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 같은 꿈을 단념시킬 수는 없어서

구멍난 속옷 하나밖에 없는 커다란 여행가방처럼

종자로 쓸 녹두자루 하나밖에 아무것도 없는 뒤주처럼

그믐 달빛만 잠깐 가슴에 걸렸다 빠져나가는 동그란 문고리처럼

나는 공허한 장식을 안팎으로 빛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산을 보곤 하는 것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

저 빈 잔디밭을 굴러가는 비닐봉지같이

비닐봉지를 밀고 가는 바람같이 외로운 줄은 알았어도

알았어도

다시 외로운,

새로 모종한 들깨처럼 풀없이 흔들리는

외로운 삶

 

 

은하수야 새털구름아 어디만큼 가느냐

배거번드 (vagabond) 처럼 함께 흐르고 싶다

만돌린처럼 외로운 삶

고드름처럼 외로운 삶

 

 

 

 

= 장석남 시 <자화상> 전문 =

 

 

 

 

 

 

 

 

 

 

 

 

(서른 넷에 이런 시를 쓰다니

사람 마음이 꼭 생물학적인 나이대로 익어가는 것은 아닌가보다.

 

첫째연 굵은 글씨체 부분은 시인 자신을 비유했다고 생각되어 표시해본 것이다.

저 구절을 위해 시인은 언어의 바다 속을 짧지 않은 시간 헤엄쳐 다니지 않았을까?

여행가방. 그 안엔 속옷만 그것도 구멍난 속옷만 들어있는, 텅 비다시피 한 가방이고,

뒤주. 쌀이 가득 들어있는 뒤주가 아니라 밑천 종자로 쓸 녹두만 겨우 들어있는 뒤주이고,

문고리. 안이 비어있어 형체없는 달빛만 가끔 잠시 (겨우 그믐에만) 지나가고 마는 문고리이다.

 

단념시키지 못할 무쇠같은 꽃이

사람들 마음속 저마다 있을텐데

잊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비알 흙이

노랗게 말라 있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푸석푸석 들떠 있다

 

저 밭의 마른 겉흙이

올봄 갈아엎어져 속흙이 되는 동안

낯을 주고 익힌 환한 기억

땅속에서 조금씩

잊는 동안

 

축축한 너를,

캄캄한 너를,

나는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나

슬픔이라고 불러야 하나

 

 

 

= 고영민 시 <내가 갈아엎기 전의 봄 흙에게> 전문 =

 

 

 

 

 

 

(흙을 갈아엎는 일을 두고 이런 여릿하고 따뜻한 생각을 할수 있다는 것도 감동적인데,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글자로 형상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부럽기 그지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8-02-24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씨가 편안하고 읽기 좋은 느낌이예요.^^
hnine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hnine 2018-02-25 07:36   좋아요 1 | URL
언젠가 고영민 시인의 시를 올렸더니 아는 분이라시며 댓글을 달아주셨던 알라디너분 생각이 나네요. 지금은 뜸하셔서 더 생각이 나요.
시인들은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눈이 또 하나 있는 것 같아요.
 

 

 

 

 

 

 

 

 

 

사흘 밤낮 꼬박 시를 쓰고 나서야 밥솥에 쌀을 안치고

김 모락모락 나는 밥솥을 바라보았다는 시인의 후기를 밥보다 먼저 떠 넣는다.

절망 없이 시를 만나고 눈물없는 연애를 꿈꾸고 기도 없이 천국에 이르려는 자의 얼굴이 호마이카 밥상에 비친다.

허기 없이 밥 먹은 지 사십 년 가까우니 나는 수십 마지기 논 하나 삼켜버린 셈이다.

앉은뱅이 밥상아, 아무래도 나는 잘못 살아왔다. 네 앞에서 끼니때마다 무릎 꿇는 게 아니었다.

가뭄 든 논바닥보다 더 가리가리 속을 쩍쩍 가르고서야 너를 만나야겠다.

안 되면 쟁기질로 생땅이라도 갈아엎고서 네 앞에 앉아야겠다.

우리 다시 생각해 봐 잠시 헤어져서 지내봐 … 간절함도 없이 너무 오래 사랑했잖아, 우리.

 

 

= 김해민 시 <절교선언> 전문 =

 

 

 

 

( 더 딱 달라붙기 위해 하는 절교선언이구나.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8-02-22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트가 알라딘 다이어리 데일리 네요. 처음에는 줄 노트에 쓰신 줄 알았어요. 저도 이렇게 글씨를 잘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hnine님 좋은하루되세요.^^

hnine 2018-02-23 06:41   좋아요 1 | URL
쓰지 않은 해 지난 다이어리가 몇권 남아있어서 써보았어요.
음식을 꼭꼭 씹어 먹듯이, 꼭꼭 새기고 싶은 글은 입 대신 손으로 꼭꼭 눌러써보고 싶어져서요.
글씨는 써니데이님이 저보다 훨~씬 예쁘게 쓰십니다 ^^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작가수업 1
김형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형수라는 작가는 전자책으로 다운받아놓고 아직도 다 읽지 못한 소설 <조드>라는 소설로 처음 알게 되었다.

