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를 읽었다.

구십칠세 되셨으니 백년이라고 해도 무방한 연세이시다.

백년을 살아오시며 얼마나 많은 일을 겪어 오셨을까. 무슨 내용의 글이건 우선 숙연해지고 입보다 귀를 크게 열어놓고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읽기 시작해서 이틀을 넘기지 않고 다 읽었다. 어느 페이지에도 자극적이고 화려한 문장이나 내용이 없었다.

리뷰를 쓰려고 앉았다가 딴짓거리 중 우연히 1985년에 바바라 월터스가 안젤라 랜스베리 (Angela Lansbury, 우리에게 TV 외화 제시카 추리극장으로 알려져있는) 를 인터뷰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안젤라 스스로 자신을 easy-going woman 이라고 했고, 우리에게도 유쾌, 발랄, 총기 넘치는 인상을 주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나도 저렇게 나이들면 좋겠다고, 저 나이에도 심각한 얼굴 대신 저렇게 밝고 웃음이 가시지 않는, 무엇보다도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그런 할머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그녀가 바바라 월터스와의 인터뷰 도중 갑자기 눈물이 맺히며 말을 잇지 못한다. 아들이 십대일때 약물 중독으로 무척 위험하고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그 시기를 어떻게 넘겨왔는지 말하던 중이었다.

구십 칠세의 김형석 교수도, 구십 일세된 안젤라 랜스베리도 (1925년생), 그들이 살아온 세월만으로도 일단 존경스럽다. 외부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든 알고 보면 얼마나 많은 인생의 산을 넘었겠는가. 얼마나 성공적인 인생인가 하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존경을 받을만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하는 말은 어쩌면 귀보다 가슴으로 듣게 되는 것 같다.

 

 

11월의 해는 벌써 진지 오래. 커튼 치며 보니 밖은 이미 깜깜한데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종일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질 않았다. 더 늦기 전에 마트라도 다녀와야겠다고 밖으로 나왔다.

사과를 사고, 보리차, 과일세척용 베이킹 소다, 몇가지 채소를 담았더니 장바구니가 묵직하다.

아주 천천히 걸어오다가 꽃집으로 들어갔다.

장미를 샀다. 딱 한 송이.

그랬는데도 서늘한 마음, 휑한게 가시지 않는다.

 

 

뭐,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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