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가 매우 차분하고 꼼꼼하고 실수 잘 안할거라 오해한다. 나는 그리 차분하지도 않으며, 시작은 꼼꼼하게 출발했다가 곧 대충 마무리 짓는 적이 많으며 (내가 미술을 잘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얼마나 덜렁거리는지 모른다. 그래서인가, 병원도 내과보다는 치과와 (어릴때 사탕을 너무 좋아해서) 외과를 많이 다녔던 것 같다.

스물 몇살, 아직 학교에 있을 때인데 어느 주말 저녁. 친구를 만나서 저녁을 먹으러 지하의 어느 레스토랑으로 내려가던 중 뒤에 오는 친구를 돌아보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넘어지면서 왼쪽 무릎이 금속 계단 참에 찍히고 말았다. 찍힌 정도가 좀 심해서 그야말로 속의 뼈가 다 보일정도로 크게 다쳤다. 친구는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고, 나는 손수건으로 피가 흐르는 무릎을 꾹 누른채 걷는 것도 아니고 기는 것도 아닌채 주위를 돌아보았으나 주말이라 인근 병원도 문을 연 곳이 없고, 결국엔 집에 전화하여 부모님께서 데리러 오셔서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열세바늘을 꿰매고, 그로부터 한달 동안 집에 누워서 꼼짝도 못했다. 지금도 왼쪽 무릎에 선명히 남아있는 흉터.

그보다 이전에 생긴 훈장으로는 오른 쪽 발등이 있다. 중학교 1학년때 동생이랑 말타기 놀이하다가 넘어진다는 것이 집의 큰 어항 (수족관 수준의 어항이었다)의 금속 받침대에 발등이 찍혀 또 뼈가 다 보일 정도로 다쳐서는, 또 열바늘인가를 꿰매고 그날부터 나는 외삼촌 차를 타고 교문까지, 교문에서 교실까지는 업혀서 등교하기를 몇주일 계속했다.

동네 빵집에서 빵 사가지고 나오다가 유리문에 손가락이 끼어 생손톱을 수술로 빼어야했던 일도 있다. 요건 고3때.

나, 하나도 차분하지 않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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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7-09-01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진짜 하나도 안차분하시네요~ㅎㅎㅎ
웃으면 안되는디~.푸훗
지금도 많이 다치시나요?????

전 이마에 흉이 있어요.
님보다 더 어렸을때인 3살쯤 다쳤데요,,,기억에 없어요,
그래서인지 전 너무 몸을 사려요.
늘 조심조심,,,,아주 어렸을때 정신차리게 혼났어서 그런가봐요.ㅋㅋ

hnine 2007-09-01 08:15   좋아요 0 | URL
전 지금도 덤벙대는 성격은 여전해요~ ^ ^

조선인 2007-09-0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코밑에 1센티 정도 되는 흉터가 있고, 왼쪽 눈썹에 흉터가 있고(이건 눈썹문신으로 살짝 가림), 전신에 멍이 떠날 적이 없고(매맞는 아내로 오해받은 적도 있어요, 옆지기가 무지 억울해 했다는. ㅋㅋㅋ)...

hnine 2007-09-01 13:52   좋아요 0 | URL
하하..조선인님은 주로 안면에 훈장이 집중되어있으시군요. ㅋㅋ
전 언제나 이 덤벙대는 성격이 좀 고쳐질지. 꼭 여러가지일을 동시에 하려다가 일을 저지르는 것 같아요.

세실 2007-09-0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hnine님 하마터면 속을뻔 했군요. 다소곳한 처자이신줄....
전 보림이 임신한 뜨거운 봄날, 배꼽티 입고 백숙하던 닭 뒤집다가 뜨거운 물이 배에 튀어서 한일자로 물집 생겨 한동안 병원 다녔습니다.
글구 덩어리 치즈 칼로 자르다가(거의 치는 수준) 다섯바늘 꿰맸고, 도서관에서 이면지 종이 자르다가 칼에 베어 다섯바늘정도 꿰맸습니다. 에휴....

hnine 2007-09-02 11:01   좋아요 0 | URL
어머..세실님, 동지의식을 느끼겠네요. 그런데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는걸요.
말씀대로 저 본의아니게 내숭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답니다. 얌전하지도 않으면서 얌전한 척 했다고 흑 흑...
 

