으라면 <사랑>이라고 말하겠다. 수십년전 내가 처음 읽은 그의 수필집에서처럼, 백세가 다 된 지금도 여전히 그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의 인생을 변함없이 관통하고 있는 중심어, 지금은 흔해 빠진 단어가 되어 버린 사랑.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노라고 여전히 말하고 있다. 그 자신이 여섯 자녀를 키워낸 부모였다. 하나 낳아 겨우 키워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 비하랴. 여섯을 키워내셨다면 일단은 귀기울여 들을 일이다.

 

카네기의 말이 있다. "내가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는 부자였다'는 말이다." (195)

 

많이 가진게 자랑거리가 되고, 못가진걸 스스로 비하하는, 이 사회가 싫다. 많이 가진 거 자랑하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사실 못가졌다고 스스로 움츠려들고 떳떳하지 못하게 행동하는 사람, 아니 사람이 아니라 그 사고 방식이 싫다. 카네기는 누가 뭐래도 부자 맞지만, 부자가 삶의 목표 자체는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벌어들인 많은 재산을 어디에 어떻게 베풀고 살았는가, 그것이 삶의 목표였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노년기는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보통 65세 부터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와 내 가까운 친구들은 그런 생각을 버린지 오래다.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233)

 

동의합니다! 성장한다는 것은 배움에 대한 욕구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내 생각을 한군데 가둬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르려 하지 않고 품을 줄 안다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대할 수 있다면 그것이 존경받는 노년기 인생이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274)

 

나이 들수록 마음에 안드는 것이 더 많아지고,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예를 많이 본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책을 많이 읽어 생각과 마음이 더 넓어 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기존의 생각 굳히기용으로 책을 읽는 것을 많이 본다.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한 벽은 점점 두터워지고 내 생각은 점점 더 외곩수로 흐른다. 그런데, 나이 들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려면 어떤 길을 통해야하는지.

 

자기의 본분을 잊지 않고, 어긋나지 않는 길을 쉼없이 걸으며, 일관성 있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매일 징징거리며 살고 있는 내게는 일침이 된다. 그냥 숙연해진다.

 

또 다음 책도 내실 수 있기를,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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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16-11-21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며칠 지났지만 생일 축하해~~~
스마트 폰이면 카톡 메시지를 보낼수 있을건데,
문자를 보낼수 없어서
네 글 올라오면 남겨야지 그러고 있었어 ㅎ
잘 지내고~~
내 거처가 결정되면 또 연락할게.

hnine 2016-11-21 22:07   좋아요 0 | URL
네 거처가 어떻게 결정될지 나도 궁금해.
빨리 12월이 되었으면!
 
[세트] 군함도 세트 - 전2권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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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어느날, 작가는 도쿄의 한 고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작은 책 한권을 만난다. 그때까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 책 내용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그는 다음해 여름 강제징용과 피폭과 관련된 이 책 내용을 직접 취재하기 시작한다. 이 책 <원폭과 조선인>의 저자는 물론이고 그 당시 원폭피해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장소를 답사하고, 묻혀있던 서류의 발견하는 등 자세한 조사를 토대로 이 소설 <군함도>가 탄생한다.

하지만 이 소설이 2016년 올해에서야 우리 앞에 나오기까지 2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음을 보고 짐작할 수 있듯이 우여곡절을 거쳐야했다. 다른 제목으로 몇번 출판이 되었다가, 개정, 축약, 번역 등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올해 <군함도>라는 제목으로 두권짜리 한국어판 장편소설이 출판된 것이다.

우리에게 이 군함도 (단도 端島, 하시마)의 강제징용 역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어이없게도 일본이 이 군함도를 일본 산업혁명 유산으로서 일본의 다른 유적 스물 두곳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지정을 신청, 2015년에 결국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고부터이다.

일본에 가본 적이 없어 지도에서 하시마섬의 위치를 찾아보니 한반도 남쪽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거의 마주 보고 있다 싶을 정도로 가까운 곳, 나가사키 항에서 배를 타고 30여분 되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 1년. 지금은 가이드가 동행하는 관광 코스도 여럿 개발되어 있고 기념품까지 판매되고 있다지만 이 섬 어디에도 강제징용 관련 표지판 하나 없고, 가이드 설명 중에도 언급이 없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그저 자기네 나라 산업혁명의 유적지로서 가치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기억되면 되는 곳이다.

작가 한수산의 눈에 뜨여 이렇게 소설로 작품화 되어 나온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이 소설은 자료 조사부터 문학 작품화까지, 많은 노력과 정성이 보이는 작품이다. 어느 한 사람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지 않은 대신 각기 다른 배경과 신분을 가진 여러 사람을 등장시켰고,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운명으로 묶여 피눈물의 세월을 보내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 피눈물 세월은 끝을 보는가? 끝이 있긴 했지만 그건 또다른 비극의 시작,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에 의한 것이니 그것을 끝이라고 해야하나 또다른 시작이라고 해야하나.