몽골의 테무친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방대한 양의 방대한 공간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소설이라거,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구입해서 읽어야겠다는 핑계로 밀어놓고있다가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삶이 언제 예술이 되는가>라는 제목이 진지하고 다소 무거워보이는데 비해 내용은 꼭 무겁지만은 않았다. 아마 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도 독자에 포함시켜 이해하기 쉽게 하자는 의도가 있었던 듯 하다.

제목에서 부터 삶과 예술은 서로 다른 분야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그렇게 평소에 알고 있기도 했는데, 제목을 더 들여다보면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예술이 삶을 소재로 하고 있고, 삶과 분리된 예술은 상상하기 어렵다면 그럼 모든 삶이 예술로써 이야기 될 수 있는가?

어떤 삶을 예술 작품, 특히 문학으로 작품화할수 있으려면 어떤 요소들이 필요한가.

 

문학은 성격 창조를 통해서 인간 문제에 답한다. 성격 창조에 실패한 작품을 문학사적 지평 위에서 논할 수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문학의 인간학적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살아있는 성격을 그리는게 문학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앞으로 창작 활동에서 숱한 방황을 거듭하게 된다. 어떤 작가가 창조하여 세상에 던진 인간형이 당대 사회의 곤혹과 딜레마를 관통 하는가 그렇지 못 하는가를 묻는 것만큼 중요한 질문은 없다. 다른 요소들의 뛰어남은 그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68쪽)

이 책에서 제일 중요한 한 대목을 꼽으라면 위에 인용한 부분을 꼽겠다. 문학은 인간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구체적인 성격 창조 없이 어떻게 삶을 얘기하겠는가.

 

글을 쓴다는 행위가 우리에게 주는 미덕은 무엇일까.

글쓰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놀라운 측면은 글 쓰는 행위 안에 세계를 인식하는 기능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말로 설명할 때 그것의 맥락을 발견하게 되고, 글로 표현할 때 더 명료하게 아주 현장 검증을 하듯이 이해하게 된다. (74쪽)

글쓰기는 곧 '현장 검증'이라는 명쾌한 비유.

 

그렇다면 예술과 오락의 경계를 짓는 '형상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형상화는 예술 언어의 필요조건이다. 형상화의 목적이 성격 창조에 맞춰지면 예술이고, 오락적인 기능만 하고 있으면 예술이 아닌 것이다. (114쪽)

여기서 '형상'이란 바깥으로 드러난 모양을 말하는 것인데, 형상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추상'이 아니라 '개념'이라고 앞에서 미리 설명해놓았다 (101쪽). 요즘 비어적인 표현으로 '느낌적인 느낌'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이런 느낌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표현하여 드러내는 것을 '형상화'라고 한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형상화한다고 해서 모두 예술이 아니라, 그것의 목적이 성격 창조에 맞춰질때 예술이 된다는 것이다. 조금 어려운 말이다. 형상화하는 방법으로 음악은 소리를 사용하고, 문학은 문자를 이용한다. 문자를 이용해 세계의 형상을 그리고 인간형을 창조하는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 한 예로서 저자는 송기원의 작품 <월행>을 들어 설명했다. 월행이란 달밤에 걷는 걸 뜻하는데 좌익활동을 하여 온 가족이 몰살당하게 한 사내가 나중에 몰래 성묘를 가는 풍경을 그리고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 작가 송기원은 단 한 글자도 이데올로기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 그것을 전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스토리텔링을 들 수 있는데, 스토리텔링이 전부가 아니라 여기에 성격 창조, 인간형 창조가 들어가야 문학이다. 게임스토리가 문학이 될 수 없는 이유이고, 위에 인용한 오락적 기능만 하고 있는 형상화는 예술이 아니라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외, 짤막하나마 절묘한 비유들이 여기 저기 많았는데, 정서불안이 생기는 것을 서정이라고 한다며, 조금 다듬어서 말하자면 객관 세계에 의하여 환기된 감정, 이것이 바로 서정이라고 한다고 했다. 또한, 서사적 방식이란 단일한 상황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끝없이 변화 발전하는 상황을 연결시켰을 때에만 통하는 전달 방식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래서 서사의 핵심은 '우여곡절'이라고. 그래서 세상사의 곡절들을 잘 읽고 그리는, 또 그것에 실감을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 서사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했다.

 

이 책과 짝으로 읽을만한 저자의 또다른 책으로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가 있다. 아마도 저자의 소설 <조드>를 마저 읽는게 더 먼저일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그 소설이 매우 여러번 떠올랐으므로.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라디오 2018-02-21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감명깊게 읽었어요^^

hnine 2018-02-21 23:43   좋아요 1 | URL
고양이라디오님, 이분 소설 <조드>도 혹시 읽어보셨나요? 전 그 책 읽다가 스케일하며 문체, 서사가 만만히 읽을 수준이 아니기에 읽다가 멈춘 상태라서 이 책도 읽기 전에 좀 망설였었어요. 읽기에 너무 무거운 내용일까봐요. 그런데 아주 이해하기 쉽게 쓰셨더라고요. 비유도 잘 하시면서요. 소설도 혹시 안읽으셨다면 권해드려요. 저도 다시 읽어보려고 해요.