 

넘어지면 말이지
왜 넘어졌을까
나만 넘어졌나
다른 친구도 넘어졌나
또 넘어지면 어떻하지
그런거 나중에 생각하고
그냥 툭 털고 일어나렴
몇번의 생각보다
툭 털고 일어나는 그 행동이 훨씬 멋지다 아들아





 

 

 

 

 

-- 내용, 계절 무엇하고도 맞지 않는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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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7-08-31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제가 일빠!!!!
사진 넘 좋아요,,,근데 님 너무 어려보이시네요,,,헐

hnine 2007-08-31 12:12   좋아요 0 | URL
어려 "보일지"몰라도 어리지는 않답니다 흑 흑...

비로그인 2007-08-31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네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뜻밖이네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세요.

사진과 대화 나누었어요.

hnine 2007-08-31 22:30   좋아요 0 | URL
제 사진 페이퍼에 종종 올렸었어요.
초등1년 아들 반 엄마들 모임이 있다고 해서, 끝까지 안가고 싶어 버티다가, 반 친구들도 모두 온다는 말에 아이가 너무 가고 싶어해서 그냥 갔다가 조금 아까 들어왔네요. 우리나라 엄마들, 저는 말 그대로 정말 존경스러워요.
 

거의 20년 전 이야기이지만 학교 실험실에 있다보면 실험 진행 상황에 따라 아주 늦게까지 학교에 있다가 집에 올때가 있었다. 실험실 안에 있다 보면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불을 끄고 실험실 문을 탕 닫고 돌아서면 컴컴한 복도와 맞서야 했고, 또 컴컴한 교정을 걸어나와야 했다. 나도 모르게 빨라지는 발걸음을 하고 교문까지 도착하면 조그만 쪽문만 열어 놓고는 수위아저씨께서 교문까지도 닫아놓은 상태. 내일은 꼭 같이 늦게 까지 남아 있을 사람을 구해서 같이 있다가 나와야 겠다 생각하며 교문을 벗어나면, 그 요란 법석, 화려한 학교 앞의 상가들도 거의 문을 닫고 썰렁했다.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 시간에 가까스로 맞춰 가다보면 그때까지 문을 닫지 않고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던 매장이 있었으니 거기가 바로  모 아이스크림 체인점.  아직 저렇게 문 안 닫은 곳도 있는데 뭘...하면서 마음이 놓이곤 했다. 그리고 그 아이스크림 가게가 좋아졌다 (이런 말도 안되는 ㅋㅋ...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아이스크림 회사와 나 전혀 상관 없다.).

그런데 언젠가는 집에 오기를 포기하고 실험실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진행상으로는 훨씬 일찍 끝나야 했으나, 하다보면 2시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과정이 5시간만에 끝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실험을 중간에서 그만 둘수가 없으니 끝날 때까지 있다 보면 끝나는 시간이 새벽 4, 5시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날은 밤을 학교에서 보낼 수 밖에 없는데,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그때는 학교에서 밤을 새려면 건물사용허가서니 뭐니 해서 미리 서류에 사용허가를 받아 놓고, 또 한가지, 함께 있어줄 사람을 구해야했다. 아무래도 컴컴한 건물에 혼자 있는 것은 좀 무서우니까. 그리고 실험을 하다 보면 기기를 사용하기 위해 1층, 2층을 왔다 갔다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대학 신입생이던 남동생을 불렀다. 11시쯤 담배를 한 보루 사가지고 동생 등장. 웬 담배? 했더니, 건물의 수위 아저씨 드린단다. 남동생은 예전부터 처음 만나는 사람도 5분 안에 친해지는데 탁월했다. 그날 실험을 마치고 이른 아침에 집에 잠깐 가서 씻고 다시 학교로 나왔다.