 

작가 한수산. 중학생일때,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 책장에서 <부초>라는 제목의 그의 소설을 살금살금 훔쳐 읽던 것이 처음이다. 그리고 활발히 작품을 내던 그가 어느 날 절필 선언을 하고 잠적해버렸다. 1988년 소위 한수산 필화 사건. 당시 그가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소설에 전두환과 정부와 군을 모욕하는 내용을 썼다는 이유로 영문도 모른채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나온 사건이었고 그후 그는 절필 선언을 하고 이 나라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주 오랜만에 그의 소설을 읽는 감회가 새로왔다. 올해 칠순이 된 노련하고 원숙한 작가의 필력이 펄펄 살아있다. 생동감 넘치는 구성, 지루할 틈 없는 전개, 소설을 위한 자료 조사가 자칫 논픽션처럼 보일 수 있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서정과 서사의 이러한 균형은 아무나 작품 속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게 아닐 것이다.

들으니 이 소설이 곧 영화로도 만들어질 모양인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놓치지 않고 볼 것이다.

그리고 짐작해본다. 군함도처럼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역사가 어디에선가 우리의 관심이 그들을 발견해주길 애타게 기다리며 묻혀 있을지 모른다고. 울컥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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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6-11-0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어야겠군요.

hnine 2016-11-07 12:32   좋아요 0 | URL
작가에게도 이 소설은 각별한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우리는 이름도 못 들어보던 작은 섬을 일본에서는 뻔뻔하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 알리는 동안 우리는 무얼하고 있었을까요.
곧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는데 송중기가 나온다는 것 같아요 ^^

stella.K 2016-11-07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한수산 작가에게 그런 사건이 있었나요?
전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그렇지 않아도 이 활발한 작가가 왜 글을 안 쓰고 있나 궁금했었는데
님의 페이퍼에서 그 의문이 풀렸네요.

저는 군함도가 자꾸 김진명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요?ㅠㅠ
제목이 뭔가 김진명스럽지 않습니까?ㅋ
부초 함 읽어보고 싶네요.

옛날에 한수산 작가 무슨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는데
지금은 그도 세월을 비껴갈 수 없더군요.
그래도 뭐 여전히 멋있는 것 같긴합니다.ㅋ

hnine 2016-11-07 14:50   좋아요 0 | URL
필화 사건의 계기가 된 신문 연재 소설이 <욕망의 거리>인가? 그랬어요. 저희 집에서 그 신문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저도 뜨문뜨문 읽고 있었지요. 글쓰는 작가가 절필을 선언할땐 얼마나 충격과 고통이 심했으면 그랬을까요.
김진명 작가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쓴 사람 맞나요? 대통령 저격 사건이던가요? 이 책도 당시 베스트 셀러였는데 저도 원래 이런 류의 소설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서 읽었는지 내용만 알고 있는지, 헛갈리네요.
부초는 제가 중학생때 읽었으니까 아주 오래된 소설이고 군함도는 올해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랍니다 ^^
군함도 제목이 김진명 스럽...ㅋㅋ 맞네요. 한수산이라는 이름과는 아무튼 안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김형석 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를 읽었다.

구십칠세 되셨으니 백년이라고 해도 무방한 연세이시다.

백년을 살아오시며 얼마나 많은 일을 겪어 오셨을까. 무슨 내용의 글이건 우선 숙연해지고 입보다 귀를 크게 열어놓고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읽기 시작해서 이틀을 넘기지 않고 다 읽었다. 어느 페이지에도 자극적이고 화려한 문장이나 내용이 없었다.

리뷰를 쓰려고 앉았다가 딴짓거리 중 우연히 1985년에 바바라 월터스가 안젤라 랜스베리 (Angela Lansbury, 우리에게 TV 외화 제시카 추리극장으로 알려져있는) 를 인터뷰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안젤라 스스로 자신을 easy-going woman 이라고 했고, 우리에게도 유쾌, 발랄, 총기 넘치는 인상을 주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나도 저렇게 나이들면 좋겠다고, 저 나이에도 심각한 얼굴 대신 저렇게 밝고 웃음이 가시지 않는, 무엇보다도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그런 할머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그녀가 바바라 월터스와의 인터뷰 도중 갑자기 눈물이 맺히며 말을 잇지 못한다. 아들이 십대일때 약물 중독으로 무척 위험하고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그 시기를 어떻게 넘겨왔는지 말하던 중이었다.

구십 칠세의 김형석 교수도, 구십 일세된 안젤라 랜스베리도 (1925년생), 그들이 살아온 세월만으로도 일단 존경스럽다. 외부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든 알고 보면 얼마나 많은 인생의 산을 넘었겠는가. 얼마나 성공적인 인생인가 하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존경을 받을만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하는 말은 어쩌면 귀보다 가슴으로 듣게 되는 것 같다.

 

 

11월의 해는 벌써 진지 오래. 커튼 치며 보니 밖은 이미 깜깜한데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종일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질 않았다. 더 늦기 전에 마트라도 다녀와야겠다고 밖으로 나왔다.

사과를 사고, 보리차, 과일세척용 베이킹 소다, 몇가지 채소를 담았더니 장바구니가 묵직하다.

아주 천천히 걸어오다가 꽃집으로 들어갔다.

장미를 샀다. 딱 한 송이.

그랬는데도 서늘한 마음, 휑한게 가시지 않는다.

 

 

뭐,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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