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군함도 세트 - 전2권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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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어느날, 작가는 도쿄의 한 고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작은 책 한권을 만난다. 그때까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 책 내용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그는 다음해 여름 강제징용과 피폭과 관련된 이 책 내용을 직접 취재하기 시작한다. 이 책 <원폭과 조선인>의 저자는 물론이고 그 당시 원폭피해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장소를 답사하고, 묻혀있던 서류의 발견하는 등 자세한 조사를 토대로 이 소설 <군함도>가 탄생한다.

하지만 이 소설이 2016년 올해에서야 우리 앞에 나오기까지 2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음을 보고 짐작할 수 있듯이 우여곡절을 거쳐야했다. 다른 제목으로 몇번 출판이 되었다가, 개정, 축약, 번역 등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올해 <군함도>라는 제목으로 두권짜리 한국어판 장편소설이 출판된 것이다.

우리에게 이 군함도 (단도 端島, 하시마)의 강제징용 역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어이없게도 일본이 이 군함도를 일본 산업혁명 유산으로서 일본의 다른 유적 스물 두곳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지정을 신청, 2015년에 결국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고부터이다.

일본에 가본 적이 없어 지도에서 하시마섬의 위치를 찾아보니 한반도 남쪽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거의 마주 보고 있다 싶을 정도로 가까운 곳, 나가사키 항에서 배를 타고 30여분 되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 1년. 지금은 가이드가 동행하는 관광 코스도 여럿 개발되어 있고 기념품까지 판매되고 있다지만 이 섬 어디에도 강제징용 관련 표지판 하나 없고, 가이드 설명 중에도 언급이 없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그저 자기네 나라 산업혁명의 유적지로서 가치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기억되면 되는 곳이다.

작가 한수산의 눈에 뜨여 이렇게 소설로 작품화 되어 나온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이 소설은 자료 조사부터 문학 작품화까지, 많은 노력과 정성이 보이는 작품이다. 어느 한 사람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지 않은 대신 각기 다른 배경과 신분을 가진 여러 사람을 등장시켰고,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운명으로 묶여 피눈물의 세월을 보내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 피눈물 세월은 끝을 보는가? 끝이 있긴 했지만 그건 또다른 비극의 시작,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에 의한 것이니 그것을 끝이라고 해야하나 또다른 시작이라고 해야하나.

 

작가 한수산. 중학생일때,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 책장에서 <부초>라는 제목의 그의 소설을 살금살금 훔쳐 읽던 것이 처음이다. 그리고 활발히 작품을 내던 그가 어느 날 절필 선언을 하고 잠적해버렸다. 1988년 소위 한수산 필화 사건. 당시 그가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소설에 전두환과 정부와 군을 모욕하는 내용을 썼다는 이유로 영문도 모른채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나온 사건이었고 그후 그는 절필 선언을 하고 이 나라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주 오랜만에 그의 소설을 읽는 감회가 새로왔다. 올해 칠순이 된 노련하고 원숙한 작가의 필력이 펄펄 살아있다. 생동감 넘치는 구성, 지루할 틈 없는 전개, 소설을 위한 자료 조사가 자칫 논픽션처럼 보일 수 있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서정과 서사의 이러한 균형은 아무나 작품 속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게 아닐 것이다.

들으니 이 소설이 곧 영화로도 만들어질 모양인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놓치지 않고 볼 것이다.

그리고 짐작해본다. 군함도처럼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역사가 어디에선가 우리의 관심이 그들을 발견해주길 애타게 기다리며 묻혀 있을지 모른다고. 울컥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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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6-11-0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어야겠군요.

hnine 2016-11-07 12:32   좋아요 0 | URL
작가에게도 이 소설은 각별한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우리는 이름도 못 들어보던 작은 섬을 일본에서는 뻔뻔하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 알리는 동안 우리는 무얼하고 있었을까요.
곧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는데 송중기가 나온다는 것 같아요 ^^

stella.K 2016-11-07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한수산 작가에게 그런 사건이 있었나요?
전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그렇지 않아도 이 활발한 작가가 왜 글을 안 쓰고 있나 궁금했었는데
님의 페이퍼에서 그 의문이 풀렸네요.

저는 군함도가 자꾸 김진명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요?ㅠㅠ
제목이 뭔가 김진명스럽지 않습니까?ㅋ
부초 함 읽어보고 싶네요.

옛날에 한수산 작가 무슨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는데
지금은 그도 세월을 비껴갈 수 없더군요.
그래도 뭐 여전히 멋있는 것 같긴합니다.ㅋ

hnine 2016-11-07 14:50   좋아요 0 | URL
필화 사건의 계기가 된 신문 연재 소설이 <욕망의 거리>인가? 그랬어요. 저희 집에서 그 신문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저도 뜨문뜨문 읽고 있었지요. 글쓰는 작가가 절필을 선언할땐 얼마나 충격과 고통이 심했으면 그랬을까요.
김진명 작가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쓴 사람 맞나요? 대통령 저격 사건이던가요? 이 책도 당시 베스트 셀러였는데 저도 원래 이런 류의 소설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서 읽었는지 내용만 알고 있는지, 헛갈리네요.
부초는 제가 중학생때 읽었으니까 아주 오래된 소설이고 군함도는 올해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랍니다 ^^
군함도 제목이 김진명 스럽...ㅋㅋ 맞네요. 한수산이라는 이름과는 아무튼 안 어울리는 제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