이후에도 실험실에서 밤을 샌 일이 몇 번 있다. 밤을 새면서 뭔가 할일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병상을 지키며 밤을 새거나, 걱정으로 밤을 새우는 일을 생각하면 정말 그렇다. 지금도 가끔 밤을 새우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바로 내 집에서이다. 어떻하다보면 너무 늦게까지 안 자고 있게 되고 그때 잤다가는 새벽 6시 반에 아침을 차려내야 하는데 못 일어날까봐 그냥 그대로 아침을 맞는 것이다.

쓰다보니 위의 그 실험실에서 종종거리고 나올 때가 다시 눈 앞에 그려지면서, 그때가 아련하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져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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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3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험실에서 밤을 새울 때 애인은 없었나요?
은근히 그런 무드를 기대했었어요.

hnine 2007-08-30 21:49   좋아요 0 | URL
애인 비슷한 사람도 없었네요 흑 흑...

라로 2007-08-31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와 지금의 님은 갈 실험실이 없다는게 달라진거 아닐까요????>.<

hnine 2007-08-31 22:30   좋아요 0 | URL
실험실을 등지고 나왔지요 지금은...1년 좀 넘었어요.

가시장미 2007-08-3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조만간.. 밤샘을 해야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염려되네요. 으흑-_ㅠ
그 때와 지금.. 달라지신 점. 궁금하네요. 만약 저라면 '열정'에 대해 생각해 볼 것 같아요.

hnine 2007-08-31 22:32   좋아요 0 | URL
되도록 밤 안새고 할수 있으면 더 좋겠지요, 더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그때와 지금, 홀몸이 아니라는 것(?)이 제일 큰 차이겠지요 뭐 ^ ^
 

이제 가나보다 여름이.
여지 없이 내 땀을 실컷 내어놓게 하던 그 더위를 데리고
내 할 일 다 마쳤다고 가나보다.
이제 선선한 그 몇 시간을 잠 속에 보내기 싫어 새벽까지 깨어있지 않아도 된다.

나이가 들어가는거 맞나.
가는 것들 뒷 모습 보는 기분이 예전과 다르다.
또 오라고 할 수 없다.
올 여름은 이제 가면 다시 오지 않으니.
그냥 잘 가라고 할수 밖에.

잘 가.
가끔 기억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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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3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낼게요.
안녕...내년에 또 만나..
우리 같이 가을을 맞자구요.
안녕?...어서와.

마늘빵 2007-08-30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드디어 제가 좋아하는 가을이. 여름은 너무 더워...

라로 2007-08-30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여름은 기쁘게 보낼 수 있어요.
어여 가을이 오길 저만큼 기다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ㅎㅎ

hnine 2007-08-30 16:02   좋아요 0 | URL
민서님, 저 그렇게 더위를 타면서도 오늘 서늘한 바람 불기 시작하니 좀 아쉽네요.
아프락사스님, 가을을 좋아하는 남자시군요 ^ ^ 멋져요.
nabi님, 가을 기다리시는 기분, 알지요, 그리고 부러워요 ^ ^

세실 2007-08-31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에 열려진 문 닫을 때면 가을이 왔다는 걸 느낍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계절이지만 점점 서글퍼 지는 느낌이 드는걸 보니 나이가 드는가 봅니다.
여름 쿨하게 보내주고 멋진 가을에 만나요~

hnine 2007-08-31 22:34   좋아요 0 | URL
세실님, 많이 바쁘시지요? 어린이자료실 반응이 어떤가요? 물으나 마나겠지만요. 멋진 가을...가을은 늘 짧게, 휘리릭 지나버린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어요.
 

 


내일이 사라지자 모레가 황홀해졌다...

2007년 8월 22일자 중앙일보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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