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밤낮 꼬박 시를 쓰고 나서야 밥솥에 쌀을 안치고

김 모락모락 나는 밥솥을 바라보았다는 시인의 후기를 밥보다 먼저 떠 넣는다.

절망 없이 시를 만나고 눈물없는 연애를 꿈꾸고 기도 없이 천국에 이르려는 자의 얼굴이 호마이카 밥상에 비친다.

허기 없이 밥 먹은 지 사십 년 가까우니 나는 수십 마지기 논 하나 삼켜버린 셈이다.

앉은뱅이 밥상아, 아무래도 나는 잘못 살아왔다. 네 앞에서 끼니때마다 무릎 꿇는 게 아니었다.

가뭄 든 논바닥보다 더 가리가리 속을 쩍쩍 가르고서야 너를 만나야겠다.

안 되면 쟁기질로 생땅이라도 갈아엎고서 네 앞에 앉아야겠다.

우리 다시 생각해 봐 잠시 헤어져서 지내봐 … 간절함도 없이 너무 오래 사랑했잖아, 우리.

 

 

= 김해민 시 <절교선언> 전문 =

 

 

 

 

( 더 딱 달라붙기 위해 하는 절교선언이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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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2-22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트가 알라딘 다이어리 데일리 네요. 처음에는 줄 노트에 쓰신 줄 알았어요. 저도 이렇게 글씨를 잘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hnine님 좋은하루되세요.^^

hnine 2018-02-23 06:41   좋아요 1 | URL
쓰지 않은 해 지난 다이어리가 몇권 남아있어서 써보았어요.
음식을 꼭꼭 씹어 먹듯이, 꼭꼭 새기고 싶은 글은 입 대신 손으로 꼭꼭 눌러써보고 싶어져서요.
글씨는 써니데이님이 저보다 훨~씬 예쁘게 쓰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