고양이라디오 2018-02-21 23:52   좋아요 0 | URL
전 반대로 이 책을 읽고 <조드>를 접했습니다. 조금 읽다가 다른 책들에 밀려서 보류해둔 상태입니다. 다시 읽어보고 싶으면서도 큰 동기는 생기지 않아서 계속 보류상태입니다ㅎ

같이 다시 읽어볼까요ㅎㅎ?

hnine 2018-02-22 07:21   좋아요 1 | URL
예, 읽다가 말기엔 너무 아까운 소설입니다.
읽고 나면 몽골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것 같아요.
 

 

 

 

 

 

눈온것도 모르고 자기 전에 한바뀌 휘 돌자고 나갔던 어느 날 밤.

저렇게 하얗게 눈이 덮이도록 나는 그것도 모르고 집안에서 뭐했대...

 

이제 다음 겨울이 올때까지 눈은 또 안오겠지?

 

 

 

 

 

 

 

 

 

지난 주말 오후, 동네 한바퀴 돌고 있는데 앞서 가던 남편이 외친다.

"폭포가 얼었다!"

폭포라고 하기엔 규모가 작지만 떨어지는 물이 얼어있으니 폭포는 폭포이다.

문득 폭포가 어는 과정이 궁금하다.

계속 떨어지고 있는, 움직이는 물이 어는 과정이란 어떨까.

 

 

 

 

 

지금 우리 아파트가 있는 곳에서 조금 나가보면 사람이 사는지 안사는지 모르는 지역이 나온다.

개발 소식이 돌면서 대부분의 주택이 철거되었거나 철거중이고, 그 와중에 보상을 바라고 변변찮게 지어진 가건물, 허물어져 내린 담벽만 남은 집, 생활 쓰레기 더미 등, 분위기가 묘한 곳이다. 

 

어슬렁어슬렁 걸어 지나가다보면 사람은 거의 안보이는데 여기 저기서 개소리만 컹컹 들린다.

내가 지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저 개.

저렇게 빤히 바라볼뿐 짖지도 않았다.

 

 

 

 

 

 

한때 어느 꼬마의 단짝이 되어주었을 자전거.

 

 

 

 

 

 

낮은 지붕의 집과 수직으로 뻗은 나무가 마치 좌표의 X축과 Y축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때문에 찍은 사진은 아니고, 오랜만에 본 연탄을 담기 위해서였다.

하얗게 연소된 연탄.

'전 제 할일 다 했습니다.' 라고 하는 것 같다.

 

 

 

 

 

 

 

 

 

 

아들한테 밥 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전기밥솥은 사용하지 않으니 압력밥솥으로.

이런 것도 기념사진이라고 찍고 싶어하는 건 엄마라는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밥보다 쉬운 우동 끓이는 방법은 아들이 초등학생때 가르쳐주었는데, 그때 우동 포장지에 써있는대로 물의 분량을 보여주느라고 계량컵을 사용해서 보여주었더니, 열여덟살이 된 지금도 아들은 우동 끓일때 꼭 계량컵으로 물을 재서 넣는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8-02-21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연탄 떼는 집이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옛 생각도 나고 그러네요.

아드님한테 밥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군요.
잘하셨습니다.
그 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있어야죠.^^

hnine 2018-02-21 14:42   좋아요 0 | URL
그럼요, 밥하기는 기본이죠.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요.
기회가 왔을때 바로 가르쳐 주고 싶어서 쌀을 불리는 시간을 생략하고 씻어서 바로 했는데 그래도 밥이 먹을만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불리지 않고 밥해보긴 처음이거든요 (저도 참 고지식~ ^^)
연탄을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도 하고, 사람들 기억속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저 연탄에 의존했던 지난날이 떠오르기도 해서 남편이랑 한참 옛날 이야기를 했답니다. 연탄가스 마시고 동치미 국물 마셨던 추억도 빼놓을 수 없지요 ^^

책읽는나무 2018-02-21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량컵을 아직도 사용하는 아드님의 모습이 귀엽습니다ㅋㅋ
하지만 지금은 밥도 앉히고!!!!
다 키우셨네요^^
어느 날 지인과 저녁 맞춤 시간에 집에 급히 들어가는데 지인은 이제 중1짜리 아들한테 밥 좀 밥솥에 앉혀 달라고 전화하는 소리에 좀 놀랐던 적 있었어요.
그때 나도 아들 밥 하는걸 가르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잊고 있었네요^^

밥이 찰지면서 고슬고슬 맛나 보이네요^^

hnine 2018-02-22 07:24   좋아요 0 | URL
처음에 어떻게 배우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요리는 창의다! (창의력을 키우는데 짱이다) --> 평소 제 주장이랍니다 ^^
요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누가 차려주지 않으면 제대로 한끼 식사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될것 같아서요.
사진 속의 저 밥은 바로 아들 뱃속으로 다 들어갔기때문에 저는 맛을 못봤지만 보기엔 괜찮아보이죠? ^^

2018-03-06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7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