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밤낮 꼬박 시를 쓰고 나서야 밥솥에 쌀을 안치고
김 모락모락 나는 밥솥을 바라보았다는 시인의 후기를 밥보다 먼저 떠 넣는다.
절망 없이 시를 만나고 눈물없는 연애를 꿈꾸고 기도 없이 천국에 이르려는 자의 얼굴이 호마이카 밥상에 비친다.
허기 없이 밥 먹은 지 사십 년 가까우니 나는 수십 마지기 논 하나 삼켜버린 셈이다.
앉은뱅이 밥상아, 아무래도 나는 잘못 살아왔다. 네 앞에서 끼니때마다 무릎 꿇는 게 아니었다.
가뭄 든 논바닥보다 더 가리가리 속을 쩍쩍 가르고서야 너를 만나야겠다.
안 되면 쟁기질로 생땅이라도 갈아엎고서 네 앞에 앉아야겠다.
우리 다시 생각해 봐 잠시 헤어져서 지내봐 …… 간절함도 없이 너무 오래 사랑했잖아, 우리.
= 김해민 시 <절교선언> 전문 =
( 더 딱 달라붙기 위해 하는 절교선언이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